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 가지 2 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 가지 2
서정오 지음, 이우정 그림 / 현암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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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몇달 전 읽은 그림 이야기와 천일야화가 함께 생각나서, 이렇게 우리 옛 이야기를 수집하고 책을 내신 분에 대해 다소 감동했고, 수집 과정에 대한 정보가 있을까 해서 인터넷을 뒤져봤다. 얼마 전 글쓰기 강연회에서 글쓰기 관련된 유튜브 강연이 있었다. 이 책과는 관계 없는 이야기지만,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후, '교육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라고 언급하면서 '학생들에게 안전교육을 강화하겠다'라고 했다는 말과 함께 강의를 시작했다. 우리는 그 아이들의 '안전교육'이라는 폭력이 아이들을 어떻게 희생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수집과정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는 않았지만, 강의의 주제가 책의 내용과 통하는 데가 있어서 긴 내용을 모두 보았다. 


서정오님이 옛이야기에 대한 생각은 이렇다. 옛이야기는 오랫동안 백성들 사이에서 전승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 옛이야기를 출판할 때에는 어떤 이유나 의도를 가지고 편집되어서 거기에 '우리 옛이야기'라는 제목을 붙이면 기나긴 민중의 역사를 왜곡할 수가 있다. 옛이야기는 작가 마음대로 고치지 말아야 하며, 그 모습 그대로 전해져야 하느냐. 작가가 옛이야기를 고칠 때에는 모두가 공감하는 까닭이 있어야 한다. 이오덕 선생님은 그것을 역사의식이라고 이야기했고, 서정오님 스스로는 강의에서 민중성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예로 교과서에 실린 게으름뱅이가 소가 된 이야기가 있다.  <소가 된 게으름뱅이>는 1963년 처음 교과서에 실렸지만 그 이후 교과서가 바뀔 때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단골 소재로 계속 실렸고, 그래서 누구나 알고 있는 스토리가 되어 버렸다. 따라서 그것은 국민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소가 된 게으름뱅이는 어디에서 나온 이야기일까. 저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1963년에 처음 실린 그 이야기의 출처는 1980년에 출판된 저서로 되어 있고, 그 이전 그러니까, 일제강점기때 출판된 여러권의 중요한 한국전래동화집에서는 이 이야기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문헌을 뒤진 결과 '소가 된 게으름뱅이' 대신 '소가 된 사람 이야기'가 많은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실제로 우리 옛 이야기 속에는 게으름뱅이가 아니라 일반 머슴이 여우가 둔갑한 노인이 준 떡을 먹고 소가 된다. 소가 된 사람은 무 또는 배추를 먹이지 말라고 얘기한다. 그는 그것을 먹고 다시 사람이 되어 노인을 찾아간다. 노인은 이상하다 생각하고 그 떡을 자기가 먹어보고, 본인이 소가 되고, 머슴은 그 소를 장에 팔아 잘먹고 잘산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의문은 왜, 어떻게 1963년 처음 교과서에 실리기 전의 우리 구전 문학과 전래 문학의 문헌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내용이 교과서에 실렸느냐는 거다. 우리가 가진 증거로는 주인공이 소가 되는 과정은 요물한테 홀려서 즉 남의 술수에 넘어가 소가 되었다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 복수하는 이야기다. 이것은 게으름을 피우면 소가된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이야기다. 남을 부리는 지배자들은 피지배자들에게 게으름피우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부지런히 일하라, 게으름피지 말아라 라고 말했을 때 그 저의를 의심해봐야 한다. 그것이 정말로 나와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를 의심해봐야 한다. 


