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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제레미아스 아담스 프라슬 지음, 이영주 옮김 / 숨쉬는책공장 / 2020년 6월
평점 :
기존의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은 고리타분한 옛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직장인들은 더 이상 자신의 직장을 뼈를 묻을 곳이라곤 생각지 않습니다. 퇴근 후 새로운 직업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운다는 모 자동차 CF 처럼 고용 불안이 심화되고, 퇴직과 퇴사가 상시적인 상황에서, 'N잡러'라는 신조어가 생겼났습니다. 직업의 수 N + Job + 사람(~er)인 셈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다수의 직장인들의 희망퇴직, 구조조정, 무급휴직 등의 심리적 압박은 갈수록 더해가는 이때, 비정규 임시 계약직의 프리랜서 근로 형태인 긱 경제(긱 이코노미,Gig Economy)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일자리 지형을 바꿔놓고 있습니다.
필요할 때 마다 계약직, 임시직 등을 섭외해 일을 맡기는 '긱 잡'을 하는 근로자는 고용불안, 임금정체를 겪기도 하지만, 일하고 싶을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는 자유와 노동의 유연성을 보장 받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의 차를 이용해 택배 배송일을 하는 분들이나, 배민등의 음식배달을 하시는 분들 등 소위 비정규직 노동자를 지칭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는 이러한 긱경제 노동자들 혹은 플랫폼 노동자들의 위기 상황에 놓인 노동 실태와 불공정한 고용지위 그리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다양한 사례와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습니다.
본서에서 이야기하는 긱 노동자들에 있어 고용 상황상 가장 큰 문제점은 그들을 노동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할 수 없는 "독립계약자"로 분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독립계약자 신분의 긱 노동자들은 소득의 보호, 노동조합, 보건과 안전 그리고 해고 보호에 이르는 법적 안전망(노동법)의 혜택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들을 이용하는 플랫폼 사업자들은 당연히 사업상의 위험을 그들에게 전가할 수 있고, 상당한 비용 절감효과를 가져갈 수 있겠죠.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는 각종 제품이나 서비스 뿐 아니라 인간의 노동까지도 상품으로 사고 판다는 의미의 '서비스로서의 인간(Humans as a service)' 이라는 개념을 들이댑니다.
우리가 잘 아는 거의 대부분의 플랫폼 기업들의 논지는 이와 같습니다. "일단 노동 자체가 서비스나 상품이 되면, 소비자 가격은 낮추고 사용자의 이익은 늘리면서도 그러한 책임을 피할 수 있다"
서비스로서의 인간을 상품처럼 팔면서 전통적인 노동법의 보호를 무시할 수 있는 방법 ! 바로 그들의 '약관'에 담겨있습니다. 즉, 플랫폼 기업들은 자신을 '중재자'로, 노동자를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 독립적인 기업가 혹은 독립 계약자로 분류하고, 노동자에게는 기업가라는 새로운 라벨을 붙이고, 노동은 기술로서 판매가 되는 것이죠.
하지만 단순 중재자가 아닌 디지털 노동 중개 사업을 하고 있는 플랫폼 기업들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을 위한 시장의 역할이 아닌 등급 평가 시스템과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관련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통제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에서는 긱 경제에서의 '주문형 노동(Work on Demand)'의 전형적 사례와 디지털 노동 중개에서 플랫폼 기업의 역할 그리고 공유경제로 포장된 폴랫폼 기업의 영리적 노동 중개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플랫폼 기업들이 약속하는 노동의 자율성, 자유, 유연성에 반하는 자기 결정과 알고리즘에 의한 통제를 통해 기업가 정신과 혁신이라는 교묘한 감언이설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해결법은 되려 심플하게 보입니다. 첫 번째 단계로 노동법을 통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드기(Levelling the Playing Field)" 라 할 수 있습니다. 긱 경제를 포함하는 산업을 노동법의 적용범위에 두고, 최저임금 적용을 포함한 노동 안전성 회복이 우선이라는 말입니다.
강력한 서비스 제공자임에도 불구하고, 단순 중재자로 남아 거의 모든 사업 위험과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플랫폼 사업자들과의 거래에서 왜곡된 기존의 경기장을 다시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앞으로 나타날 새로운 형태의 긱 노동자들의 삶과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여기에는 기존의 노동법이 공평하게 적용되고 일관성있게 시행되어야만 기업들은 평평한 경기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논리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말그대로 '노동의 유연성'과 '노동법 보호'는 본질적으로 양립 가능함을 법적, 제도적으로 마련해 나가야할 시기가 아닐까 합니다.
본서가 그 단초가 되기를 희망하며, 미래 노동과 일자리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