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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과학 분자요리
이시카와 신이치 지음, 홍주영 옮김 / 끌레마 / 2016년 3월
평점 :
책의 제목이 분자요리여서, 분자요리의 활용법에 대한 내용을 기대했는데, <식탁 위의 과학>이라는 부제가 더욱 책의 제목으로 적절하다.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서 알고, 흔하디 흔한 매체의 건강과 요리 정보를 통해 알고 있지만, 실제로 왜 그런지,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지, 그게 얼마만큼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무지한 것이 많은데, 이 책은 요리와 음식에 대한 기본적인 과학적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매우 교과서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고기를 재울때 키위나 파인애플에 재워두면 연해지는 것까지는 잘 알고 있지만 왜 그런지는 잘 모른다. 마늘이나 양파가 조직이 차괴될때 더욱 냄새가 심한 까닭도 궁금하다. 우리가 과학 시간에 배운 기초적 화학이 응용되는 가장 가까운 장소는 바로 부엌이다. 음전하의 산소 원자 하나와 양전하의 수소 원자가 두 개가 105도의 기울기로 결합하고 있는 물에 대해 배웠고, 그 물이 모든 음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 물 분자들이 이루는 수소결합이 요리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해 자세하게는 잘 모른다.
요리와 과학의 만남을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분자요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스페인의 천재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의 등장으로 시작되었다. 엘부이라는 식당은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방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그는 이 식당의 세프로 있으면서 그곳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전위적인 요리로 1997년 미슐랭 가이드 최고 등급을 받으며 세계에서 가장 예약하기 힘든 레스토랑으로 승승장구하며 시작된다. 페란 아드리아의 분자요리에 대한 혁명적 성과는 여러 가지로 설명될 수 있지만 그 중 가장 눈부신 업적은 레시피의 오픈소스화라고 보여진다. 이제까지 쉬쉬하며 비밀로 붙여지고 은밀하게 전수되어 왔던 요리계의 관례를 깨고 과학 학계에서 논문을 내고 공개하여 학계간 협업을 통해 서로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과학계의 방식과 비슷하게 요리업계에 도입함으로써, 집단 지식, 오픈소스와, 협업 등의 21세기적 혁신을 일으켰다.
내 학창시절에는 우리의 미각이 단맛, 짠맛, 신맛, 쓴맛만을 느끼며, 이 네 가지 맛의 수용체가 혀의 각기 다른 부분에 분포되어 있다고 배웠는데, 학교에서 배운 것은 늘 반만 옳은 거였다. 이후 일본에서 이 네가지 기본 미각 외에도 감칠맛을 기본 맛에 추가했고 국제적 인정을 받았다. 기본 미각에 추가되었다는 것은 맛을 느끼는 생체적인 수용체를 발견한 것과 이 맛을 인지하는 뇌의 작용을 증명해냈다는 뜻이다. 특히 미각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인간의 미각 수용체에는 추가로 발견된 감칠맛 외에도 칼슘을 감지하는 수용체와 기름의 구성성분인 지방산을 느끼는 수용체가 발견되어 여섯번째, 일곱번째 기본 맛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있음에도 아직 추가되지 않은 이유는 이 두 가지 맛을 감지하는 신경회로와 뇌 활동부위가 기존맛을 감지할 떄와 다르다는 것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가 교과서 그림으로 마르고 닳도록 외웠던 미각 지도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밝혀졌다. 미뢰는 나이가 들수록 감소해서 어린아이일 때는 1만개나 입안 전체에 퍼져있던 것이 성장하면서 조금씩 줄어들어 성인이 되면 7500개가 되고,75세 이후에는 급격히 줄어드는데, 미뢰의 수와 상관없이 나이가 들어가며 맛을 잘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그 원인은 피부가 늙으면 턴오버하는 속도가 느려져 주름살이 늘듯, 맛세포가 죽고 다시 생기고 하는 턴오버하는 속도가 느려지고 맛세포의 기능이 떨어져서라고 추측된다. 한편 맛은 냄새에 의해 좌우되기도 하는데, 뭔가를 먹기 전 코로 들이마시는 냄새와 달리 먹은 음식이 목에서 다시 코로 빠져나가는 향기를 플레이버라고 하고, 이러한 후각을 후비강성 후각이라 한다(코로 들이마시는 후각은 전비강성 후각)
감칠맛의 성분은 글루타민산과 이노신산, 구아닐산이 핵심 성분인데, 글루타민산은 다시마 국물과 안초비 등에, 이노신산은 가다랑어포에, 구아닐산은 표고버섯에 많이 들어있다. 여기서 서로 다른 감칠맛 성분들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보다 서로 혼합됨으로써 상승효과가 일어나 감칠맛이 극대화된다. 1+1 = 8 혹은 1+1=30이라는 기적이 일어나는 이유는 감칠맛을 느끼는 수용체인 T1R1이 쌍떵잎 구조를 하고 있다가 글루타민산이 들어가면 쌍떡잎의 잎자루 중심에 놓이고, 이노신산과 구아닐산이 들어오면 이 쌍떡잎을 결합상태로 묶어놓아 안정적 구조를 만들기 때문이다.
요리의 온도도 맛을 좌우하지만, 맛의 성분이 가짜 냉감과 가짜 온감을 주기도 한다. 고추의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신은 혀와 입안에 있는 TRPV1이라는 수용체와 결합해서 매운맛의 자극을 전달하는데, TRPV1은 열을 감지하는 수용체이기도 하다. 반대로 박하와 민트의 시원한 성분인 멘톨은 몸 표면의 냉감수용체인 TRPM8과 결합하여 냉감자극을 전달하기 때문에, 체온이 떨어진 것과 같은 몸의 반응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