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나 쇼팽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3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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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쇼팽 (2020년 초판)_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3

저자 - 나카야마 시치리

역자 - 이연승

출판사 - 블루홀6

정가 - 16000원

페이지 - 408p



손 끝에 실린 감정의 선율이 폭발하다



제 2의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부르기에 전혀 손색 없는 일본 최고의 미스터리 공장장 '나카야마 시치리'의 신작이 '또' 나왔다. [표정 없는 검사]를 읽은지 보름 남짓 지났는데 벌써 신작이라니....독자가 읽는 속도를 능가하는 집필 속도를 자랑하는 작가의 이번 신작은 '나카야마 시치리'가 선보이고 있는 여러 미스터리 월드중 가장 독보적이고 개성적인 시리즈. 클래식 탐정 미사키 요스케 세번째 이야기이다. 



눈으로 읽는 클래식이라는 다소 생소한 영역에도 불구하고 그가 던지는 글자 하나 하나는 마치 악보의 음표와 마찬가지로 음률이 그려지고 마음속에서 단어와 문장의 음악이 흐르게 되는 마법 같은 작품이다. 더군다나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미스터리와 클래식이란 이질적인 장르가 불협화음을 내기 보다는 천상의 선율을 선사하니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것 또한 그 때문이리라. 



이번 작품 [언제까지나 쇼팽]은 그동안 출간되었던 [안녕, 드뷔시]와 [잘자요, 라흐마니노프]와는 또다른 새로운 지평을 보여준다. 앞선 작품들이 일본 내에서 클래식과 관련된 소소한 에피소드를 보여줬다면 이번 작품은 무려 쇼팽의 나라 폴란드. 게다가 5년에 한번, 전세계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의 관심이 모이는 쇼팽 콩쿠르라는 거대한 이벤트를 중심 스토리로 잡는다. 국가를 대표하는 클래식 천재들의 총성 없는 전쟁. 화려한 기교와 끈질긴 열정이 가슴에 불을 지피는 성대하고 화려한 결전이 펼쳐지는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클래식의 꽃은 콩쿠르 아니겠는가. ㅎㅎㅎ 일본을 대표하는 27세 최고령 참가자 미사키 요스케와 음악의 신이 선택한 천재 맹인 피아니스트 사카키바 류헤이, 그리고 4대째 이어내려오는 실질적 쇼팽의 후예 폴란드 클래식의 자부심 얀까지....이 3명이 펼치는 열정적인 연주에 심장이 미친 듯 고동친다. 



폴란드의 대통령이 탄 비행기 내부에 설치된 폭탄이 폭발하면서 비행기에 탔던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폴란드 내부는 갑작스러운 사고의 충격과 애도에 빠지고 그런 불안감을 쇼팽 콩쿠르로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폴란드에서 주목받는 피아니스트 얀은 강압적인 아버지와 폴란드 시민들의 성원을 등에 업고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한다. 그러나 예선이 끝나고 결선이 치뤄지면서 위기가 찾아온다. 호텔과 연주장 등등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연이어 발생한 것. 이 테러로 콩쿠르에 참가했던 연주자가 사망하면서 콩쿠르 대회 자체의 강행여부가 여론의 도마위에 오른다. 그러나 집행부는 대회의 강행을 발표하고, '피아니스트'라 불리는 폭탄 테러범을 잡기 위해 클래식 탐정 미사키 요스케가 나서는데......



무대가 폴란드인 만큼 배경도 글로벌라이제이션 하다. 911테러 발생 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탈레반과 격돌을 벌이던 실제 세계정세를 작품에 녹여낸 것이다. 당시 아랍 극단주의자들의 무차별 자살폭탄 테러가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는데, 폴란드 역시 그런 종교, 이념 전쟁의 한가운데 놓여진 것. 나라의 대표로 피아노 건반을 때리는 클래식 전사들과 종교적 사명을 띄고 목숨을 버리는 전사들의 비극. 같은 사명감이지만 한쪽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생명을 살리고 다른 한쪽은 사람의 목숨을 하나라도 더 빼앗아가는 비슷한 듯 다른 모습을 보면서 묵직한 메시지를 받게 된다. 소설가의 사명은 책을 통해서 늘 그 순간 그 순간 꼭 해야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 말하는 작가의 사명에 가장 걸맞는 이야기가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처음으로 접한 클래식 소설 '온다 리쿠'의 [꿀벌과 천둥]이 많이 떠올랐다. [꿀벌과 천둥]역시 콩쿠르에서 격돌하는 천재들의 치열한 피아노 연주 배틀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음악의 신이 선택한 천재의 숙명. 그리고 천재의 재능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범인들의 고뇌. 이제는 공식처럼 떠오르게 되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아마데우스] 처럼. 노력으로 따라잡을 수 없기에 더욱 멀게 느껴지는 클래식 음악의 세계를 이렇게 텍스트로 만나는 건 굉장히 이색적인 경험이고 그것만으로도 작품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웅장한 쇼팽의 음악에 심취한 와중에 비정한 테러범 '피아니스트'를 맞추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으니 여러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중 과연 범인은 누구일지.....결말의 반전에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을지는 미스터리를 사랑하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는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시리즈중 가장 애정하는 시리즈이자 이번 [언제까지나 쇼팽]을 클래식 소설이 줄 수 있는 가장 진한 재미를 주는 작품으로 손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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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일기 - 윤자영 장편소설
윤자영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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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일기 (2020년 초판)

