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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키
D. M. 풀리 지음, 하현길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데드키 (2018년 초판)
저자 - D. M. 풀리
역자 - 하현길
출판사 - 노블마인
정가 - 15800원
페이지 - 651p
탐욕과 욕망에 찌든 죽음의 열쇠
다양한 범죄 소설이나 영화에서 유독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은행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대여금고이다. 은행털이 영화에서 범죄자들이 대여금고들을 열고 그안의 온갖 보석과 다이아몬드들을 보며 환호하는 장면은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장면이다. 일정 대여료를 꾸준히 납부만 한다면 은행에서는 작지만 완전무결한 공간이 주어지고, 이 프라이빗한 공간에는 마약을 넣던 금괴를 넣던 내용물에 상관없이 다른 누구에게도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고 은행에서 안전하게 보관해 준다. 보관료가 납부되는 기간 동안에는 말이다...이 작품은 은행에 보관되고 있는 은밀한 개인공간, 대여금고를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시대를 달리하고 세상의 첫발을 내딛는 사회 초년생 두 여성이 한 은행의 탐욕에 찌든 은밀하고 거대한 음모에 엮이게 되면서 벌어지는 서스펜스 심리 스릴러....막대한 부? 아니면 죽음? 죽음의 열쇠 데드키가 두 여성을 이끄는 곳은 어디일까....
[1978년 베아트리스]
1978년 11월 집에서 가출한 16살의 소녀 베아트리스는 이모 도리스의 도움으로 각종 사회보장 서류를 위조하여 클리블랜드 거대은행인 퍼스트뱅크에 비서로 입사하게 된다. 집에 다시 들어갈 수는 없고 어떻게든 홀로서기를 해야하는 베아트리스는 처음 겪는 만만찮은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면서도 꿋꿋이 이겨내고 같은 비서인 맥스와 친분을 쌓는다. 맥스를 통해 FBI에서 은행의 비리를 주시하고 있고, 맥스가 이 비리를 홀로 은밀하게 파헤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다 도리스 이모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입원으로 비어있는 이모의 방에서 클리블랜드 퍼스트 뱅크의 대여금고와 관련된 각종 서류와 함께 547이라 각인된 작은 열쇠를 발견하고 혼란에 빠진다. 고민끝에 이 사실을 맥스에게 의논하지만...맥스는 바로 다음날 이모가 가지고 있던 547번 열쇠를 훔쳐 잠적하는데.....
[1998년 아이리스]
1998년 8월 대학을 졸업하고 건축회사의 인턴으로 고용된 23살 아이리스는 계속되는 단순업무에 지쳐가던중 새로운 현장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기대감에 부푼다. 폐업한 뒤로 20년째 방치된 은행 건물을 새롭게 리모델링 하려는 프로젝트의 기초 작업으로 건물의 정확한 측량설계 업무를 아이리스가 단독으로 맡게 된 것이다. 퍼스트 뱅크에서 홀로 숙식하는 경비 레이먼의 도움으로 15층 건물을 돌며 측량자료를 도면에 그리던 아이리스는 사무공간이었던 3층의 한 책상에서 낡고 작은 열쇠 한개를 발견한다. 열쇠에는 퍼스트뱅크라는 이니셜과 함께 547번호가 각인되어 있었고, 조사끝에 이 열쇠가 은행의 1300개의 대여금고중 547번째 금고의 열쇠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클리블랜드 시청의 재정부도 이후 20일 만에 부도처리된 퍼스트뱅크...개인사물 조차
챙기지 못하고 갑작스런 폐업으로 문이 잠겨버린 은행...20년째 잠들어 있는 대여금고속 비밀들....우연히 발견한 작은 열쇠로 인하여 평범했던 아이리스의 인생은 180도 급변하게 되는데....
딱 20년의 시간차를 두고 어리숙하고 서투른 여성들의 진실을 향한 위험한 모험이 교차된다. 실제로 구조공학자로 일하는 작가의 경력을 살려 구조공학을 전공한 아이리스가 15층 건물을 조사하면서 숨겨진 공간과 비밀통로등을 발견하는 장면은 화면을 보듯 생생하게 그려낸다. 제목인 [데드키]는 단순히 작품속 비밀을 간직한 죽음을 여는 열쇠 같은 의미로 쓰여진 것이라 생각했는데, 대여자가 사망 또는 실종으로 대여금을 납부하지 못하고, 대여금고가 여러 해 동안 열리지 않고 잠겨 있으면 은행은 소유하고 있던 대여금고의 마스터키로 금고를 비워 시에 환원하고 새로운 대여자를 받게 되는데, 이때 사용하는 마스터키를 바로 [데드키]라고 부른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다. 죽은 대여금고를 여는 열쇠이자 소장하는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저주받은 열쇠...중의적 의미의 [데드키]인 것이다.
당연히... 장기미사용된 대여금고속 잠들어있는 주인없는 보물들에 눈독들이는 사람들과 이 모든 금고를 열 수 있는 만능 데드키를 탐하는 탐욕에 눈이 먼 사람들이 있을거라는건 불을 보듯 뻔한 일.(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20년이란 긴 시간을 이어온 비리와 탐욕의 역사가 베개같은 두께의 650페이지안에 꽉꽉 들어차 있다. 양파껍질 벗겨지듯 드러나는 충격적 진실 앞에 홀로 선 두 여성의 좌절, 고통, 용기, 갈등 등 다채로운 감정변화와 섬세하고 밀도있는 심리묘사가 이 엄청난 두께의 책을 끝까지 붙들고 있게 만든다. 20년간 잠들어 있는 대여금고의 보물을 노리며 아이리스의 곁에 숨어 있는 악당들,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조력자들...음모의 핵심에 근접해 가는 베아트리세와 아이리스...그리고...잠들어 있던 데드키의 향방...작품을 보니 얼마전 비리와 부정부패에 찌들은 저축은행 사태가 떠오른다. 가진자들의 부정축제로 예고도 없이 한순간 문을 걸어잠근 은행, 잠긴 문 앞에서 피땀흘려 번돈을 내놓으라며 아우성 치는 서민들...작품속 퍼스트은행 역시 서민들의 고혈을 빼먹으려는 가진자들의 교묘한 작태가 혈압을 올린다. ㅠ_ㅠ (그 더러운 작태를 사회 최하위층 미성년자 베아트리세가 깨버리니 나름 서민이 가진자를 향해 날리는 통렬한 한방인건가...)
아마존 브레이크스루 스릴러 부문 수상작이자 이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데뷔작으로서는 놀라운 작품임엔 분명 하지만 다소 아쉬운 부분도 눈에 띈다. 심장을 압도하는 심리 스릴러라기엔 모자란 다소 밋밋한 구성이 그것인데, 400여페이지가 되어서야 처음 시체 한구가 나올 정도로 얌전한(?) 스토리나 650여 페이지를 들인것 치고는 후반부 크라이막스의 임팩트가 약하고 다소 어수선한 결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베아트리스는 대체 어디에 있었다는 건지...마지막 카마이클이 벌인 행동의 저의는 나로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강렬한 한방의 부제, 하지만 끝까지 궁금하게 만드는 소소한 서스펜스랄까...차기작에서는 이 작품에서 보여준 탁월한 심리묘사와 함께 좀 더 정교한 플롯의 이야기로 다시 만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