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은이), 정혜윤 (옮긴이) 문학동네 2022-02-28, 408쪽, 에세이

🍊 십여년 넘게 win-win을 고민하던 협력사로 있다가 이제는 친구가 된, 미국에 가 있는 친구와 그의 아내분이 감사하게도 이 책과 ‘죽음의 수용소에서‘ 영문판과 쿠키, 쵸코 이것저것을 보내주었다. (EMS박스안에 키우고있는 고양이 밀이의 흰털도 있을 수 있다 했으나, 아쉽게도 발견을 못함 ㅠ) 이미 그런 의미에서 뉴욕서 건너온 이 책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책이나... 읽고나니 더 내게는 의미가 깊어졌다.


🍊 책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미국인 아빠와 한국인 출신 엄마를 둔 2세대의 성장과 엄마의 암투병, 임종을 겪는 이야기이다. 요즘 세상에 보편적일 수도 있지만 그걸 담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후회, 아쉬움, 슬픔, 그리고 기쁨과 가족의 의미까지 어떻게 간단히 말할 수 있을까. 읽는데 쉽지 않았다. 좋은 글이고 가독성이 좋은 책이었고, 지금은 다시 재독을 할 것이며 정말 의미있는 책이 되었으나... 정말 어렵게 읽었다. 이 책을 병원 입원 중에 처음 읽었는데 쉽지 않았고, 좀 쉬다가 3주 후 다시 병원 입원 중에 읽었는데.. 그랬으면 안되는 거였다. 그리고 퇴원해서 읽으며 정말 웃으며 울며 읽었다. 엄마의 투병, 임종, 상실과 애도를 읽자니... 가독성이 좋고 작품이 좋다는 건 읽는 것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함부로 추천을 하기도 어려운 책이다.

🍊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앞으로도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중간 중간 마음은 상해도 서로를 사랑하겠지만... 칠순이 넘은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픈 나, 누가 먼저 간다고 해도 슬픔이 덜하거나 잦아드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실도 갑작스럽지 않은 것이 없으며, 어떤 애도도 쉬운 것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그런 마음을 절실히 보여주며, 또한 잃어버린 존재와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 평범한 사람의 시선에서 묵묵히 감정을 나눈다. 혼혈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화자의 이야기, 모녀간만 느낄 수 있는 애틋하고도 전쟁같은 이야기, 돈이 되지 않고 완성되어 있지 않은 직업을 가지며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이야기, 언어가 통하지 않지만 친척들과 관계에 위로를 얻는 이야기, 내가 모르던 엄마에 대해 알아가는 이야기, 나에게 힘이 되는 사랑을 얻는 것 많은 이야기들이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로 잘 다져서 웃고 울게 만든다. 그리고 엄마를 떠나 보내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모습에서 엄마를 찾아가고, 한국의 음식을 영상을 찾으며 하나하나 만들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거의 마지막에 다르면 나를 포함한 우리들은 어떤 슬픔도 슬프지만 받아들이고 회복해야 한다는 걸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 개인적으로는 수필이지만 소설같은 전개와 드라마에 얼마 전 읽었던 비비안 고닉의 ‘상황과 이야기를‘를 다시 복기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어떤 글을 써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도 절로 나오던 책이었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내 안에서 많은 것들을 느끼고 구분 짓고 마음 먹었지만, 글로 남기기에는 아직도 엉성하여 가슴에 안고만 있다. 글을 역시나 써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보내면서 무슨 마음이었을지, 그리고 지금 외할아버지를 보는 엄마 마음, 아빠도 한 때는 나 보다 어렸던 것을, 이 책을 보내준 친구와 그의 아내는 벌써 2년 가까이 한국을 떠나 미국에 있는데 어떤 마음일지... 하나하나의 기억이 그냥 소실 되지 않도록 말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단순히 슬픈 것이 아닌 살아가는 것이란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책 표지는 면을 한인타운에서 나누어 먹는 모녀의 식사 같지만, 젓가락은 눈이고 면은 눈물 같기도 하다가, 어느 사이 울면서 웃기도 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Thanks to Charls , Miseon and Cats (Meal & Ssal)


🍊 남기고 싶은 문장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9

🌱인생은불공평하고, 때로는 분별없이 남 탓을 해보는 게 아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때도 있으니까.
14

