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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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2019년 초판)

저자 - 히가시노 게이고

역자 - 권일영

출판사 - RHK

정가 - 14800원

페이지 - 481p



본인 뿐만 아니라 본인의 소중한 가족까지 완전히 망가트려 버리는 일



RHK출판사의 계약종료임박 '히가시노 게이고' 리커버 시리즈의 이번 주자는 [편지]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름 조차도 모르던 작가에 출간된 작품도 백 편이 훌쩍 넘어가니 리커버가 됐던 베스트셀러건 내겐 전부 생소한 작품이다. -_-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인데, 2006년 발표되어 출간 한달만에 130만부가 팔려나간 괴물같은 작품이고, 2006년 국내 초역 후 13년만에 새로운 옷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다. 소재, 장르 가릴것 없이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이는 작가의 이번 작품은 살인자 형을 둔 동생이 세상에 나와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지울 수 없는 꼬리표를 달고 편견과 차별의 대상으로 겪게되는 고난의 이야기를 그린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동생을 위해 일찍부터 학업을 포기하고 몸을쓰는 고된 직업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던 츠요시는 동생 나오키의 대학등록금 마련을 위해 해서는 안될 짓을 저지르기로 마음먹는다. 이삿짐 센터 알바를 하면서 눈여겨 봤던 홀로사는 할머니가 사는 부잣집에서 돈을 훔치려는 것이다. 집에 전화를 걸어 받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창문을 뜯어 집안에 침입한 츠요시는 불단이 모셔진 서랍에서 두둑한 돈봉투를 발견하고 품속에 넣고 조용히 집을 나가려 한다. 그런데 츠요시의 마음을 잡은 것은 불단방을 지나가며 본 식탁위의 군밤 한봉지...동생이 군밤을 유달리 좋아하는 것이 생각난 츠요시는 발길을 돌려 식탁의 군밤을 집어드는데, 갑자기 안방에서 나오는 주인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고...비명을 지르며 전화를 거는 할머니를 말리려던 츠요시는 얼떨결에 갖고 있던 드라이버로 목을 찌른다. 범죄를 저지른 당일 경찰에 붙잡힌 츠요시에게 징역 15년형이 선고되고,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 나오키만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 안그래도 어려운 집안사정으로 힘겹게 살던 나오키에게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꼬리표가 추가되고...홀로 세상의 냉혹한 시선과 싸워야 하는 나오키의 운명은....



강력범죄가 아니라 단순 범죄만으로도 범죄자의 신상이 밝혀진것도 아닌데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살던 곳을 떠나는 경우를 종종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본 것 같다. 하물며 단순절도 같은 (성범죄는 논외로 하더라도) 경우도 그런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살인사건의 가해자가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나의 친척...가족...나의 친형이라면...과연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까?...살인자의 동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오키의 인생이 철저히 망가져 버리는 현대판 연좌제의 모습을 보면서 어찌보면 작가는 이를 통해 피해자와 그의 가족 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주변까지 철저히 파괴시켜버리는 범죄라는 행위 자체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너무 비약인가...-_-;;)



츠요시의 징역형이 확정된 순간부터 나오키의 친구들과 선생들의 분위기는 미묘하게 변화하고, 집세를 낼 수 없어 집에서 쫓겨난 나오키는 고등학교만이라도 졸업하기 위해 형의 일을 숨긴채 식당 아르바이트를 한다. 하지만 감추려하면 할수록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족쇄는 끊임없이 나오키를 따라오고 결국 꿈을 잃고 희망을 포기한채 고된 하루벌이 일을 전전하는데...그냥 그렇게 인생의 실패자로 끝났다면 이렇게 안타깝진 않았으리라...얄궂게도 재능은 왜이리 타고 났으며, 얼굴은 또 왜 그리 잘생겼고, 왜그리 근면 성실한건지...-_-;;;; 전도유망한 청년이 어떻게던 연좌제의 늪을 벗어나려 혼신의 힘을 들여 고군분투 하지만, 인생을 

뒤바꿀 결정적 순간에서 나오키에게 날아오는 편지 한통...감방에 있는 츠요시가 보내는 옥중 편지 한통이 산통을 깨면서 그동안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다. 악마가 보내는 편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최적의 타이밍에 전달되는 편지....그래서 제목이 [편지]인 것인가...



