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오른다
히라타 오리자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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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출발 선상에서 막 스타트를 뛴 아이들의 이야기.


  히라타 오리자라는 이름이 낯설지만 일본의 유명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그의 첫 소설은 담백하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데 있어 그 어떤 장치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마치 어느 고등학교 연극부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꾸밈없이 그려냈다. 호흡은 느리지만 그 어떤 과장 없이 이야기를 그려내다 보니 '연극'에 대한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호기심과 연극에 있어서 어떻게 연습을 하고 호흡을 맞춰 나가야 하는지를 상세히 그려냈다. 조미료를 버물려 감칠맛 나게 이야기를 끌어가지 않지만 연극에 대한 순수함과 열정이 시간이 갈수록 강도가 높아진다. 처음에는 좋아서 시작한 아이들이 하나의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연극'의 참맛을 아는 요시오카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서서히 성장한다.


연극부 부장인 '나'의 시선으로 <막이 오른다>를 이끌어 가고 있지만 알에서 막 깨어난 병아리처럼 어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나인 다카하시와 더불어 연극부 아이들이 각자 제 역할에 맞는 옷을 입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생동감있게 다가왔다. 내가 다카하시와 같은 나이였을 때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서스럼없이 무대를 서는 것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동적인 일 보다는 정적인 일을 좋아하다보니 연극부처럼 나는 드러내는 일이나, 나를 성장시키는 기회 마저 없었다. 학생의 신분에서 공부를 해서 대학을 진학하는 일과 연극부원으로 활동하는 일이 서로 부딪힐 때도 있지만 '연극'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땀을 흘려야 하는지 <막이 오른다>를 통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연기를 하는 배우의 모습과 비록 관객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극을 완성시키고 배우들이 그 배역에 얼마만큼 힘을 들이며 합을 맞추어 가는 과정 또한 연출가의 일이다. 마치 합창단을 이끄는 지휘자처럼 극을 할 때마다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찾고 매번 부족한 점을 고치는 것 또한 다카하시가 할 일이었다. 유코와 나카니시, 가루루, 와비스케의 활약 덕분에 그들이 목표로 한 구 예선과 도 예선을 1위로 통과하고 전국 대회에 출전하는 기회를 얻었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아이들이 한층 더 성숙해지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뚝심과 노력에 대한 성과도 있겠지만 요시오카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가 한층 더 돋보였다.


성장소설을 읽다보면 대부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추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서포트 해주는 선에서 이야기가 끝나지만 <막이 오른다>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인생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처럼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곳에 한발짝 더 성큼 다가섰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이야기가 주축이지만 아이들을 옆에서 돌보던 요시오카 선생님의 이야기는 센세이션 했고, 아이들의 입장에서의 고민과 좋아하는 일과 안정적인 일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다시 용기를 내어 다가선 요시오카 선생님의 이야기가 곁들이면서 한층 더 소설의 결말이 매끄럽게 다가왔다.


집밥을 먹는 것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책을 읽다보니 소소한 재미와 열정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순수한 열정과 그 열정사이를 오가는 아이들의 풋풋함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다소 호흡은 느렸지만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하기 위해 과한 조미료 하나 없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음식을 맛깔스럽게 하기 위해 과한 조미료를 쓴 음식은 처음에는 맛있지만 이내 맛이 질리곤 하는데 히라타 오리자의 책은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는 집밥처럼 간결하지만 좋았던 한 때처럼 순수한 열정을 오롯하게 펼쳤던 아이들이 이제 막 그 열정에 눈을 뜨고 출발 선상에 한발짝 발을 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다. 한 번 읽고, 두 번 읽으면 더 좋아지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


요시오카 선생님은 종종 '리얼과 픽션의 경계'에 대해 말한다.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면 관객은 그것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꼭 리얼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 p.47


"괜찮아, 가는 거야! 파이팅!"

