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수 혁명 - 안전한 식수를 향한 인간의 권리와 투쟁
제임스 샐즈먼 지음, 김정로 외 옮김 / 시공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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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의 주제는 물, 씻는 물도, 강물도 아닌 먹는 물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은 식수 라는 주제에서 단 한발짝도 옆길로 새지 않는다. 물에 대한 진지하고 깊이 있는 탐색과 균형잡힌 정치적 견해는 가장 흔하고, 가장 무심하게 대하고 있는 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처음 두 개의 챕터는 식수의 역사, 식수와 관련된 법률의 역사, 신화 등을 통해 물의 세계로 흥미롭게 독자를 인도한다. 다음 세 개의 챕터는 생수를 포함한 식수의 안전에 전념한다.  식수에 대한 생물학적, 화학적 오염, 테러리스트의 공격 등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식수의 위험 가능성을 알려준다. 그러나 제임스 셀즈먼은 이러한 위협에 대해 어느 쪽으로도 편중된 정치적 견해를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균형잡힌 어조로 어느 수준만큼의 위험을 안전이라는 개념 내에 수용하고, "보이지 않는 위협" 가능성에 대해 얼만큼의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에 이를 필요가 있음을 밝힌다. 마지막 파트인 두 개의 챕터는 최근의 정수 기술과 민영화 문제를 다룬다. 물 민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반인의 인식과 실제 민영화에 따른 서비스 질에 대한 대학의 연구 사례를 통해, 국가가 통제하는 조건하에서의 민영화가 생각만큼 거대 자본의 물 독점이라는 피해의식으로만 볼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볼리비아 정부는 1990년대 말 코차밤바시의  서비스 향상을 목적으로 민영화 개혁을 시도했는데, 계획이 시작되자마자 길거리 시위와 폭력 사태로 확대되는 격렬한 반대로 무산되고, 극빈층들은 여전히 수돗물의 혜택을 못받아 부자들보다 열 배 가까이 넘는 돈을 지불하고 물장사들에게 물을 사 먹는다. 코차밤바 선언으로 알려진 이 수돗물 민영화 반대 선언문은 권리 대 시장 인간의 필요 대 기업의 탐욕을 대변한다. 그리고 이 책은 식수의 본질 즉, 물을 인간의 기본적 권리로 보아야 하느냐 거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보아야 하느냐 것의 사이를 고대 이집트 로마 시대의 신화, 종교적 성수, 영화와 문화 속의 물에서부터 최근 UN결의안 사이를 종횡으로 누비며 끊임없이 저울질한다. 

"물은 인간의 근본적인 권리이고 모든 정부는 이 공공재를 보호해야 한다 따라서 물은 상업화 되어서도 안되고 그 사유와 되어서도 안되며 상업적 목적으로 거래 되어서도 안된다." -코차밤바 선언문 중

식수 관리에 대한 다양한 종교와 신화, 전통적 문화를 살펴보면 목마름의 권리가  보장되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목마른 자가 식수에 접근하는 것은 기본 권리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플라스틱 생수의 등장과 날카로운 상승세의 시장 확대, 그로 인한 수돗물 기피, 공공 식수대의 감소 현상 등의 최근의 변화는 이러한 기본 적 목마름의 권리가 아직도 유효한가 혹은 유효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제임스 셀즈먼은 양극단의 견해에 대새 시종일관 균형잡힌 시각으로 일관한다. 거대자본의 식수원에 대한 독점과 이로 인한 물자원의 고갈에 따르는 환경 파괴, 막대한 이익창출 등의 생수시장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을 아끼지 않으면서 정치적으로 어느 편을 옹호하지도, 자극적으로 선동하지도  않으면서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식수에 대한 예민한 사안들을 하나씩 하나씩 정면으로 풀어 나가면서 식수에 관련된 팩트들을 꼼꼼하게 제공하고 독자들에게 사고의 전환과 판단의 몫을 남기는 객관적 글쓰기는 다소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환경에 대한 문제는 알아갈수록 점입가경이다. 