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
아사쿠라 아키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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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 (2020년 초판)

저자 - 아사쿠라 아키나리

역자 - 문지원

출판사 - 흘루홀식스

정가 - 15000원

페이지 - 375p



교실이 혼자가 될 때, 비로소 적막한 평화가 찾아온다



복선의 마술사. 학원 초능력 미스터리, 본격 청춘 미스터리. 책 표지를 장식하는 문구만으로도 솔직히 구미가 당기는 작품이다. 학생들간의 피튀기는 초능력 배틀을 상상했던 것도 사실이거니와 어디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소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에 가장 근접한 설정 내에서 생각지 못한 트릭을 보여주는 본격의 장르에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초능력이란 설정은 물과 불처럼 어울리지 않을듯 하면서도 이질적인 두 요소를 성공적으로 녹여냈을 때 갖게 될 시너지는 몇 배이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교실에서 너무 큰 소리를 냈습니다. 조율되어야만 합니다. 안녕!'


사립 기타카에데 고등학교에 이해할 수 없는 유서를 남긴 뒤 2학년 학생 세 명이 연이어 자살한다. 이후 등교를 거부하는 미즈키의 집에 찾아간 가키우치는 미즈키로 부터 놀라운 말을 듣는다. 앞선 3명의 학생은 자살이 아니라 사신으로 부터 살해당했다는 것과 다음 타깃은 미즈키 자신 아니면 야마기리 코즈에라는 것. 이에 겁을 집어먹은 미즈키는 다음날 부터 등교거부를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너무나 황당무게한 말에 가키우치는 미즈키의 말을 믿지 못한 채 헤어진다. 그러나 얼마 안가 미즈키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가키우치에게 온 한 통의 편지로 인하여.....



초능력 물이라고는 하지만 텔레파시나 염력 혹은 정신 지배등으로 무장한 하이퍼 에스퍼물은 아니다. 그렇다면 본격으로 만들기에는 너무나 어려울테니 말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본격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제한과 규칙이 따르게 된다. 당연히 초능력의 발동에도 일종의 규칙과 발동조건이 필수여야 한다는 말이다.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사립 기타케에데 학교의 초능력자는 단 4명이다. 물론 능력은 각기 다르고 발동 조건 역시 각기 다르다. 중요한 것은 초능력의 발동조건이 타인에게 발각될 시 그 사람의 초능력은 해제된다. 이후 발동조건이 발각되던, 혹은 학생이 죽거나, 졸업하게 되어 초능력이 해재되면 그 능력은 다른 학생에게 이관된다. 때에 따라 어떤 초능력은 같은 사람에게 3회밖에 쓸수 없는 제한이 걸리기도 한다.



ㅋㅋㅋ 사실 이런 여러 제한을 숙지하면서 작품을 읽어나간다는 게 번거롭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허나 의외로 간단하게, 생각보다 속도감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결국은 자살을 유도하는 초능력자 '사신'을 막기위한 나머지 능력자들의 이야기이니 말이다. 그때문인지는 몰라도 '사신'의 정체 역시 생각보다 이른 백페이지 정도에서 밝혀진다. 사실 '사신'이 누군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녀의 능력의 비밀. 그리고 발동조건을 알아 내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막판에 이르러서 초능력의 비밀이 간파되는 순간. '복선의 마술사'라는 수식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앞 서 그냥 흘려보냈던 수많은 행동들과 대화들이 하나의 유기적인 그림이 되는 순간 느끼게 되는 전율의 카타르시스. 이것이 작가의 숨겨진 초능력이구나!! 떡밥의 마술사였구나! 



더불어 [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라는 제목의 의미와 '사신'의 처형의 이유가 절묘하게 관통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학교의 의미를 되세기게 된다. 학교 생활을 안해본 사람은 극 소수를 제외하면 거의 없으리라 생각된다. 더불어 아무리 외적으로 인싸라도 내면에 아싸 기질이 없는 사람 또한 극소수를 제외하면 없을지니 이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스쿨 카스트'(일본 신조어로 학급 내 인기여하에 따라 나뉘는 계급 제도)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모두가 웃고 떠들고 즐거운 학교생활. 그 웃음 뒤에 가려진 어둠이 본인의 학창시절과 맞물리면서 꽤나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잡는 작품이랄까. 결국 남을 밟고 일어서야 살아남는 무한 경쟁사회지만 그럼에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곳이 세상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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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의 살의 - JM북스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손지상 옮김 / 제우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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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의 살의 (2020년 초판)

