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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귀를 너에게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3월
평점 :
용의귀를너에게 (2019년 초판)
저자 - 마루야마 마사키
역자 - 최은지
출판사 - 황금가지
정가 - 13800원
페이지 - 433p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용의 귀를 가질 수 있어
용에게는 뿔은 있지만 귀는 없지. 용은 뿔로 소리를 감지하니까 귀가 필요 없어서 퇴화해 버렸어. 쓰지 않는 귀는 결국 바다에 떨어져 해마가 되었단다. 그래서 용에게는 귀가 없어. 농(聾)이라는 글자는 그래서 '용의 귀'라고 쓰지. _233p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소통방식의 차이가 그들과 우리를 가르는 수단이 되는것이 아님을 말하던 독특한 소재의 미스터리 [데프 보이스]의 속편이 2년만에 출간되었다. 전편이 워낙 감동적이었고 가슴속 깊은 울림을 주던 작품이라 이번 속편의 출간이 너무나 기쁘고 다시 만난 '아라이 나오토'가 너무나 반갑게 느껴졌다.
'소리가 들리는 사람들이 몰랐던 또 하나의 세상!'
전작에서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던 귀가 들리지 않는 농인들의 세상을 깊숙히 파고들면서 현실적 에피소드를 통해 농인들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의 미비로 그들이 견뎌내야 했을 어려움과 아픔을 들여다 보고, 농인과 청인 사이에서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방황하는 코다 아라이를 통해 청인과 농인 사이에 가로막힌 벽이 얼마나 단단하고 높은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번 속편은 기존의 청인과 농인, 그리고 코다(농인의 부모 아래서 자란 청인 자녀)의 갈등이란 전작의 연장선에 우리들이 몰랐던 또 다른 세상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해마의 집 살인사건이 일단락 된 후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라이는 교통과 경찰 미유키, 미와 모녀와 동거하면서 수화통역사의 일을 이어나가지만 확실한 수십원이 없어 미유키와의 결혼은 무기한 연기된 상태, 게다가 유전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지만 자신의 아이가 농인이 될 것을 걱정하여 피임을 하는 아라이와 아이를 갖고 싶은 미유키의 엇갈린 갈등은 점차 둘 사이를 흔들어 놓는다. 한편, 초등생 미와는 등교거부를 하는 친구 에이치를 걱정하며 에이치에게 수화를 가르쳐 줄것을 아라이에게 부탁하고, 발달장애와 함께 선택적 함묵증을 앓고 있는 에이치의 사정을 헤아려 에이치의 엄마의 동의하에 수화을 가르치게 된다.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했던 소년 에이치는 수화를 통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소통의 문이 트인 에이치는 얼마전 맞은편 집에서 목격한 살인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인
소리가 들리지 않는 농인
소리가 들리지 않는 부모 아래서 자란 들리는 아이 코다
그리고
선천적 질환으로 소리가 들리지만 말할 수 없는 소년....
이 소년에게 세상과 소통 할 수 있는...용의 귀를 달아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손의 언어 수화뿐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번 작품에서 새롭게 비추는 소외된 세상은 바로 세상과 단절해버린 함묵증 질환을 앓고 있는 소년이다. 마음이 편안한 상태, 집에서 부모와는 자유롭게 의사소통 하지만 집밖만 나서면 말문이 막혀버리는 선택적 함묵증은 환경적 요인에 따라 증상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그런 오해에서 비롯된 스트레스는 모두 환자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한다. 작품은 에이치를 등장시키기에 앞서 입모양을 읽는 독화와 들리지 않지만 말을 하는 구화가 가능한 중도실청자인 범죄 용의자를 등장시켜 귀가 들리는데 들리지 않는척 연기하는것 아니냐는 경찰 취조관의 편견어린 시선을 배치시키면서 세상의 독단과 몰이해가 누군가에겐 얼마나 커다란 아픔과 상처가 되는지를 알기쉽게 설명해준다.
머..뒷표지의 개략적인 줄거리에도 언급되지만 이번 사건의 중심은 증거도 없고, 범인도 파악하지 못한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되고,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는 소통이 불가능한 질환을 앓고 있는 어린 소년이라는 사실이다. 이 하나만으로도 경찰은 소년의 이야기를 진술로 채택할 수 없다며 외면할 것이고, 아라이는 소년의 말에 귀기울이고 소년이 정상적으로 진술 할 수 있도록,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이야기가 그려지리란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그런데 그런 예상가능한 스토리외에도 살해된 피해자와 관련된 기구한 사연을 얽어놓고 대망의 반전을 숨겨 놓는 미스터리적 장치를 마련해 놓으니 휴머니즘 드라마로서나 미스터리로서나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이중의 재미를 선사한다.
함묵증 소년이 얽힌 사건외에도 전작의 부제 [법정의 수화 통역사]를 잇는 새로운 농인의 재판 통역과 중도실청자의 범죄 취조 통역 에피소드로 무겁고 긴박감 넘치는 법정스릴 혹은 긴장감 넘치는 취조실 속에서 침묵의 언어 수화를 통해 거짓없이 마음과 마음을 전달하는, 오로지 이 작품만이 가질 수 있는 진실한 침묵의 스릴을 선사하기도 한다.
전작 [데프 보이스]에 이어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너와 나 사이에 틀림이 아닌 다름을 바탕으로 다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가슴 따뜻해 지는 작품이었다. 아라이를 비롯해 2년만에 다시 만난 캐릭터들이 더 없이 반가웠고 농인, 청인 나눔 없이 모두 함께 힘을 모아 타인을 위해 노력하고 결실을 이루는 모습은 잔잔했던 내 마음에도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며 오래도록 기분좋은 울림을 남긴다. 참 좋은 작품이다. 이런 작품들이 늘어날 수록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