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흐림이라고 대답하겠다 시인동네 시인선 119
배연수 지음 / 시인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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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권의 시인동네 시인선 시리즈가 나왔습니다.

이번 시리즈의 주인공은 배연수님입니다.
원래 시인선 시리즈의 표지 특징이 심플함이지만, 이번 책이 단연코 최고인 것 같습니다.
일러스트는 물론이고, 심지어 선 하나도 없는 깔끔한 보라색 표지위에 시집명과 시인이름, 시리즈명이 전부입니다.
표지부터가 이 책에 담겨있는 시의 담백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하나 읽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이네요.
배연수님의 시의 특징은 무척 평범(?)하네요.
특별한 풍경이나 사건이 아닌 우리가 주변에서 매일 접하는 '일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화려하거나 어려운 문구나 단어도 없습니다.
'일상'을 '평범'한 언어로 말하고 있는 시.
그런데 왜 읽으면서 가슴이 쿵쿵거릴까요?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에 고심했을 시인의 마음이 담겨서인가요.

스스로 갇힌 우물을 파고 있는 당신은
내 뾰족한 손을 위해
언제나 보를 낸다.

이럴 때 왜 나는 기꺼이 바위를 내지 않는가
- '보를 내는 사람' 중

내게 등을 보이며 걸어가던 사람이 있었다
그의 등이 그가 하지 못했던 말을 건네주며
멀어져 갔다

등은 바라보는 것보다
서로 기댈 때가 좋다
- '등을 보다' 중

한밤중 책을 읽고 있을 때

숨죽이며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을 때

책장을 넘기는 손끝에
심장 소리가 묻어나는 것 같아요
- '당신의 밑줄' 중

기억을 지우지 못하면
누가 앞으로 갈 수 있겠는가

기억을 믿을 수 없게 되면서
나는 눈치가 늘었다
- '기억' 중

비슷한 무게를 가지고 있는데
한쪽이 무거워 보이는 건

그렇게 보고 싶은 마음의 일
- '안젤라 카페' 중

책갈피를 해 놓은 싯구를 정리해 봤습니다.
너무나 좋은 글들이 많네요.

책의 마지막에 있는 '해설'을 일부러 보지 않았습니다.
학창시절의 트라우마일까요?
이 시는 어떤 뜻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해석해야 한다고 강제하는 느낌이 듭니다.
내 생각이 아닌 남의 생각을 보면 마치 그렇게 이해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온전히 내 것이 될때까지는 보지 않으려 합니다.
모두가 똑같이 이해하고, 바라봐야 한다면 시가 아니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니 오늘같이 잔뜩 흐린 날씨와 어울리는 제목의 시집이네요.

일상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해 준 시인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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