저자 - 아키요시 리카코

역자 - 손지상

출판사 - 제우미디어

정가 - 15000원

페이지 - 423p




투명한 유리처럼 날카롭고 깨지기 쉬운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이 이렇게 비슷한 시기에 나오는 경우가 쉽지 않을텐데. 하지만 이 우연으로 '아키요시 리카코'를 좋아하는 본인으로서는 [작열]과 동시에 이 작품 [유리의 살의]를 만날 수 있어 더없이 좋았다. 무엇보다 순식간에 독자를 몰입시키는 설정이 상당히 좋았다. 영화 [메멘토]를 비롯 얼마전 작고한 '고바야시 야스미'의 [기억 파단자] 그리고 이 [유리의 살의]까지... 익숙하면서도 매력적인 설정 바로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을 그린다. 아! 추가로 덧붙이자면 [간병살인]에 [첫키스만 50번째]를 믹스한 서스펜스 심리 미스터리랄까. ㅎㅎㅎ



정신을 차리니 온 몸이 피투성이였다.

그리고 내 손에 있는 것은 피묻은 식칼.

통증이 없는 것을 보니 내 피는 아니다.

주변을 살펴본 나는 깜짝 놀랐다.

거실 바닥에 쓰려져 있는 남자.

상처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피가 온 몸을 적셨다.

남자는 죽은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얼마간의 신호음 뒤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간신히 입을 떼고 말했다.

"제가 사람을 죽였어요."


그렇게 마유코는 살인자로 체포된다. 베테랑 형사 키리타니와 후배형사 노무라는 마유코를 심문하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다. 바로 조금전에 형사임을 밝혔음에도 잠시 뒤 자신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마유코가 21년전 교통사고로 인하여 단기기억 뇌장애애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사망자가 과거 마유코를 살해하려던 무차별 살인마였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살인 당시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모든 정황과 증거는 그녀가 살인자임을 말하고 있다. 


20분 밖에 기억이 지속되지 않는 그녀.

과연 그녀는 살인을 저질렀을까?



[작열]이나 이 [유리의 살의]나 주인공 여성의 시점에서 독특한 상황속에서 그녀들의 사랑을 그려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끔찍하고 잔혹한 살의와 복수를 가미하여 피투성이속에서 오롯이 피어나는 숭고한 사랑을 말이다. 반면 두 작품의 사랑을 풀어가는 방식은 다소 차이가 있다. [작열]이 [화차]를 떠올리게 하는 막장드라마 같은 자극적 요소로 눈길을 사로잡는다면 이 작품은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의 폐쇄적인 시선을 직접 독자의 눈으로 보게하여 진실을 가리게 만들고 반전의 요소를 배가하는 방법을 선보인다. 실로 독자의 입장에서 마유코의 기억리셋은 꽤나 답답하고 숨막히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 때문에 작품자체에, 마유코의 심리에 상당히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기억이 리셋되는 마유코만으로는 이야기를 끌어갈 수는 없다. 작가는 여기에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혼기를 놓친 여형사 키리타니를 등장시킨다. 긴 병앞에 효자는 없다는 말이있을 정도로 누군가를 간병하는 것은 엄청난 정신적 소모와 힘을 필요로 한다. 자신의 친모를 요양원에 보내놓고 형사일을 하는 키리타니는 끊임없이 자책하고 고민한다.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죄책감. 그럼에도 요양원을 나오길 원하는 친모를 다시 데려오지 못하는 현실. 그리고 마유코 살인사건을 조우하면서 다시금 고민이 깊어진다.



바로 마유코의 남편 때문이다. 기억리셋 장애를 겪고 있음을 알면서도 오직 사랑으로 마유코와 결혼하여 그녀를 19년간 정성껏 돌본 남편. 남편은 마유코가 살인범으로 체포된 뒤에도 매일 유치장으로 면회를 가고 필요한 물품을 차입하는 정성을 보인다. 형사 키리타니는 그런 남편의 헌신을 보면서 자신과 대비하고, 마유코를 자신의 친모와 동일시하게 된다. 이쯤에서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영화 [첫키스만 50번째]의 남자 주인공은 19년뒤에도 정말로 행복한 사랑을 할 수 있었을까? 하긴 영화는 24시간 리셋이었으니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만....