물 속에 의약품이 섟여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아플때 먹는 온갖 종류의 약물, 가축의 대량 사육을 위해 사료에 섞어 멕이는 항생제와 스테로이드들이 신체 대사와 변기와 하수처리장을 거쳐 자연 속 지하수로, 식수원으로 흘러 들어 돌아 결국 다시 식수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10여년 전 30개 주의 80퍼센트의 개울에서 발견된 82개의 오염물질의 대부분이 의약품, 개인미용 및 위생용품이었으며 대도시를 비롯한 정화된 식수에 56개의 의약품과 그 부산물이 들어가 있다는 AP의 보도가 그 실상을 말해준다. 문제는 '오염이 법적 허용치를 벗어나지 않는다 해도 그 물이  여전히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이해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원가의 수백 배 수천배를 주고 사서 마시는 생수는 한술 더 뜬다. 생수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우리가 고급 레스토랑이나 카피전문점에서 와인 가격에 해당하는 값을 지불하고 사먹어야 하는 푸른색의 탄산수 페리에에서 우연히 발견한 허용치 네 배에 해당하는 벤젠 화합물의 존재로부터 제기되었다. 미 환경보호국의 규제에 따라 매일 검사하고 오염물질이 발견되면 신속히 주민에게 알려야 하는 수돗물과 달리, 식품의약국의 규제를 받는 생수는 간헐적 매주 검사에서 오염물질이 발견되더라도 이를 줄이면 되지 사람들에게 알릴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수에 대한 엉성한 식품의약품의 규제 또한 주경계를 넘어 거래되는 30~40퍼센트에 해당하는 브랜드에 한해서만 적용되며 주경계 내부에서 생산 소비되는 나머지  2/3는 그마저 도 피해가고,  거의 무방비상태의 주정부의 규제 내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구글링을 해보았으나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듯하나 구체적인 정보는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안전에 관한 한 우리가 옛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믿고 아무 거리낌 없이 마셔온 물이 최근 100여년 전에 와서야 질병의 원인으로 인싣하게 된 것처럼,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은 그 잠재된 위험에 무감각해져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옛 사람들이 마시는 물을 두려운 눈으로 볼 수 있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은 으레 자기가 마시는 물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사실이다. 내가 살아온 짧은 생애 동안에만도 많은 것들의 가치가 변하고 역전하기를 반복했다. 자연과 전통의 가치는 자본과 물질 앞에서 고리타분하고 불편한, 타도 대상이었다가, 환경파괴가 정점을 찍자 어느새 여유롭고 지적인 것의 상징이 되었다. 자연의 고유 가치는 변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마지막 챕터에서 제임스 셀즈맨이 언급한 말이 생각난다. 우리가 가정에서 빨래, 목욕, 세차, 청소, 놀이 등을 위해 마구 흘려 보내는,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수돗물은 음용 식수로서의 기준에 맞게 정화되었다. 그러나 그 수돗물을 음용에 사용하는 양은 전체 정수된 물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99%의 음용 이외에 소비되는 물을 목마름의 권리로 확장하여 국가에게 권리로서의 물을 자유와 평등 같은 기본 권리로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억하고 살아야 할 것은, 아직도 지구상의 남쪽 반구의 대다수의 어린이와 여성들은 물 한동이를 구하기 위해, 자기 몸무게의 반 이상의 물통을 지고 나르며 학교를 가지 못하고, 박테리아와 세균이 들끓는 오염된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으며, 가난한 도시의 수도시설이 미치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은 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곳에 사는 같은 도시의 부자들에 비해 20배의 물 값을 지불하며 물차에서 물을 사먹는다는 사실이다. 기본 권리는 식수의 99%를 비음용에 사용하는 사회에서가 아니라 이런 곳에서 주장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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