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렌즈로 세상을 찍다 - 여행하는 사진가 케이채의 사진과 이야기
케이채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DSLR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대한민국은 온국민이 사진작가가 됐다.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최근에야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 워낙 좋아지고 사진의 목적이 SNS를 통한 공유와 교감에 있다보니 몇년 전보다는 그 열기가 식은 것도 같지만 아직도 매년 새기종의 바디와 렌즈들이 새로 나오고, 미러리스라는 새로운 종이 등장한 걸 보면 사진찍기 취미에 대한 열기는 여전한 것 같다.


작가 케이채(한국 사람임, 성이 채이고 이름이 K로 시작되는 듯)는 사진을 찍으려면 몸이 고달파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걷는다. 걷고 또 걷고 세상의 끝까지 걷는다. 그리고 그는 기다린다. 하루 종일, 어느 한 순간 포착해야 할 찰라를 위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영원히 사라질 한 순간의 빛과, 색감과, 실루엣이 주는 분위기와, 그 곳의 모습, 느낌을 담기 위해, 그 찰라적 순간을 영원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몸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가 프레임에 담아 펼쳐놓은 사진의 장소는 아프리카와 남미, 유럽 등 지구 곳곳이지만, 우리가 꿈꾸던 이국적이고 낭만적이거나 거대한 자연이 숨막히게 하는 그런 멋있는 곳이 아니다. 남미의 어느 구석, 아프리카의 어느 섬, 북구의 어느 도시,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일상들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만, 사진에 담긴 작가의 설명을 읽는 만큼 감동도 느낌도 풍부해질 수 있다. 별 의미없이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해 보이는 사진 한 장에 녹아 있는 것들, 작가가 그곳에 도착해서 묵고, 먹으며 카메라를 들어 찰라를 포착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사진에 담겨있는 자신의 생각, 사진 속 사물과 사람 및 동물들과의 교감 과정, 그리고 사진가로서의 철학, 뭐 이런 것들을 함께 읽으니 같은 사진이라도 다르게 보인다. 플리커 같은 사이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대단한 자연 현상을 포착한 것도, 기가막히게 아름다운 모델들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의 사진들을 통해, 진정으로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한 순간을 프레임에 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노력들, 태도, 그리고 그 과정들을 공유할 뿐이다. 그의 사진에는 진정성이라는 것들이 들어있다. 그는 클리쉐를 피하기 위해, 카메라 셧터의 누름을 극도로 자제한다. 하루 종일 기다려서 한 번의 셧터를 누르고 하나의 사진을 얻는다.

 

 

이것은 내가 얼마 전에 본, 제주도의 사진작가 김영갑의 자서전(및 작품집)에서 본 느낌과 많이 같으면서도 또 많이 다르다.  어떤 찰라를 담기 위해 수없이 많은 날들을 기다렸다는 점은 같고, 다른 점이라면 김영갑의 사진은 일반인이라면 시도조차, 접근조차 불가능한 신비하고 경이로운 세계를 연출해, 무한한 감동을 준 반면,  케이채는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의 요소들이 빚어내는 어떤 순간 마법적인 조합으로 작은 감동을 줄 때, 1초라도 늦으면 해체될 조합을 순간적으로 잡아냈다는 점이다. 빛이 빚어내는 마법, 순간은 연기처럼 증발되지만,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이국적인 곳으로 여행할 때에나 카메라를 이고 지고 다니면서 아들에게 남편에게 좀 들어달라고 사정사정 해가며 사진을 찍고, 하드 디스크 한 구석에서 고히 잠재우는 나는 이런 고상해 보이는 취미를 가질 자격이 없다. 더 추워지기 전에, 양동시장 뒷골목, 재개발 계획으로 모두가 떠난 낮은 담의 아주 작은 서민 주택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던 그 곳의 마지막 모습을 담으러 카메라를 들어봐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