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타워가 뭐라고 저걸 볼 때마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걸까. - P57
마음을 찌르는 칼이 제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그것의 용도는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 P63
현재의 감정은 분명히 ‘증‘인데, 과거의 기억이 놔주지 않아서 자꾸만 ‘애‘가 섞여들 때가 있잖아. 그럴 땐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고심 끝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애‘가 섞여들 땐 그냥 사랑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종선은 반박하지 않았다. - P67
긴 기다림 끝에 비로소 자리에 앉아 소주 반병을 원샷하듯 마시더니 자기 마음이 얼마나 깊고 따듯한지 아무도 몰라준다고 철부지처럼 투정을 부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미진이 종선을 손절한 이유를 점차 깨달아갔다. - P73
차라리 뿌리라고 하자. 종선의 뿌리는 언 강에 발이 잠긴 갈대처럼 꽁꽁 얼어붙은 강물 안에 오랜 세월 갇혀 조금도 성장하지 못한 것 같았다. - P73
손절호텔에나 다시 가자. 심종선은 왜 저렇게 나이브한 인간이 됐는지, 박예슬은 왜 거지로 살면서도 예술을 놓지 못하는지, 나는 왜 너희들한테 상처만 주는나쁜 년이 된 건지, 가서 생각 좀 해보자. - P78
친구니까 그렇게 푹 찌를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뒤미처 무거운 질문들이 떠올랐다. - P78
미진은 가품을 알지만 모른 척하고 가품을 진짜인 줄 안 종선은 전전긍긍하고, 나는 종선에겐 비싼 선물은 안 사줘도 되는 친구인 데다 아직까지 그이유를 알아내지 못했다─우리는 알아야 할 일은 모르고, 몰라도 되는 일은 많이 아는 건지도. - P81
시간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지 못한 나의 자의식만이 그 순간을 떠나지 못한 채로, 무엇이 잘못됐는지, 그 잘못을 다시 되돌릴 순 없는지를 골똘히 되짚어갈 뿐이었다. - P97
오히려 나는편해진 마음으로 그의 말을 흘려듣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저 조용히 놀라고 있었을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인간의 몸에 작용하는 무자비함에대하여, 그리고 시간만이 선물해줄 수 있는 무뎌짐에 새삼 감탄하며. - P129
시간이란 참 놀라운 것이었다. 내가 주장보다 ‘태도‘를 문제삼는 어른이 되다니.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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