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쉬즈 곤
카밀라 그레베 지음, 김지선 옮김 / 크로스로드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애프터쉬즈곤 (2019년 초판)

저자 - 카밀라 그레베

역자 - 김지선

출판사 - 크로스로드

정가 - 16000원

페이지 - 511p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한 겨울의 북유럽 스릴러



찬바람이 불어오는 이 추운 겨울 뼛속까지 가슴 시리게 만들 신작 북유럽 스릴러가 출간되었다. '2017 스웨덴 올해의 범죄소설상', '2018 북유럽 최고 유리열쇠상', '2019 리브르 드 포슈 독자상' 등 출간 이후 무려 3년에 걸쳐 평단과 독자들에게 사랑받으며 화려한 수상을 자랑하는 [애프터 쉬즈 곤]이다. 범죄 프로파일러 '한네 라겔린드'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으로 흔히 한네가 작품속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미스터리한 사건을 파헤치는 구성을 생각하겠지만 예상관 달리 한네를 사이드로 미뤄두고 마을 토박이 경찰 말린과 평버한 16살 소년을 전면에 배치하는 독특한 구성을 띈다. 2009년과 2017년, 8년의 시간의 간극을 두고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비밀은 무엇일지.... 눈덮인 작은 마을 오름베리에서 잔혹한 비극적 이야기가 펼쳐진다.



[2009년]

고등학생 말린과 친구들은 술병을 손에 쥐고 오름산을 올랐다. 취기에 오른 오름산의 돌무더기 근처.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던 말린은 요의를 느끼고, 돌무더기 위에 올라가 바지를 내리고 쭈구려 앉아 소변을 본다. 그런 그녀의 발 아래 정체모를 이끼와 바가지가 눈에 띈다. 덮인 눈을 치우고 돌들을 치운 말린은 바가지에 붙은 검은 이끼의 정체를 안 순간 비명을 질러댄다. 바가지와 이끼는 6살 소녀의 두개골이었던 것이다......


[2017년]

경찰이 된 말린은 8년전 발견한 소녀 사체의 콜드케이스를 재수사하게 된다. 때문에 스웨덴에서 유능한 범죄프로파일러 한네와 그의 연인 페테르가 함께 오름베리로 찾아와 조사에 착수한다. 하지만 조사를 나간 한네와 페테르는 실종되버리고, 모습을 감춘지 며칠이 지나 한네가 맨발에 피투성이가 되어 길가에서 발견된다. 말린과 동료 경찰들은 한네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묻지만 그녀는 오름베리에서의 모든 기억을 잊어버린 상태였고, 함께 했던 페테르의 행방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다음날....8년전 소녀의 사체가 발견됐던 돌무더기에서 또다른 여성의 사체가 발견되는데.....



8년의 간극을 두고 동일한 장소에서 발견된 두 여성의 사체. 그리고 1996년에 죽어서 묻힌 6살 소녀. 무려 20년의 시간을 두고 비슷한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동일범일까? 아니면 모방범죄일까?...무거운 돌무더기 아래 차디찬 눈속에서 어리디 어린 소녀와 여성은 우리에게 어떤 말을 전하는걸까?...



후반부에는 한네도 들어오지만 거의 대부분 말린과 16세 소년 제이크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작은 마을 오름베리에서 나고 자라 지긋지긋한 시골을 벗어나고 싶지만 그 누구보다 마을 사람들을 사랑하는 경찰 말린. 그리고 성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남들 몰레 죽은 엄마와 누나의 옷을 훔쳐입는 크로스드레서 제이크. 이 어울리지 않을것 같은 두 인물이 각자의 자리에서 미스터리한 사건을 파헤치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제이크라기 보단 제이크가 손에 넣은 한네의 일기장이 사건의 비밀을 풀어내는 핵심 키라고 해야할까....진실을 알고 있던 한네의 기억상실상태에서 사건의 본질을 꿰뚫는 한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유약한 16세 왕따 소년 제이크인 것이다. 결국 당연하게, 필연적으로 제이크는 이 사건에 본의아니게 참전하면서 가족과 친구 그리고 마을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야하는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소년을 짓누르던 껍질을 깨고 단단한 어른으로 거듭나는 성장소설의 배역을 맡았달까.



그럼 다른 주역 말린은 어떨까. 마을을 지탱하던 공장들은 문을 닫고 주민들은 씻을 수 없는 무기력과 절망에 길들여져 있다. 누구보다 희망없는 마을을 싫어했던 여성 말린은 경찰 시험에 합격하고 도시에서 함께 살 남친과 결혼을 약속한 상태. 하지만 8년 전 자신이 발견했던 얼음소녀가 말린의 발목을 잡는다. 불과 열 집도 안되는 작은 마을에서 발생한 두 건의 살인사건으로 가족같이 지내던 마을 사람들을 용의자로 조사해야 하는 난처함. 그리고 수년째 마을 근처에서 터를 잡고 세금을 축내는 난민마을에 대한 증오와 갈등. 이 모든 복잡한 상황과 어지러운 심경이 말린을 흔들어 대니.....믿음과 의심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말린의 고뇌 역시 또하나의 관전 포인트이다. 



미스터리한 살인에 유럽 사회에 골치아픈 문제로 대두되는 난민 문제, 즉 제노포비아 혹은 이슬람 포비아를 절묘하게 조합하여 불편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증오와 광기가 얼마나 사람을 잔혹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사회비판적 이야기도 담아낸다. 십수년동안 차가운 돌무더기에서 얼어 붙어 있던 소녀의 기구한 진실이, 끔찍한 비밀이 가슴팍을 돌덩이로 내리 누르듯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초반 인물들의 성격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며 특유의 북유럽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그다지 큰 이벤트 없이 냉혹한 분위기를 묘사하려다 보니 초중반까지는 조금 더딘 느낌인데, 일단 중반을 기점으로 후반과 결말까지는 거침없이 읽히는 작품이었다. 결말의 반전도 굉장히 의미심장 했달까....북유럽 스타일을 선호하거나 심리 스릴러 팬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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