아시다시피 '군주론'은 이미 국내에도 여러 번역본이 유통되고 있지요. 그러나 이번에 읽은 강정인, 김경희 교수의 번역본은 이전 번역들과는 출발선이 다르다 생각됩니다.
한국 정치사상계 대표학자인 '강경인 교수'와 마키아벨리 전공 학자인 '김경희 교수'가 영어나 독일어 중역(重譯)이 아니라 이탈리아어 원문을 직접 대본으로 삼아 완역한 국내 최초의 원전 번역판이기 때문입니다.
번역의 가장 큰 덕목은 언제나 정확성이지만, 고전 번역에서의 정확성은 단순히 단어를 옮기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군주론'에서 핵심을 이루는 개념들 -예컨데, '비르투(virtù)'와 '포르투나(fortuna)'- 은 번역어 하나를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책 전체의 의미가 달라지지요.
'비르투(virtù)'를 단순히 '덕'이라 옮기면 마키아벨리는 '도덕론자'처럼 보이고, '능력'이라 옮개면 냉혹한 '현실주의자'로 비칩니다. 그런데 김경희 교수가 박사 논문 자체를 이 개념 규정에 바쳤다는 사실은 이 번역 선택의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다루었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당연히 책을 읽으면서 역자들이 단순히 문장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 아니라 마키아벨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결을 함께 옮기려 노력했다는 인상이 줄곧 따라 왔답니다.
마키아벨리를 '권모술수의 대가'라 부르는 세간의 평가는 사실 그를 제대로 읽지 않은 결과라 생각합니다. '군주론'에는 분명 불편한 대목들이 있습니다. 어느 상황에서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충고, 체사레 보르자의 냉혹한 숙청을 모범 사례로 드는 서술 등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맥락을 끝까지 따라가면, 마키아벨리가 비도덕적 행위 자체를 찬양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보전해야 하는 공인의 책임이라는 조건 아래 그것을 설명하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폭력으로 권력을 잡을 수는 있어도 명예는 얻을 수 없다'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는 이도 마키아벨리라는 사실을 많은 독자들은 그냥 지나치곤 하지요.

나아가 마키아벨리는 '당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누구보다 냉철하게 바라본 사상가가 아닌가 합니다.
세상에 선한 사람만 있다면 도덕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세상에서 선함만을 고집하는 것은 오히려 파멸로 이어진다는 그의 논리는 냉소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정직한 진단이었다 생각합니다.
기존 번역본과는 달리 이탈리아 원문에서 출발한 번역이라서 일까요? 중역을 거치는 과정에서 흐릿해졌던 마키아벨리의 주장이 좀 더 읽기 쉽고 훨씬 또렷하게 되살아난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회와 역량의 조화'라는 시각은 '군주론'을 읽는 또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고 봅니다.
모세나 키로스 같은 인물들이 위대해진 것은 단순히 타고난 능력 때문도, 순전한 행운 떄문도 아니었습니다. 역량을 갖춘 사람에게 기회가 맞아 떨어지고,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움켜쥘 역량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죠.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군주론'은 단군히 통치자를 위한 매뉴얼 그 이상으로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자기 역량을 어떻게 기르고 어떻게 발현할 것인가를 묻는 자기계발서의 성격을 갖습니다. 물론 이 질문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생각합니다.
'야만족의 지배로 부터 이탈리아를 해방하기 위한 호소'인 마지막장이 오래동안 머릿 속에 남을 듯 합니다. 분열된 이탈리아를 바라보며 외세를 몰아내고 조국을 지탱할 강력한 지도자의 출현을 촉구하고 있지요.
이 대목은 냉정한 권력 분석서로만 읽혀온 '군주론'이 실은 애국적 열망과 서사를 담고 있는 텍스트임을 잘 보여준다 생각합니다. 물론 강정인, 김경희 두 교수의 번역은 마지막까지 그러한 그의 열망까지도 놓치지 않고 전달하고 있습니다.

수백 년에 걸쳐 여러 언어를 경유하며 변형되어온 마키아벨리의 언어를 원문 그대로에서 가져온 오리지널 '군주론'에 가장 가까운 번역본이라 평가하고 싶습니다.
풍부한 해설과 관련 부록까지 갖추었으니, 거의 완전체 '군주론'으로 손색이 없다 생각합니다.
평소 '군주론'을 읽어 보고 싶었던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