저자 - 윤자영

출판사 - 몽실북스

정가 - 14000원

페이지 - 334p



소년에게 있어 남아 있는 선택은 오직 파멸 뿐



번뜩이는 트릭으로 남다른 본격 추리의 묘미를 선사하며 한국형 밀실추리 '관'시리즈라 불리는 [교동회관 밀실 살인사건]과 [나당탐정사무소 사건일지] 등을 히트시킨 '윤자영'작가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사실 '윤자영'작가의 본업은 따로 있다. 바로 현직 고등학교 과학 교사인데 그런 연유로 이번 작품은 굉장히 의미있고 눈여겨 볼만 하다고 생각된다. 이번 작품의 스토리가 학교폭력을 중요 소재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현직 교사의 눈으로 바라본 학교폭력의 실상. 그리고 주기적인 폭력이 낳은 폭력의 연쇄작용과 파멸에 이르는 아이들. 더불어 어른들의 비뚤어진 욕망과 그릇된 부조리가 맞물려 연쇄적 파국을 맞아가는 현실적인 사회파 추리였다. 



[이승민]

마포대교 난간에 올라 선 이승민은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심호흡을 한다. 

훌쩍 몸을 날린 소년. 

풍덩.

중력은 소년의 몸뚱아리를 차디찬 강물 속으로 순식간에 집어 삼켰다. 


때마침 지나던 유람선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소년은 최소한의 처치를 받은 뒤 다시 학교에 등교한다. 소년의 친구들이나 선생님 누구도 소년의 자살시도를 모른다. 아니, 평소 존재자체도 모를 정도로 공기 같던 소년의 자살시도 따위는 애초에 관심조차 없었다. 하지만 소년의 자살시도를 기점으로 소년의 인생은 중대한 변화가 생기는데....


[공승민]

중학교 시절부터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이승민은 눈엣가시였다. 저렇게 음침한 놈과 이름이 같다니,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화가 났다. 그래서 괴롭혔다. 집요하고 악질적으로. 절대로 이승민의 학대에 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았고 아무도 모르게 용의주도하게 괴롭혀왔다. 하루에 한번, 시원하게 이승민의 싸대기를 날리는게 일과가 돼버렸다.

여느날과 다를 바 없는 저녁.

야자를 마치고 공원에 모인 친구들과 술한잔을 하고 적당히 오른 취기에 홀로 귀가길에 올랐다. 으슥한 공원길에는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걷고 있는데 어느샌가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인기척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퍽! 

뒷통수를 강타한 강렬한 충격이 전신으로 퍼져갔다...



공승민과 이승민. 이름은 같지만 둘이 걸어온 인생과 앞으로 펼쳐질 인생은 전혀 달랐다. 이름이 같다는 접점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교차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둘의 관계. 절대적 강자 공승민과 절대적 약자 이승민. 그런 둘의 관계가 반전될 단 한번의 기회가 이승민에게 찾아온다. 


지긋지긋한 학대의 고리를 끊어버릴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가 당신에게 찾아온다면?


비록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만드는 위험천만한 일일지라도 그게 당신에게 있어 남아 있는 유일한 선택지라면 당신은 그 파멸의 동아줄을 잡을 것인가? 작품을 읽으며 이승민이 겪었을 심리적 압박과 고통에 공감했고 그런 소년의 선택에 깊이 탄식했다. 학교와 가족 모두에게서 버림 받은 소년은 어쩔 수 없이 악마에게 손을 내밀 었던 것이 아닐까? 일산대교에 서서 몸을 날리는 이승민의 절망이 너무나 무겁게 다가왔다.      