우리 옛 이야기는 부지런해라, 게으름피우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가 거의 없다. 대부분의 게으름뱅이 이야기는 게으름뱅이가 벌을 받는 이야기가 아니라, 게으름뱅이가 그 게으름뱅이 그 상태 그대로 복받아 잘사는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어린애가 아니다. 부지런하게 살지, 게으르게 살지는 자신이 쌓아온 가치관에 따라 개인이 결정할 문제이지, 공교육을 통해 억지로 배워야 하는 가치가 아니다. 지배 세력의 이익을 위한 메시지를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다그치고 윽발지른다면 문학이 문학이 아니다. 값진 교훈일수록 그것을 이야기 뒤에 숨겨놓지, 값싸게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다. 10이면 10 똑같은 교훈을 받는다면, 그것은 옛사람들에 의해 오래도록 전달되어 온 스토리가 아니라, 즉, 교과서 상에서 교훈을 강제하는 메시지는 어떤 의도에 의해 한사람의 작가에 의해 교훈을 전달할 목적으로 다시 쓰여졌을 가능성이 있다. 독자인 우리들은 교과서에 쓰여진 옛이야기를 읽을 때, 그것들을 가려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문학이라는 것이, 여러가지 해석을 동시에 내릴 수 있도록 메시지가 내용 뒤에 숨겨져 있어야 하고, 놀이로서의 기능을 가져야 한다. 방구쟁이, 게으름뱅이, 느림보, 바보 등의 주인공들이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어 즐기고 스스로 결정하는 이야기, 그것이다. 서정오님이 연구한 우리나라 글의 바보들의 특징은 바보로서 삶을 즐기고 풍부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지, 바보라는 상황을 극복하고 이겨나가야 하는 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나라 이야기들 속에서 발견되는 바보들, 모자라는 사람들, 삶의 가치를 스스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는 우리 이야기들이다. 이상이 서정오님의 강의에서 하신 말씀을 요약한 내용이다. 비록 이야기 수집에 관련된 일화는 들을 수 없었지만, 우리 옛이야기에 대한 작가의 가치관, 그리고 교과서에 실린 옛이야기의 변형에 관련된 우려 같은 더욱 좋은 말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책은 개정판으로, 오래 전에 60여가지의 이야기를 주제로 나왔고, 영어, 일본어, 베트남어 등으로 번역되어 많이 팔렸다고 한다. 그림이 수집한 270가지의 동화 이야기를 읽었을 때의 느낌과는 확연히 다르다. 재미면에서는 더 이야기가 풍부하고, 더욱 서민적이고 민중적이다. 아주아주 가난한 사람들, 부모를 일찍 여읜 형제 자매들, 자식을 낳지 못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들이다. 임금이나 왕자 공주에 대한 이야기는 드물다. 신데렐라와 숲속 공주처럼, 떠돌이 왕자를 통해 신분 상승을 하거나, 계모에게 오랫동안 구박을 받는 이야기들보다는, 모험과 기적, 인연과 응보, 우연한 행운 같은 이야기들이 많다. 몹시도 가난하지만, 생각 없이 남 혹은 정승, 짐승 혹은 도깨비 등을 도와 자신은 어려운 처지에 몰리게 되었으나, 후에 보답으로 큰 부자가 되고 오래오래 늙도록 잘살았다로 끝맺는다. 호랑이와 같은 동물이, 사람처럼 말도 하고, 행동도 하며, 사람들과 교감하고 복을 주는가 하면, 너무 가난해서 장가도 들지 못한 총각들을 구제하기 위해 도깨비며 호랑이들이 은혜를 베풀기도 한다. 


1편, 2편으로 두 편에 걸쳐 구성되어 있고, 우리 옛이야기라 어린이가 있으면 한 편 한편 읽어주면 100일동안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으나, 어른이 우리의 민속적인 스토리텔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읽는것도 무척 흥미롭다. 오래전부터 우리 민속 이야기를 동화가 아닌 자료, 혹은 성인용 책으로 묶여져 나온 것을 읽고 싶었었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이 책이 존재하고 있었던 걸 모르고 있었다. 그림이 어떤 경위로 그들의 구전 민담을 수집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면서, 우리 이야기에 대해서는 더욱 무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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