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유명한 듀나 작가지만 사실 듀나의 SF소설을 많이 읽진 않았다. 그래도 오래전에 읽었던 <태평양횡단특급>은 내용은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기억나지 않음에도 충격적일 정도로 재미있었던 느낌이 생생하다. 그래서 이번에 이 책이 새롭게 나올때 원래 팬이었던 것처럼 기대하며 읽었다.

🧟‍♂️ 읽으며 사실 힘들었다. 듀나 작가가 친절하게 용어 정리를 해주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숙주, 코어, 앤서블, 마자, 대행인, 감각노동자, 해결사, 미개문명관리국, 갈라테이아나, 꼭두각시 등 많은 용어에 사전 정리가 있었다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책을 읽었을 거란 아쉬움. 다만 세계관을 알아가는 재미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런 용어 정리는 사족이 될 수도 있고, SF 매니아들에게는 방해가 될 수도 있을 듯.

🧟‍♂️ SF를 많이 읽지 않은 초급 수준의 독서가지만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사이언스 픽션은 과학 기술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생명과 자아, 존재를 말하는 세련된 철학이라는 것. 결국 성찰이 필요한 시간이라는 것. 그게 이 초급 SF 독서인이 매번 드는 생각이다.

🧟‍♂️ 수미의 머릿속에 이식물을 넣을 때 은채는 고민한다. 이식물을 넣고 난 후 수미의 인격과 자아는 어떻게 될지, 수리된 수미는 과연 수미일지 확신하지 못한다. 만화 공각기동대에서 독자에게 질문하고, 김영하작가의 작별인사를 읽고 난 후 생각거리들이 직접적으로 주인공 은채를 통해 나온다. 영화 프레스티지에서는 복제된 인간이 기존의 기억을 가지는 내용이 나온다. 은채는 수미의 기억을 가진 또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이 모든 질문에 나는 여전히 답을 알지 못한다.

🧟‍♂️ 대리전은 내게는 어렵고 재미를 느끼기전에 심란함을 먼저 느낀 소설이었다. 힘들었다. 하지만 덕분에 다른 SF소설을 어서 읽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천선란 작가 소설을 사두고 아직 읽지 못한 것도,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작품도. 그래, 그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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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만이 아니었다. 인쇄 골목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모른다고만 했다. 아빠가 독립군도 아닌데 모두 한통속으로 숨겨줬다.
- P203

형님이 집으로 돌아가면 일이 복잡해지잖니. 형수님이 대신해 처리한 일들이 다시 형님에게로 돌아오고, 형님은 다시 형수님을 찾고, 형수님은 너를 찾고, 모든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다. 세 사람이 돌아가며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지.
- P203

달아난 아빠가 돌리고 있는 다른 세계. 프로는 아름답고모두 부자가 된다는 말이 통하는 세계. 인쇄공 한 명이 돌리는 세계가 도무지 그려지지 않았다. - P204

저주받은 남자가 되어 스스로 벌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었던 끔찍한 일. 그 기억이 관장을 주술의 세계에 평생 가둬놓았는지도 몰랐다. 카마우는 그에게 지독한 주술을걸어놓은 셈이었다.
- P207

서로의 좌표를 안다는 것은, 뭐랄까. 우주를 향해 열려 있는 내 방의 와이파이 신호 같다고 할까. 부질없게 들리지만아예 가망 없는 것도 아니다. 살다보면 만나고 싶을 때도 있을 테고, 그때 기적처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나.
서로의 세계로 탈출하고 싶을 때 우연히 여행 경로가 겹칠지. 
- P212

그깟 알파벳이 뭐라고. 사랑하는데, 엘지.
- P217

수장고 안에서 내가 만난 건 카사바 인형으로 돌아온 아빠였다. 아빠가 입술을 움직였지만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 P224

마지막으로,
도망치지도 잡히지도 않고이 세계에서 버티고 있는 이들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다들 평안하시길.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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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작가 책을 시작한다면 이 책부터 하라는 영상이 있었다. 내 생각엔 절대 그러면 안될 것 같은디. 한강 작가 책 중에 이 책은 어쩌면 폭력적이거나 가슴 아픈 게 다른 책보다 상대적으로 덜해 감정상 쉬운 편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절대 절대 쉽지 않았다. 일부러 작가의 불친절한 구성이었던 게 아닌가 싶다. 등장인물들이 쉽게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다. 남주의 첫사랑도 장애가 있고, 여주의 실어증 원인도 자신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될 아이라는 걸 계속 친척들한테 들어서고. 남주의 친구조차 쉽게 산 사람이 없다. 그리고 그걸 알려주는 방식은 누구 얘기인지 분명하지 않게, 장소도 헷갈릴 만하다. (혹시, 나만?) 그래서 작가가 이 불친절한 세계에 ‘약간 한번 들어가 볼래?‘ 하고 초대한 것처럼 일부러 작정하고 한 게 아닐까 싶었다. 원래도 그렇게 친절하진 않은데 특히 이번엔 그랬다.