전체 리허설 후에 선생님은 그렇게만 말했다. 그러고서 나를 불러 부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세세한 코멘트를 해주었다. 그것을 부원들에게 어떻게 전할지도 더불어 지도해주었다. 누구에게는 꼼꼼하고 단호하게, 또 누구에게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부드럽게. 이런 걸 생각하면서 말하는 것도 연출가의 일이라고 했다. - p.52


"배우는 말이야, 타산적이라서 자신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연출가라면 인간적으로 아무리 싫어도 그 사람을 신뢰하게 돼." - p.105


아무튼 내가 읽은 소설들은 이런 이야기를 굉장히 섬세하게 잘 그려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소설로 각본을 쓰자니 뭔지 모를 괴리가 느껴졌다. 그럴 것이 우리는 실제로는 우리 자신에 대해 이렇게 잘 알고 있지 않다. 알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고민이 많다. 이렇게 글로 읽으면 아아, 그래, 하고 공감하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 p.142


수업이 시작된다.

내가 쓴 대사가 목소리가 된다. 전에도 이런 경험은 있었지만 이렇게 제대로 된 긴 작품은 처음이다. 

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쾌감.

쑥스러운 기분도 들지만, 내가 쓴 문장이 누군가의 입을 통해 소리가 되어가는 것은 역시 근사하다. - p.148


정말로 연극은 연습을 많이 한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연극이 지루해질 때가 있다. 그것은 우연의 재미에 계속 의지하다 보면 재미의 질이 떨어지고 단지 타성에 빠져버리기 때문이라고 선생님은 설명했다. 따라서 계산된 연기만이 살아남을 수 밖에 없다고.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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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클하면 안 되나요?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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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순간 느껴지는 울컥한 감정들.


 ​예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어렸을 때는 내 나이의 또래들이나 사람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건축물에 시선이 갔다면 시간이 갈수록 화려한 모습 보다는 수수함이 느껴지는 자연적인 모습에 시선이 간다. 들판에 핀 꽃이나 계절에 맞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보며 마음이 몽글거린다. 마스다 미리의 <뭉킁하면 안 되나요?>를 읽으면서 뭉클이라는 단어 속에 수 많은 단어와 의미가 내재된 언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느낀 뭉클이라는 감정 속에서는 감동적인 뭉클도 있지만 이성간의 끌림을 엿볼 수 있는 매력도 스며들어 있다. 다양한 뭉클이 마스다 미리의 에세이 속에 숨어져 있고 우리는 그것을 '뭉클'이라고 한다면 하루에도 몇 번씩 뭉클거리는 감정의 높낮이 속에 살고 있다.


늙어서도 자신의 연구를 계속하는 깊이 있는 옆얼굴. 이런 사람에게 사랑의 말을 들은 과거를 가진 여자는, 학교에서 인기 있는 남자에게 고백받은 여자보다 우월감을 맛보지 않았을까? 지금 만약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아마 농구부 주장에게 사랑 따위 느끼지 않을 거다. 교실을 찬찬히 둘러보고, 수수한 가운데에서도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가진 남자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남자가 주뼛거리며 하는 "좋아해"라는 말을 들어보고 싶다. - p.52


마스다 미리가 느낀 뭉클거리는 감정 속에 나 또한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어 책을 읽었을 때 무척이나 공감되었던 이야기였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꽤 오랫동안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자주는 아니지만 일주일 혹은 한 달에 몇 번 씩 도서관을 찾아 책도 빌리시고 책도 읽으시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나이가 많으셔서 걸음걸이도 불편하고 기운도 없으셔서 한 두 권의 책만 빌리셨지만 오실 때마다 봉지에 사탕 몇 개를 사오셔서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할아버지가 읽으시는 책들이 대부분 우리들이 읽을 수 없는 어려운 책을 읽고 계셨던 것이 기억이 난다. 눈이 안 좋으셔도 돋보기를 끼고 책을 읽으시던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외할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그 때마다 가슴이 뭉클 했던 기억이 난다. 더불어 나이가 많이 들어도 늘, 책을 읽고 배우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던 것도.