학대와 가학에 찌든 학생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껏 알지 못했던 교사들의 이야기는 [파멸일기]를 즐기는 또다른 재미요소로 작용한다. 물론 재미를 위한 MSG가 가미되었겠지만 체벌금지 정책이 시행된 후 교사가 겪고 있는 땅에 떨어진 교권의 현주소나 선생님들 간의 위계질서, 학교 밖에서의 이야기들 그리고 항상 무섭게만 보였던 선생님의 지극히 인간적인 벌거벗은 면모 등등... 그동안 자세히 몰랐던 세계이거니와 현직 교사인 작가이기에 써낼 수 있는 생생한 이야기라고 생각됐다. 



학교와 학생, 폭력과 학대, 변태적 욕망과 애증, 그리고 반전. 축소된 사회라는 학교에서 들끓는 다양한 감정의 폭풍이 오로지 파멸을 향해 치달아 간다. 궁지에 몰린 인간이 변모해가는 심리 묘사가 탁월하여 막힘없이 읽히는 가독성 좋은 작품이었다. 실제로 읽다가 정신차려 보면 분량이 휙휙 넘어가있더라는...ㅎㅎ 사실 결말의 반전을 지난 천호 교보문고에서 열렸던 추리작법강의 자리에서 들어버려 반전의 묘미를 온전히 느끼지 못한게 아쉬울 따름이다. ㅠ_ㅠ  



마지막으로 충분히 이야미스로 끝낼 수 있음에도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손을 내미는 것을 보면서 잔혹한 이야기임에도 학생을 생각하는 선생님의 진한 애정을 듬뿍 느낄 수 있던 따뜻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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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괜찮아 - 엄마를 잃고서야 진짜 엄마가 보였다
김도윤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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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괜찮아 : 엄마를 잃고서야 진짜 엄마가 보였다 (2020년 초판)

저자 - 김도윤

출판사 - 아르테(arte)

정가 - 15000원

페이지 - 229p



목 놓아 불러도 그리운 그이름



계실때 잘하라. 떠난뒤엔 후회해도 소용없으니. 부모님을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그 말. 이제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말의 무게를 체감해 가는 요즘이다. 언제까지고 곁에서 나를 지켜줄 것 같았던 부모님의 어깨가 조금씩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고 팽팽하던 얼굴에 주름이 늘어가면서 부모님도 이제 호호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버리셨다는걸.... 이제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먹먹한 슬픔과 두려움이 밀려든다. 



엄마를 잃고서야 진짜 엄마가 보였다



이 책은 엄마를 떠나 보내고나서야 엄마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작가 '김도윤'이 어머니를 그리며 써내려간 수기다. 

우울증을 앓던 형, 그리고 자식의 우울증을 보며 가슴을 태우던 엄마. 결국 마음의 병은 육체를 병들게 했고, 엄마는 병원에서 퇴원한 뒤 살고 있던 집 베란다에서 몸을 던지셨다. 죽음을 향해 떨어지는 순간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머니를 떠나 보내고 막내 아들인 작가 역시 형과 엄마를 괴롭히던 우울증이 찾아온다. 가족 모두를 파멸에 이르게 만든 우울증이란 덫. 작가는 마음의 병을 얻고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동안 그동안 몰랐던, 아니 알았지만 모른척 했던 엄마의 진짜 얼굴을 이해하게 된다.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엄만 괜찮아'라는 말의 속뜻을. 당신의 썩어가는 가슴을 움켜쥐고 힘겹게 주문을 걸 듯 되뇌이는 말이었음을.



나 자신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드러내야 하는 나아가 불운한 가족의 역사를 낯낯이 고백하는 에세이라는 장르는 참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런 솔직함에서 묻어나는 진심이 독자들과 함께 공명하여 공감의 감정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강한 영향력을 지닌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에피소드 하나 하나가 내 경우인양 빠져들어 읽었다. 부모님 앞에서 자식은 언제나 죄인 아닌가. 다만 다행인건 난 아직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음에 감사한다. 