물론 작가의 가학적 성향이 의심되는 악질적 타이밍에 전달되는 편지 때문에 제목이 [편지]는 아니다. 작품 전반에 걸쳐 가해자와 피해자의 속죄와 용서에 대한 의문이 이 [편지]를 매개로 끊임없이 독자에게 물음을 남기기 때문이다. 자신이 저지른 일도 아니고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인생이 꼬여버린 나오키에게 얼마나 더 오랜 시련을 겪어야 사회는 나오키를 받아 줄 수 있을까?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규정할 수 있을까? 가해자가 얼마나 속죄해야 가해자에 대한 분노의 마음을 놓을 수 있을까?...죄와 용서...머라 딱히 규정지을 수 없는 이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가 나오키의 인생을 통해, 츠요시의 옥중편지를 통해 평행선을 달리듯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진다. 작품의 열린결말 역시 속죄와 용서라는 질문을 독자 개개인의 생각에 넘기는 작가 나름의 답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 깊숙히 자리잡은 차별과 편견에 대해 이토록 처절하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게이고'만의 천부적 스토리텔링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어찌보면 진부하고 어찌보면 신파적이고 통속적인 이야기임에도 오백여 페이지가 순식간에 사라지는건 대중의 코드를 날카롭게 캐치하고 대중의 입맛에 맞는 서사를 통해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필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리라. '히가시노 게이고'의 [죄와 벌]이라는 말이 절로 이해가 되는...실로 묵직한 휴먼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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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의 여왕 백 번째 여왕 시리즈 4
에밀리 킹 지음, 윤동준 옮김 / 에이치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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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사의여왕 (2019년 초판)

저자 - 에밀리 킹

역자 - 윤동준

출판사 - 에이치(h)

페이지 - 435p



죽음을 넘어선 사랑의 힘



한계를 넘어서는 고난 속에서 꿋꿋이 자신의 운명과 싸워 나가는 소녀. 여왕 칼린다의 여정이 드디어 막바지에 다다랐다. 2018년 7월 [백 번째 여왕]을 시작으로 약 3개월에 한 편씩 쉼없이 달리던 여왕 시리즈가 이번 네번째 작품 [전사의 여왕]으로 기나긴 여정의 막을 내린 것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칼린다의 여정이, 그녀의 기나긴 고난의 끝이 다행스러운 동시에 한편으론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가녀린 소녀가 전사가 되어야 했던 이유...그녀의 목숨을 건 마지막 모험이 펼쳐진다. 



전편에서 타렉으로 현신한 악마 우둑과의 목숨을 건 사투에서 가까스로 오른팔을 잃으면서 우둑을 물리치지만, 우둑은 지하세계로 도망치면서 칼린다의 정인 데븐을 잡아가버린다. 타렉이 이끌던 군대와 타라칸드를 점령하던 부타 반란군과의 치열한 전쟁은 우둑의 소멸로 종식되고 타라칸드엔 마침내 평화가 찾아온다. 타렉에 이어 타라칸드의 실권을 잡은 왕자 아스윈은 그동안 일반백성과 능력을 타고난 부타족과의 반목을 종식시키기 위해 타라칸드의 금기를 깨고 이웃나라의 부타족인 가미공주와 혼인을 약속한다. 타렉시절 군부에 있던 장교 로캐쉬는 왕자의 의지에 반해 반란군을 조직하여 부타와 백성간의 반목을 도모하고, 칼린다는 연옥에 갇힌 데븐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마침내 칼린다의 정성이 닿아 데븐이 갖혀있는 지하세계로 찾아가는 칼린다...그리고 그녀에게 닥치는 새로운 고난...칼린다는 데븐을 저승에서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