어쨋든 그 남자아이, 어른이 되면 여자들이 그냥 두지 않을 듯. 지금은 딱히 눈에 띄지 않는 외모였지만, 어른이 되면 결국 착한 인성이 인기를 얻는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멋있는 건 믿을 게 못 된다. 좋겠네, 앞으로 그 남자아이를 만나는 여자아이들. 어떤 사랑을 할까? 그를 생각하며 괴로워서 우는 밤이 있다니 부럽다. 그런 그들의 미래 전부를 뭉클한다. 내게는 분명 이제 그런 신선한 사랑은 찾아오지 않겠지. 문을 잡아준 것뿐인 일로, 나는 왠지 센티해진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 p.67


나이가 들수록 사람에게 보는 매력 포인트가 달라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교복을 입고 상의 와이셔츠를 걷어 열심히 운동하는 남자 아이에게 시선이 갔다면 요즘에는 날렵한 몸매에 걸맞게 자기만의 색을 뚜렷하게 드러낸 옷맵시를 가진 남자에게 시선이 간다. 남자 뿐만 아니라 여자에게도. 더불어 요즘에는 책이나 마트에서 산 물건을 배달해주시는 기사님 때문에 뭉쿨해지기도 한다. 오토바이나 차를 타고 와서 무거운 짐을 한아름 안고 와서 물건을 건네주실 때마다 밥벌이의 무게감이 절로 느껴진다. 어느 때는 비가 오는 저녁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에 무거운 짐을 나르고 내려와 숨을 헐떡거리는 기사님을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이렇듯 마스다 미리의 <뭉클하면 안 되나요?>는 내가 느꼈던 감정의 뭉클거림이나 평소 느끼지 못했던 순간순간에 느껴지는 울컥한 감정들이 모두 스며져 있다. 섬세하고 예리한 글들이 눈길을 사로 잡을 뿐 아니라 사소하게 화가 치밀어 오는 경우도 있지만 이렇듯 가슴이 몽글거리는 감정들이 진하게 베어져 올 때도 많다는 것을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느낄 수 있다. 감정의 변화가 종이 한 장 차이 만큼이나 섬세하고 미묘하듯 느껴지는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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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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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고 섬세한 감정들.


 하루의 일과를 돌이켜 보면 마스다 미리의 책 제목처럼 '오늘도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라고 조용히 읊조리는 화도 있겠지만 경중에 따라서 문득문득 울컥 치밀어 오른 화도 있다. 당시에는 말을 못했지만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상대방이 무심코 한 말에 화가 치밀어 오르고, 돌이켜 볼수록 화가 난다. 때로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의 가족이나 친구에게서 듣는 말이나 행동 때문에 사소하게 토닥거리기도 하지만 어렸을 때와 달리 나이가 들어서는 화를 내기 보다는 화를 삭히는 편이지만 때론 마음이 많이 상할 때는 마음 뿐만 아니라 얼굴에도 그대로 베어져 나온다.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은 역시 이런 말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것도 몰라?"

이것은 상당히 슬퍼지는 말.

나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싫다.

"그런 것도 모르는 것"은 "아는 것이 당연하잖아"라는 말. 자신의 당연함을 강요하다니 실례가 아닌가 생각한다. - p.151 


보통 화가 나는 경우는 마스다 미리의 글 처럼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면서 나를 위하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건네는 말이다. 보통 명절 때 친척들에게 듣는 일상적인 인사말 조차도 부담이 될 때가 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기에 건네는 인사가 상대방에게는 비수처럼 꽂히는 사례가 많아 일상적인 인사를 묻는 대신 가벼이 인사를 하곤 한다. 어쩌면 그것 또한 내가 듣기 싫었던 말이기에 상대방이 오랜시간 고민하고 가장 듣기 거북한 소리 일 수도 있기에 가급적이면 형식적인 인사말을 건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인사말 이외에 주고 받는 여러 이야기들이 자신의 기분과 형편만 생각하고 말하는 것들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따끔거린다.


화를 내는 일은 너무나 소소하고 섬세한 감정들이지만 많은 감정들 사이에 격한 감정은 될 수 있으면 서스럼 없이 넘어가려고 한다. 나도 나를 돌이켜볼 때 마음에 들기도 하고 들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매일마다 누군가로 인해 화를 낸다는 것이 어떤 때는 감정의 과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스다 미리의 <오늘도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는 소소하고 섬세한 감정들이 뭉쳐진 한 권의 에세이집이다. 