아무리 깊은 상처라도 언젠간 아물게 마련이다. 죽음 같았던 우울증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작가의 변화의 과정이 책을 읽는 내게도 파도처럼 밀려온다. 작가의 인생을 거울삼아 나의 인생을 되돌아 보게 한다. 효도해라! 지금 당장 부모님께 전화를 걸게 만드는 마법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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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rt & Classic 시리즈
루이스 캐럴 지음, 퍼엉 그림, 박혜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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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2020년 초판)

저자 - 루이스 캐럴

그림 - 퍼엉

역자 - 박혜원

출판사 - RHK

정가 - 14000원

페이지 - 253p



떠나자 원더랜드로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환상의 세계로 초대하는 남녀노소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판타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일러스트레이터 '퍼엉'의 재해석으로 독특한 일러스트레이트로 새롭게 태어났다. 어릴적 흰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빠져들어가는 앨리스의 모험을 읽어보지 않은이 없을 것이거니와 어린 나이에 이 동화를 온전히 이해한 이가 그다지 많지 않으리라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진실이리라. 울 딸래미도 유독 예쁜 삽화가 함께 한 이 동화를 좋아라 하지만 정작 아이를 위해 축약한 동화를 읽었음에도 무슨 이야기인지 물어보면 다소 버벅이더라.



본인도 어릴적 만화는 봤었지만 스토리는 이해하지 못한채로 성인이 되어 주석달린 완역본을 읽었으나 이건 뭐, 내용 한줄에 주석이 한 페이지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트리비아 식의 책이었던지라 넘겨버렸던 아픈 기억이 있는 작품이다. ㅠ_ㅠ 좌우간, 이번에 인싸 일러스트레이터 퍼엉의 독특한 해석의 그림과 함께 새로이 작품이 출간되어 13년만에 또 읽어봤더랬다. 



스토리야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테니 스킵하고.



이 동화를 어렵게 많드는건 작가 '루이스 캐럴'의 위트있는 말장난인데, 이게 영어의 동음이의어를 표방한 말장난이다 보니 국문으로 옮길때 그 묘미를 100% 살리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고 난해하게 만드는 점인 것 같다. 메인 스토리야 얼마나 판타지 스러우랴. 아리따운 소녀가 흰토끼를 따라 들어간 신비로운 세계에서 만나는 다양한 말하는 동물들과 미친 모자장수와 여왕. 그리고 미친 게임들.....-_-;;; 흠..전체적으로 크레이지 인가....



좌우간, 그동안 만화와 애니, 게임과 소설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 동화의 파생상품이 수없이 이루어진 만큼 이제 동화를 읽지 않아도 '앨리스'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정도이니 작품이 쓰여진 당시의 시대상에서 얼마나 쇼킹하고 새로운 세계관인지 알 수 있으리라. 작품이 쓰인 배경을 파고들자면 다크하니 그건 차치하고 오랜만에 읽은 RHK판 '앨리스'는 주석도 심플, 스토리도 심플하여 동화처럼 넘기며 읽을 수 있는 가독성을 보여주는 판본이었다. 더불어 저작권 시효가 종료된 작품인만큼 새로운 '앨리스'를 선보이기 위해선 독특한 삽화가 한몫을 차지하리라 생각하는데, 일러스트레이터 '퍼엉'의 귀엽고 개성있는 삽화는 동화를 한층 돋보이고 유니크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깊이 파고 들면 어렵지만, 또 단순히 이야기만 보자면 이만큼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도 없다고 생각한다. 바쁜 일상속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에서 어느날 문득 내 앞에 나타난 흰토끼를 따라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져 든다면....


과연 그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세계는 무엇일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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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쌍곡선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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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쌍곡선 (2020년 초판)

저자 - 니시무라 교타로

역자 - 이연승

출판사 - 한스미디어

정가 - 15000원

페이지 - 374p



고전이라 절대 얕보지 마라!



1963년 데뷔 이후 2019년 6월 까지 무려 622편의 작품을 집필한 일본 미스터리계의 국민작가가 있다고 한다. 이제껏 미스터리계의 공장장이라 불리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전무후무 한줄 알고 있었는데, 622편이라니...ㄷㄷㄷ 진정한 고수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바꿔말해 일본 미스터리계의 원로이자 살아있는 전설이라 해도 무방할 듯 한데, 그런 전설이자 레전드 작가의 대표작이 국내 초역됐다. 1971년작 [살인의 쌍곡선]이다. 관시리즈로 신본격의 기수라 불리는 '아야츠지 유키토'가 자신의 베스트 5에 꼽는 작품이라는 이 작품은 사방이 고립된 산장에서 펼쳐지는 살인 릴레이. 이른바 클로즈드 서클 장르이다. 더불어 본격에서는 금기시 한다는 쌍둥이 트릭과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오마쥬 등등 흥미로운 요소들이 총망라되어 진정한 지적 스릴을 선사한다. 



