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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발 - 포스트 코로나 시대 특별판
로버트 터섹 지음, 김익현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9년 3월
평점 :

미국에 본사를 둔 시스코 시스템즈(Cisco Systems)라는 세계적인 네트워크 장비 회사가 있습니다. 2009년에 플립이라는 전도유망한 휴대용 고선명 카메라 생산업체를 5억 9000만 달러에 인수했답니다. 그러나 시스코에 인수된지 2년만인 2011년에 플립은 문을 닫게 됩니다. 매각도 아니고 사업 분사도 아닌 아예 플립의 제품을 단종시켜버린 것이죠.
왜 시스코는 전도유망한 플립을 비싼 가격에 인수하고도 아예 폐업을 해버린 것일까요? 바로 스마트폰의 카메라 앱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의 품질과 처리 능력이 계속 향상되면 휴대용 카메라는 설 자리를 잃을 것을 시스코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아무리 작고, 편리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플립과 비슷한 운명을 넷플릭스에 대체된 '블록버스터'나 코닥의 기업 사례에서 부터 어느 순간 자취도 없이 사라진 CD, DVD플레이어, 비디오 레코더, MP3 플레이어 등의 제품들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온데 간데 없이 증발(Vaporized)해 버린 것이죠.
오늘 소개해드리는 <증발 : 모바일 경제를 관통하는 핵심원리>의 저자인 '로버트 터섹'은 한 발 더 나아가 이런 전자 기기의 증발 뿐 아니라 애플의 아이튠스 스토어(가상매장)가 대체해 버린 오프라인 레코드 점인 '타워레코드'의 증발과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제품, 회사, 직업, 교육 그리고 우리들의 정체성 마저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로 대체되며 영원히 사라지는 시대로 진입했음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변화를 보지도, 만지지도 못합니다. 디지털화 된 일상 영역이 빠르게 넓어지고 있음에도 그 변화의 실체가 없기에 개념화하거나 묘사하기도 힘이 듭니다. 실제로 겪어 보기 전에는 아예 눈에 뛰지도 않기에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저자는 이야기 합니다. "정보기술은 다른 비즈니스 규칙과 경제논리를 따른다. 순수한 디지털 정보로 바뀔 수 있는 비즈니스와 제품은 예외없이 증발한다.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분야 또한 예외는 아니며, 이미 벌어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최근의 기업의 미래 생존 전략의 최대 화두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 비 IT 영역을 포함한 전 산업으로 확대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저자의 '증발이론'에 분명 위기감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품 개발, 제조, 마케팅, 유통에 이르는 기업의 가치사슬 전반이 하루 아침에 해체되고, 전복될 만한 '파괴적 혁신'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러한 변화를 멈출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본서에서는 특히 미래 일자리의 증발에 대해 많은 장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로봇과 자동화가 인간 노동자를 계속 대체해 나갈 것입니다. 즉 인간 노동 수요의 파괴입니다. 처음에는 특정 분야의 판에 박힌 반복적인 일에서 부터 다재다능한 분야의 영역으로 확대 될 것입니다. 계산대 키오스크가 로봇 관리자로, 식당 주문 접수기가 완전 자동화 식당으로, 단일 조립 라인이 전체 공장 자동화로, 운항 조정이 자율주행차로 말이죠.
그러나 문제는 특정 노동을 대체하는 기계의 가격이 저렴해지면 노동자의 대량해고가 가능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일자리 창출 속도가 해고 속도에 못 미치고, 일자리 생성과 일자리 파괴의 간극은 점점 벌어지고 실업자 수가 늘어나게 됩니다. 더 많은 실업자가 새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면서 임금 수준이 정체되거나 낮아질 것은 자명합니다. 심화된 소득 불평등의 원인이기도 하지요.
당연히 미래의 기업의 입장에서는 여러 산업이 증발하면서 그 생산품 뿐 아니라 일자리 차원에서도 정보기술 회사를 닮아갈 것입니다. 말 그대로 더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수익을 내면서 회사를 운영하는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구글, 페이스북 처럼 말이죠.
참으로 많은 '증발'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그 중심에는 소프트웨어가 있고, 소프트웨어의 본질에는 데이터(Data)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증발을 리더해 가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여러 IT 공룡들의 비열할 정도의 데이터 독재전략을 폭로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변화와 현재 진행 중인 디지털 퍼스트(Digital First)의 명암(明暗)을 분별하고자하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