이번 대망의 완결편에서는 크게 아스윈과 칼린다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크게 두 줄기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선대부터 지속되어온 부타족의 박해와 억압을 끝내고 종족간 화합을 이룩하여 타라칸드의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려는 아스윈 왕자의 노력과 연옥에 갇힌 데븐을 구해내기 위해 직접 위험천만한 언더월드로 내려가 대악마들과 마지막 대결을 벌이는 칼린다까지...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숨쉴틈 없는 액션과 애절한 로맨스가 눈을 땔 수 없이 휘몰아친다. 



시리즈 전반에 걸쳐 작품에 커다란 갈등의 축으로 작용하던 강력한 힘에 대한 근원적 두려움 땅, 물, 바람, 불의 4가지 요소를 자유롭게 지배하는 부타족에 대한 일반인들의 공포심을 무너뜨리는 일은 칼린다와 아스윈이 각고의 노력을 들이지만 이번 [전사의 여왕]에서도 한번 뇌리에 박힌 불신은 깨트릴 수 없는 터부와 금기로 백성간 화합을 방해한다. 영화 [X맨]시리즈에서 뮤턴트들에 대한 열등감과 두려움의 발로로 같은 인간이 그들을 박해하는 장면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판타지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계급간의 갈등에 능력자들과 일반인간의 다름에서 비롯된 차별적 갈등요소는 신에게 내려받은 고유의 초능력을 발휘하는 볼거리 외에 사회적 수용과 이해라는 측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다음으론 전작의 결말에서 어느정도 예상한 칼린다의 지하세계 모험이다. 대부분의 신화에서 저승으로 정인을 찾아 가는 내용이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곤 하는데, 이번 칼린다 시리즈에선 대미를 장식하는 완결편에 데븐과 칼린다의 사랑을 시험하듯 행복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으로 데븐을 구하기 위해 위험한 언더월드로 찾아가는 칼린다의 모험이 선택되었다. 칼린다 시리즈를 읽은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작품의 배경이 수메르 신화를 모티브로 구현된 세계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작품에서는 지하세계와 관련된 수메르 신화가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힌트로 빈번하게 언급된다. 타라칸드에 구전 전설로 내려오는 '지하세계로 간 이난나' 이야기인데, 이 전설은 실존하는 수메르 신화를 기반으로 한다.



[지하세계로 간 이난나]

하늘의 여신 이난나는 남편 두무지가 누군가에게 홀려 저승에 내려가고 그 남편을 찾기 위해 직접 지하세계로 내려간다. 지하세계는 한번 들어가면 누구도 돌아나올 수 없는 죽음과 어둠의 땅이지만 남편을 위해 위험한 땅에 발을 내딛는다. 저승의 문 앞에서 이난나는 수문장에게 문을 열라고 말하고, 수문장은 이난나에게 몸에 지니고 있는 물건을 대가로 내놓으라고 한다. 왕관, 팔찌, 옷가지....일곱번째 문을 지나는 이난나는 알몸이 되었고, 벌거벗은 이난나를 본 저승의 여왕은 진노하여 몰매 맞은 고깃덩어리로 변해 나무못에 걸리는 최후를 맞는다.



칼린다의 명계에서의 모험이 이 신화와 똑같다고는 볼 수 없지만 각 저승의 문지기들에게 통과의 댓가를 치르는등의 일부 설정은 흡사하여 신화와 작품을 비교하면서 작가가 그려낸 더욱 위험하고 암담한 명계의 모습을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작품에서 언급되는 신족과 악마들 모두 실제 수메르 신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이니 신화와 작품을 비교하며 보면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으리라.) 물론 저승에서 각성하며 깨닫는 칼린다의 전생의 사랑이라는 로맨스 요소도 데븐과 칼린다 그리고 미지의 존재와의 삼각관계를 형성하면서 새로운 갈등의 핵으로 작용하게 된다.



