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같은 현재를 상기시키는 뺨이 환한 꽃들 앞에서, 우리는 함께 있는 이를 마땅히 생각할 일이다. 이제 헤어지면 다시 못 만날 사람처럼. 함께하려면 오직 지금 이 순간뿐인 사람처럼. 이 꽃아래,
마지막 악수를 나누는 사이처럼.
- P61

내가 다녔던 학교에도 꼭 이런 등나무가 있었는데. 전국의 학교 운동장엔 약속이라도 한 듯 등나무가 서 있으니, 이 아래에선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을까. 얼마나 많은 고백과 얼마나 많은 다툼과 얼마나 많은 꿈들이, 그럼에도 꺼내놓지 못한 얼마나 많은 마음들이 고여 있을까. 어떤 장소에서든 이런 생각을하면 그곳에만 고인 시간이 보이는 기분이다.
- P68

한참을 걷다 보니 문득 아, 우리가 지금 길을 찾으려던 게 아니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함께 걷고 싶어서였지. 다행이라 생각한 순간, 어둠이 조금 밝아졌다. 고개를 드니 등나무 환한 꽃들이 조그만 전구처럼 머리 위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때 꽃은 피고 있었던가, 아니면 지고 있었던가.
- P68

생각해보면 이 봄의 산책이 다 그런 마음이었다. 봄은 짧으니까. 어떤 순간도 결국엔 과거가 되니까.
우리, 저기까지만 더 가보자.
- P69

중요한 건, 여기에서 즐거움을 찾아낼 수 있는가 하는 것.
얼마나 잘 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즐겁게 타는가 하는 것.
- P80

 지금의 여름이란 어쩌면 내가 보낸 첫 번째 여름 위로 쌓이고 쌓여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시간이 반드시 앞으로 흐르는 것만은 아니어서, 다시 같은 계절을 지날 때마다 문득 되살아나는 기억이 이토록 많은지도.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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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이 든다. 그동안 내가 읽고 생각하고 확신하고 말했던 그것들이 진실이었음을 증명하는 시간 앞에 지금 나는 서 있다는 그런 생각.
- P41

베란다에서 세상을 풍경을 바라본다. 또 간절한 마음이 된다.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 P46

그건 여기가 쉼 없이 물이 흘러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흐른다는 건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 그러나 흐르는 것만이 살아 있다. 흘러가는 ‘동안’의 시간들. 그것이 생의 총량이다. 그 흐름을 따라서 마음 놓고 떠내려가는 일 – 그것이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자유였던가.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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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모아두려는 것은 인생의 사소한 구석까지 들여다보려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이런 순간에 머무르려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는구나. 알고 나면, 앞으로 나를 좀 더 자주 그런 순간으로 데려가고 싶어지기도 했다.
- P14

 하기야 내가 바라보거나 말거나, 이름이나 안부를 궁금해하거나 말거나 식물들은 저대로 잘 자라며 자신의 시간을 산다. 하지만 동네 식물들의 존재를 하나둘 알게 되고 나서, 신기하게도 내게는 이곳이 좀더 살 만한 도시가 되었다.
- P28

집 안에 하늘을들이고 꽃밭을 가꾸는 마음이라면, 내가 모르는 삶에 대한 어떤대답을 알고 있을 것도 같았다. 그 답을 들으려, 그 시절 나는 발아프도록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인생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오늘을 돌볼 것이다.
하루가 모여 결국 평생이 되므로.
- P31

여행이란 참 이상하다. 나의 생활 바깥으로 걸어 나와, 누군가의 생활 바깥에 잠시 서성이다 돌아간다. 그리고 어김없이 바깥에 서서 생활의 안쪽을 들여다보며 그리워한다. 스스로 원해서 걸어 나온, 그 단조롭고 눅눅한 삶의 안쪽을.
- P37

어쩌면, 이런 식으로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잠시 마음을 스치는 것이다. 아주 진심은 아니지만, 완전히 진심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마음. 이런 흔들림은여행을 하는 동안 예고도 없이 몇 번씩 지나갔다. 결국은 떠날것을 알기 때문에 여행자는 길 위에서 몇 번이나 머무는 꿈을 꾼다.
- P41

그 얘기는 꼭 해 지는 풍경처럼 따뜻하고 쓸쓸했다.
이제 그 거미줄 같은 골목들은 다 사라지고 없다. 
- P45

우리가 사랑한 것들은 언젠가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순간에 나는 다행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기억할 수 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고. 
- P47

 오늘을 충분히 사는 게 낭만이야.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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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무겁고 흔들릴 시간이 없다. 남겨진 사랑들이 너무 많이 쌓여 있다. 그걸 다 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 P12

슬퍼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 P14

어떻게 모든 것을 지킬 수 있을까.
나를 지킬 수 있을까. - P21

살아 있는 동안은 삶이다.
내게는 이 삶에 성실할 책무가 있다.
그걸 자주 잊는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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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밀 할아버지가 했던 말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할아버지가 틀린 것 같았다. 내 생각에는,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잠을 자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남의 일에 아랑곳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정의로운 사람들은 매사에 걱정이 많아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정의로운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 P46

어느 일요일, 로자 아줌마는 아침나절 내내 울고 있었다. 그녀는 때때로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하루종일 울기도 했다. 그럴 때는 실컷 울도록 내버려둬야 했다. 아줌마에게는 그 시간이 가장행복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 P62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정말로 그렇게 되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사람이란 자기가 한 말을 스스로 믿게 되고, 또 살아가는 데는 그런 것이 필요한 것 같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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