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얼굴들
황모과 지음 / 허블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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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얼굴들 (2020년 초판)

저자 - 황모과

출판사 - 허블

정가 - 13000원

페이지 - 212p



잊혀져 가는 기억 저편 어딘가



4회차를 맞고 있는 한국과학문학상에서 중/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한 [모멘트 아케이드]가 수록된 '황모과'작가의 단편집이 출간됐다. 수상작인 [모멘트 아케이드] 뿐만 아니라 함께 실려있는 다섯 편의 단편들을 바라보면서'차가운 과학기술 속에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다'라는 설명이 머리속에 그대로 이해될 정도로 휴머니즘 가득한 SF작품들이었다. 작년부터 국내 SF계에 센세이셔널한 열풍을 불어일으키고 있는 '김초엽'작가의 소외된 소수자와의 공존을 이야기 하는 감성 가득한 SF가 이제는 하나의 시류가 되었다고 봐야 할까? [밤의 얼굴들] 역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궤를 같이하는 단편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빛속]이 SF의 세계관에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이 [밤의 얼굴들]은 현실적인 세계속에서 증강현실 혹은 VR 같은 SF적 소품들을 사용하여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는 방식을 차용한다. 각 작품들의 주제 역시 좀 더 구체적이고 분명하다. 각 단편들 모두 공교롭게도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특히 이제는 잊혀져 가는, 하지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앞으로 쭈욱 이어져 나가야 할 기억들에 관해서 말이다.



타국에서는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일본에서 오랜 생활을 했던 작가의 이력을 보면서 올바른 역사관과 비극적 과거를 사유하는 다각적 시각은 굳이 장소에 좌우되지는 않는다는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작품들이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이제껏 SF 장르를 통해 역사의 비극적 기억들을 공유하는 작품이 있었던가?..... 



책을 펴고 첫번째로 만나는 단편, [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 부터 낯선 생소함과 마주하게 된다. 일본의 야심한 밤. 연고 없는 무덤가를 파헤치는 여성.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노인. 노인은 떠올린다. 자신이 살기위해 숨이 붙어있는 조선인의 등에 날카로운 창을 찔러넣던 그때를 말이다. 관동 대지진 이후 조선인의 대학살 사건이 이 단편의 배경이라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강렬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아픈 기억을 앉고 있는 노인의 기억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이제 두 번째 단편 [당신의 기억은 유령]으로 이어진다. 치매를 극복하고자 뇌에 메모리를 늘리는 시술을 받지만 오히려 메모리 버그로 치매와 같은 증상을 앓고 있는 노인과 또다른 인격. 세 번째 단편은 좀 더 충격의 강도를 높인다. [탱크맨] 이 제목의 의미는 단편을 읽고 나서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끝없이 반복되는 하루를 사는 청년의 기억속에 간직하고 있는 숭고한 마음을 다시금 되새기게 만든다. 



네 번째 단편 [니시와세다역 B층]은 일본의 도시괴담처럼 시작되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며 다시금 도시괴담 보다 더욱 잔혹하고 끔찍한 실존했던 역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앞선 무거운 단편들과는 달리 다섯 번째 단편 [투명러너]는 조금 분위기를 가볍게 바꾼듯 하다. 일본으로 이주한 여성이 편의점 알바를 통해 만난 일본인과 어릴적 봤던 애니메이션을 이야기하며 추억을 공유하는 이야기....이 단편에 언급되는 애니들은 본인 역시 즐겨봤던 애니라서 작가가 본인과 비슷한 연배인가 생각했을 정도인데, [모레요정 바람돌이], [개구리 왕눈이]등등 그때의 감성을 느끼며 즐길 수 있었던 단편이었다. 마지막으로 [모멘트 아케이드]는 '김초엽'의 [관내분실]과 거의 흡사한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는 이야기로 동일선상에 놓여진 이야기가 아니었다 싶다.



이렇게 작품들을 읽으며 감정의 변화들을 반추하니 어찌됐던 분노와 반목의 역사 아래 이제는 사그러져간 그들의 뜻을 기리면서 이해와 공존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 동시에 상처입고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을 위한 위로와 구원의 위령제 같은 이야기였달까. 지금까지 SF에서 다뤄오던 '기억'의 의미를 완전히 뒤바꿔 놓는 작품이었던것 같다. 깊이있는 장르 문학으로선 더할나위 없이 진중하고 생각할거리를 던지는 작품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장르문학이라하면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는 문학이라 생각하는 본인에게는 조금은 건조하고 무거운 단편집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과학문학상 2회, (3회는 못봤으니 배제하고) 4회가 거의 동일선상인 감정적 작품이라 생각되는데, 5회는 과연 어떤 작품이 수상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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