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말하다 - 폴오스터와의 대화
폴 오스터 지음, 제임스 M. 허치슨 엮음, 심혜경 옮김 / 인간사랑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강렬한 포스의 폴 오스터의 사진이 검은색 바탕의 표지를 거의 다 차지하고 있다. 눈빛이 조금은 부담스럽다. 폴 오스터는 현존하는 영미 작가중 우라나라에서도 전집이 세트로 나와 있을 정도로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하나이다. 그의 초기 작품이 추리소설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어 장르소설로 이해되기도 하는데 작가 자신은 이러한 평가를 자신의 소설에 대한 몰이해로 본다. 추리소설로 알고 읽는다면 실망할 것이라는 얘기도 덧붙인다.

폴 오스터가 각종 매체와 인터뷰한 내용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각 글마다 각기 다른 인터뷰어가 오스터와 대화했고, 인터뷰어들의 직업도 평론가와 학자 기자 등 다양하다.  인터뷰 주제 기획 매체의 관심사와 책이 출간된 시기를 기점으로 제각각이다. 한 작품에 대한 이야기만을 한 것도 있고 그의 전반적인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내용도 있고, 영화 제작 관련한 인터뷰도 있다.   전체적으로 일관된 내용이 있다면 그것은 오스터의 글쓰기 방법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작품에 대해 얘기를 하거나 혹은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라도 결국은 소설가의 영원한 테마는 왜 쓰는가일 것이고 독자의 관심사는 어떻게 이야기가 잉태되는가 일 것이다.

오스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위대한 소설가는 타고 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오스터는 순수문학을 하는 작가이고 스토리텔링을 소설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 에밀 졸라의 경우 소설의 모든 구조와 스토리를 쓰기 전에 모두 결정하고 밑그림을 그린 후에야 글을 시작하는데 비해 오스터식의 글쓰기는 제목과 첫문장에 따라 영감이 이끄는 대로 글쓰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일찍이 미켈란젤로가 자신은 석상을 조각하는 것이 아니라, 석상이 속에서 꺼내달라는 아우성을 들으며 끌과 망치로 그들을  끄집어내는 것이라고 했는데, 오스터의 경우, 그의 머리 속에서 이야기들이 꺼집어 내어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듯하다. 미켈란젤로가 그 숱한 돌덩이 중 하나의 돌을 발견하듯때로 10년을 묵어서 혹은 그 이상의 숙성 기간을 통해 오랫동안 머리속에서 떠돌다가 어느 순간,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되어 소설로 나올 준비가 되어 있는 이야기들이 머리 속에서 엄선된 단어와 거듭 수정되고 또 수정된 문장을 통해 소설이 되는 것이다. 거의 모든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야기의 탄생 과정을 한결같이 일관되게 털어놓고 있다. 그리하여 하나의 문장은 다음 문장을 부르고, 그 다음 문장을 부르고, 뭉처진 실타래에서 실이 풀려 나오듯 그렇게 머리속의 이야기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만일 모든 것을 계산해서 짜 맞추고 결말까지 모두 정해진 다음에 그 틀 위에 문장만을 채워나간다면 골방에 틀어박혀 모험 없는 글쓰기를 하는 자신이 얼마나 따분할 것이냐는 거다. 

일상 속 아주 작은 사건들이 계기가 되어 소설로 탄생한다. 탐정회사로  잘못 알고 걸려온 전화 두 통이 장편소설의 단서가 되고, 어릴 때 이모부가 남기고 간 산더미같은 책 더미 역시 소설의 재료가 된다. 폴 오스터는 같은 것을 추구하지 않는 것.  매번 새로운 형식을 탐구하는 것이 소설가의 직무라고 생각한다. 한번 쓴 소재 한번 시도했던 형식과 내용들을 버리고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기 위해 고통스런 날들을 골방에 틀어박혀 홀로 글자들과 싸운다.