사람의 감정이 희노애락 사이에서 오가지만 그녀의 일화가 너무나 세세해서 사람에 따라 감정의 희비가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람과 사람과의 부딪히는 일이 너무나 사소한 감정 중 하나도 치부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에게는 행동이나 말투 때문에 화가 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마스다 미리는 화를 내는 일 사이에 '슬픔이 들어 있는 '화가 가장 괴로운 화라고 말하고 있다. 밀어 오르는 화를 마음 속에 담아 두기 보다는 바깥에 내보내거나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기로 매일밤 생각하면서도 때로는 상황상황에 따라 나도 모르게 화가 나기도 한다. 짧은 에세이와 네컷의 만화가 때론 삼삼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전에 읽었던 만화 보다는 조금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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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문 인 파리
조조 모예스 지음, 이정임 옮김 / 살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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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만능의 열쇠가 아니랍니다.


 어렸을 때 동화를 보면 어려움에 처한 공주가 왕자를 만나 결혼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맺는다. 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그 이야기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다행이다라는 생각에 편하게 책장을 덮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인생에서 결혼을 '진짜' 많이 행복할까?라는 물음에 답을 한다면 모든 결혼 생활에 우리가 생각하는 '환상적인 결혼'은 없다는 것이다.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아예 없을 수 없다고 단정은 할 수 없지만 모든 결혼 생활이 모두 행복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직접적으로도 간접적으로 체감하며 느끼곤 한다. 하다못해 드라마에서도 이제는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면 모두 아름답게 결혼생활을 하는 것으로 그리지 않는다. 예전에는 두 남녀가 마음을 다해 사랑을 하면 모두 다 결혼하는 줄 알았으나 시간이 지나 그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하고 다른 이와 결혼 하는 것을 보면서 사랑의 완성이 모두 결혼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어릴 때라면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가 되고, 결혼이라는 것이 단순히 제 2장으로 넘어가는 관문일 뿐 결혼이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을 180도로 바꿔줄 수 있는 만능의 열쇠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더 결혼이라는 것에 신중해지고 누군가와 함께 평생을 다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쉬이 그 관문을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를 재밌게 읽었고 <원 플러스 원>의 이야기도 좋아서 그녀의 3번째 책은 <허니문 인 파리>도 읽게 되었지만 이전 보다 재미와 감동의 깊이는 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판에는 특별히 한 페이지마다 이야기에 관계된 사진이 수록되어 있지만 개인적으로 작품을 읽는 데 있어 이야기에 깊이 녹아들지 못했다. 간혹 이 사진들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허니문 인 파리>는 젊은 나이에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유망한 건축가인 데이비드와 짧은 연애를 뒤로 하고 결혼을 한 리브의 이야기와 1990년대 가난한 예술가인 에두아르와 결혼해 신혼을 즐기고 있는 소피의 이야기를 교차적으로 그려냈다. 많은 사람들이 짧은 연애를 하고 결혼을 결심한 리브에게 결혼을 신중히 생각하라고 말리지만 그녀는 데이비드와의 사랑만으로 결혼을 했다. 그러나 파리에 신혼여행을 왔음에도 자신의 일을 버리지 못하고 비지니스를 하러 간 데이비드 때문에 리브는 열이 받고 파리 시내를 혼자 떠돌면서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를 하기 시작한다. 반면 소피는 화가인 에두아르가 자신을 택했지만 그의 주위에 떠도는 많은 여자들과 비교를 하면서 점점 자신감을 잃어 버린다.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기에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간 이들이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꿀이 뚝뚝 떨어지는 낭만적인 며칠을 보낸다고만 생각했지 결혼의 선택에 대해 이렇게 많은 감정의 교차점이 오고가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조조 모예스의 작품처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 시간 만큼은 결혼한 두 사람이 오롯하게 두 사람만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결혼을 한 데이비드는 미래를 위해 신혼여행 중임에도 자신의 일을 선택하며 리브에게 통보하듯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 하고 있다.