통속적인 로맨스 소설에 우리에겐 낯선 수메르 신화의 판타지 세계관과 차별과 반목으로 점철된 종족간의 깊은 갈등이 이 시리즈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다가온다. 로맨스를 선호하는 독자나, 판타지 취향의 독자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어찌됐던, 얼떨결에 예비신부가 되서 고생만 죽도록 하던 칼린다의 고난도 이제 끝이 났다. 해피엔드일지 새드엔드일지는 작품을 읽을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고...언젠간 다시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 칼린다 시리즈

1부 [백 번째 여왕]

2부 [불의 여왕]

3부 [악의 여왕]

4부 [전사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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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물쇠 잠긴 남자 - 상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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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물쇠잠긴남자 상,하 (2019년 초판)
저자 - 아리스가와 아리스
역자 - 김선영
출판사 - 엘릭시르
정가 - 13500원, 13500원
페이지 - 356p, 400p



자물쇠를 잠가버린 노인의 인생 추적 미스터리



'아리스가와 아리스'라는 이름은 수차례 들어봤으나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한다. 그렇게 책을 읽어 대는데도 이렇게 단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작가를 만나다 보면 한평생 읽을 수 있는 책은 한정되 있고, 죽을때까지 단 한번도 접해보지 못하는 작가도 있을거라는 사실이 아쉽기도하고 안타깝기도하다. -_- 어쨌던...잡소리는 접어두고..일본서 신본격으로 유명한 작가라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이작품은 신본격은 아니고 사회파 추리쪽에 더 가까운 작품이다. '미쓰다 신조'의 작가시리즈 처럼 '아리스가와 아리스' 자신이 직접 이야기에 등장하여 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의 조수역할로 사건해결에 참여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제3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고상을 수상했다. 전설적 탈출마술의 1인자 '후디니'도 아니고 [자물쇠 잠긴 남자]라니?...이 남자를 묶고 있는 자물쇠는 대체 무엇인가....



문학상 시상식장에서 만난 유명 역사소설가 가게우라는 아리스에게 지인의 수상쩍은 죽음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부탁한다. 작품활동을 위해 호텔로 잠적할때 만나 친해진 옆방에 투숙하는 노인 나시다가 얼마전 자신의 방에서 목을 메달아 자살했는데, 가게우라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자살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자신이 납득할 수 없다는 이유가 전부라는...근데 그 의뢰를 받아들이는 아리스도 대단하다는...)호기심이 동한 아리스는 개인적으로 나시다의 죽음을 조사하지만 자살한 방은 밀실이었고 다른 사람의 침입 흔적이 없고, 나시다 역시 저항한 흔적이 없어 경찰은 자살로 처리중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끈질긴 질문 끝에 담당 경찰로 부터 나시다의 부검결과 수면제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것과 사망자가 머물던 방에서 수면제를 사용한 약봉지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낸다. 하지만 이 사실만으로는 자살의 정황을 뒤집을수 없기에 아리스는 직접 나시다가 머물던 호텔에 머물면서 호텔 관계자와 투숙객들에게 나시다에 대해 조사한다. 주에 4일 이상은 요양원 보조와 전화상담으로 자원봉사를 다니고 5년째 호텔에 홀로 묵고 있는 69세의 노인...그 사실외에 나시다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으니...이 노인의 삶 자체가 밀실과 다름없었던 것이다...



