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바이오 산업 현황과 주요국의 전략, 그리고 한국이 나아가야할 방향까지 종합적으로 분석한 본서는 단순한 산업 보고서를 넘어 국가의 미래가 달린 중대한 과제를 냉철하게 조망하고 있습니다.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이오 산업이 단순한 제약, 의료 영역을 넘어 국가 경제와 안보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다는 사실입니다.
1부 '넥스트 칩워, 바이오워'에서 저자는 미국이 바이오 기술을 국가 안보 전략의 최상위에 배치하고, 중국이 '바이오 굴기'를 선언하며, 정부 주도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충격적이었던 내용은 미국이 2020년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인 DARPA에 합성생물학 제조 연구기관을 신설하고, 2.7억 달러를 투입했으며, 이듬 해에는 합성생물학을 10대 혁신 기술로 지정했다는 점입니다. 바이오 기술이 이제 국가 안보와 직결된 '전략 무기'로 인식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유럽에서는 덴마크의 노보 노디스크가 비만 치료제 시장을 선점하며, 글로벌 제약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고, 스위스의 론자가 CDMO(위탁개발생산) 산업을 주도하며, 성장하는 모습이 자세히 소개됩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적극적인 추격, 일본의 '문샷' 프로젝트, 인도의 제네릭 의약품 강세 등 각국의 전략과 강점이 잘 분석되어 있어, 세계 바이오 산업이 지형도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책을 읽어나가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오픈AI,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등 빅테크 기업들이 앞다투어 바이오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책에 따르면 이들은 AI, 머신러닝,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자신들의 디지털 자산을 활용해 바이오 산업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맞춤형 바이오가 뜬다'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2024년 CES에서 디지털 헬스케어가 주목받은 내용을 소개하며, AI와 IoT를 융합한 예측형 헬스케어 시스템이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음을 설명합니다.
스마트워치, 스마트링, 웨어러블 패치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건강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질병을 예방하는 기술은 이미 우리 일상에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AI 의사'와 '수술 로봇'의 발전, '디지털 치료제'의 등장 등 첨단 기술과 의료의융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휴먼 디지털 트윈' 기술은 환자의 신체 상태를 가상으로 복제해 맞춤형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혁신으로 미래 의료의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대한민국의 바이오, 즉 K-바이오 산업의 현황과 과제 또한 냉철하게 분석합니다. K-바이오는 내수용 복제약 생산에서 벗어사 글로벌 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있으나, 세계 시장에서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책에 따르면 2023년 K-바이오의 포트폴리오는 합성제약이 46%, 의료기기가 28%, 바이오 의약품이 18%, CDMO가 8%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아직 고부가가치 바이오 의약품이나 CDMO 분야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저자는 전통 제조업으로는 더 이상 한국 경제의 지속 성장이 어려우며, 바이오 산업이 제2의 삼성전자와 같은 국가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바이오 산업의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무겁게 가슴에 와 닿습니다.

역시 책의 백미는 마지막 장인 '바이오 패권 Victory 전략'이라 생각합니다. 저자는 K-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4가지 핵심 전략을 아래와 같이 제시하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첫째, '속도(Velocity)'는 데이터 활용을 통한 산업 가속화 전략으로, 세계 최초의 정부 인증 데이터 거래소 구축과 병원의 스타트업 육성 역할 강화를 강조합니다. 의료 데이터와 이를 분석하는 AI의 중요성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둘째, '도전(Venture)'은 신약 개발을 위한 과감한 투자와 규제 혁신전략입니다. 한국판 '바이오 스타게이트' 구축, '바이오 원아시아' 개념을 통한 임상 주도권 확보, 기초과학 잭팟 펀드 조성등의 아이디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셋째, '증식(Value-boost)'은 바이오 영역을 확장하는 전략으로, 화이트 바이오(산업용 바이오). 그린 바이오(농업용 바이오)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기술특례상장 요건 완화 등을 통한 자금 조달 환경 개선을 제안합니다.
넷째, '활력(Vitality)'은 항노화 산업과 같은 새로운 분야에서의 경쟁력 확보 전략입니다. 특히 전 국민 세포은행 설립과 K의료 관광의 항노화 분야로의 업그레이드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됩니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환자가 2018년 38만 명에서 2023년 61만 명으로 크게 증가한 점은 한국 의료 서비스의 국제적 경쟁력을 보여주는 지료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강점을 바탕으로 항노화 의료 관광을 더욱 발전시킨다면, 국가 경제에도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본서 <바이오 패권경쟁>을 읽으며 느낀 가장 큰 인사이트는 바이오 산업이 단순히 의료, 제약의 영역을 넘어 국가 존립과 번영을 좌우하는 핵심 산업으로 부상했다는 점입니다. 반도체 산업이 그랬듯이, 바이오 산업도 이제 국가 간 패권 경쟁의 중심에 서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책은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풍부한 사례와 인터뷰, 데이터를 통해 바이오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특히 노바티스 인터내셔널 사장, 한국생명공학 연구원 센터장 등 국내외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글로벌 시각과 현장의 목소리를 동시에 들을 수 있어 매우 유익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K-바이오가 직면한 인재 부족 문제나 글로벌 네트워킹 강화 방안 등이 좀 더 구체적으로 다뤄졌으면 하는 점입니다. 크로스보더 파트너스 김민지 대표의 인터뷰 중에 언급된 "K-바이오 글로벌 네트워킹 강화 필요"는 현장에서 체감하는 중요한 과제인데, 이에 대한 좀 더 깊은 논의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본서는 바이오 산업에 관심있는 일반독자부터 관련 분야 종사자, 정책 입안자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유용한 인사이트와 방향성을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특히 취재력과 분석력이 돋보이는 책으로, 관련된 다양한 데이터와 현장 사례를 바탕으로 한 주장과 전망이 설득력있게 다가 옵니다.
바이오 산업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분야입니다. 긴 호흡과 꾸준한 투자, 그리고 국가적 차원의 전략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장기적 안목을 갖추고, K-바이오의 미래를 설계하는데 필요한 귀중한 나침반이 되어 줄 책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바이오 산업의 현재와 미래에 관심이 있는 모든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