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외 서커스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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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외 서커스 (2020년 초판)

저자 - 고바야시 야스미

역자 - 민경욱

출판사 - 하빌리스

정가 - 14500원

페이지 - 335p



유혈낭자 대난투 살육극!




[앨리스 죽이기] 시리즈, [기억 파단자][분리된 기억의 세계]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기발한 소재와 상상 그리고 뛰어난 재미로 많은 팬을 거느린 '고바야시 야스미'의 기막힌 뱀파이어 액션 활극이 출간됐다. 뱀파이어와 서커스? 얼핏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두가지 소재를 어떻게 버무려 놓았을지 궁금했는데, 때놓고 보면 새로울 것 없는 이 익숙한 소재들을 이렇게 기똥차게 합쳐놓은건 역시 작가의 경계없는 상상력과 어마무시한 필력이 아닌가 싶다.



서커스 단원 VS 괴력의 뱀파이어 군단



란도는 경영난에 허덕이는 서커스단에서 탈출 마술을 하는 마술사이다. 나이든 삐에로 광대 대장과 마술조수 아야미와 더불어 열 명 남짓의 열악한 서커스 단은 마을의 숲속 한가운데 천막을 치고 서커스 공연 준비를 시작한다. 대장과 란도는 높은 나무들이 심어진 숲에서 서커스 천막으로 가던중 나무 꼭대기에 서있는 소녀를 발견하고 놀란다. 정체불명의 소녀는 나무 꼭대기에서 그대로 점프하여 대장과 란도가 있는 바로 앞 공중에 떠서 자신이 뱀파이어 키리피시라고 설명한다. 난데없이 나타나 자신을 뱀파이어라 소개하는 소녀를 보며 대장과 란도는 좀처럼 믿지 못하지만 한순간 예쁘장한 소녀에서 추악한 괴물의 모습으로 변한 소녀를 보고 소녀의 말이 진실임을 깨닫는다. 혼비백산한 대장과 란도는 가까스로 소녀에게서 도망치고, 대장과 란도는 서커스 단원들에게 당장 도망치자고 설득하지만 단원들은 좀처럼 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이윽고 시간은 흘러 밤이되었고, 단원들 앞에 낯선 이들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뱀파이어는 불로불사이다. 그들을 죽이기 위한 방법은 십자가와 심장을 관통하는 말뚝이지만, 열혈 사투라는 극의 박진감을 위해 아마도 십자가는 배재한듯 하다. 결국 그들을 죽이기 위해서는 심장에 뭘 꽂던가. 뇌를 부숴버리던가, 모가지를 뎅겅 잘라버리던가...-_-;;;; 근데, 이 뱀파이어들 역시 기존 흡혈귀들을 생각하면 큰코다친다.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아다니고 한 손으로도 몇 톤은 될정도의 파괴력을 자랑하며 배가 찢어져 내장이 주렁주렁 나와도 단 몇 초만에 회복해버리는 생체병기이니 말이다. 뭐 거의 영화 [블레이드]의 뱀파이어 왕 정도의 공격력을 자랑한달까. 



그에 대적하는 서커스 단 사람들은 궁색하기 그지 없다. 물론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평범한 인간보다는 민첩성이나 근육량은 높다지만, 뱀파이어에 비한다면 바퀴벌레 수준....ㅠ_ㅠ 하지만 그런 계란에 바위치기 같은 극명한 수준의 전투이기에 더욱 감정이입이 되고, 벌레 같은 인간이 기지로 뱀파이어들을 무찌르는 모습을 보면서 일종의 희열을 느끼게 만든다. 더불어 이 작품의 또 하나의 매력은 고어적 잔인함이다. 아무리 찌르고 잘라도 금세 회복하니....-_-;;; 결국 싸움을 끝내려면 가루가 돼도록 썰어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ㅎㅎㅎ 피와 살점이 난무하고 뼈부러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극강의 액션 활극이 아~주 시원하게 펼쳐지면서 잔혹한 폭력의 카타르시스를 마구마구 자극한다.  