홀로 사는 삶, 고독에 지친 노인의 자살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원한에 의한 타살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미스터리가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의 정체를 파헤치는 살인범 중심의 이야기로 흘러가는 반면 이 작품은 특이하게 사망자에게 극의 촛점을 맞추고 모든 미스터리가 풀리는 종장 직전까지 약 칠백여 페이지동안 끊임없이 자살/타살에 대한 진위여부로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확인할 수가 없으니 이렇다하게 범인을 찾는 단계는 미처 가보지도 못하고 종장을 맞이하게 되는데 종장의 눈부신 추리로 빛을 발하는 범죄학자 '히무라'의 사건 풀이를 보다보면 나름 납득은 간다지만 어찌됐던 기존의 미스터리 작품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다수의 밀실살인 명작을 남긴 작가의 새로운 도전은 바로 인간밀실? 혹은 인생밀실 인가?! 타인에게 자신의 사생활을 일절 함구하고 세상으로부터 자물쇠를 꽁꽁 걸어잠근 69세의 노인 나시다의 미스터리하고 비밀스러운 인생이 드러나는 순간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를 미스터리한 사망사건은 자물쇠가 풀리듯 자연스레 해결된다. 물론 그 중심엔 작가 아리스의 고군분투가 펼쳐지는데 과거를 종잡을 수 없는 노인의 인생을 따라가기 위해 관계자들의 탐문에 탐문을 거듭하고 실낯같은 단서를 잡아 나시다 인생의 본질에 근접해 가는 과정이 시사 추적르포를 보듯 끈질기게 그려진다.



이중, 삼중으로 걸려있던 나시다의 자물쇠가 하나씩 풀려가면서 어지럽게 널려있던 과거의 조각들이 하나씩 짜맞춰질때 베일에 쌓여있던 그의 비극적이고 고단한 인생이 드러나고 호텔방에서 외로이 숨죽여 살 수 밖에 없었던 기구한 사연이 안타까움을 더해갈때쯤...사건을 결정짓는 진실이 경악과 충격으로 독자들을 강타한다. 나시다를 끝까지 따라오는 악연의 끈...사소한 시기심...애증...우연...마치 수억대 복권이 당첨된 사람이 인생의 운을 모두 소진해버리고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불행을 보는듯 했다.



이건 뭐...종장인 마지막 80페이지 전까지도 나시다의 자살/타살 여부가 드러나지 않으니 스포일러 하지 않고 서평쓰는게 굉장히 난감하다. -_-;;;; 자살이라면 자살의 동기가 무엇인지, 타살이라면 누가? 왜? 죽였는지...이 두가지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나시다의 인생의 발자취를 따라가 상당히 헷갈리게 만든다는 것. 여러 증거와 단서들을 종합해 밀실살인의 트릭이 드러나듯 단편적이던 인생이 짜맞춰 지면서 드러나는 진실이 작품의 재미요소라는 것. 그리고 주변인과의 대화에 사건의 진실이 숨겨져 있다는 것. (음...이건 다른 미스터리도 마찬가지겠군...-_-) 탐정겪인 '히무라 히데오'가 등장하면서부터 작품의 흐름이 급물살을 탄다는 것 정도....



"필드워크에 임하면 언제나 피해자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죽은 자를 똑바로 마주한 기억은 없어." _123p



망자의 인생을...비극으로 점철된 나시다의 인생을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맺게되는 인연의 끈이란게 참 묘하다 생각되면서도 한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것 또한 그 인연의 끈이란걸 새삼 실감케한다. 한 인간의 기구한 인생속에 담긴 원죄, 참회, 심판. 이 모두를 아우르는 드라마랄까...가벼운듯한 '히무라'와 '아리스' 콤비의 분위기와는 반대로 굉장히 암울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이었다. 참고로 작품 전반에 걸쳐 오사카의 아름다운 풍경과 역사가 스토리와 함께 꽤 자주 그려지는데, 이런 풍광들이 사건과 어느정도 연관되는줄 알았더니만 전혀 그런거 없었다. -_-;;;; 오사카를 가봤고, 글로 쓰여진 묘사만으로 오사카의 건물과 거리가 파노라마처럼 그려지지 않는 이상 그냥 스킵해도 무방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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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형민우 초한지 10 : 최후의 결전 - 완결 이문열 형민우 초한지 10
이문열 원작, 형민우 각색.그림 / 고릴라박스(비룡소)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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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형민우 초한지 1 ~ 10 (2019년 초판)
원작 - 이문열
그림 - 형민우
출판사 - 고릴라박스
정가 - 11000원



