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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 어게인 - 모르는 것을 아는 힘
애덤 그랜트 지음, 이경식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3월
평점 :
품절
'오리지널스', '기브 앤 테이크'의 애덤 그랜트가 돌아왔다.
이번 책의 주제는 '다시 생각하기'이다.
'싱크 어게인'은 말 그대로 다시 생각하라는 것이다.
무엇을?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의심의 눈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의 메시지는 이제 더는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이나 의견은 버리자는 것과 일관성보다는 유연성에 자아감의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다시 생각하기는 오래된 문제에 새로운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새로운 문제에 오래된 해결책을 다시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다시 생각하기는 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후회를 보다 적게 하는 지름길이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도구들 가운데 어떤 것, 그리고 자기 정체성의 가장 소중한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을 버릴 시점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지혜이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믿고 있는 것들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사회의 변화가 빨라질수록 지식의 반감기 또한 짧아지고 있다.
지금은 과연 얼마나 짧을까?
개인적으로 일과 관련된 지식들에 대해서는 주기적으로 체크하며 업데이트를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것들도 그런가?
아닌 것 같다.
그렇기에 세대 차이가 생기고, 의견 대립이 생긴다.
내가 애호하는 편향은 '나는 편향되지 않았다'는 편향이다.
이 경우에 사람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한층 객관적이라고 믿는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이 편향의 덪에 더 잘 빠져든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한계를 바라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생각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다시 생각하기에 서툴 수 있다.
흔히 말하는 많이 배운 사람, 나이 많이 먹은 사람에게서 이런 특징을 볼 수 있다.
이들이 살아온 과정을 볼 때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들을 '꼰대'라고 말한다.
무조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생각하기'를 통해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에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 이것이 지식이 몰고 오는 저주이다.
좋은 판단은 자기 마음을 여는 기술과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에 달려 있다.
다시 생각하기는 점점 더 중요한 습관이 되고 있다.
물론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재빠르게 다시 생각하겠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제품 중 하나가 '아이폰'이다.
그런데 잡스는 아이폰 개발을 절대적으로 반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아이폰 이전에 아이팟으로 애플의 성공 신화를 쓴 잡스는 그 성공을 깨고 싶지 않아 반대하였다고 한다.
임직원들의 설득이 없었다면 아이폰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이 잡스에게 '다시 생각하기'를 유도했던 것이다.
확신은 자기 자신을 얼마나 많이 믿느냐 하는 문제이다.
확신은 자기 방법론을 얼마나 신봉하느냐 하는 것과 구분된다는 사실은 증거로 말해준다.
미래에 어떤 목표를 달성할 능력이 자기에게 있음을 확신하면서도 현재 자기가 올바른 도구를 가지고 있는지 의심하는 겸손함을 유지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확신의 최적점이다.
그럼 '다시 생각하기'는 얼마나 자주 해야 하는가?
바로 '확신의 최적점'에 달려 있다.
매번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각 지식, 생각에 따른 확신의 최적점을 계산하고 그에 따라 다시 생각하기를 하면 된다.
자기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사람들이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서 들이대는 표준적인 방편은 '나는 내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다'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식의 발상을 수정하고자 한다.
물론 우리는 누구나 자기 머리속에 어떤 의견이든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의견을 밖으로 드러내겠다는 선택을 한 이상 논리와 사실로써 근거를 마련하고, 자기의 추론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더 나 은 증거가 나오면 기존의 의견을 바꾸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다.
'다시 생각하기'로 인해 자신의 의견을 바꿔야 하는 것에 대한 논리적 주장이다.
내 의견을 말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위함이며, 이는 다른 사람이 더 나은 의견을 제시하면 나도 공유하기 위해 그 의견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의견을 말한다'는 의미가 이토록 대단한 것인줄 진작 알았다면 난 말이 많이 줄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하기는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관계망(네트워크)에 의존한다.
바로 도전 네트워크이다.
이 관계망은 '내'가 바라보지 못하는 맹점을 지적하고 '나'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어도 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이들의 역할은 '내'가 가진 전문성에 대해서 한층 겸손한 태도를 만들고, 나의 지식을 의심하게 하며, 새로운 가능성에 호기심을 가지도록 밀어붙임으로써 '나'의 다시 생각하기 사이클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다시 생각하기'는 지금까지 익숙한 환경보다는 새로운 환경에서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른 결과를 원한다면 다른 행동을 해야 한다.
상황의 반전에 따른 다시 생각하기가 아니라면 억지로라도 환경을 바꿔 도전해야 한다.
기존의 기득권 상실로 잃는게 더 많을 수도 있다.
'다시 생각하기'를 하기에 앞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좋은 교사는 새로운 생각으로 인도하지만, 위대한 교사는 새롭게 생각하는 방식으로 인도한다고 나는 믿는다.
어떤 교사의 지식을 어떤 학생이 수집하면 이 학생은 그날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어떤 교사의 생각하는 방식을 이해하면 인생의 과제를 헤쳐나가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 보자면 교육은 머리에 이런저런 정보를 쌓는 게 다가 아니다.
그 이상이다.
교육은 자기가 그린 그림이나 쓴 글을 계속 수정하면서 만들어 나가는 습관이자 학습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우리가 쌓아 올리는 기술이다.
마지막 문장은 교육에 대한 적절한 정의인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교육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 계속 되어야 한다.
교육은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 '기술'이다.
우리가 왜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글이다.
성과를 우선시하는 문화에서 사람들은 흔히 최고의 모범적인 실천에 애착을 갖는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일 처리 방식을 최선이라고 선포하고 나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딱딱하게 굳어져 버린다는 점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빠질 수 있는 위험한 함정이다.
우리는 모범적 실천의 장점을 설교할 뿐 그것의 단점에는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 실천이 어떤 지점에 흠이 있으며 어떤 지점에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 더는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단기적인 성과에 유리할 수는 있어도 장기적인 학습에는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오로지 결과만 보고 칭찬하거나 보상하는 행동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
부족하고 변변찮은 전략을 지나치게 확신하게 만들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여태까지 해오던 방식을 답습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성과를 중시하는 문화에서 무엇이 위험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원하는-혹은 그 이상의- 결과를 얻었을 때 그 처리 방식을 최고의 방법이라 정의한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계속 그 방법을 고집한다.
환경-시간, 상황 등-의 변화에 따라 방법도 변해야 한다.
왜 과거의 성공에 얽매이면 안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에게 주어진 여러 선택권을 놓고 다시 생각하기를 시작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자신이 날마다 하는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다시 생각하기는 한층 더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도구이다.
오늘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이였는가? 왜 하였는가?
쉽게 잠들지 못할 질문이기에, 잠자리에서 할 질문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해 보자.
'다시 생각하기'는 현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이기도 하다.
지금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배우는가'를 중요시한다.
너무나 빨리 변하기에 지금 알고 있는 것보다 새로운 것에 얼마나 빨리 적응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이런 변화에 가장 적절한 방법이 바로 '다시 생각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