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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카의 장갑
오가와 이토 지음, 히라사와 마리코 그림,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마리카의장갑 (2108년 초판)
저자 - 오가와 이토
그림 - 히라사와 마리코
역자 - 이윤정
출판사 - 작가정신
정가 - 13000원
페이지 - 220p
엄지장갑 처럼 따뜻하고 잔잔한 어른들을 위한 동화
이 추운 겨울 모든이들의 꽁꽁 언 마음을 녹여줄 엄지장갑 같은 따뜻하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 출간되었다. 우리에게는 낯선 나라 발트 3국중 하나인 라트비아를 배경으로 라트비아의 문화, 음식, 복식, 국가상황 등을 녹여내 가상의 나라 루프마이제공화국에서 태어난 마리카라는 한 여성의 일생을 잔잔하게 그려낸다. 작가와 삽화가가 함께 3번에 걸쳐 직접 라트비아에서 취재를 진행하였고, 3번의 인상적인 방문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비록 현실은 냉정하고 참혹하더라도, 고난마저도 자신의 숙명이자 생의 의지로 승화하는 낙천적이고 때묻지 않은 루프마이제공화국 사람들을 보면서 삶에 대해..인생에 대해..그리고 사랑에 대해 사유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의 원제는 [ミ.ト.ン] (mitten) 즉 '벙어리 장갑'이다. 살을 애는 추운 겨울 직접 뜨개질한 엄지가 분리된 장갑을 끼는 라트비아의 풍습에서 비롯된 제목인데, '벙어리 장갑'의 '벙어리'라는 단어가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기에 출판사의 고심 끝에 작품속 주인공 마리카의 이름을 따 [마리카의 장갑]으로 수정하고, 본문에는 '엄지장갑'으로 단어를 전부 교체했다고 한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제목을 짓기 위해 머리를 모으고 끙끙 고심했을 출판사 관계자들의 배려심에서 태어난 동화같은 착한 이야기...[마리카의 장갑]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건 이런 착한 마음들이 모여서 나온 결과물이기 때문이 아닐까...
춤과 자연을 사랑하는 민족 루프마이제공화국에서 우렁찬 여아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조부모를 모시고 사는 부부의 집에 넷째 막내 딸이 태어난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귀여운 손녀딸이자 아빠와 엄마의 눈에 넣어도 안아픈 막내이자 삼형제의 귀여운 여동생으로 무한한 사랑을 받은 마리카는 사랑에 보답하듯 건강하고 활달한 소녀로 자라난다. 공화국의 공식 성인식인 12살 기능시험에 서투르고 엉성한 엄지장갑짜기로 가까스로 합격하고, 어엿한 공화국의 일원으로 인정받는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즐기는 마리카는 15살에 학교 댄스동아리에 가입하고, 그곳에서 1년 선배인 야니스와 사랑에 빠진다. 둘만의 조심스러운 사랑을 키워가던 야니스는 마리카에게 청혼을 하고....마침내 둘은 부부로서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된다. 하지만 둘만의 아기자기한 부부생활에서 소소한 삶의 행복을 느끼던 마리카의 인생에 짙은 먹구름이 찾아온다. 이웃나라 얼음제국의 침공으로 루프마이제공화국은 나라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얼음제국의 치하에 놓인 상황에서 양봉가였던 남편 야니스가 이유도 모른체 얼음제국의 감옥에 투옥되게 된 것이다....부부생활 불과 5년만에 생이별을 맞게된 야니스와 마리카....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공화국으로 독립 후에도 지속적으로 러시아의 통치와 간섭을 받아왔던 라트비아의 실제 정치상황이 일부 반영된듯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얼음제국에 의해 남편과 생이별하는 마리카의 아픔을 보며 일제치하 일본군에게 남편을 빼앗기고 홀로 고통을 견뎌야 했던 우리네 아낙네들이 겹쳐보이는 아이러니함을 느꼈다...-_-;;; (물론 저자 '오가와 이토'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5년간의 행복한 결혼 생활....그리고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들....어찌보면 끝이 없는 고통의 시간을 희망의 시간으로 극복해내는 마리카의 삶을 대하는 방식이 진정한 감동을 불러오는것 같다. 떠나기전 남편에게 선물했던 장갑이 진흙이 묻은체 되돌아 와도 이 장갑의 실을 풀어 새로운 장갑을 만들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무한한 이타주의는 비단 마리카만의 삶의 방식이 아니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고통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 하는 그들만의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의 자세...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자 지혜가 아닐런지...
"엄지장갑을 떠준다는 것은 온기를 선물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직접 손을 잡아줄 수 없어 엄지장갑을 떠서 선물하는 것입니다. 엄지장갑은 손의 온기를 대신 전해주는 마리카의 분신입니다.....어느덧 따뜻하고 아름다운 엄지장갑을 뜨는 일이 마리카에게는 삶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그 사람을 위해 한땀 한땀 뜨개질을 하는 예쁘고 착한 마음이 모여 꽁꽁 언 손을 녹이는 장갑이 되듯 차갑게 얼어 붙어있던 내 마음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는 작품이었다. '오가와 이토'의 아름다운 동화같은 이야기에 '히라사와 마리코'의 삽화가 더해져 모든 이들의 아픔을 포근히 감싸주는 어른들을 위한 힐링 동화가 되었다. 황량한 이 겨울을 녹이는 가장 따스한 작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