🌱 당시에는 엄마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지 지금처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엄마는 어마어마한 상실의 영역으로 넘어갔지만 나는 아직 그쪽으로 넘어가지 않았으니까. 나는 엄마가 자기 엄마에게서 떨어져 지낸 그 모든 세월에 대해, 한국을 떠난 것에 대해 느꼈을지도 모를 죄책감도 생각하지 못했다.
64

🌱 피터는 한참 지나서야 내게 말해주었다. 우리 부모님이 자신에게 먼저 전화했노라고 엄마가 아프다는 걸 자신이 나보다 먼저 알았노라고 내가 그 소식을 듣게 되는 순간에 반드시 내 옆에 있겠다고 두분에게 약속했노라고.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다 지나갈 때까지 자기가 내 옆에 있겠노라고.
85

🌱 엄마는 내가 말괄량이처럼 제멋대로 굴고 점잖게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서 덜렁댄다고 시도 때도 없이 야단쳤지만 그런 엄마도 한때는 나 같은 아이였다.
193

🌱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말했다.
내게 너무도 익숙한 한국말. 내가 평생 들어온 그 다정한 속삭임. 어떤 아픔도 결국은 다 지나갈 거라고 내게 장담하는말.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나를 위로했다. 엄마의 모성이, 엄마가 느꼈을 테지만 능숙하게 숨겼을 무진장한 공포를 제압해버린 것이다.
203

🌱 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이미 찢겨나간 육체적 자율성의 조각들은 하루하루 누더기 꼴이 되어갔고, 이제 살아가는 일과 죽어가는 일은 그 차이를 분간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215

🌱 아빠는 부부 사이가 별로 친밀하지 않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나는 아빠의 비밀을 알았지만 아빠가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늘 믿어왔고, 인생이란 게 그냥 그렇게 생겨먹을 때도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238

🌱 세상에 우리 엄마만큼 내 기분을 있는 대로 잡쳐놓을 수 있는 신랄한 사람도 없지만, 또 우리 엄마만큼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도 없었다.
240

🌱 우리는 아름답고 냉정한 성인 여자가 곧장 눈물 터뜨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얼추 4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엄마라는 말 한마디의 파급력은그 정도였던 것이다. 나는 몇 년 뒤에 똑같은 감정과 맞닥뜨릴 내 모습을 상상했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벌에 쏘이는 그 순간부터, 나란 존재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남은 평생을 벌침이 박힌 채로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247-248

🌱 ‘사랑스럽다‘는 말은 엄마가 굉장히 좋아하는 형용사였다.
엄마는 나를 딱 한 단어로만 표현해야 한다면 ‘사랑스럽다‘는말을 고를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엄마에게는 그 단어가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열정을 아우르는 말처럼 느껴졌나보다. 그것은 엄마의 묘비명에 새겨넣기에도 딱 알맞은 단어였다. 자애로운loving 엄마는 남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지만 사랑스러운 lovely 엄마는 온전히 자신만의 매력을 지닌 사람이니까.
268

🌱 오빠 역시 자기 몫의 슬픔이 있을 테지만 그 순간만큼은 꼭 삼켰다. 한 사람이 무너지면 나머지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어깨를 내주며 그 무게를 감당하는 법이니까.
270

🌱 겨우 요 몇 년 전에 와서야 우리는 불가사의한 문을 열어 서로를 수용할 심리적 공간을 만들어내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아보려고 탐색했다. 그러다 가장 풍성한 이해의 과실을 거둬들여야 했을 시간들이 그만 난폭하게 잘려나가고 말았고, 이제 나는 열쇠도 없이 남은 비밀들을 혼자서 해독해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285

🌱 정말로 아버지는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고 절대 이해 못할 방식으로 전 생애에 걸쳐 자기 것을 빼앗겨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어린 시절과 자기 아버지를 빼앗겼고 이제 또 사랑한 여자마저 강탈당했다. 관계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 사이가 좀 멀어지긴 했지만 그 기간은 몇 년 되지않았다.
299

🌱 그동안 엄마의 옛 편지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나는 이모를 자주 떠올렸다. 그걸 이모에게 보여줘야 할지 아니면 그것들로부터 이모를 보호해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326

🌱 나는 이모에게 하고 싶은 말이너무나 많았다. 엄마가 나를 한글학교에 보낸 모든 세월을 생각했다. 엄마한테 딱 한 번만 학교를 빠지고 금요일 저녁에 친구들이랑 놀면 안되겠냐고 애원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갖다버린 돈과 시간도 전부 다. 한국어 공부를 지겹게 생각한 걸 언젠가 후회할 날이 올 거라고 엄마는 골백번도 넘게 말했다.
336