🪨 모임을 하며 느낀 건, 내가 이 책을 잘못 읽었다는 것이었다. 빨리 읽으면 안 되는 소설이었다. 분량이 길지 않아 새벽에 네 시간 정도 읽어 완독했는데, 하나하나 감정을 곱씹어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가 있어서 그런지 굉장히 무채색 느낌인데, 그 무채색이 엄청 엷은 색깔로 다가와서 선명하지 않고 뚜렷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조차 한강 작가가 사실은 원했던 분위기인 것 같았다. 뭔가 내 앞에 약간 김서린 유리창이 자꾸 보이는 그런 느낌. 유리창 안을 가만히 보면 어렴풋이 보일 것 같은데, 나는 안 보인다고 답답해 하는 조급함.

🪨 이 모든 당혹스러운 감정과 나의 실패에도 이 책을 완독하고 나니, 연약한 인간의 삶이 역설적으로 아름답다는 걸 이리 잘 표현했을까 감탄한 건 사실이었다. <소년이 온다>나 <작별하지 않는다>는 시대적으로 아픈 얘기. 얼마 전 읽은 <내 여자의 열매>는 역사적 배경이 나오지 않지만 각 개인의 어떤 아픔들. 모두 사회적 약자가 나온다. 이 사회적 약자들은 항상 냉대와 결핍,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에 느낀 건 그 사회적 약자들이 강하다는 것, 지지 않는다는 것. 누구에게도 이해받았던 삶은 아니지만, 그리고 참고 참고 또 참는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정신이 강하지 않지만, 버티고 버티는 사람들이었다. 슬플 정도로. 아름다울 정도로. 끝까지 자신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잘못 읽었다. 그것이 나의 결론. 난 글렀다. 다시 읽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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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초엽, 장강명, 이슬아 등 여러작가의 글쓰기 관련 인터뷰 모음이라는 신간 소개에 망설임 없이 올 해 첫 희망도서 대출로 신청한 책. 이 책 직전 최진영 작가의 에세이를 읽다가 소설에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작가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란 궁금증이 커졌다. 소설이나 나온 출판물로도, 일부 나온 작가의 말로도 알 수 있겠지만, 남들에게 아직 공개하지 않은 어떤 사연,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엿듣고 싶었다.

📖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책소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치열하게 살아온 인생에 건네는 위로와 세상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 이들에게 쓰는 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삶의 문제이자 인생 그 자체다.˝ 사실 이 구절을 보고 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정말 그러했다. 여기 나온 작가들은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오래된 친구, 선배를 얻은 느낌이었다. 치열했던 삶을 말하기엔 ‘라떼이즈홀스‘가 될까 허세나 주책으로 보일까 움추려들고, 위로와 애정은 당연시되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왜 인터뷰집이 위로가 되는걸까라 내게 물었다. 알 것도 같았다.

📖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책은 아니다. 그러니 이렇게 썼다는 얘기를 듣다보면 어떤 부분에서는 의도치 않았지만 훌륭한 작법서이기도 하다. 노동요와 휴대폰 멀리하기라니. 직장인이거나 수험생같은 이 친근한 작법이라니. 9p에 보면 (글을 쓰는 것은 곧 자기 삶이라고. 이해받지 못하는 삶을 타인에게 이해받기 위해, 재미를 위해, 혹은 그저 살아가기 위해......작가들에겐 돈의 논리와 별개로, 펜을 놓지 못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9p) 우리는 왜 쓰는 것인지 생각하게끔한다. 얼마전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 글을 쓰고자 하는 사연이 올라왔었다. 나는 왜 글을 쓰며, 우리는 왜 글을 쓰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왜 나는 다른 작가분의 이야기를, 그저 글이 모인 걸 읽는 것 이상의 마음이 드는 지 역시. 스스로 납득할 만한 명확한 대답은 없으면서도 알 것 같았다. 책 표지처럼 일단 쓰겠다. 멈추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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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달아난 뒤로는 절대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 같았다. 특히 가족의 말은.
가족은 인생을 통째로 요구하니까.
- P21

아빠가 두번째 파산을향해 전속력으로 직진하고 있었다. 지구가 쫄딱 망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선생도 당연히 망해야 했다.
- P29

아빠는 카사바 인형 대신 우리를 두고 떠났다. 엄마가 아빠를 대신해 카사바 인형이 됐고, 다음엔 내 차례였다. 엄마도, 나도 집을 떠나지 못하는 게 주술 때문이라 생각하니 세상일이 퍽 단순하게 느껴졌다.
- P70

복잡한 문제는 그다음에 생각해도 돼. 시간이걸리긴 하겠지만, 기다려봐.
- P134

"내가 태어난 곳이 내 인생의 많은 걸 결정한다는 사실에 무기력해지는 때가 있어. 무슨 말인지 이해해?"
그곳을 떠나올 때 레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여길 떠나고싶은 내 마음과 비슷했을까.
- P146

레무는 카사바
인형의 주술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 세계에서 살기 원한다. 아빠의 영혼이 있는 곳은 인쇄골목이라고 스티카 아저씨가 말했다. 그곳을 떠나선 살 수 없다고. 그 세계의 메시지를 생산하다 그 자신이 중독돼버렸다고.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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