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이후의 삶 - 지속가능한 삶과 환경을 위한 '대안적 소비'에 관하여
케이트 소퍼 지음, 안종희 옮김 / 한문화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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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아마 대부분 어제보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노력했을 것입니다.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풍요, 더 많은 이익...

인간의 욕심의 동물입니다.
그 '욕심'이 인류 발전의 원동력임에도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의 삶-특히, 기후와 같은 주변환경-을 돌아보면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가 더 편하고, 더 좋게 살기 위한 노력이 오히려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기후 변화와 같은 환경적 요인은 미래 세대가 아닌 현 세대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책은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자꾸 무언가를 하지 말고, 지금 하고 있는 것도 놓아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대안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안적 소비, 대안적 쾌락주의..

근대화 경제학자들은 보다 친환경적인 녹색기술이 계속 확대되어 우리의 생활방식을 거의 바꾸지 않고도 환경친화적인 성장이 끝없이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장이 여전히 경제적 성공의 바람직한 기준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볼 때 정부와 기업의 엘리트들은 아마도 이런 방법들을 신뢰하는 것 같다.
녹색기술이 이런 기술을 개발하고 이용하는 지역 기반의 민주적인 조직과 결합하면 분명히 화석연료와 그 부산물에 대한 우리의 의존도를 낮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겠지만, 어떤 기술적인 방법도 지속적인 성장에 기초한 경제를 영구적으로 가능하게 해주지는 못한다.

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우려를 한꺼번에 해결해 줄 것처럼 광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성장'입니다.
성장은 인류가 발전해 온 원동력이고, 조금 과하게 말하면 존재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녹색 기술은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들을 상당부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성장'이라는 목적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0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성장은 친환경적일 수 없다."

제이슨 힉켈의 글의 제목이기도 한 이 글이 '성장'과 '환경'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합니다.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유,무형의 자원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친환경이 될 수 없는 것이지요.

노동시간 축소를 지지하는 사업적 측면의 정당성과 생태적 근거 그리고 더 많은 여가생활에서 오는 개인적 유익함의 정당성 사이의 긴장은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한 개념의 다양성으로 나타난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노동 이후 사회에서 노동자의 임금을 보충하고, 결국에는 대체할 것이며, 폭넓은 정치적 성향의 집단이 이에 대해 점차 관심을 보이고 있다.
...
보편적 기본소득이, 유급 노동이 아닌 것에 들인 시간이 생산성 기여에 대한 보상으로 간주될 경우, 보편적 기본소득이 삶의 의미를 숙고하게 하기보다 경제적 가치 창출에 가장 가치있게 사용되는 것을 삶의 의미로 정당화 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는 '보편적 근로소득'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대안적 소비를 위해서는 노동 시간의 단축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단축에 따른 수익 감소를 보충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편적 근로소득을 말하고 있습니다.
위의 글처럼 보편적 근로소득이 원래의 목적인 삶의 의미를 가치있게 만들기 위해 사용되기 보다는 경제적 가치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과연 보편적 근로소득은 필요악일까요?
많이, 그리고 깊게 생각해 볼 주제입니다.

이런 관점과 대안적 쾌락주의 관점의 중요한 차이점은 육체적 즐거움과 정신적 즐거움의 차이가 아니다.
소비 활동이 물질 축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환경적으로 더 깨어 있고 예술, 수공예, 사교적 삶과 더 많이 관련된다는 뜻이다.
내 주장의 요점은 그동안 소홀히 취급된 즐거움과 관대함의 원천을 강조하는 것이지, 근대 물질주의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종교적 금욕주의 전통에서 나타나는 내향성과 개인적 금욕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대안적 쾌락주의는 모든 것을 참으라고 하는 금욕주의가 아닙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소비를 위한 즐거움이 아닌 친환경적이고 사회적인 즐거움을 찾자는 것입니다.
조금 더 걷고, 조금 더 만나고, 직접 생산하는 것을 통한 즐거움, 이전 세대의 즐거움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여행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햇살 가득한 동네 공원을 걸으며 느끼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좋은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도 즐겁지만, 직접 기른 야체를 먹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이제는 전자가 아닌 후자의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성장 중심 소비가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은 물론 매우 중요하지만 대안 경제를 추구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소비주의가 건강과 행복에 미치는 많은 부정적 영향 역시 강조되어야 하며, 소비주의의 편익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지구에 가장 심각한 피해를 주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을 억제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과제라는 점이다.

이에 대한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친환경'이라는 주제 아래 많은 기업들이 환경에 피해를 주는 것들에 대한 생산과 사용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생산'된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요.
'생산'이 없다면 기업의 존재 또한 없어질 것입니다.

노동 관리 분야에서 포스트포드주의 혁신, 그리고 IT혁명과 자동화의 증가는 많은 사람의 노동을 훨씬 더 가변적이고, 지루하며, 스트레스가 많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직장에서 공식적인 위계 관계는 줄었지만 새로운 형태의 기업주의와 충성에 대한 기대가 증가했다.
고용이 강조되면서 전례 없는 자기 상품화가 나타나고 개인의 존엄과 자기실현의 중요한 방법이라는 의식이 약해지고 있다.

노동 분야에 대해서도 대안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노동의 시간을 줄여주지 않았습니다.
더 다양한 분야의 일을 만들어냈고, 더 많은 시간동안 일하게 만들었습니다.
기술의 변화는 노동자의 권익에는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임시직, 계약직 등의 불안정한 노동환경은 일을 통한 자기계발이나 성장과 같은 즐거움을 얻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책을 보면서 계속 지금의 현실과 비교해 보았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대안적 소비'는 현실에서 이뤄질 수 있을까요?
이상적이긴 하지만 '기업', '사회'의 입장에서는 결코 환영하기 어려운, 힘든 주장입니다.
급격한 사회, 경제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아니라면 보기 어려운 세상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보고 싶은 세상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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