당연히 독자들도 키리타니 형사의 시선에 동화되고.....그런 감정이입이 진실을 가리는 미스디렉션으로 작용하게 되리란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ㅎㅎㅎ 마유코와 키리타니. 작품을 이끌어 가는 두 여성의 섬세한 심리묘사에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높은 가독성으로 어느새 독자는 작가의 마수에 걸려든줄도 모른채 그녀가 이끄는대로 휘둘리게 된다. 뭐 그래야 결말부 반전의 반전이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오고 마지막 숭고한 사랑이 더욱 가슴 깊이 와닿지 않겠는가. 



비록 범인 맞추기는 쉬울지언정 작품의 재미는 범인 맞추기가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품속으로 빨려드는 느낌. 20분마다 기억이 사라지는 마유코의 머리속으로 들어가는 신비한 체험을 직접 경험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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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월드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17
엄정진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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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레일월 (2020년 초판)_그래비티 픽션 17

저자 - 엄정진

출판사 - 그래비티북스

정가 - 16000원

페이지 - 419p



하드 스페이스 오페라



그래비티 픽션 열 일곱 번째 작품이 출간됐다. SF의 레전드라 불리우는 [링월드]와 [유년기의 끝]을 엿볼 수 있는 하드SF 스페이스 오페라의 출간이라니.... 처음 접하는 작가의 이름이 낯설어 작가소개를 봤는데 고전 SF의 번역가로도 활동하는 작가였다고 하니 해외 SF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쌓아온 내공을 쏟아낸 것인지,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호기심이 샘솟았다.



임라나 호의 선장은 우연히 우주공간에 한데 뭉쳐서 죽어있는 외계인의 시체 더미를 발견하고 그중 시체 한 구를 수거하여 뇌의 기억세포를 전뇌로 이식에 성공한다. 그렇게 인공생체로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외계인은 자신을 에우두 족이라 말하고 종족간 전쟁중 사망했다고 설명한다. 추가로 소원이 있으니 자신의 고향에 가서 뼛가루를 뿌리고 싶다고 요청한다. 선장은 외계인의 요구를 수용하여 시체더미가 우주공간을 유영한 좌표를 탐색하여 마침내 에우두 족이 살고 있는 행성을 찾아낸다. 다른 행성들 같은 구체가 아닌 사각형의 행성. 그리고 행성 표면을 메우고 있는 반사체. 가장 기이한 것은 행성이 우주로 뻗은 원형 선로위를 달리고 있었으니....


선장은 미스터리한 행성에 대해 [레일월드]라 명명한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새롭게 조우한 외계 종족의 다양한 생활방식과 갈등(?), 레일월드 탄생의 수수께끼, 유한한 공간에서 과학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한 거주인들이 생존을 위해 벌여야만 하는 전쟁의 진짜 의미, 초지성체와의 조우 등등등. 작품을 읽어가면서 어느 지점에서 [링월드]와 [유년기의 끝] 혹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혹은 [에반게리온] 등을 떠올리게 되는지 확실히 알수있게 된다. 



하드SF 스페이스 오페라를 표방한다는 말에 납득이 되는 꽤나 세밀하고 장대한 스케일의 작품이다. 무엇이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는 건 무척이나 까다롭고 복잡한 작업인데, 행성 하나와 거주민들을 물리학에 맞춰 디자인 하는데 들인 노력들과 우주를 초월하는 초지성체와의 철학적인 문답들은 생각할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SF던 판타지던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건 흥미로운 일이다. 작가가 창조해낸 레일월드에서 겪는 좌충우돌 모험은 꽤나 장황하고 하드하지만 끝까지 페이지를 붙들게 만드는 흡인력을 보여준다. 뭔가 기존 SF들을 짬뽕시킨 클리셰를 벗어나진 못했지만 스페이스 오페라의 왁자지껄한 경쾌함과 난장스러운 분위기는 장르의 재미를 장착한 것 같았다. 작가가 기획중인 3부작의 첫번째 장편이라고 하는데 너무 가벼운 느낌도 있어, 차기작은 좀 더 다크한 분위기로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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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Art & Classic 시리즈
라이먼 프랭크 바움 지음, 제딧 그림, 김난령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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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2020년 초판)

저자 - L. 프랭크 바움

역자 - 김난령

그림 - 제딧

출판사 - RHK

정가 - 14800원

페이지 - 303p



모험과 환상의 나라 오즈로 



얼마전 삽화가 '퍼엉'과 콜라보로 나온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이어 역시 어린이들에게 너무나 유명한 동화 [오즈의 마법사]가 삽화가 '제딧'의 그림이 추가되어 새롭게 출간됐다. 새롭게 밀고 있는 클래식 동화 재출간 시리즈인가.... 뭐 어린이 동화에만 삽화가 있으라는 법은 없으니, 감각적이고 아기자기한 삽화와 어우려진 동화는 어른과 청소년 모두 쉽게 즐길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하는 듯 하다.