오스터가 원고를 쓰는 방식은 그가 아무리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라 하더라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는 믿어지지 않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아직도 손글씨로 원고를 쓰고 최종본을 수동 타자기로 타이핑한다는 것이다. 펜으로 모눈 종이에 글씨를 쓰고 다시 읽고 고치고 몇겹씩 겹치다보면 읽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러면 그것을 다시 새 종이에 베껴쓰고 수정을 반복한다. 그렇게 서너번 새종이에 쓰고 나서 최종 원고본을 타이핑 하고 나면 그 타이핑한 원고를 다시 또 수정하고 또 수정해서 너덜거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타이핑 원고 단계 역시 두세개 정도 지나야 최종 출판사에 보낼 수 있는 원고가 완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루에 고작 두 단락 정도를 쓴다고 한다. 간혹 책을 읽다 보면 자랑스레 몇달만에 집필을 끝냈다고 후기 같은 곳에 적는 저자들이 있는데 하나의 출판물이 불멸의 대작이기를 처음부터 포기하는, 예술가로서 부끄러운 고백인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한장짜리 블로그 리뷰 쓰는데도 몇시간 걸리는데 책을 소설을 장난으로 쓰나. 

그는 컴퓨터가 없다. 인터넷도 하지 않고 이메일 계정도 없다. 이게 대체 언제적 인터뷰인가 의심스러워서 몇번이고 확인했지만 2005년과 2008년도 등 비교적 멀지 않은 과거에 실린 인터뷰 몇 편에 실린 동일한 내용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전적인 아날로그 라이프이다. 인터넷도 없이 혼자 방에 틀어박혀서 하루종일 손글씨로 글씨로 소설을 한줄 한줄 써 내려가는 길. 그것이 그러는 소설가로서의 책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터넷이 없는 세상, 세상과 단절된 그 좁은 세계에서 그는 넓고 넓은 자신만의 소우주를 살아간다. 그래도 고독은 고독이고 외로움은 혼자만이 감당해야 할 몫일 것이다. 소설이, 자신의 소설의 주인공이 물리적으로 밖으로 살아 나와 적막 속에서 그에게 말을 걸고 몸을 만지지는 않을 것 아닌가.  그것이 얼마나 힘겨운 작업인지 알기 때문인지 그는 글쓰기를 꿈꾸는 젊은이에게 글쓰기를 직업으로 추천하지는 않는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겨운 노동이나 그 가치를 인정받아 받는다 하더라도 생활고를 계속 벗어나기 힘들며 충분히 먹고살 정도의 돈을 벌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에게도 인생의 역경과 반전을 경험했다. 물론 정신적인 역경도 있을 수 있겠지만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란 아마도 경제적인 궁핍일 것이다. 시집 몇 권을 출판하고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 지인의 출판사에서 어렵게 에세이 한 권을 써내 그것으로 인정받은 후에도 그는 경제적으로 곤궁한 생활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글쓰기를 포기하고 생업에 매달려야 할 위기에서 그를 구해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얼마간의 유산을 남겼고 그는 생업을 위해 작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에게는 아버지의 슬픈 죽음과 끝갈때 까지 치닫던 자신의 경제적 궁핍이라는 두 우연의 만남이 그로 하여금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게 해준 운명같은 것이였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돈은 가족과 자신을 수렁에서 건져 먹고 자고 입혀 주었으며 그에게 소설 쓸 시간을 벌어 주었다. 아버지가 그 때 죽지 않았다면, 오스틴이 거칠고 매정한 생업의 길 속에서 번민하는 동안, 길가의 돌에서 조각상이 되어 나오기를 꿈꾸는 미켈란젤로의 돌처럼 그의 머리속 이야기들은 끝내 빛을 보지 못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훌륭한 소설가 들 중에는 시인이 많다. 그 역시 시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시인들의 맑은 정신과  단어와 문장으로 한줄 한줄 시를 만들어가는 그 치밀함이 소설가의 위대한 상상력과 결합할 때 독자들은 매력적인 스토리와 유려한 문장의 조화로운 소설을 만나게 된다. 시를 쓴 후에는 산문을 썼다. 초기에는 희극도 썼고, 나중에는 영화 대본도 썼으며 직접 영화를 감독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본업은 소설이고, 자신은 자신이 해야 할 일, 아직도 머리 속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작품들을 쓰기 위해 소설가로 돌아가고 골방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원래는 폴 오스터의 작품을 몇개라도 읽고 이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조금씩 읽다보니 인터뷰 형식이라 표지의 부담스러움과는 달리 술술 잘 읽혀서 그냥 다 읽어버렸다. 이 가을 폴 오스터에 꽂혔다면 작품을 선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 이미 그의 작품을 하나라도 읽었다면 그의 작품 세계 특히 작품 하나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아주 상세한 작가의 설명이 소설 못지 않은 재미를 줄 책이다. 표지가 좀 산뜻하게 바뀌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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