[1]

도쿄 한복판. 권총을 든 강도가 상점에 출몰한다. 반코트에 흰장갑, 그리고 얼굴을 그대로 드러낸 남자는 상점들의 현금을 털고 도주한다. 연이은 범죄에 경찰이 수사에 나서고 드디어 목격자들의 몽타주를 토대로 거리를 걷던 범인을 체포한다. 수사관은 목격자를 경찰서로 불러들여 범죄자를 확인하고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 되는듯 보였다. 

그런데, 경찰서로 걸려온 전화 한통. 내용인즉슨 자신의 가게에 쳐들어온 연쇄권총강도사건의 용의자를 잡아뒀다는 것.

경찰은 반신반의 하며 상점으로 달려가는데.....


[2]

12월 30일. 이십대 초반 교코는 남자친구와 함께 K시의 관설장으로 향한다. 며칠전 관설장으로부터 새해맞이 초대이벤트에 당첨됐다는 편지를 받은 것. 커플은 고민없이 설경이 아름답고 스키를 탈 수 있는 관설장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관설장의 주인 하야카와를 만나고 초대를 받은 다른 4명과 인사를 나눈다. 


*관설장

하야카와 - 주인(남)

교코 - 여친(여)

모리구치 - 남친(남)

아야코 - 마사지사(여)

이가라시 - 프로파일러 학과 대학생(남)

아베 - 회사원(남)

다지마 - 택시기사(남)


교코는 모리구치와 지하 볼링장에서 볼링을 치려고 하다 볼링핀 10개중 1개가 모자라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다음날. 스키를 타던 교코와 모리구치는 2층 창문으로 아베가 자신의 방에서 목을 메달아 죽은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문이 잠겨있던 아베의 방 벽에 쪽지 하나가 붙어있다.

'이렇게 첫 번째 복수가 이뤄졌다'

이후 충격에 휩싸인 교코는 우연히 볼링장의 핀이 9개에서 8개로 1개가 줄어있는 것을 발견하는데.....



자. 작품은 아주 친절하게도 맨 첫페이지에 작가 자신이 쌍둥이 트릭을 사용했다고 밝혀둔다. 바로 독자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여 자신의 트릭을 풀어보라는 도전장이자 페어 게임을 위한 사전 포석인 것. 그렇게 사전 고지를 해서일까. 기발한 쌍둥이 트릭을 작품 내내 끈덕지게 써먹는다. ㅎㅎㅎ 사실 지금이라면 절대 사용할 수 없는 트릭이지만, 작품이 쓰여진 70년대를 감안한다면 거의 무적의 트릭이랄까...-_-;;; 



작품은 쌍둥이 강도단이 바보 경찰을 엿먹이는 이야기와 폭설 때문에 고립된 산장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을 다루는 이야기가 서로 엇갈리며 전개되는 구성이다. 사실 이 두 이야기를 보면서 거리도 멀고 연관이 없어 보일 것같은 이야기를 묶으려면 시간차 트릭을 두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엥? 두 사건이 동시간대의 이야기더라. -_- 머...사전고지까지 한 마당에 앞의 쌍둥이 강도단의 이야기가 충분히 복선이라는걸 알면서도 결말의 반전을 보고 또 놀라는 본인을 보면서 그냥 멍충이 같다고 느꼈다. 사실 범인을 맞추는 것도 잊을 정도로 이야기 자체에 몰입해서 그냥 정신 빼놓고 읽은 것 같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변주하는데, 인디언 인형대신 볼링핀을 사용하고, 살해현장에 발견되는 쪽지의 그림을 단서로 퍼즐적 요소도 제시한다.(근데 일본에 살지 않는 이상 맞출 가능성은 제로) 다만 작품 안에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트릭을 스포일러 한다. 본인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안봤는데....어차피 안 볼 예정이니 상관 없지만서도 두 작품을 비교하면서 보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앞서 언급했지만 무려 50년전 작품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데뷔한 85년보다도 14년이나 이르다. 휴대폰도 없고 컬러 TV도 출시된지 얼마 안됐는지 유독 '컬러'TV를 강조할 정도다. 그렇게 오래된 작품인데도 읽으면서 전혀 위화감이 안든다는게 놀라웠고, 정말 흔하다면 흔한 설정인데도 뻔하지 않았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비약적인 부분도 더러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의 복잡 다단한 설정의 클로즈드 서클보다 단순하면서도 명징한 구성은 오히려 매력적으로 보인다. 이런게 바로 클래식의 매력이란 건가. 622편이나 쓴 작가인데 국내에 그의 작품이 처음 출간되는게 이상할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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