[오즈의 마법사]는 어릴적 만화영화와 어린이들을 위한 축약형 동화로는 접해봤지만 이 판본과 같이 무편집본으로는 처음 접하는 것 같다. 하여 동화임에도 삼백페이지가 넘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도로시와 토토, 나무꾼, 허수아비, 사자가 이렇게 많은 여행과 모험을 경험한줄도 미처 몰랐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크리처들, 전혀 다른 배경의 신비로운 나라들과 백성들. 그리고 착한 마녀와 나쁜 마녀들의 마법대결과 오즈의 과학이 공존하는 신비로운 세계관은 이미 대강의 스토리를 알고 있는 본인에게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뭐 타 매체에서도 익히 이야기 했겠지만서도, 심장을 찾기 위해 여행하는 양철 나무꾼, 지혜를 얻고자 하는 허수아비, 용기가 없는 겁쟁이 사자를 보면서 자신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먼 곳을 바라보고 갈구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나아가 그들의 노력으로 마침내 빈자리를 매꾸고 자신감있게 성장하는 모습에서 흐뭇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달까. 좀 더 나를 믿고 노력해 보자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오즈의 마법사] 이후로 아이들의 요청으로 작가가 14편의 후속편을 써냈다는게 이해가 될 정도로 매력적인 세계를 선보인다. 성인이 된 지금 아이였을때 이 작품을 읽었던 모험심과 두근거림, 설레임은 느끼기 힘들었지만 동화속 이야기 이면에 깔려있는 의미는 좀 더 잘 보였다고나 할까. 어릴적 막연하게만 느꼈던 의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어 어른이 되어 이런 추억의 동화를 읽는 것도 참 좋은 책읽기라는 걸 느꼈던 것 같다. 



더불어 동화로는 절대 마주할 수 없었던 악당들과의 불꽃튀는 대결 역시 무편집본으로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어린이 동화인데 이렇게 모가지가 마구 날라다닐줄은 미처 몰랐네 그려....ㅎㅎㅎ 역시 작품이 쓰인 1900년대의 카리스마 인가. 보아하니 [오즈의 마법사] 다음 주자로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링왕자]가 출간예정인것 같은데 몽환적인 이야기에 어떤 삽화가 어우러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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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너를 다시 만난다
나카타 에이이치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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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 너를 다시 만난다 (2020년 초판)

저자 - 나카타 에이이치(오츠이치)

역자 - 주자덕

출판사 - 아프로스미디어

정가 - 15000원

페이지 - 295p



눈을 감고 그려봐 너와 나의 미래를....



요즘들어 극장에 걸리지 못하고 넷플릭스로 개봉한 스릴러 영화 [콜]의 반응이 뜨겁다. 본인도 영화를 지켜본 1인으로서 작품의 헛점은 차치하고서라도 2시간이 순삭될 정도로 시간가는줄 모르고 지켜본 것 같다. 우연히 연결된 전화 한통으로 과거를 바꾸고 나아가 현재와 미래를 바꾸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콜]의 정식 서비스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흥미로운 SF 소설 한 권이 출간됐다. 공교롭게도 이 작품 역시 과거로 돌아간 남자가 겪게 되는 기막힌 이야기를 담아 낸다. 



정거장을 지나친 버스는 절대 되돌아오지 못한다. 지나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한 세계가 존재한다. 바로 가공의 세계인 픽션이다. 결국 대중들은 불가능한 현실을 뼈저리게 직시하고 있기에 이런 가공의 이야기에 빠져드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시간여행물에는 여러 하위장르가 존재한다. 그중 이 작품의 장르인 타임리프는 말 그대로 주인공이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 또는 미래로 시간 여행을 하며 벌어지는 예측치 못하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대다수 SF팬들은 이런말을 하곤 한다. 시간여행물 장르라는 것 만으로도 기본 이상의 재미는 보장한다고. 더불어 한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이 작품의 작가 '나카타 에이이치'이다. 알만한 사람이라면 이미 눈치 챘을지도 모르겠다. 천재작가 '오츠이치'의 또다른 필명이 '나카타 에이이치'임을 말이다. 