어떤 점에 있어서는 그의 처사가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으나 전적으로 그 시간마저도 한 사람에게 쏟을 수 없는 시간이라면 소설 속의 리브처럼 선택의 기로에 설 것 같다. 생각의 차이겠지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 함께 생활 한다는 것은 자신이 이전에 생활 했던 것 이상으로 두 사람이 서로 이해와 양보를 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결혼이라는 것이 단순히 서로 사랑해서, 같이 살고 싶어서라는 이유 만으로 오랜시간 두 사람이 살아갈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결혼은 단순히 엄마 아빠의 품을 떠나 내 마음대로 생활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더 넓히는 영역이 아니라 서로 오랜시간 다른 생활 방식으로 살아오다가 만난 인연이기에 서로의 생각과 서로의 희생이 맞물려져 돌아가는 것이 결혼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조 모예스의 작품은 결혼에 푸풀어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 두 쌍의 남녀의 시행착오를 그린 작품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신혼여행 마저도 환상이 절로 깨졌지만 이런 상황 또한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는 이야기라는 사실에 의미를 두면서 사랑과 결혼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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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남한강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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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이는 힘이 느껴지는 책.


  예전부터 가장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가 걸어서 국토를 횡단하는 일이다. 어렸을 때는 만화나 티비에 나오는 예쁜 풍경이나 뾰족뾰족한 첨탑에 빠져 유럽여행을 꿈꿨다면 요즘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골목을 탐방하고 있다. 더불어 서울에서 가장 근거리에 있는 도시를 여행하며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어 시간이 될때마다 엄마와 함께 가벼운 가방을 하나 메고 뚜벅이 걸음으로 무박여행 혹은 2박 3일 일정을 짜서 여행을 다녀왔다. 엄마와 여행을 가는 것조차 일정이 맞지 않아 첫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았는데 한 번 발걸음을 떼어보니 그 재미가 생각보다 더 깊고 여운이 짙게 남아있다. 아, 이래서 여행을 다니는구나 싶은 정도로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가거나 버스가 다니지 않는 길은 걸어서 가는 것 조차도 추억이 서릴만큼 발걸음이 꾹.꾹. 찍혀 있는 곳들에 대한 애정이 돋아난다.

나는 외국 여행도 많이 하는 편인데 어디를 가든 반드시 만나게 되는 한국 관광객들이 외국의 풍광에 감동하고 부러워하는 것을 볼 때면 저분들이 국내여행에서는 어떻게 느낄까 궁금했다. 우리가 외국 여행을 떠나면 최소한 5일, 길게는 보름의 여정을 잡는다. 만약에 국내 여행을 그런 긴 일정으로 잡고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답사한다면 정말로 우리나라가 금수강산임을 뼛속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 p.5


유홍준 교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8 남한강편>은 영월에서 시작해 단양, 충주, 여주, 이천을 거쳐 북한강과 만나는 양수리 두물머리까지의 여정이 담겨져 있다. 몇몇 도시는 외갓집을 갈 때 빠르게 스쳐지나간적도 있지만 남한강 물줄기가 영월에서 시작해 양수리 두물머리까지 흐르는지 몰랐다. 서울 뿐만 아니라 어디서도 가깝게 갈 수 있는 그곳에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보물이 숨어있는 줄 몰랐다. 종종 브라운관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천의 풍경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기는 했지만 곳곳에 의미가 짙은 문화재들이 이렇게 많이 자리를 잡고 있는지 몰랐다. 한자를 읽는 것이 서투르다 보니 가는 곳마다 현판을 자세히 보기는 하지만 그 의미를 유추해내기가 쉽지 않아 그냥 지나쳤던 것들이 오랜 세월 누군가의 마음을 담은 문장이고, 또 누군가의 눈길과 발걸음이 닿아 남겨진 흔적이었다.