10년의 기다림. 그리고 대망의 완결



2009년 [초한지 1권]을 구입할때만 해도 솔직히 완결까지 나올 수 있을지는 반신반의했었다. 독보적이고 개성넘치는 천재만화가 '형민우'작가의 작품을 좋아는 하지만, 앞선 [프리스트], [태왕북벌기]처럼 완결되지 못하고 중도포기한 작품들이 작가의 커리어를 깎아 먹은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민우 작가의 [초한지]에 발을 들인건 이미 한국의 대작가 '이문열'작가의 훌륭한 원작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권당 200여 페이지 안팎의 분량이 그렇게 부담되진 않을거라는 계산에서였다. 발표 당시 장엄하고 스펙터클한 시대극의 묘미를 제대로 살렸던 [태왕북벌기]에 매료됐었던터라 앞뒤가릴것 없이 일단 지르고 본 것도 크게 작용했다. -_- 어찌됐던...[초한지 1권]을 구매하고나서야 알고 말았다. 이 작품이 10부작으로 계획되었다는 것과...일년에 한권 출간이 계획이었다는 것을....헐...어린이 대상의 역사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일년에 한권 10년간의 프로젝트라니?!!!! 이런 전대미문 미증유의 거대 프로젝트가 또 있었던가...얼떨결에 십년 프로젝트에 발을 잘못디뎌버린 것이다.....



10년이란 대장정이 기다리고 있다는것을 알아차리는 동시에 그때부터 1년마다 꼬박 꼬박 구매한 [초한지]는 전부 책장에 봉인해 뒀다. 완결도 안됐는데 괜히 읽었다가 1년을 기다려 다음권을 읽는다면 앞서 본 내용들이 기억나지 않을 것을 우려해서 말이다...어찌됐던...반신반의속에서 2009년에 시작된 드래곤볼 모으기가 드디어 2019년 3월이 되어서야 그 대망의 마침표를 찍는다. 크흑...ㅠ_ㅠ... 10살 초딩이 이 만화를 시작했다면 20살 성인이 되어서야 완결을 목도했다는 얘기다.



그리고....드디어...십년의 기다림으로 봉인해뒀던 '이문열', '형민우'의 [초한지] 전 10권을 독파했다!! 한 5시간 좀넘게 걸린듯 한데 십년의 기다림 그리고 5시간여의 감상...하지만 내게 펼쳐지는 기원전 210년경 진나라를 통치한 시황제의 죽음과 전국의 웅크려있던 영웅들의 도래를 촉발한 진승 오광의 난, 산을 뽑고 세상을 덮을 기운을 발산하는 '역발산기개세'의 역대급 맹장 항우와 한나라의 시조 뛰어난 지도자인 유방의 피할 수 없는 진검승부는 이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벅차오르는 감정과 가슴속 뜨겁게 타오르는 무언가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사실 그렇게 책을 읽어대면서도 수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역사물은 기피하는 취향탓에 그 유명한 [삼국지]도 중도하차했었고, [초한지]는 아예 시도조차 한적이 없었다. -_- 솔직히 이 만화 [초한지]도 '형민우'작가가 그리지 않았다면 평생 발들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작품을 통해 '이문열'작가의
[초한지]가 궁금해지고 꼭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자신의 신념을 갖고 목숨바쳐 전장에 나서는 난세를 평정할 영웅들의 기개와 수십만군이 펼치는 스펙터클한 전투 그리고 책사들의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지략과 현대와 과거를 관통하는 병법들이 현실역사를 토대로 종횡무진 펼쳐지니 역사문외한인 나조차도 도저히 눈을 뗄 수 없게 만들더라.
      


