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도, 대책도 없으면서 선의로만 가득 찬 표정. 앞으로 펼쳐질 사태를 충분히 예감하고 있으면서도 외면하는 표정. 모든 것을 짊어지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무것도 짊어지지 않을 이의 표정. 그런 표정은 묘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을 끌어당기는힘이 있다는 것을 나는 경험상 알고 있었다. - P19
삐약이가 죽었는데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다는게 끔찍해서 터진 울음이었다. - P41
"개는 알아서 잘 찾아 먹어." "너는?" "나는 짐승처럼 살겠지 했어." - P48
강렬하게 원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긋지긋한 일인지를 나는 채빈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지긋지긋한 집구석, 지긋지긋한 동물들, 지긋지긋한 아이들과 지긋지긋한 내 동생. 나는 그 무엇도 원하지 않는 마음에 익숙해져갔다. - P55
채빈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눈을 뜨고 있는 엄마를 안치소에 넣은 채 내가 얼마나 너를 기다렸는지, 너를 얼마나 용서하고 싶었는지. - P60
채빈은 특유의 살가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너무나 진심 같아서 가짜 같은 웃음이었다. - P68
채빈과 나는 비로소 자매가 되어갔다. 삐약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채빈이 엄마와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그때처럼. - P78
임시 보호자에 대한 비난이 시작되자 게시물의 관심도가 올라갔다. 어떤 실종 공고보다 빠른 속도로 게시물이 퍼져나갔다. - P85
이제 사람들은 유나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서로 싸우기만 했다. - P96
살아남으려면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는 걸 일찌감치 알아버린 것 같았습니다. 별나가 편식이 심하다니, 걱정하고 계시겠지만 저는 안심되는 면도 있어요. 편식이라는 게, 여러 원인이 있거든요. 믿는 구석이 있을 때에 하기도 해요. - P101
우리 병원은 규칙을 잘 지켰습니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어요. 점점 죽이려고 데려오는 건지 살리려고 데려오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 P102
저도 유나를 찾길 바랍니다. 하지만, 찾고 나면 유나는 어떻게 될까요? 운이 좋으면 입양이 되겠죠. 어쩌면 안락사를 시키지 않는 다른 동물보호소로 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확률은 몇 퍼센트가 될 것 같습니까? 유나의 생존 확률은 어느쪽이 더 높을까요? 안일까요, 밖일까요? - P107
애초에 없었던 이야기를 지우기 위해 엄연한 사실도 지워야 한다는 거래가 채빈은 기가 막혔다. - P135
"말하고 싶었고, 말 안 하고 싶었어. 언니가 물었잖아. 이런 마음을 원래 알고 있었느냐고 이런 마음이 뭔지, 언니도 알길 바랐어." - P136
새빈은 닭들의 이름을 하나씩 말해주기 시작했다. 우리와 함께 살았던 모든 동물들, 그리고 우리집에서 머물렀던 아이들의 이름을.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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