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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박깜박 도깨비 ㅣ 옛이야기 그림책 13
권문희 글.그림 / 사계절 / 2014년 5월
평점 :
우리 옛 이야기에는 도깨비가 많이 등장한다.
도깨비는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놀라운 능력과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약지 않은 어리숙하고 맹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도깨비를 무서워하기보다는 우스워하거나, 놀림감으로 쉽게 생각한다.
<깜박깜박 도깨비>에 나오는 도깨비도 그렇다.
아이에게 돈 서 푼을 빌리고서는 매일 저녁마다 그 돈을 갚으러 온다.
아이가 어제 갚았다고 하면,
어제 만나 돈을 빌렸는데 어떻게 오늘 갚을 수가 있냐며 돈을 주고 가버린다.
그렇게 해서 매일 매일 돈이 생기는데도 아이는 그 돈을 다 쓰지 않고 받아둔다.
날마다 서푼씩, 그 돈이 그대로 쌓여만 가는데도
아이는 다 찌그러진 냄비와 개다리소반 나 바꾸지 않고
그저 누더기 옷을 새 옷으로
부모님 무덤에 술 한 병 놓아두는 것과 같이 꼭 필요한 곳에만 썼을 뿐 이었다.
도깨비는 찌그러진 냄비를 보고는 저걸 어떻게 쓰냐며 내일 새것 하나 가져다 준다고 한다.
그리고는 또 날마다 냄비와 서 푼을 아이에게 갖다주는 것이었다.
도깨비가 가져다 준 냄비는 먹고 싶은 음식이 계속계속 나오는 요술 냄비였다.
그래서 아이는 맛있는 음식을 날마다 날마다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도깨비는 닳고 닳은 다듬잇방망이를 보고 내일 새 것 가져다 준다고 한다.
그리고 매일 냄비와 도깨비방망이와 서 푼을 가져다준다.
그런데도 도깨비는 매일 저녁 아이를 찾아와서 서로 매일 같은 대화를 나눈다.
"어제 꾼 돈 서 푼 갚으러 왔다. 냄비도 받아라. 방망이도 받아라."
"어제 갚았잖아."
"어라? 얘 좀 봐. 어제 꿨는데, 어떻게 어제갚아?"
아이가 돈이랑 냄비랑 방망이랑 방안에 가득하다고 이야기를 해도 자기말만 하고 도깨비는 다음날 또 찾아온다.
그러다가 어느날 하도 울어서 눈도 코도 퉁퉁부은 얼굴로 나타난 도깨비는 하늘나라로 가서 벌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자기가 헤프게 써서 집 살림이 바닥이 났다는 것이었다.
빌린 것을 못갚아서 미안하다며 뛰어가는 도깨비에게 그게 다 자기집에 있다고 아이는 말하지만 도깨비는 그저 울며 뛰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되어 행복하게 잘 살다가 도깨비를 부르며 죽고, 도깨비는 벌 다 받고 돌아와 그 아이를 찾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나는 무한정 아이에게 퍼 주는 것은 좋지 않다. 과유불급이란 말을 늘 마음에 두고 살았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도깨비가 이렇게 무한정 퍼 주면 아이가 게으름뱅이가 되는 건 아닌지 무척이나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는 아무리 좋은 것이 자기에게 쏟아져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았다.
이야기 도입부에 이 아이를 설명하는 글과 그림이 있었다.
외딴 곳에 혼자사는 아이.
이집 저집 궂은 일을 해 주고 한 푼 두 푼 주는데로 받아서 겨우 겨우 사는 아이.
제 키보다 몇 배나 더 큰 나무짐을 지고 가는 아이.
아이의 뒤로 그 동네 모든 아이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힘들게 번 돈 세 푼을 도깨비가 빌려 달라고 할 때,
아이의 마음 속은 얼마나 복잡하고 힘들었을지..
도깨비가 까먹고 안 갚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는 소중한 돈 서 푼을 빌려준다. 겁이 나서 할 수 없이 빌려주었다고 하지만, 아이가 욕심없는 성품을 지녔다는 걸 보여 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도깨비와의 인연으로 아이는 더 이상 외롭고 힘든 삶을 살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이에게 돈을 갚겠다며 매일 찾아와 주는 도깨비가, 아이의 고생스런 생활을 살펴봐 주는 도깨비가 얼마나 고맙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매일 매일 힘든 일을 하며 한 푼 두 푼 벌었던 아이가 날마다 꼬박꼬박 생기는 돈 서 푼의 크기를 몰랐을리가 없다. 그럼에도 아니는 그 돈이 자기 돈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아이가 욕심이 없었기에 도깨비도 서 푼을 빌려준 아이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매일매일 찾아 온 것이 아닐까?
처음엔 이야기가 재미있어 읽고, 아이들에게도 이야기를 읽어주었다.
그러다보니 한국화 같기도 하고 민화같기도 한 그림에도 자꾸만 눈이 가고,
외로웠던 아이의 마음과 따뜻한 도깨비의 마음에 마음이 가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것은 이런 끝없는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
아이과 어른이 함께 읽기에 참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