'이문열'작가의 소설책 10권 분량의 [초한지]를 각 200페이지 내외의 만화로 축약하였으니 만화에 미처 실리지 못한 정사와 야사는 얼마나 많겠는가....만화 [초한지]에서도 가장 재미있을것 같았던 항우와 유방(의 대장군 한신)의 본격적인 전투가 분량 때문에 몇 페이지로 축약되어 너무나 아쉬웠고 이내 소설 [초한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전환되었다. 그런의미에서 본인 같이 역사소설을 접해보지 못했거나 거대한 분량이 부담스러운 어린이 혹은 청소년에겐 안성맞춤인 작품이고, 나이여하를 불문하고 [초한지]의 입문작으로 손색없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원작이야 수천만부가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니 말할것도 없고, 작화야 이름이 바로 브랜드인 '형민우'니까 더욱 말할것도 없으리라...레전드 작가들의 만남!..이들의 콜라보가 끌어내는 시너지는 십년을 넘어 수십년이 지나도 퇴색하지 않으리라...십년간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고 새로운 [초한지]를 보여준 작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고 (원래는 20권 분량으로 기획했었다고 한다...ㄷㄷㄷ) 십년간의 기다림의 끝인 완결편 10권을 서평의 기회로 주신 출판사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덧 - '형민우'작가는 현재 또다른 역사물인 [삼별초]를 진행중이다. 핫핫...작가 필생의 역작이라는데....솔직히 이건 완결되면 사려고 마음먹고 있다..-_-

 


초한지 1. 떠오르는 태양
초한지 2. 황제의 꿈
초한지 3. 일어선 두 영웅
초한지 4. 영웅성의 주인
초한지 5. 운명의 시작
초한지 6. 천하를 담을 그릇
초한지 7. 거록의 혈전
초한지 8. 권력의 맛
초한지 9. 욕심과 오만
초한지 10. 최후의 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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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등산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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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등산일기 (2019년 초판)

저자 - 미나토 가나에

역자 - 심정명

출판사 - 비채

정가 - 13800원

페이지 - 374p



가자! 산으로~



충격적 장편 데뷔작 [고백]을 통해 미스터리작가로만 알고 있던 '미나토 가나에'의 살인없는 힐링 작품이 출간되었다. 타고난 이야기꾼은 장르를 가지리 않는 다는건 알고 있지만 그동안의 작품 스타일과는 상당히 상반된 작품이기에 내심 우려와 걱정이 앞섰는데, 역시 그런 걱정은 부질없는 기우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일본에서 불고 있는 등산열풍 특히 마운틴 걸이라 불리는 젊은 여성들의 등산열풍에 각자의 사연을 안고 산행길에 오르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산에 오르지 않고도 푸르른 녹음과 신선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신듯 마음의 정화와 치유를 안기는 건강한 힐링 작품집이었다. 



결혼을 앞둔 리쓰코는 같은 직장인 동료 유미와 함께 묘코산에 오른다. 원래는 백화점 2층에 근무하는 마이코, 유미와 함께 셋이서 등산하기로 했지만 몸이 안좋은 마이코가 불참하여 어쩔 수 없이 2인조로 등반하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전 주말 러브호텔에서 유미가 직장 유부남과 함께 나오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뒤로 유미에 대한 않좋은 감정밖에 없는 리쓰코는 유미와의 등반이 불편하기만 하고, 더불어 결혼전 시댁식구들과의 첫식사자리에서 예비남편 겐타로의 할머님이 치매에 걸렸고, 결혼 후에는 직장을 그만두고 할머님의 간병을 맡아야 한다는 말을 처음듣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심정에 휩싸인다. 결혼식 날짜가 잡히도록 아무말도 안해준 겐타로에게 내심 실망감이 들면서 사기결혼까지 생각한 리쓰코는 이번 묘코산을 등산 하면서 결혼/파혼에 대해 결정하려던 것이다. 등산 초반부터 심란한 리쓰코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가벼운 운동복에 런닝화를 신고 온통 불평을 늘어놓는 유미 때문에 신경은 곤두서는 리쓰코....과연 리쓰코와 유미의 첫 산행을 무사히 치를 수 있을까?.....-_-;;;