자, 정리하자면 아무리 구멍투성이의 설정이라도 재미있는 시간여행 장르 더하기, 써내는 작품마다 특유의 감성을 자극하고 높은 완성도를 끌어내는 천재작가 '오츠이치'가 써낸 작품. 그렇다면 결론은 뭐다? 끝내주는 작품이 나왔다는 말이다. ㅎㅎㅎ



[2019년]

인적이 드문 벤치에 앉아있던 가바타 렌지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제 곧 자신의 뒷통수를 강타해 정신을 잃게 할 3인조 강도가 나타날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렌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받게될 머리의 충격보다 이제 눈을 뜨게 될 곳에서 해야할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오늘.... 너를 다시 만난다.'


[1999년] 

11살의 가바타 렌지는 야구시합중 상대가 던진 야구공에 머리를 맞아 그대로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다음날. 렌지는 집 자기방에서 눈을 떴다. 일요일 오전 10시 50분. 렌지는 벌떡 일어나 엄마의 장지갑을 훔쳐 그대로 집을 나왔다. 갑작스러운 렌지의 행동에 가족들은 의아해 했다. 렌지는 개의치 않고 택시를 잡아 탔다. 미래 렌지와 결혼하게 될 8살의 소녀를 만나기 위해서.....



작품에서 그리는 타임리프는 의식의 교환이다. 작품속 렌지의 설명을 빌리자면 렌지의 인생 시간선에서 특정 시간대에 동시에 받은 충격으로 의식이 원래의 육신을 튀어나와 서로 교차됐다는 것인데, 쉽게 말해 2019년의 의식과 1999년의 의식이 체인지 됐다는 말이다. 딱 이 설정만을 놓고 봤을때 초대박을 친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떠오른다. 애니와 달리 타인이 아닌 본인의 의식이 바뀌는 점을 제외한다면 갑작스럽게 서른 살의 몸으로 들어가버린 열한살 소년의 낯설음. 열한살 소년의 몸으로 들어간 서른살의 신체적 리스크 등 예측 불가능한 에피소드로 독자들의 호기심을 마구 자극해버린다. 



앞서 말했지만 '나카타 에이이치'는 '오츠이치'가 주로 연애물을 쓸때 사용하는 필명이다. 이 작품도 굳이 따지자면 SF 청춘 로맨스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시간여행을 통한 기상천외한 연애로만 볼 수 없는 것이 현재의 약혼녀 니시조노 코하루가 겪었던 일가족 살인사건이다. 1999년 벌어졌던 일가족 살인사건의 범인. 당연하지만 범인은 2019년에 와서도 잡아내지 못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일가족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리해 나가는 미스터리의 묘미도 갖고 있는 작품이라는 말이다. 



작품의 대전제는 이렇다. 현재의 자신이 과거로 가서 어떤 행동을 해도 이미 결정된 미래에는 변화를 주지 않는다. 이 전제는 작품속에서 빈번하게 언급되는 실존 SF소설 '로버트 F. 영'의 [민들레 소녀]의 설정을 따온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란 것은 본인도 알고, 작가도 알고, 독자도 알고, 하늘도 아는 것이리라. ㅎㅎㅎ 관측된, 결정된 미래가 변화되는 순간.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새로운 미래가 쓰여지는 순간이 이 타임리프물의 진정한 재미가 시작되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시간여행물은 과거와 현재의 사건들과 인과관계가 톱니바퀴처럼 재대로 맞물려야 하기에 상당히 구상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하여 어느정도의 헛점은 독자들이 스스로 눈감아 주기도 할 정도인데,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연애와 미스터리의 장르적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크게 거슬리는 부분없이 시간여행물로서의 인과를 납득시켜 준다. 머리가 터질정도로 복잡하게 꼬지 않고 시간여행물의 초보라도 누구나 즐길수 있는 점. 극강의 가독성. 잔잔하게 마음을 울리는 따뜻한 마무리까지. 보이지 않는 미래를 해쳐나갈 용기를 주는 작품이랄까. '오츠이치'만의 극강의 치유계에 해당되는 작품이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영화화하기 위해 직접 시나리오를 들고 여러 영화사를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고 시나리오를 소설로 수정하여 이렇게 소설로서 독자들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비록 소설로 출간됐지만 영상화의 기회가 완전히 엎어졌다고는 할 수 없는것이고 감독으로서 평가는 박하게 받았지만 호러 영화 [시라이상]으로 메가폰도 잡아봤으니, 언젠가 작가의 바램대로 이 작품을 영화로 만나게 되는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 누가알겠는가. 호러 보다 치유계 감성 영화가 더 적성에 맞을는지 말이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차가운 겨울밤. 노랗게 피어난 민들레 처럼 따스한 봄을 기다리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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