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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
박해로 지음 / 네오픽션 / 2018년 3월
평점 :
피할수없는상갓집의저주살 (2018년 초판)
저자 - 박해로
출판사 - 네오픽션
정가 - 13000원
페이지 - 482p
무속신앙을 새롭게 재해석한 오컬트 SF 공포
제목부터 작년 뜨겁게 영화계를 달궜던 '나홍진'감독의 공포영화 [곡성]이 떠올랐다. '살을 쏜다'면서 미친듯이 닭목을 비틀고 피를 뿌려대던 악귀와 귀청을 찢는듯한 꽹가리, 징소리와 함께 온몸을 비틀던 소녀...이 작품의 중심 소재 역시 살을 쏘아 누군가를 해한다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바꿔말해 저주의 의식을 통해 사람을 해하고, 그로 인하여 인생이 뒤틀려버린 한 남자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한 남자에서, 한가족으로 그리고 한 나라로...그렇게 전지구적으로 확장되는 스케일은 기존 토속 신앙을 소재로한 일련의 공포작품들과는 별개로 새로운 시각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듯한 파격을 보여준다.
때는 1990년대...국민학교 담임인 조윤식은 갑자기 나타난 친부를 살해한 계모의 등장에 몹시 불쾌해진다. 무기징역을 받고 감옥에서 죽을줄 알았던 계모가 모범수로 풀려났다는것...계모가 감옥에 간사이 어엿한 선생으로 부임하여 미모의 동료 선생인 이영희와 연애를 하며 결혼할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계모가 나타나 학교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등 온갖 패악질을 일삼는 것이다. 실의에 빠진 윤식에게 영희는 솔깃한 제안을 해오고. 용한 적산법사라는 무당에게 찾아가 그가 시키는대로 하면 원하는대로 계모의 생명을 앗아갈수 있다는것...반신반의 하면서도 적산법사를 찾아간 윤식은 그에게서 네개의 부적과, 풀뿌리, 아이의 손가락 등을 받아온다. 때마침 동료 선생의 조부모 상을 치를일이 생기고, 상가집에서 윤식은 주술과 함께 받아온 부적과 아기 손가락을 몰래 태운다. 그렇게 첫번째 의식을 성공하자 이내 윤식의 주변에서는 알 수 없는 일들로 사망자가 속출하는데......
"네 번이었어. 혼백이 머무는 장소에서 영험함이 깃든 신물을 태우고 주문을 외우면 원하는 사람의 수명을 앞당길 수 있다는 제사 말이야. 네 번을 다 마치면 소원이 이뤄진댔어!"
그저 영희와 결혼하기 위해, 새엄마를 없애기 위해 날린 '살'은 걷잡을 수 없이 일파만파로 번지며 윤식의 주변인들을 급살 시킨다. 일단...여기까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저주를 날리다 되려 자신이 해를 입게 되는 전형적인 심령 공포물인데, 작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냅다 뜀박질 하여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윤식의 아버지인 조목사가 살해당하게 됐던 계모와의 과거 에피소드를 끄집어 내어 기독교의 엑소시즘 같은 영미권 악령의 제마의식 분위기를 풍기더니 다시금 냅다 뜀박질 하여 이번엔 사이비 종교에 빠져버린 맹목적인 신도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무속신앙, 신내림, 푸닥거리, 악령, 수호귀신, 엑소시즘, 사이비종교, 무당, 빙의, 영매, 급살, FBI(응?), 나사(NASA,응??!), 안기부(응????), 인류의 위협(WHAT???!!!)....뭐 전혀 어울리지 않을것 같은 단어들을 이렇게 방대한 스케일로 이렇게 마지막장까지 긴장감있게 이끌어 나갔다는데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이 한편의 작품에 여러 영화와 작품들이 떠오른다. 앞서 말했듯이 [곡성]을 비롯해 조목사와 계모의 이야기는 [엑소시스트], 귀신이 거울을 통해 드나드는 장면은 [장산범]이 연상된다..이른바 살..저주의 행위에 등장하는 신물인 아기의 잘린 손가락은 일본 괴담인 [코토리바코]가 떠올랐다. ('코토리바코'라는 저주를 내리기 위한 작은 나무상자에 대한 이야기. 에도시대 자신의 아이들 솎아내는 '마비키'라는 실제 행위를 토대로 죽인 아이들의 검지, 내장의 피등을 상자에 담아 봉인하면 강한 저주를 내릴 수 있는 무기가 된다는 괴담이다. 역시나 지역에 따라 상자의 이름이나 제작 방법이 약간씩 차이가 난다.) 작가 후기에는 할미무당이 아기를 유괴하여 독 속에 가두고 파랑색, 빨강색, 노란색 물을 차례로 먹여 죽인 뒤 손가락을 싹뚝 자르고 '아가야 날 따라 가자'라는 일화에서 작품속 살을 내리는 장면을 따왔다고 하니...한국이나 일본이나 저주의 도구나 저주를 내리기 위한 방법은 상당히 비슷한것도 같다. (아기의 신체의 일부와 독속에 가두고 죽이는 행위 등등...) 그와 함께 작품에서는 귀신들린 맷돼지, 거대한 검은개 등 동물들이 등장하는데 동물의 등장과 함께 기괴하게 사고를 당해 죽는 사람들을 보면 오컬트 공포 영화의 대명사 [오멘]이 떠오르기도 했다. (작가 후기에 [오멘]을 좋아한다고 언급하니 어느정도 영감을 받은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대망의 충격적 결말을 내포하는 반전에서는 그 유명한 신체강탈 영화 [인베이젼]이 떠오른다. 결론적으로 무속 신앙을 소재로한 공포로 출발하지만, 스릴러, 추리, 오컬트, SF를 아우르는 기과한 변종을 탄생시켜낸 것이다.
솔직히 이렇게 여러 장르를 짬뽕 시키면 분명 어딘가 어색하고 날려놓은 떡밥들을 회수 못하고 용두사미의 흐지부지한 결말을 내놓기 마련인데, 후반부까지 몸서리 쳐질 정도로 공포감을 유지하면서 다소 허무맹랑해 보일지도 모르는 결말까지 납득시켜 버리는 작가의 필력에 놀랐다. 정말로 진심 재미있게 덜덜 떨면서 읽은 작품이다. 웬만한 공포 소설은 눈하나 깜짝 않하고 읽는데, 역시나 바다건너 외국의 악령보다는 우리에게 가장 근접한...온갖 도령과 무당집들이 즐비한 만큼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는 익숙함 속의 공포가 공포심을 배가 시키는것 같다. 진심 무섭고도 기발하다! 오컬트 공포 마니아라면 꼭 일독을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