단순히 반복되는 액션만 있었다면 이렇게 재미있진 않았으리라. 역시 예상을 깨는 작가답게 이 액션 대난투극에 복선과 반전의 요소를 집어넣어 결말의 재미를 한층 보강하고 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영화 [블레이드]를 보는 것 같은 시원함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아무 생각없이 즐기고 싶다면 이만한 작품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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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가 세계를 읽는 방법 - 김창규×박상준의 손바닥 SF와 교양
김창규.박상준 지음 / 에디토리얼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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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가 세계를 읽는 방법 : 김창규 X 박상준의 손바닥 SF와 교양 (2020년 초판)

저자 - 김창규, 박상준

출판사 - 에디토리얼

정가 - 14000원

페이지 - 226p



앞으로 다가올 실현 가능한 세계로의 초대



우리가 SF를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막연한 미래세계에 대한 호기심? 아니면 무수한 갈래의 미래중 가장 안전하고 안정적인 미래를 위한 현재의 준비를 위해? 뭐가 됐던 지금도 시간을 흘러가고 있고 우리가 상상했던 미래의 이미지들은 하나, 둘씩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SF전문출판사 에디토리얼에서 앞으로 다가올 실현 가능한 세계를 미리 가정하고 그에 대한 사고실험과 사유를 풍부하게 전하는 흥미로운 SF칼럼이 출간되었다. 한국SF의 대표작가 '김창규'와 SF아카이브 대표를 역임중인 '박상준'님이 함께 한 이 작품은 2017년 6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경향신문에 격주로 실린 칼럼으로 '비교적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독자가 현실과 앞날을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할 기회를 제공 할 것.'이란 주제로 쓰인 마흔 편의 칼럼이 실려있다.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느끼겠지만 우리가 SF라고 하면 떠올리는 우주전쟁, 외계인, 디스토피아 등등의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다음 세대 혹은 지금 당장 진행되고 있는 예민하고 첨예한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 자율주행이 완벽히 자리를 잡은 시대에서는 사람의 직접 운전이 오히려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에 더 많은 보혐료를 낼 수 도 있다?


2. 현재의 아내에 권태를 느낀 남편이 연애 초기의 아내의 데이터를 인공지능에 이식하여 인공지능 아내와 사랑에 빠지는 아니러니한 사건.


3.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맞춤 아기들이 만연한 시대에서 부모의 소신으로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기가 차별 당하는 사회.


4. 모든 네트워크가 국가에 의해 은밀하게 감시 당하는 빅브라더와 같은 사회.



등등등등...... 언젠가 한번쯤 SF소설에서 봤을법한 설정(인공지능 등), 또는 지금 이순간에도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는(도청, 감청 등), 또는 이제 막 초기 기술이 개발되어 진입하려는 단계(유전자 조작 등) 등 이 책에서 다뤄지는 40가지 세계들을 보고, 말미에 '김창규' 작가와 '박장준' 대표님의 날카로운 현실적 상황과 비전을 보고 있자니 더이상 SF로 치부하기에는 시대가 너무나 촉박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 다시금 두 분의 안목과 세계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에 놀라게 됐다.



말그대로 세상은 시시각각 격변하고 있다. 역병의 창궐로 바이러스 아포칼립스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지금도 이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여 바이오 산업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는 속도에 비해 사회와 정치, 경제가 대응하는 속도는 과연 알맞은 보폭으로 따라가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이같은 속도를 우려하는 사례도 책에 여려건 소개되고 있는데, 몇몇 악한 인간들이 이 간극, 헛점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기에 우려되는 부분도 있었다. 



"시대가 변해가는 도중이라 그런 거야. 지금 당장은 법으로 타고난 능력을 향상시키는 시술은 못하게 돼 있지. 그런데 어기면 어떻게 될까. 원상 복구시킬수는 없어. 사람 능력을 저하시키는 시술도 불법이거든. 남는 건 적지 않은 벌금인데, 얼마가 됐든 내고 전과가 남아도 상관 없고 언론에 나가도 상관없다잖아. 비용까지 생가갛면 이토록 뻔뻔하게 시술을 받을 수 있는 건 저런 자들밖에 없겠지. 지금은 그래."