🌱 나는 궁금해졌다. 만일 엄마를 가장 잘 아는 우리 세 사람,
그러니까 아빠와 나미 이모와 나에게 엄마가 남겨둔 10퍼센트의 부분이 제각각 다르다면, 우리가 같이 그 숨겨진 부분을 짜맞추어 엄마의 전모를 알아낼 수 있을지.
338

🌱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 병원 격리 생활로 변해버리기 전에 엄마가 나를 데려가려 한 곳이었다. 엄마가 나와 함께 만들려던 마지막 추억이고, 엄마가 나를 키우며 내가 사랑하도록 만든 것의 원천이고, 내가 기억했으면 하는 맛이고, 내가 절대 잊지 않았으면 하는 감정이었다.
344-345

🌱 한번 갈 때마다 본인부담금을 100달러씩 내고 있었으므로 그돈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50달러짜리 점심을 사 먹는 게 정신건강에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은 상담을 취소하고 스스로를 돌볼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354

🌱 내 기억을 곪아터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트라우마가 내 기억에 스며들어 그것을 망쳐버리고 쓸모없게 만들도록 방치할수는 없었다. 그 기억은 어떻게든 내가 잘 돌봐야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공유한 문화는 내 심장 속에, 내 유전자 속에 펄떡펄떡 살아 숨쉬고 있었다. 나는 그걸 잘 붙들고 키워 내 안에서 죽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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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모에게 하고 싶은 말이너무나 많았다. 엄마가 나를 한글학교에 보낸 모든 세월을 생각했다. 엄마한테 딱 한 번만 학교를 빠지고 금요일 저녁에 친구들이랑 놀면 안되겠냐고 애원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갖다버린 돈과 시간도 전부 다. 한국어 공부를 지겹게 생각한 걸언젠가 후회할 날이 올 거라고 엄마는 골백번도 넘게 말했다.
- P336

"할머니도 노상 그렇게 말했어." 이모가 말했다. "너랑 네 엄마똑같네."
나는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혔다. 항상 말도 못하게 잔인한 말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토가, 엄마만의 독특한 양육법에서 나온 거라고 믿었다. 
- P337

나는 궁금해졌다. 만일 엄마를 가장 잘 아는 우리 세 사람,
그러니까 아빠와 나미 이모와 나에게 엄마가 남겨둔 10퍼센트의 부분이 제각각 다르다면, 우리가 같이 그 숨겨진 부분을 짜맞추어 엄마의 전모를 알아낼 수 있을지. 
- P338

강렬한 햇볕에 누렇게 타들어간 풀밭 위로 전나무와 소나무 군락이 비죽비죽 지평선을 수놓고 있었다.
- P344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 병원 격리 생활로 변해버리기 전에 엄마가 나를 데려가려 한 곳이었다. 엄마가 나와 함께 만들려던 마지막 추억이고, 엄마가 나를 키우며 내가 사랑하도록 만든 것의 원천이고, 내가 기억했으면 하는 맛이고, 내가 절대 잊지 않았으면 하는 감정이었다.
- P345

한번 갈 때마다 본인부담금을 100달러씩 내고 있었으므로 그돈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50달러짜리 점심을 사 먹는 게 정신건강에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은 상담을 취소하고 스스로를 돌볼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 P354

이제 엄마가 남긴 표식을 단서로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오롯이 내 숙제가 되었다. 이 얼마나 돌고 도는 인생인지, 또 얼마나 달콤쌉싸름한 일인지. 자식이 엄마의 발자취를 더듬는 일이, 한 주체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기록 보관인을 기록하는 일이.
- P372

내 기억을 곪아터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트라우마가 내 기억에 스며들어 그것을 망쳐버리고 쓸모없게 만들도록 방치할수는 없었다. 그 기억은 어떻게든 내가 잘 돌봐야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공유한 문화는 내 심장 속에, 내 유전자 속에 펄떡펄떡 살아 숨쉬고 있었다. 나는 그걸 잘 붙들고 키워 내 안에서 죽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 P372

나는 엄마의 유산이었다. 내가 엄마와 함께 있지 못한다면 내가 엄마가 되면 될 터였다.
-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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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칸놀이터, 소설을 읽어요요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함께 읽은 책. 작가 클레이 키건이 작년에도 많은 찬사와 추천이 있었으나, 너무 메이저는 접근을 망설이는 경향에 이제 읽을 기회가 있었다. 아, 이래서 그랬구나를 이제야 느끼는중..

