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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워스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비채 / 2018년 12월
평점 :
디아워스 (2018년 개정판 1쇄)
저자 - 마이클 커닝햄
역자 - 정명진
출판사 - 비채
정가 - 13800원
페이지 - 335p
하나의 시간, 그러고 나면 또 그런 시간.
그 시간들은 당신이 다 견뎌낸다고 해도 또 그런 시간이 있어.
세상에...또 그런 시간이라니. 지긋지긋해....
2003년 개봉한 영화의 원작이자 2012년 국내 출간되었던 [세월]이 [디 아워스]로 이름을 바꾸면서 개정판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시대를 달리한 3명의 부인이 [댈라웨어 부인]이라는 공통된 작품? 사람?으로 묶이면서 70년이란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영향을 주게 되는 이 이야기는 하루동안 벌어지는 세 부인의 일상을 그리면서 그녀들의 어지러운 삶과 내면의 고통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일단 작품을 이끌어 가는 3명의 부인을 보자면, 1923년을 살아가는 실존작가 버지니아 울프와 1949년 버지니아 울프가 쓴 작품 [댈라웨어 부인]을 읽고 영향을 받는 한 아이의 엄마인 임산부 로라 브라운, 마지막으로 1999년 에이즈 판정으로 투병중인 친구 리처드가 댈라웨어 부인이라 부르는 클러리서 본 까지 3명이다. 울프가 써낸 [댈라웨어 부인]....그 작품을 읽는 임산부....그리고 댈라웨어로 불리는 한 여인....70년이란 시간 사이에 이 [댈라웨어 부인]은 세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우선 작품에 등장하는 실존인물이자 [댈라웨어 부인]을 써낸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에 대해 언급해야 작품 전반에 노출되는 동성애와 자살에 코드에 대한 이해가 좀 더 용이할 것 같다.
1882년~1941년 영국 전후 문학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작가 울프는 말못할 비극적 생애를 살아간 여성이다. 어린시절 부모님이 이혼하고 아버지가 재혼함에 따라 의붓 오빠들을 비롯한 새로운 가족과 함께 하게된 울프는 의붓오빠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된다. 그로 인한 충격으로 정신분열증에 시달리게 되고, 남성 혐오증을 갖게 된다. 그런 그녀에게 반해 청혼한 남자가 그녀의 남편 레너드인데, 울프는 결혼을 위한 조건을 내건다. 첫째로 작가인 자신의 일을 방해하지 말것, 둘째로 절대로 잠자리를 요구하지 말 것....그렇게 1912년 둘은 결혼하지만, 안타깝게도 울프의 병세는 날로 악화되어만 간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23년은 그녀가 요양하기 위해 런던을 떠나 교외로 이사한 곳에서 시작되며, 그녀는 교외에서 우연히 목격한 새의 죽음을 통해 일상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나 일탈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어찌됐건...그녀는 주머니에 돌덩이를 넣고 차디찬 강속에 걸어들어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결국 울프의 작품 [댈라웨어 부인]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게되는 두 여성에게서도 역시 울프의 불안한 심리와 동성애 성향, 죽음에 대한 동경이 은연중 묻어나게 된다. 그저 책읽기를 좋아하던 평범한 여성 로라 브라운은 2차세계대전에서 살아 돌아온 핸섬가이 댄의 느닷없는 청혼을 받고 미처 생각할 겨를 없이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다. 귀엽고 총명한 3살난 아들 리치를 낳고 뱃속에는 둘째를 임신중인 로라에게 남편 댄의 생일날은 더 없이 행복하고 충만한 하루였어야 할터인데....정작 그녀가 맞이하는 생일날 아침은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남편의 생일 케잌을 아들과 함께 만들면서도...우연히 들른 그녀의 친구와 만나는 중에도...그녀의 마음속에 서서히 고개를 드는 댈러웨어 부인의 그림자는 때마침 그녀가 읽고 있던 책이 [댈러웨어 부인]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더없이 행복한듯 보이는 주부로서의 반복되는 일상의 염증...우연히 스친 동성 친구와의 입맞춤에 감전되듯 동요되는 감정...그렇게 감정의 혼란을 겪던 로라는 리치를 이웃집에 맡겨두고 가출이라는 일탈을 감행한다.
하나의 시간, 그러고 나면 또 그런 시간. 아무리 견뎌내도 다시 돌아올 그 지긋지긋한 시간...시시각각 로라를 유혹하는 모든 굴레를 벗어버릴 죽음이란 달콤한 속삭임...
아....OTL..제발 이러지마...ㅠ_ㅠ...행복한 남편 생일날 이 무슨 사달날 짓이란 말이냐...작품을 읽는 내가 이리도 조마조마하니...엄마의 소용돌이 치는 감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아들 리치는 오죽하겠는가....엄마의 혼란한 내면을 바라보고 자란 아들의 이야기는 1999년도 이야기로 이어진다....온 사방에 포진된 동성애 코드와 자살, 죽음의 조각들이 즐비하다. 비극적 인생을 살다간 버지니아 울프의 짙게 드리운 암울의 그림자를 로라와 클러리스는 걷어 낼 수 있을까?...미치도록 반복되는 지옥같은 일상조차도 삶의 일부분이자 삶 그 자체이다. 울프의 죽음에 앞서 빛나는 문학 작품을 써낼 수 있었던 창조적 힘 역시 그녀의 삶과 옆에서 물씬양면으로 힘써준 남편 레너드의 노력에서 나온것이라 믿고싶다. 작품 전반을 채우는 메타포들과 문학성 풍부한 유려한 문장, 부인들의 섬세하고 깊이 있는 내면묘사들로 솔직히 그녀들의 감정선을 전부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힘들것 같다. 하지만 작가가 이야기 하는 [디 아워스] 삶을 채우고 있는 그 시간들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던것 같다. 기회가 닿는다면 영화버전으로도 감상해보고 싶다.
덧 - 원작에서 클러리사가 영화촬영장을 지나며 '메릴 스트립', '줄리안 무어'를 본것 같다고 언급하는 장면이 있는데...영화판 클러리사 역이 '메릴 스트립'이네..ㅎㅎ 이 장면을 어떻게 위트있게 처리할지 무척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