_106p



각 챕터 말미에 칼럼과 대응되는 SF소설을 추천하기도 한데, 실제로 읽으면서 수십편의 SF소설들과 영화들이 떠오르는 즐거운 칼럼이다. 한, 두 페이지 분량의 엽편SF를 보는 기분이랄까. 딱딱한 칼럼을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내겐 무려 마흔 가지의 흥미로운 SF단편이 실린 최고의 SF 단편집이었다.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언젠가는 다가올 세계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길잡이이자 교양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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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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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2020년 개정판 2쇄)_가가형사 시리즈 3

저자 - 히가시노 게이고

역자 - 양유옥

출판사 - 현대문학

정가 - 14000원

페이지 - 414p



겹겹이 쌓아놓은 반전의 묘미



'게이고'작가의 대표 장수 캐릭터 가가형사 시리즈 세번째 작품이다. 집필 시기는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가 빠르지만 발표는 [악의]가 먼저라나 뭐라나...어쨌던 현대문학에서는 이 [악의]를 시리즈 no.3으로 출간했으니 순서대로 읽는다. 사실 두번째 작품 [잠자는 숲]이 개인적으론 너무 별로였던지라 내심 기대반, 우려반 이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악의]야 말로 진정한 '게이고'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는 것. 이중 삼중 반전과 더불어 인간의 심연을 날카롭게 통찰하는 깊이 있는 안목까지...ㄷㄷㄷ 어설픈 러브라인을 빼버리니 이토록 심플하고 간결한 작품이 탄생하지 않는가. ㅎㅎㅎ 가가는 그냥 평생 혼자 사는걸로...



교사였던 노노구치는 어릴적 친구이자 인기 작가인 히다카와 친분을 유지하면서 교사를 그만두고 동화작가로 전업한다. 그날도 자주 찾던 히다카의 집을 찾은 노노구치는 이제 얼마뒤 해외로 이주하는 히다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집을 나서며 가져간 샴페인을 히다카의 아내 리에에게 건낸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노노구치에게 히다카가 잠시 만나자는 전화를 건다. 노노구치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뒤 히다카의 집을 찾지만 집안의 불은 전부 꺼져있는 상태. 이상함을 느낀 노노구치는 외출한 리에에게 전화를 걸고 돌아온 리에와 함께 히다카가 그의 서재에서 싸늘하게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머리에 가해진 충격 그리고 전화선으로 목이 졸려 죽은 히다카. 가가 형사는 살인사건에 투입되고, 한때 교사였던 가가 앞에 선배 교사였던 노노구치와 재회하는데......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데 이유가 필요할까?

그렇다면 사람이 사람 싫어하는데 굳이 이유를 가져다 붙일 필요도 없으리라.



그 타인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쌓이고 쌓이면 살인까지 불러오는 악의가 될 수 있을까? 때로는 미치도록 미운 마음이 돌이킬 수 없는 악의로 실체화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노노구치의 고백적인 수기로 시작하는 작품은 친하게만 보였던 노노구치와 히다카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만든다. 친구를 죽여야 했던 이유. 친구를 살해해야 했던 악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의 근원을 차근차근 파헤쳐 간다. 내가 그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그 구구절절한 이유들을 보고 있자니 책을 읽는 본인까지 그 분노가 전해져 온다. '그래 잘 죽었다 이 나쁜놈아!' 인간 쓰레기들은 차라리 없어지는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들이 머리속에 자리잡고, 이제 작품은 다음 페이즈로 돌입하게 된다. ㅎㅎㅎ



일단 작품은 3개의 페이즈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페이즈는 히다카 살인사건의 트릭 찾기. 두번째 페이즈는 살인 동기 찾기. 그리고 대망의 세번째 페이즈에서 앞선 이야기를 전부 뒤집어 엎는 진실과 반전의 대환장 타임! 후던잇, 하우던잇, 와이던잇의 묘미를 모두 아우르는 미스터리의 알찬 선물세트 같은 작품인 것이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라. 내 주변의 친한 사람들을 의심하라. 어느 순간 내가 믿었던 그 사람이 비수를 내 가슴팍에 꽂을지 모른다. 사람의 마음속은 그렇게 종잡을 수 없으며 어둠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 싫어하는데 굳이 이유를 물을 필요가 있으랴. 그저 내가 타인의 미움의 표적이 되지 않고 평탄하게 살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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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 눈의 여자
박해로 지음 / 네오픽션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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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 눈의 여자 (2020년 초판)