🍊 1940-60년대 펄롱이나, 내가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 부모들 모두 비슷하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족을 부양하는 위대함을 느낀 소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 연대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느낀 시간이었다.

🍊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를 돌이켜보며 심란해하기도 다행스럽게 여기기도 하는 펄롱의 모습이... 누구에게나 있는 어른 안의 아이 모습을 느끼게했다. 그렇게 그냥 지나치지 않는 펄롱이 다행이고 고마웠다. 수녀원에서 본 아이들과 미시즈 윌슨이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 서사가 무겁게 다가왔다.

🍊 세라는 어떻게 이곳에 온건지, 다른 아이들은 어떤건지. 가정과 수녀원에 부조리가 있는 건지 궁금해하며 읽었다. 뇌피셜로 이런 사소한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게 더 이상 사소하지 않은 사건이 된 건 아닌지, 마구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한 줄 한 줄을 읽어나가던 시간이었다.

🍊 수녀원에서는 묘사가 안되었지만, 펄롱은 수녀원을 나오기 전 세라의 젖이 새어 블라우스 얼룩지는 모습을 봤었고, 그 모습을 보았다고 하니 펄롱이 왜 그리 죄책감을 느끼고 답답해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 펄롱이라 다행이다.

🍊 옮긴이의 말까지 완벽했다. 이 짧은 소설은 많은 사건을 담지 못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서사와 진심을 보여주고, 또한 독자에게 물어본다. 나는 아직은...감히 어떤 답도 다짐도 차마 못하고 용기내지 못한 채 현실을 두려워하며 외면하는 사람이지만...


🍊 남기고 싶은 문장들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22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 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29

🌱펄롱은 차를 세우고 노인에게 인사를 했다.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이 길?˝ 노인은 낫으로 땅을 짚고 손잡이에 기댄 채 펄롱을 빤히 보았다.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수 있다네.˝
54

🌱˝아무 상관 없지. 우리한테 무슨 책임이 있어?˝
˝그게,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했는데, 당신 말을 듣다 보니 잘 모르겠네.˝
55

🌱펄롱은 젊은 수녀가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을 보았고 이제 수녀원장이 자기가 일어서길 바란다는 걸 알았다. 그렇지만 조금 전까지는 여기를 뜨고만 싶었는데 이제는 반대로 여기에서 버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79

🌱아이는 창문을 쳐다보고 숨을 들이마시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친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처음으로 혹은 오랜만에 친절을 마주했을 때 그러듯이.
82

🌱거의 반 시간 정도, 어쩌면 더오래 그렇게 앉아서 여자가 한 말, 닮았다는 말을 곱씹어보며 생각 속에서 불을 지폈다. 생판 남을 통해서 알게 되다니.
98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 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 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99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119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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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엄마의 장례식을 오늘 치르지 않고 어제 치른 것은 내 탓이 아니고, 또 다른한편으로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나는 어차피 쉬게 되었을 것이다.
- P39

그건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런 소리를 사장에게도 한 일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고 그만두었다. 그런 말을 해본댔자 무의미한 일이었다. 어차피 사람이란 조금은 잘못이 있게 마련이니까.
저녁때가 되자 마리는 모든 일을 다 잊어버렸다. 
- P41

그때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어머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 P45

조금 뒤에 마리는 나에게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사랑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나는 대답했다. 마리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 P60

그의 침대가 삐걱거렸다. 그러고는 벽을 통해서 조그맣게 들려오는 괴상한 소리로, 나는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 P65

나는 사장의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는 않았으나, 나의 생활을 바꿔야 할 하등의 이유도 찾아낼 수 없었다. 곰곰 생각해봐도 나는 불행하진 않았다. 학생 때에는 그런 종류의 야심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학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을 때, 그러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는 것을 나는 곧 깨달았던 것이다.
- P68

잠시 또 묵묵히 있다가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이상스러운 사람이라고, 아마 그 때문에 자기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 테지만, 바로 그 같은 이유로 내가 싫어질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 P69

그리하여 짤막하고도 요란스러운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버렸다. 나는 한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그 굳어진 몸뚱이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 총탄은 깊이, 보이지도 않게 들어박혔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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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딧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건 삶을 좀 간단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들 누구나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뫼르소는 겉보기와는 달리 삶을 간단하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는다. 
- P8

그냥 이야기 속에서는 잘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는 인물이 연극 무대의 세찬 조명 아래서는 완전히 무너져 앉아버리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 P11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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