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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가 웃는 순간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염소가웃는순간 (2019년 초판)
저자 - 찬호께이
역자 - 강초아
출판사 - 한스미디어
정가 - 16800원
페이지 - 559p
악마소환이 시작된다!
실로 굉장히 오랜만에 정통 오컬트 공포 호러 작품이 출간되었다. 그것도 이름만 대도 누구나 알만한 네임드 작가의 손 끝에서 말이다. 오컬트 호러 팬으로서 상당히 반가운 소식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면서도 아주 약간의 우려가 들었다. 이 작품을 쓴 네임드 작가가 전문 호러작가가 아니라 사회파 추리로 유명한 '찬호께이'였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에는 장르간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장르간 크로스오버가 빈번이 보여지는만큼 장르 선긋기가 전근대적 유물로 보여지기도 하지만....사회적 비판으로 무장한 전문 사회파 추리 작가의 본격 공포호러는 어떨지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비등하게 찾아오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더라. 그렇게 작품을 일독하고 평하자면 '만족스럽다', '기대 이상이다', '오컬트 호러와 추리의 절묘한 만남' 이라 평하고 싶다.
홍콩문화대학 신입생 아화는 입학을 위해 짐을 들고 자신이 생활할 기숙사에 도착한다. 아화가 생활할 기숙사는 노퍽관. 이 노퍽관에는 7대 불가사의가 전해져 내려온다. 아화의 절친 버스와 위키는 기숙사에서 새로 만난 여학생인 칼리, 야묘, 샤오완, 산산, 즈메이와 함께 식당에서 7대 불가사의 괴담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짓과 진실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던중, 4학년 선배 아량이 이들앞에 나타나 노퍽관 괴담이 진실이라는 증거를 보여주겠다며 이들을 기숙사 지하로 데려간다. 100년전부터 존재해왔다는 지하실의 낡은 문을 연순간 아화를 비롯한 학생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지하실 바닥에 커다랗게 그려진 오망성. 그리고 그안에 자리잡은 염소그림....저주받은 흑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이후....지하실에서 돌아온 이들에게 7대 불가사의와 관련된 기과하고 미스터리한 일들이 벌어지며 한명씩 처참하게 목숨을 잃어가는데......
사실 작품을 읽기전엔 작가의 이력이 있는 만큼 공포의 탈을 쓴 추리소설일거라 짐작했었다. 하지만 예상관 달리 거의 본격 정통 오컬트 소설이라는 점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물론 추리적 요소가 아예 배제된건 아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오컬트 호러전이랄까...악의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이 추리소설 뺨치는 복선과 트릭의 묘미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어찌됐던 오컬트 공포인 만큼 오컬트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작가는 기대 이상으로 오컬트에 대한 개념과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작품을 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봤을법한 흑마법의 시그니처 펜타그램. 그리고 펜타그램에 그려진 염소악마 바포메트(혹은 바포멧). 흔히들 서양의 악마라면 떠올리는 염소악마 바포메트는 마녀의식과 밀접한 관련을 띄고 있는 악마이다. 마녀들이 숭배하고 소환시키려는 악마가 바포메트이기 때문이다. 멘데스의 염소라고도 불리는 바포멧은 영화에서도 그 이미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충격적인 후반 장면인 집단 마녀의식으로 유명한 오컬트 영화 [서스페리아]에서도 바포메트의 이미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개인적으론 충격이라기 보단 코믹했지만...-_-;;;)
어찌됐건, 이 작품의 매력은 서양의 공포에 동양적 코드를 덧입혀 독특한 오컬트 세계관을 펼쳐낸다는 점이다. 작품에서 샤오완이 외국 악마에 대항해 손가락 수인을 이용하여 저항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오래전 잊고 있던 굉장히 노스텔지어적인 감성을 떠올릴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전해내려오는 밀교, 불교 비법으로 도술을 부리며 요괴에 맞서는....그렇다 '찬호께이'의 출신지 홍콩은 영환도사와 강시를 배출해낸 나라가 아니던가!! 비슷하게 [공작왕]도 떠올랐는데 8~90년대를 풍미했던 영화와 만화의 기억들을 되살리게 만드는 작품이었던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괴담이다. 이세상에 괴담 없는 학교는 없으리라. 노퍽관 기숙사에 내려오는 7대 괴담은 누구나 경험했을 보편적인 감성을 자극하면서 익숙한 공포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작품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주효한 역할을 해낸다.
[노퍽관 7대 불가사의]
1. 444호실 - 교통사고로 죽은 룸메이트의 책상을 치우지 마라!
2. 거울에 비친 모습 - 한밤중에 8층 여자화장실에서 거울을 보지 마라!
3. 5층 반 - 노퍽관 엘리베이터에서 5층과 6층 버튼을 동시에 누르지 마라!
4. 나무에 매달린 시체 - 기숙사 동쪽 계단참에서 창밖의 고무나무를 쳐다보지 마라!
5. 방문세기 - 새벽 3시, 3층에서 차례로 방문을 세지 마라!
6. 살아 있는 조각상 - 한밤중 기숙사 밖 염소 모양의 청동 조각상 근처에 가지 마라!
7. 불길 속의 영혼 - 새벽 3시 9층에서는 불에 타 죽은 원혼들이 떠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학교들은 전부 공동묘지 위에 지어졌고, 12시가 넘으면 교정에 설치한 청동 조각상들이 걸어 움직이고, 화재사건 하나 없는 교실은 없었나보다. -_- 서양권은 모르겠지만 비슷한 정서의 동양권이라 그런지 작품에서 소개되는 일곱가지 괴담은 굉장히 익숙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금기를 깨는 행위에 대한 묘한 쾌감. 뒤이어 밀려오는 불안감은 공포소설의 가장 교과서적인 장치이자 효과적인 도구로서 독자의 마음속에 공포심을 차곡차곡 저금시켜 놓는다.
초중반까지는 정통 오컬트 호러로서의 공포의 맛을 보여주고, 중반부는 초현실적인 판타지 호러로 탈바꿈하며(개인적으로 이 중반부가 조금 아쉬웠다), 후반부에는 수없이 깔아놓은 복선과 미스디렉션들을 회수하면서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오직 '찬호께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오컬트 판타지 호러 미스터리의 복합적 매력을 톡톡히 보여준다. 띠지에 쓰여있을 정도로 '어디서 본듯한' 클리셰들로 점철된 작품은 분명하다. 새로움 보단 익숙함이 앞서는 작품. 하지만 이 익숙함이 대중들에게 먹히기에 클리셰라 부르는것 아니겠는가. 클리셰 범벅이지만 오지게 재미있는 작품과 실험적 도전으로 점철됐지만 재미는 별로인 작품중 하나를 고르라면 본인은 주저없이 클리셰 범벅을 고르겠다. 장르소설의 기본은 철학도, 교훈도, 감동도 아닌 바로 '재미'니까! 결국 이 [염소가 웃는 순간]은 장르의 기본정신에 가장 부합되는 작품이라는 말이다. [유전], [서스페리아], [미드소마] 등등 명작 오컬트 영화들이 세계적으로 약진하는 만큼 이쪽 계통의 소설들도 쭈욱 만나보고 싶은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