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의 살의 - JM북스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손지상 옮김 / 제우미디어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리의 살의 (2020년 초판)

저자 - 아키요시 리카코

역자 - 손지상

출판사 - 제우미디어

정가 - 15000원

페이지 - 423p




투명한 유리처럼 날카롭고 깨지기 쉬운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이 이렇게 비슷한 시기에 나오는 경우가 쉽지 않을텐데. 하지만 이 우연으로 '아키요시 리카코'를 좋아하는 본인으로서는 [작열]과 동시에 이 작품 [유리의 살의]를 만날 수 있어 더없이 좋았다. 무엇보다 순식간에 독자를 몰입시키는 설정이 상당히 좋았다. 영화 [메멘토]를 비롯 얼마전 작고한 '고바야시 야스미'의 [기억 파단자] 그리고 이 [유리의 살의]까지... 익숙하면서도 매력적인 설정 바로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을 그린다. 아! 추가로 덧붙이자면 [간병살인]에 [첫키스만 50번째]를 믹스한 서스펜스 심리 미스터리랄까. ㅎㅎㅎ



정신을 차리니 온 몸이 피투성이였다.

그리고 내 손에 있는 것은 피묻은 식칼.

통증이 없는 것을 보니 내 피는 아니다.

주변을 살펴본 나는 깜짝 놀랐다.

거실 바닥에 쓰려져 있는 남자.

상처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피가 온 몸을 적셨다.

남자는 죽은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얼마간의 신호음 뒤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간신히 입을 떼고 말했다.

"제가 사람을 죽였어요."


그렇게 마유코는 살인자로 체포된다. 베테랑 형사 키리타니와 후배형사 노무라는 마유코를 심문하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다. 바로 조금전에 형사임을 밝혔음에도 잠시 뒤 자신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마유코가 21년전 교통사고로 인하여 단기기억 뇌장애애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사망자가 과거 마유코를 살해하려던 무차별 살인마였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살인 당시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모든 정황과 증거는 그녀가 살인자임을 말하고 있다. 


20분 밖에 기억이 지속되지 않는 그녀.

과연 그녀는 살인을 저질렀을까?



[작열]이나 이 [유리의 살의]나 주인공 여성의 시점에서 독특한 상황속에서 그녀들의 사랑을 그려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끔찍하고 잔혹한 살의와 복수를 가미하여 피투성이속에서 오롯이 피어나는 숭고한 사랑을 말이다. 반면 두 작품의 사랑을 풀어가는 방식은 다소 차이가 있다. [작열]이 [화차]를 떠올리게 하는 막장드라마 같은 자극적 요소로 눈길을 사로잡는다면 이 작품은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의 폐쇄적인 시선을 직접 독자의 눈으로 보게하여 진실을 가리게 만들고 반전의 요소를 배가하는 방법을 선보인다. 실로 독자의 입장에서 마유코의 기억리셋은 꽤나 답답하고 숨막히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 때문에 작품자체에, 마유코의 심리에 상당히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기억이 리셋되는 마유코만으로는 이야기를 끌어갈 수는 없다. 작가는 여기에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혼기를 놓친 여형사 키리타니를 등장시킨다. 긴 병앞에 효자는 없다는 말이있을 정도로 누군가를 간병하는 것은 엄청난 정신적 소모와 힘을 필요로 한다. 자신의 친모를 요양원에 보내놓고 형사일을 하는 키리타니는 끊임없이 자책하고 고민한다.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죄책감. 그럼에도 요양원을 나오길 원하는 친모를 다시 데려오지 못하는 현실. 그리고 마유코 살인사건을 조우하면서 다시금 고민이 깊어진다.



바로 마유코의 남편 때문이다. 기억리셋 장애를 겪고 있음을 알면서도 오직 사랑으로 마유코와 결혼하여 그녀를 19년간 정성껏 돌본 남편. 남편은 마유코가 살인범으로 체포된 뒤에도 매일 유치장으로 면회를 가고 필요한 물품을 차입하는 정성을 보인다. 형사 키리타니는 그런 남편의 헌신을 보면서 자신과 대비하고, 마유코를 자신의 친모와 동일시하게 된다. 이쯤에서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영화 [첫키스만 50번째]의 남자 주인공은 19년뒤에도 정말로 행복한 사랑을 할 수 있었을까? 하긴 영화는 24시간 리셋이었으니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만....



당연히 독자들도 키리타니 형사의 시선에 동화되고.....그런 감정이입이 진실을 가리는 미스디렉션으로 작용하게 되리란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ㅎㅎㅎ 마유코와 키리타니. 작품을 이끌어 가는 두 여성의 섬세한 심리묘사에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높은 가독성으로 어느새 독자는 작가의 마수에 걸려든줄도 모른채 그녀가 이끄는대로 휘둘리게 된다. 뭐 그래야 결말부 반전의 반전이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오고 마지막 숭고한 사랑이 더욱 가슴 깊이 와닿지 않겠는가. 



비록 범인 맞추기는 쉬울지언정 작품의 재미는 범인 맞추기가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품속으로 빨려드는 느낌. 20분마다 기억이 사라지는 마유코의 머리속으로 들어가는 신비한 체험을 직접 경험해 보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