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20세기 - 고리키에서 나보코프까지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이현우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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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슈킨, 투르게네프, 도스토에프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등 기라성같은 문학 작가를 낳은 19세기 러시아가 20세기에도 많은 문학가를 낳았다. 19세기 문학가에 비해 우리에게 낯선 작가들이 많은 이유는 아마도 공산주의가 지배했던 구소비에트 시대에 자유 진영과의 원활한 소통에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다. 20 세기 러시아 문학은 몇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대량학살이다. 말이 2천만이지, 우리나라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인구가 스탈린 통치 기간 중 2차대전 중 독일과의 전투와 정치적 탄압으로 죽어갔다고 하니 압도되는 비극의 양에 먼저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세대를 뒤덮은 비극은 문학과 예술 속에 스몄을 것이다. 전쟁과 혁명과 내전과 숙청과 탄압, 그 모든 삼켜버릴 듯 휘몰아지는 역사의 광풍을 통과한 시대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까.


20세기 러시아 문학을 살펴본다는 것은, 20세기 역사상 가장 큰 사건들을  겪은 러시아의 역사의 편린들을 더듬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들은 제정 시대의 부패와 가난과  항거와 혁명과 압제와 피튀기는 전쟁을 겪었고, 혁명의 완수 후에도 압제의 칼끝에서 날마다 날마다 죽어갔다. 어떠한 형태로든 역사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개인의 삶을 결정한 이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그 시대가 요구를 캐어내고 구석 구석에서 숨쉬는 사람들의 정신에 반향한 예술이기에 러시아 예술이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내가 학생 시절이었을 때, 지리 시간에 국가 단위의 러시아는 없었다. 대신 사회과 부도라는 지도 교과서에 커다랗게 자리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만이 기억난다. 그토록 큰 나라가 우리에겐  미지의 장소였다. 공포의 나라였다. 대부분의 헐리우드 액션 영화는 미국과 소련의 선과 악 대결에서 선인 미국이 악인 소련을 물리치는 내용이었다. 1917년부터 1991년까지 70년의 역사가 연방국으로서 소련이 존재했던 기간이다.  1917년 제정 러시아는 10월 혁명의 성공과 함께 종말을 고했다.  혁명 이전의 러시아 문학은 1917 혁명이라는 이 문제적 시간과 사건에 의해 의미를 부여받는 듯했지만,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혁명으로 건설된 사회주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남은 것은 문학이다.


그동안 소련은 북한과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어붙은 먼 땅, 시베리아와 연해주를 상기시키는 춥고 황폐하고 차가운 공산주의의 나라였다. 그래서 러시아 문학 하면 19세기 문학과 망명 문학을 주로 떠올린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위대한’ 러시아 문학은 19세기에 마무리된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리얼리즘 문학이고, 이후 체호프의 과도기를 거쳐 러시아의 리얼리즘 문학은 마감된다. 얼어붙은 먼 땅이라는 막연한 상상의 나라에서 꽃피운 문학들 역시 역사의 소용돌이를 비껴가지 못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8명의 작가 중, 노벨상 수상작가가 다수 있는데, 대부분 반체제 인사로 찍혀 작가 활동을 금지 당하거나, 망명의 길을 선택해, 외국어로 글을 쓰거나 하는 고초를 겪는다. 20세기 초반 정치적 격동기에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황금시대보다 더 많은 작품이 쏟아져 나왔으나 혁명 이후 흐름이 바뀌기 시작해서, 스탈린의 권력 구조가 안정된 이후 창작에까지 사회주의 이념이 강조되었고, 이로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위세를 떨치며 문학은 위축된다. 1953년 스탈린 사후부터 흐루쇼프가 실각하여 브레즈네프 집권까지 이어지는 대략 10년간의 해빙기를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완화되며 반체제 작가들이 활동하지만 결국은 솔제니친과 같이 추방되는 운명을 맞는다.


20세기 러시아 문학을 선도한 작가로 막심 고리키를 맨 처음에 다루고 있는데, 완독하지 못해서 내내 찜찜하고 궁금했던 <어머니>와 그의 문학적 세계를 저자는 일부 평론가들이 작품에 드러난 세계관이 지나치게 이분법적이고 도식적이라고 비판한다고 전하면서, 그 시대야말로 이분법적이고 도식적인 사회였기에 그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다양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며 따라서 그런 비판이야말로 도식적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옳은 말이다. 어떤 시대라 하더라도 보편적인 시대적 요구가 있기 마련이다. 격동기였지만, 그 숱한 피를 뿌린 러시아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안정되었었다고 믿는 우리 나라에서만도 70년대의 낭만적 문학과, 80~90년대 초반의 저항의 문학과 그 이후의 나른한 나르시스적인 문학, 그리고 이 시대의 문학이 시대적 요구와 흐름을 따라 함께  호흡하고 있는데, 세계 그 어느 역사의 순간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격동적 혁명의 전야에 어떻게 다른 문학이 더 위대할 수 있었을까.


이와는 반대로 혁명은 혁명의 당위성과 혁명의 잔인성 때문에 수없이 많은 개인의 희생을 낳기에, 반혁명 작가를 낳을 수밖에 없다. 자먀틴과 파스테르나크는 반혁명 대열에 선 작가들로서, 그들의 대표작인 <우리들>과 <닥터지바고>는 공식적으로 출간되지 못하는 작품, 그들 속에서는 부재하는 작품이었고, 대중들은 읽을 수 없었다. 숄로호프를 제외한 여기에 실린 나머지 작가  불가코프, 솔제니친, 나보코프 모두 작품이 출간금지 당해, 망명하거나, 고립된 삶을 살았다. 문학에 대한 탄압은 국외 출간 및 망명 문학으로 이어지며 닥터지바고 같은 일부는 자유진영의 자의적 해석으로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당의 반대로 끝내 거부해야 했던 경우가 닥터지바고를 쓴 직후의 파스테르나크이다.


플라토노프의 <코틀로반>과 <체벤구르>를 계속 못읽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상세히 다룬 플라토노프의 작품 세계를 읽으니 가장 읽고 싶은 책이 되있다. 러시아 철학은 논증이나 이론적 체계와 무관하게 진지한 문제를 사고하는 것을 철학으로 규정하므로 19세기 철학사에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가 한 장씩 차지하는데,  20세기 철학자에 아마도 플라토노프가 들어가지 않을까 예상될 만큼 문학 속에서 깊이 있는 사유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그는 철저한 사회주의였음에도 불구하고 반혁명주의라는 이유로 근 60년 가량 출판을 금지당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사회주의자 중에서도 이상주의자에 속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좌파도 우파도 아닌 현실 타협주의자였던 스탈린은 트로츠키 같은 극좌파를 비롯해 플라토노프 같은 투철한 사회주의 계열의 작가 역시 제거해야 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적 정신, 사회주의적 영혼이랄 게 없으니 사람들이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할 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갖게 되는 정서가 슬픔과 연민입니다. 플라토노프는 바로 그 정서에 가장 깊이 천착한 작가죠. (p92)


문학은 시대의 운명과 함께 한다. 실제 수용소의 경험으로 생생한 수용소 현장을 문학으로 쓰고 실상을 널리 알리며 반체제 활동을 해온 솔제니친은 막상 체제가 무너지자 반체제가 설 장소를 잃었다. 그는 소련이 가장 서방 세계에 악날함의 극치로 알려질 때에는 언론에서 가장 많이 언론에서 다루어졌지만 체제 비판이 자본주의에까지 이르자 서방세계는 그를 꺼려했으며 체제가 무너진 무너지고 20년의 추방 생활이 끝내자 이제는 비판할 체제가 없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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