저자 - 박해로

출판사 - 네오픽션

정가 - 13000원

페이지 - 370p



한국 무속 공포의 첨단에 선 자



바로 '박해로'의 따끈한 신작 공포가 출간됐다. [피살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 살][신을 받으라]에 이어 세 번째로 그가 보여주는 한국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무속 공포는 더욱 더 약빤 설정과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중무장 하여 다시 돌아왔다. 그동안 보여줬던 실험적인 면(의 충격적 결말의 호불호나 신을 받으라의 드라마적인 측면 등등)들을 종합하여 완성형 단계의 작품을 들고 나왔으니 이정도면 정말 한국 무속 공포 소설계에서 '박해로'가 단연 선두주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극한의 재미와 몰입감을 끌어내 주는 작품이었다. 아... 진정 '박해로'교가 있다면 교주로 모시고 싶을 정도로 어떻게 줄줄이 내는 작품마다 본인의 취향을 이리도 저격한단 말인가!!!! 올빼미 눈의 심안으로 혼탁한 이 세상을 굽어살피소서!~



9급 공무원 기성은 민원과의 격무에 시달리다 심신의 피로를 풀고자 공무원 교육을 신청하고 마침내 교육을 위해 경북 섭주 연수원을 찾는다. 그곳에서 함께 9급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났던 동기 장준오와 재회한다. 그날 저녁 기성과 준오는 함께 섭주 시내로 나와 술을 퍼마시고 2차로 간 노래방에서 기성의 필름이 끊겨버린다. 다음날 눈을 뜬 곳은 여관방. 먼저 깬 준오가 기성을 챙기고 다시 연수원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때부터 항문에서 전해오는 묵직한 통증. 평소 치질을 앓아 왔지만 기성이 여태껏 알고 있던 통증과는 다른 통증에 준오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노래방 맥주에 약을 타고 준오가 기성의 항문에 몹쓸 짓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은 점차 증폭되고, 이를 의논하기 위해 기성은 그날 노래방에서 함께 했던 노래방 도우미 주리를 찾는데.....



누구든 이 책을 읽으며 똥꼬가 간질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리라. 그것은 작가가 은연중, 아니 대놓고 주입시키는 세뇌와 다를바 없으니....치질, 항문 통증 그리고 엄청난 하혈....-_-;;;; 경고하건데, 지나친 음주는 항문 질병을 야기 할 수 있사오니 음주를 자제하시고 주변의 모든 사람을 의심(?)하시길.....똥꼬로 시작해 똥꼬로 끝나는 광란과 눈물의 똥꼬쇼! 이 똥꼬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충격과 경악에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리라.



평범했던 한 남자가 불가사의한 사건에 휘말려 들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지만 그 노력은 오히려 자신을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트려 버리니.... 누가 그랬던가. 인간사에 우연이 반복되면 그건 우연이 아닌거라고. 이리도 교묘하게 계획된 올가미이니 그 올가미 안에서 발버둥 칠수록 그물은 더욱 조여들지 않겠는가. 이렇듯 안개를 해매듯 흐릿한 사건과 단서들이 종국에 톱니바퀴처럼 촘촘하게 맞물려져있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추리 소설의 트릭이 풀리는 그런 희열을 느끼게 된다. 이야기의 흐름 자체는 그의 데뷔작 [살]과 굉장히 흡사한데 이번 작품의 결말은 전작과 달리 굉장히 대중적이고 납득될만한 영리한 결말의 방식을 취하기에 굉장히 노련해 졌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더욱이 주리와 연진 모녀가 합세하여 기성을 홀리는 그 몽환적이고 뇌쇄적인 에로틱한 분위기에 미스터리적 공포가 더해지면서 남성들의 섹슈얼 판타지를 마구마구 자극한다. 아름다운 장미에 날카로운 가시랄까... 사랑하는 여친이 있음에도 모녀의 마성의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인생이 망가져 가는 기성의 이야기는 그것만으로도 내겐 현실공포와 다름없었다. 굳이 정의하자면 에로틱 무속 미스터리 스릴러랄까. 싸구려 똥꼬쇼에서 기막힌 결말로 넘어가고 마지막 페이지 '에필로그 : 미래'에서는 누구든 전율늘 느끼게 될 것이다. 