본인도 초딩때까지만 해도 물찬제비처럼 거침없이 산을 타던 시절이 있었다. 함께 산행하던 어른들도 어린게 참 산 잘탄다고 칭찬했었는데...ㅎㅎㅎ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고, 복부에 알콜이 출렁출렁 차오르면서부터 몸은 한없이 무거워지고 본인의 무거운 몸뚱아리를 지탱시키던 무릎이 비명을 질러대고부터는 등산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 기피하게 되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진행하는 강제 산행은 피할 수가 없으니...울며겨자먹기로 몸안에 육수를 뿜어대며 등산할때는 죽을만큼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억지로 오른 강제산행임에도 정상에 올랐을때의 성취감과 상쾌함은 단순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감정이었다. 그럼에도 등산은 싫어하지만서도....



그런의미에서 이 작품은 등산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산이 어서오라 손짓하는 더 없이 등산 의지를 활활 태우는 작품이고, 반대로 등산을 기피하는 사람에게도 가만히 앉아서 정상에 오른듯한 청량하고 상쾌한 기분이 들게하는 등산의, 등산에 의한, 등산을 위한 작품이다. 그저 산이 좋아서 산행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리쓰코 처럼 복잡한 마음을 대자연의 경관을 바라보며 정리하기 위해 오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고독하게 홀로 등반하며 생각을 정리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왁자지껄하게 지인들과 마음을 나누며 협동하며 하나된 마음을 느끼기 위해 산에 오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듯 그들의 산행엔 각자 나름의 목적이 있을거란 말이다. 하지만 목적이야 어떻든 10시간 이상을 등반해야 하는 고된 여정이던, 반나절이면 오르는 야트막한 산이던 관계없이 자신의 힘으로 산을 정복하고 제일 꼭대기에 발을 디딜때의 그 벅찬 감정은 모두가 같지 않을까...작품속 8개의 산을 오르는 여성들이 간직하고 있는 고민과 걱정들은 결국 등산이란 인내와 노력의 행위를 통해 고난을 극복하고, 성숙해지는 성장의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주어 등산이 주는 궁극의 효과를 간접적으로 체험시켜 준다. 



등산을 중심으로 8가지 명산의 아름다운 풍광과 색깔을 가진 옴니버스 단편집으로 각 단편은 다른 단편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는 설정이라 재미를 더한다. 네 번째 단편 [리시리 산]에서 작가 지망생인 백수 동생이 의사 남편을 만나 성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언니와 함께 하는 열등감 가득한 산행이 그려진다면, 바로 다음 다섯 번째 단편 [시로우마다케 산]에서는 백수 작가의 언니의 시선으로 산행이 그려지는 것이다. 등산을 매개로한 작은 '미나토'월드가 구축되니 다음 단편엔 누구의 이야기가 그려질지 예측하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더라. 



시기와 질투, 격차와 열등감, 이혼과 이별...인간사 가득한 고민거리들이 산을 오르면서 눈녹듯 사라져 버린다. 위대한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고 나약한 인간으로 마주하면 그동안 그렇게 커보이던 고민들도 사실은 부질없는 집착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등산으로 감정이 변화되는 8명의 여성들을 통해 등산에 대한 진정한 의미와 인생의 정답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극적 반전은 없지만 내내 잔잔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슬슬 날씨도 풀리고 꽃도 만발하는데, 아이들과 함께 초심자 코스로 등산이라도 다녀와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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