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앤더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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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름 상위권에 속했던 해솔은 돌연 호주 유학을 결정한다. 부모의 무관심에 지쳤던 해솔은 예상치 못했던 호주 유학이 부모가 자신에게 준 관심이란 생각에 잠시나마 설렜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무관심하다는 생각에 실망한다.

클로이는 그보다 훨씬 전에 호주로 유학을 갔다. 어떻게든 자식이 성공하길 바라는 소위 '극성' 부모 밑에서 과도한 불안에 시달리며 공부를 이어가는 우등생이다. 오늘도 클로이는 "그래, 너 저렇게 안 살게 하려고 여기 이민 온 거야. 성공했네, 딸이 이렇게 세상 물정 모르게 큰 걸 보면."(p53)이라는 엄마의 비아냥을 견뎌내며 의대 진학이라는 꿈을 향해 안간힘을 다한다.

앨리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어를 할 줄 모른다. 일찍이 자녀의 교육을 위해 호주로 이사를 간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앨리는 "부모가 모두 한국인이고 자신도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하고 있지만 누가 한국인이냐고 물으면 불쾌한 표정을 짓는 애들"(p85) 중 하나다. 하지만 화려해보이는 모습 뒷편엔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어버린 불안과 한국어를 할 줄 모르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만 같다는 걱정, 불법 주거에서 거주할 수밖에 없는 슬픔이 휘몰아친다.


#2.

서수진은 자신의 호주 거주 경험을 통해 아주 사실적인 한인 커뮤니티의 모습을 담아낸다. 특히 기존에 언급되었던 가족주의적 커뮤니티, 혹은 성인 중심의 묘사방식이 아닌 청소년들의 시각으로 담아낸 한인 커뮤니티를 그려낸다. 가부장제에 대한 향수가 담겨있지도,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감동의 서사가 담겨 있지도 않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자신의 의사가 아닌 부모의 의사로 새로운 터전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이민자들을 다양한 관점으로 보여준다.

특히, 한인 커뮤니티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내부의 위계를 담아낸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제 막 유학을 시작해 "호주에서 한국 스타일로 입고 다니는 애들. 호주에서 K-POP을 듣는 애들. 호주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는 애들. 호주에서 한국어로만 이야기하는 애들. 호주의 한인 타운에 가서 떡볶이를 먹고 노래방에 가는 애들. 호주에서 한국을 사는 애들."을 일컫는 Fresh Off the Boat 즉 FOB. 그리고 "한국말을 모르는 애들.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찐따 같다고 생각하는 애들. 한국 유학생들은 FOB라고 부르며 무시하고 조롱하는 애들. 부모가 원하는 대로 공부 잘하고 순종적인 아시안이 되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애들."이라는 이미지로 대표되는 Asian Baby Girl, ABG(p85). 두 집단 간의 위계를 통해 이민자들이 겪는 정체성 문제를 극명히 드러낸다. 특히 서로 정반대에 위치한 집단이지만 이들이 서로를 배제하는 내면의 동기는 아주 유사하다. 자신에 대한 혐오를 다른 쪽으로 돌리고 싶은 심리, 누군가를 위계로 정복하지 않으면 내가 정복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 소수자의 신분에선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불안은 결국 또다른 차별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실감한다.


#3.

사실 해솔과 클로이, 엘리 중 어떤 캐릭터도 호감이 가는 쪽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불안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해솔과 다른 사람에 대한 콤플렉스로 가득한 클로이, 자신도 이민자 집단의 ABG이면서 FOB들에게 비아냥거리는 엘리까지. 하지만 이들의 이런 부분들도 모두 마음 속 어딘가에 상처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에 정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이민자, 여성, 빈곤이 겹쳐진 차별 속에서 어린 나이에 그 험난함을 마주한 이들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택한 생존의 방식인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게다가 이러한 모습이 비단 호주로 유학을 간 세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적지 않은 10대들은 여전히 한국에서 세 사람과 같은 상처를 끌어안은 채 살아가고 있을테니 말이다.

누군가는 유학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로망처럼 여긴다. 하지만 그 뒤에는 엄청난 상처가 함께 관통한다.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독을 품은 올리앤더처럼, 본인이 원했던 장밋빛 미래를 향해 가던 중 더 잔인한 현실을 마주한 모든 이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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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엄마, 우리는 이제 갈 곳이 없어.
우리는 추방당할 거야.
내가 자라난 땅에서.
내가 할 줄 아는 유일한 언어를 하는 나라에서.
엄마가 나를 키우겠다고 다짐한 곳에서.
우리는 같이 추방당할 거야.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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