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사 - 세계사의 새로운 대안 지구사 연구소 총서 1
데이비드 크리스천 지음, 김서형.김용우 옮김 / 서해문집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세계사라고 하면 통상적으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사가 일반적이다. 속된 말로 힘있는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사다. 우리가 배운 세계사도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일부 강대국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에 대한 역사는 그저 몇 줄 정도로 간략하게 처리되었던 것이 이제까지의 세계사다. 물론 지금도 이런 식의 세계사 인식이 대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세계사 서술로 인해 우리는 유럽인이나 강대국들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나머지 나라들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생각하는 인식이 은연중에 자리잡게 되었다.

특히 민족과 국가라는 큰 틀 안에서 역사 서술이 이루어지다보니 여러 국가와 민족들 간에는 항상 갈등과 반목을 낳는 단초가 되기도 하였다. 이는 각국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국민들에게 우리는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을 주입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서술된 점도 없지 않아 있다. 위와 같은 세계사 서술의 조류에 대해 일찍이 많은 역사학자들이 반기를 들고 나왔지만, 아직까지도 역사 서술의 새로운 조류를 형성하기에는 힘에 부치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세계사 서술에 익숙한 우리에게 신선함을 느끼게 한다.

지은이는 과거를 연대기적 덩어리로 구분하려는 시도는 인위적일 수밖에 없다며 새로운 세계사로, 거대사(big history)를 제시한다. 시대 구분의 도식은 복잡한 실재를 왜곡하고, 심지어 과거를 구분하는 데 있어 가장 공평한 시도조차 왜곡을 수반하기 마련이라고 하며, 그와 같은 시대 구분의 도식이 가지는 이론적, 조직적, 윤리적, 기술적 문제점 등을 지적한다. 서구 사회에서 기술하는 세계사는 그들에게 “알려진 혹은 의미 있는” 세계의 역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기존의 세계사 책에서 볼 수 있었던 헬레니즘, 르네상스, 중세 등과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전편으로 우주의 탄생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아주 독특한 서술방식이다. 이어서, 인류의 시작이라는 제목하에 수렵·채집 시대를, 가속화 단계라는 제목으로 농경시대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근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세세한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는 대신 전체적으로 세계사를 조망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인류를 자연의 일부로 보고, 드넓은 우주 안에서 인류 역사를 탐구하려는 시도로, 원제인 “This Fleeting World: A Short History of Humanity”에서 알 수 있듯이, 지은이는 46억 년이나 되는 지구 역사에 비하면 25만 년의 인류 역사는 아주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세계사를 폭넓게 들여다보고 있다.

지은이는 각 지역의 역사를 개별적으로 나열하던 서술 중심에서 탈피하여 각 지역의 역사가 서로 연관관계에 있다는 생각에 착안하여, 단선적, 직선적 시각이 아닌 상호의존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다중심적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공동의 역사관 없이는 공동의 평화도 역시 없다. 조화로운 협력 속에서 함께 어울리게 할 그와 같은 이념 없이는, 좁고 이기적이며 대립적인 민족주의적 전통만으로는 인간은 갈등과 파괴로 치닫지 않을 수 없다.”(책 제10쪽 참조) 라고 밝힌 지은이의 생각에서 이 책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유럽중심주의이며 세부적인 역사적 사실에 치중한 기존의 세계사 책에 익숙한 나에게 있어, 지은이가 보여준 세계사는 색다른 경험이자 세계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게 해 준 의미있는 책이다. 다른 세계사 책처럼 많은 분량을 자랑하는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담고 있는 세계사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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