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등산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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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등산일기 (2019년 초판)

저자 - 미나토 가나에

역자 - 심정명

출판사 - 비채

정가 - 13800원

페이지 - 374p



가자! 산으로~



충격적 장편 데뷔작 [고백]을 통해 미스터리작가로만 알고 있던 '미나토 가나에'의 살인없는 힐링 작품이 출간되었다. 타고난 이야기꾼은 장르를 가지리 않는 다는건 알고 있지만 그동안의 작품 스타일과는 상당히 상반된 작품이기에 내심 우려와 걱정이 앞섰는데, 역시 그런 걱정은 부질없는 기우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일본에서 불고 있는 등산열풍 특히 마운틴 걸이라 불리는 젊은 여성들의 등산열풍에 각자의 사연을 안고 산행길에 오르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산에 오르지 않고도 푸르른 녹음과 신선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신듯 마음의 정화와 치유를 안기는 건강한 힐링 작품집이었다. 



결혼을 앞둔 리쓰코는 같은 직장인 동료 유미와 함께 묘코산에 오른다. 원래는 백화점 2층에 근무하는 마이코, 유미와 함께 셋이서 등산하기로 했지만 몸이 안좋은 마이코가 불참하여 어쩔 수 없이 2인조로 등반하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전 주말 러브호텔에서 유미가 직장 유부남과 함께 나오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뒤로 유미에 대한 않좋은 감정밖에 없는 리쓰코는 유미와의 등반이 불편하기만 하고, 더불어 결혼전 시댁식구들과의 첫식사자리에서 예비남편 겐타로의 할머님이 치매에 걸렸고, 결혼 후에는 직장을 그만두고 할머님의 간병을 맡아야 한다는 말을 처음듣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심정에 휩싸인다. 결혼식 날짜가 잡히도록 아무말도 안해준 겐타로에게 내심 실망감이 들면서 사기결혼까지 생각한 리쓰코는 이번 묘코산을 등산 하면서 결혼/파혼에 대해 결정하려던 것이다. 등산 초반부터 심란한 리쓰코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가벼운 운동복에 런닝화를 신고 온통 불평을 늘어놓는 유미 때문에 신경은 곤두서는 리쓰코....과연 리쓰코와 유미의 첫 산행을 무사히 치를 수 있을까?.....-_-;;;



본인도 초딩때까지만 해도 물찬제비처럼 거침없이 산을 타던 시절이 있었다. 함께 산행하던 어른들도 어린게 참 산 잘탄다고 칭찬했었는데...ㅎㅎㅎ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고, 복부에 알콜이 출렁출렁 차오르면서부터 몸은 한없이 무거워지고 본인의 무거운 몸뚱아리를 지탱시키던 무릎이 비명을 질러대고부터는 등산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 기피하게 되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진행하는 강제 산행은 피할 수가 없으니...울며겨자먹기로 몸안에 육수를 뿜어대며 등산할때는 죽을만큼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억지로 오른 강제산행임에도 정상에 올랐을때의 성취감과 상쾌함은 단순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감정이었다. 그럼에도 등산은 싫어하지만서도....



그런의미에서 이 작품은 등산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산이 어서오라 손짓하는 더 없이 등산 의지를 활활 태우는 작품이고, 반대로 등산을 기피하는 사람에게도 가만히 앉아서 정상에 오른듯한 청량하고 상쾌한 기분이 들게하는 등산의, 등산에 의한, 등산을 위한 작품이다. 그저 산이 좋아서 산행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리쓰코 처럼 복잡한 마음을 대자연의 경관을 바라보며 정리하기 위해 오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고독하게 홀로 등반하며 생각을 정리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왁자지껄하게 지인들과 마음을 나누며 협동하며 하나된 마음을 느끼기 위해 산에 오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듯 그들의 산행엔 각자 나름의 목적이 있을거란 말이다. 하지만 목적이야 어떻든 10시간 이상을 등반해야 하는 고된 여정이던, 반나절이면 오르는 야트막한 산이던 관계없이 자신의 힘으로 산을 정복하고 제일 꼭대기에 발을 디딜때의 그 벅찬 감정은 모두가 같지 않을까...작품속 8개의 산을 오르는 여성들이 간직하고 있는 고민과 걱정들은 결국 등산이란 인내와 노력의 행위를 통해 고난을 극복하고, 성숙해지는 성장의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주어 등산이 주는 궁극의 효과를 간접적으로 체험시켜 준다. 



등산을 중심으로 8가지 명산의 아름다운 풍광과 색깔을 가진 옴니버스 단편집으로 각 단편은 다른 단편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는 설정이라 재미를 더한다. 네 번째 단편 [리시리 산]에서 작가 지망생인 백수 동생이 의사 남편을 만나 성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언니와 함께 하는 열등감 가득한 산행이 그려진다면, 바로 다음 다섯 번째 단편 [시로우마다케 산]에서는 백수 작가의 언니의 시선으로 산행이 그려지는 것이다. 등산을 매개로한 작은 '미나토'월드가 구축되니 다음 단편엔 누구의 이야기가 그려질지 예측하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더라. 



시기와 질투, 격차와 열등감, 이혼과 이별...인간사 가득한 고민거리들이 산을 오르면서 눈녹듯 사라져 버린다. 위대한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고 나약한 인간으로 마주하면 그동안 그렇게 커보이던 고민들도 사실은 부질없는 집착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등산으로 감정이 변화되는 8명의 여성들을 통해 등산에 대한 진정한 의미와 인생의 정답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극적 반전은 없지만 내내 잔잔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슬슬 날씨도 풀리고 꽃도 만발하는데, 아이들과 함께 초심자 코스로 등산이라도 다녀와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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