'스티븐 킹'에게 '데리'가 있다면 '박해로'에겐 '섭주'가 있다. 그의 차기작 역시 저주받은 동네 '섭주'가 무대이길 바라면서 이번 작품으로 한국 최고의 무속 공포 대가로 자리매김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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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얼굴들
황모과 지음 / 허블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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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얼굴들 (2020년 초판)

저자 - 황모과

출판사 - 허블

정가 - 13000원

페이지 - 212p



잊혀져 가는 기억 저편 어딘가



4회차를 맞고 있는 한국과학문학상에서 중/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한 [모멘트 아케이드]가 수록된 '황모과'작가의 단편집이 출간됐다. 수상작인 [모멘트 아케이드] 뿐만 아니라 함께 실려있는 다섯 편의 단편들을 바라보면서'차가운 과학기술 속에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다'라는 설명이 머리속에 그대로 이해될 정도로 휴머니즘 가득한 SF작품들이었다. 작년부터 국내 SF계에 센세이셔널한 열풍을 불어일으키고 있는 '김초엽'작가의 소외된 소수자와의 공존을 이야기 하는 감성 가득한 SF가 이제는 하나의 시류가 되었다고 봐야 할까? [밤의 얼굴들] 역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궤를 같이하는 단편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빛속]이 SF의 세계관에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이 [밤의 얼굴들]은 현실적인 세계속에서 증강현실 혹은 VR 같은 SF적 소품들을 사용하여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는 방식을 차용한다. 각 작품들의 주제 역시 좀 더 구체적이고 분명하다. 각 단편들 모두 공교롭게도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특히 이제는 잊혀져 가는, 하지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앞으로 쭈욱 이어져 나가야 할 기억들에 관해서 말이다.



타국에서는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일본에서 오랜 생활을 했던 작가의 이력을 보면서 올바른 역사관과 비극적 과거를 사유하는 다각적 시각은 굳이 장소에 좌우되지는 않는다는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작품들이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이제껏 SF 장르를 통해 역사의 비극적 기억들을 공유하는 작품이 있었던가?..... 



책을 펴고 첫번째로 만나는 단편, [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 부터 낯선 생소함과 마주하게 된다. 일본의 야심한 밤. 연고 없는 무덤가를 파헤치는 여성.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노인. 노인은 떠올린다. 자신이 살기위해 숨이 붙어있는 조선인의 등에 날카로운 창을 찔러넣던 그때를 말이다. 관동 대지진 이후 조선인의 대학살 사건이 이 단편의 배경이라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강렬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아픈 기억을 앉고 있는 노인의 기억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이제 두 번째 단편 [당신의 기억은 유령]으로 이어진다. 치매를 극복하고자 뇌에 메모리를 늘리는 시술을 받지만 오히려 메모리 버그로 치매와 같은 증상을 앓고 있는 노인과 또다른 인격. 세 번째 단편은 좀 더 충격의 강도를 높인다. [탱크맨] 이 제목의 의미는 단편을 읽고 나서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끝없이 반복되는 하루를 사는 청년의 기억속에 간직하고 있는 숭고한 마음을 다시금 되새기게 만든다. 



네 번째 단편 [니시와세다역 B층]은 일본의 도시괴담처럼 시작되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며 다시금 도시괴담 보다 더욱 잔혹하고 끔찍한 실존했던 역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앞선 무거운 단편들과는 달리 다섯 번째 단편 [투명러너]는 조금 분위기를 가볍게 바꾼듯 하다. 일본으로 이주한 여성이 편의점 알바를 통해 만난 일본인과 어릴적 봤던 애니메이션을 이야기하며 추억을 공유하는 이야기....이 단편에 언급되는 애니들은 본인 역시 즐겨봤던 애니라서 작가가 본인과 비슷한 연배인가 생각했을 정도인데, [모레요정 바람돌이], [개구리 왕눈이]등등 그때의 감성을 느끼며 즐길 수 있었던 단편이었다. 마지막으로 [모멘트 아케이드]는 '김초엽'의 [관내분실]과 거의 흡사한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는 이야기로 동일선상에 놓여진 이야기가 아니었다 싶다.



이렇게 작품들을 읽으며 감정의 변화들을 반추하니 어찌됐던 분노와 반목의 역사 아래 이제는 사그러져간 그들의 뜻을 기리면서 이해와 공존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 동시에 상처입고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을 위한 위로와 구원의 위령제 같은 이야기였달까. 지금까지 SF에서 다뤄오던 '기억'의 의미를 완전히 뒤바꿔 놓는 작품이었던것 같다. 깊이있는 장르 문학으로선 더할나위 없이 진중하고 생각할거리를 던지는 작품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장르문학이라하면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는 문학이라 생각하는 본인에게는 조금은 건조하고 무거운 단편집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과학문학상 2회, (3회는 못봤으니 배제하고) 4회가 거의 동일선상인 감정적 작품이라 생각되는데, 5회는 과연 어떤 작품이 수상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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