무엇보다 유홍준 교수의 발걸음을 따라 남한강편을 읽고 있다보면 나도 모르게 절로 가벼운 가방을 메고 그가 걸었던 곳들을 탐방하는 것처럼 하나하나 그 의미가 되새겨진다. 마치 헌책방에 들어가 눈 밝은 이가 진짜 보석을 알아내는 것처럼 유홍준 교수의 눈길과 발걸음은 우리나라의 산천의 아름다움은 물론 선조들이 살았던 시대의 희노애락의 감정을 다시 되새겨준다. 다른 나라의 건축과 자연환경만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문화유산과 풍광이 살아숨쉬고 있음을 절로 느끼는 책이 바로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다. 읽고 있음에도 바로 달려가고 싶을만큼 눈앞에 어른거리는 풍광과 옛 고을의 자랑이자 그 마을만의 정취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것은 곧 고전으로 들어가 새것으로 나온다는 입고출신(入古出新)의 자세였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본받아 새건을 만든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걸을 빌려와 현재 상황을 풀어낸다는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걸을 가지고 현재를 지탱한다는 이고지금(以古持今),그 모두가 비슷한 개념이지만 이 선문답은 개념적 언어가 아니라 현재 처한 상황에 입각한 비유법을 통하여 그 깊은 뜻을 인식론이 아니라 실천론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선문답의 묘미이다. - p.59


책에서는 1부 영월 주천강과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를 이야기하고 있으면 2부에서는 충주호반인 제천, 단양, 충주를 이야기하고 았다. 마지막 3부에서는 원주 거돈사터와 법천사터, 충주 청룡사터인 남한강변의 폐사지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여주에서 가장 유명한 신륵사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많은 발걸음들이 의미가 깊고 진하지만 예전부터 가장 관심이 짙었던 영월의 청령포와 청풍 한벽루를 이야기 하면서 한 고을의 수장이자 수령인 목민관 황준량의 눈물 어린 상소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춘향전>의 이야기가 너무도 유명해 사또하면 부패를 일삼고 여인네들을 희롱하는 사람으로 인식이 되고 있지만 16세기 중엽에 단양군수로 재직하고 있던 황준량의 상소문을 읽다보면 왜 그가 단양의 은인이자 가장 유명한 목민관으로 뽑힌지 알게 된다. 한 사람의 어질고도 본분을 다한 목민관은 많은 백성을 살리는 것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단단하게 뿌리를 박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 또한 그들의 일이라는 것을 황준량의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2009년, 영월군이 서면을 한반도면, 김삿갓 묘소가 있는 하동면을 김삿갓 면이라고 행정구역 명칭 자체를 개명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관광 홍보를 하고자 한 지역주민과 자치단체의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것을 별칭이 아니라 정식 행정구역 명칭으로 삼은 것은 용납 할 수 없는 일이다. - p.62

우리나라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걷다보면 눈살을 찌푸리는 일도 많이 있다. 예전에는 차를 타고 가면 곳곳마다 나무들이 빼곡하게 심어져 있었지만 요즘은 산을 깎아내고 그곳에 새로운 건물을 짓거나 길을 내는 것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편하고 빠른 길을 가는 것도 좋지만 어느 정도의 도로 시설이 기반이 되었다면 조금 돌아간다 할지라도 공사를 멈추고 예전에 우리가 살았던 모습을 다시 느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놓아뒀으면 좋겠다. 외국에 가면 100년이 넘는 집은 물론이고 몇 백년이 흐른 건축물이 그대로 살아숨쉬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어쩐 일인지 그 때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제는 더이상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새로운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것들을 아끼면서 소중히 여겨야 훗날 더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향할 것이다. 유홍준 교수 역시 곳곳에 묻어나는 손때의 정겨움을 느끼다가도 옛고을의 정겨운 이름을 뒤로 하고 위인이나 마을을 대표하는 관광지를 행정구역으로 명칭을 삼은 것에 대한 노여움이 묻어난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옛 것에 대한 정겨움과 아름다움을 느끼려고 발걸음을 향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리는 우리 것을 점점 잃어버리고 오는 느낌마저 든다.


그럴수록 더 우리의 것을 찾아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점점 잃어가는 풍광 속에서 발걸음을 향하는 것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세월의 변천이 그렇게 많은 것들을 바꾸고, 또 바꾸어가지만 그 시간 속에 살았던 인물들과 흔적들이 애달프다가도 정답게 느껴진다. 그 정겨움 역시 내가 만나봐야 할 아름다움인 것 같아 이 책을 계기로 올 가을에는 책의 부록으로 실려놓은 일정표 그대로 직접 답사해 봐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눈으로 보고 직접 나의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것 또한 내가 잊지 않고 해야 되는 일 중에 하나인 것 같아 포스트 잇을 붙이고 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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