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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경제학? 공동체 경제학!
최배근 지음 / 동아엠앤비 / 2018년 12월
평점 :

추운 날씨 만큼이나 여러 경제 지표들이 연일 얼어붙고 있습니다.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인상'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실제 체감은 커녕 오히려 실업률은 높아지고, 일자리는 더욱 사라질거라는 볼멘소리가 여기 저기에서 터져나오는 요즘입니다.
특히,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의 고질적 병폐인 '소득 불평등'과 '자산 불평등' 은 제조업 내수를 얼어붙게 하여, 종국에는 일자리 증가율 하락, 일자리 양극화의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지난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지목 받는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은 해소될 기미는 커녕 더욱 악화되고 있고, 금융 회사들의 고 위험 추구 행위와 부채 버블은 금융위기 이전 보다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은 세계 경제의 암울함을 단적으로 제시하는 바로미터가 아닐까요?
오늘 소개해 드릴 <위기의 경제학? 공동체 경제학!> 에서는 현재 우리들이 겪고 있는 주요 경제 문제들이 실은, 근대의 핵심 요소들인 산업화, 국민경제 그리고 국민국가의 틀에서 비롯되며, 이러한 '근대의 함정' 을 여전히 옹호하는 주류경제학의 맹점에 신랄한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1, 2차 산업혁명을 통해 제조업의 성장과 이를 통한 사회구조의 변화 그리고 일자리의 폭발적인 증가를 충실히 설명해 왔던 주류경제학 이론은 1970년대 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탈공업화에 따른 경제 문제들 예컨데, 금융화의 문제, 인플레이션, 고용없는 성장과 청년 실업 문제의 대두 등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진행에 따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데이터가 새로운 생산요소로 등장하면서, 토지, 노동, 자본을 핵심 생산요소로 설명하던 기존 주류경제학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습니다. 데이터가 새로운 가치와 일자리 창출의 핵심 요소로 부상하는 '데이터 경제(Data Economy)' 로의 전환이 가속화 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글로벌 경제의 핫 이슈는 단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 Digital Transformation)'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제조업으로 부터 시작되어 현재는 상품과 서비스(소비재)를 생산하는 모든 기업의 미래 생존전략으로 여겨지고 있을 만큼 데이터 경제로의 이행은 빨라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러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결과로서 산출되는 '무형재(無形財)의 경제적 함의'는 기존 제조업의 산출물(유형재)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비소모성을 특성으로 하는 무형재는 복제에 의해 무한 추가생산이 가능하기에 한계비용이 사실상 제로에 수렴하게 됩니다. 당연히 시장에서의 자연독점에 따른 시장실패로 귀결될 수 밖에 없습니다(무형재 경제의 딜레마). 규모의 경제로 초기 진입자에게 독점의 이점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네트워크효과나 지식재산권 등으로 판매와 수익 등에서 시장 집중을 심화시킴으로써 경쟁압력을 약화시키게 됩니다. 역설적이게도 디지털 혁신이 진전되면서 발생하는 혁신의 약화현상인 셈이죠.
일자리 문제에 있어서도 기존 제조업 기반의 산업사회에서는 기업의 목표(주주이익 극대화)와 고용 증가가 일치하였다면, 플랫폼 기반의 데이터 경제 기반에서는 '조건부 임시고용'이라는 '긱경제(Gig Economy)'를 심화시켜 노동의 양 및 질적 악화를 야기할 뿐이라는 지적입니다. 이는 기술이 진보하면서 장기 고용의 숙련 노동력 확보 대신 노동비용 절감을 위해 하도급을 통한 외부계약으로의 전환이 빈번해지는 등 산업화 과정에서의 희생의 산물인 노동력이 무력화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무형재 경제의 딜레마를 야기하는 데이터 경제 시대의 일자리문제의 해법은 무엇일까요?
저자는 소비자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내는 '사회적 책임의 공유' 방식을 제시합니다. 유투브나 페이스북 등의 SNS 매체를 통해 소비자가 스스로 가격을 결정함으로써 수입의 일정부분을 사회적 책임의 실행을 위한 지출과 연관시켜, 소비를 통해 사회적 책임을 일정 부분 공유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죠. 이와 같이 '사회적 책임의 공유' 방식은 공급자의 수익극대화와 사회적 후생 극대화를 결합시킬 수 있다는 논리로 해석됩니다.
일자리 문제 이외에도 본서에서는 소득 불평등의 증가, 달러본위제에 기반한 국제통화시스템의 파산, 글로벌 불균형,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 개혁의 필요성, 화폐의 다원화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한 대안화폐 시스템의 등장 그리고 초양극화 현상 등 주류경제학에서 놓치고 있는 다양한 경제 문제의 이슈와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답니다.
4차 산업혁명과 맞물린 기술변화에 따른 사회 구조적 변화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공업화 시대와는 본질적으로 다른)와 국가, 시민사회 그리고 공동체 등이 함께 협력하고, 공유하고, 디자인해 나가는 '호혜(互惠, reciprocity)의 경제학' 으로의 전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책 서두의 우석훈 박사의 추천사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현재 공무원들이 시험볼 때 활용하는 고시용 경제학(표준 경제학)은 폴 새뮤얼슨의 경제원론(1948)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여기에 알프레드 마셜의 부분균형이론과 레옹 왈라스의 일반균형 이론을 절반, 그리고 케인스의 이론을 나머지 절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형성된지 50년이 조금 늦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조업 중심의 공업화 시대에 포커스를 맞춘 경제학 이론으로는 탈공업화된, 4차 산업혁명시대의 경제 담론을 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일 겁니다. 경제 성장 및 일자리 문제가 그렇고,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 문제가 그러합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에 맞춰, 엇비슷한 능력치를 통해 언제라도 쉽게 대체가능한 무난한 인재들은 이제 인공지능 시대의 1순위 대체 인력으로 평가 절하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누구를 위한 인재(人材)양성이었으며, 무엇을 위한 교육이었던가요?
2019년 현재, 우리가 처한 경제적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책으로 기억될 듯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