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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남한강편 ㅣ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평점 :
아는 만큼 보이는 힘이 느껴지는 책.
예전부터 가장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가 걸어서 국토를 횡단하는 일이다. 어렸을 때는 만화나 티비에 나오는 예쁜 풍경이나 뾰족뾰족한 첨탑에 빠져 유럽여행을 꿈꿨다면 요즘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골목을 탐방하고 있다. 더불어 서울에서 가장 근거리에 있는 도시를 여행하며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어 시간이 될때마다 엄마와 함께 가벼운 가방을 하나 메고 뚜벅이 걸음으로 무박여행 혹은 2박 3일 일정을 짜서 여행을 다녀왔다. 엄마와 여행을 가는 것조차 일정이 맞지 않아 첫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았는데 한 번 발걸음을 떼어보니 그 재미가 생각보다 더 깊고 여운이 짙게 남아있다. 아, 이래서 여행을 다니는구나 싶은 정도로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가거나 버스가 다니지 않는 길은 걸어서 가는 것 조차도 추억이 서릴만큼 발걸음이 꾹.꾹. 찍혀 있는 곳들에 대한 애정이 돋아난다.
나는 외국 여행도 많이 하는 편인데 어디를 가든 반드시 만나게 되는 한국 관광객들이 외국의 풍광에 감동하고 부러워하는 것을 볼 때면 저분들이 국내여행에서는 어떻게 느낄까 궁금했다. 우리가 외국 여행을 떠나면 최소한 5일, 길게는 보름의 여정을 잡는다. 만약에 국내 여행을 그런 긴 일정으로 잡고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답사한다면 정말로 우리나라가 금수강산임을 뼛속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 p.5
유홍준 교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8 남한강편>은 영월에서 시작해 단양, 충주, 여주, 이천을 거쳐 북한강과 만나는 양수리 두물머리까지의 여정이 담겨져 있다. 몇몇 도시는 외갓집을 갈 때 빠르게 스쳐지나간적도 있지만 남한강 물줄기가 영월에서 시작해 양수리 두물머리까지 흐르는지 몰랐다. 서울 뿐만 아니라 어디서도 가깝게 갈 수 있는 그곳에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보물이 숨어있는 줄 몰랐다. 종종 브라운관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천의 풍경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기는 했지만 곳곳에 의미가 짙은 문화재들이 이렇게 많이 자리를 잡고 있는지 몰랐다. 한자를 읽는 것이 서투르다 보니 가는 곳마다 현판을 자세히 보기는 하지만 그 의미를 유추해내기가 쉽지 않아 그냥 지나쳤던 것들이 오랜 세월 누군가의 마음을 담은 문장이고, 또 누군가의 눈길과 발걸음이 닿아 남겨진 흔적이었다.
무엇보다 유홍준 교수의 발걸음을 따라 남한강편을 읽고 있다보면 나도 모르게 절로 가벼운 가방을 메고 그가 걸었던 곳들을 탐방하는 것처럼 하나하나 그 의미가 되새겨진다. 마치 헌책방에 들어가 눈 밝은 이가 진짜 보석을 알아내는 것처럼 유홍준 교수의 눈길과 발걸음은 우리나라의 산천의 아름다움은 물론 선조들이 살았던 시대의 희노애락의 감정을 다시 되새겨준다. 다른 나라의 건축과 자연환경만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문화유산과 풍광이 살아숨쉬고 있음을 절로 느끼는 책이 바로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다. 읽고 있음에도 바로 달려가고 싶을만큼 눈앞에 어른거리는 풍광과 옛 고을의 자랑이자 그 마을만의 정취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것은 곧 고전으로 들어가 새것으로 나온다는 입고출신(入古出新)의 자세였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본받아 새건을 만든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걸을 빌려와 현재 상황을 풀어낸다는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걸을 가지고 현재를 지탱한다는 이고지금(以古持今),그 모두가 비슷한 개념이지만 이 선문답은 개념적 언어가 아니라 현재 처한 상황에 입각한 비유법을 통하여 그 깊은 뜻을 인식론이 아니라 실천론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선문답의 묘미이다. - p.59
책에서는 1부 영월 주천강과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를 이야기하고 있으면 2부에서는 충주호반인 제천, 단양, 충주를 이야기하고 았다. 마지막 3부에서는 원주 거돈사터와 법천사터, 충주 청룡사터인 남한강변의 폐사지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여주에서 가장 유명한 신륵사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많은 발걸음들이 의미가 깊고 진하지만 예전부터 가장 관심이 짙었던 영월의 청령포와 청풍 한벽루를 이야기 하면서 한 고을의 수장이자 수령인 목민관 황준량의 눈물 어린 상소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춘향전>의 이야기가 너무도 유명해 사또하면 부패를 일삼고 여인네들을 희롱하는 사람으로 인식이 되고 있지만 16세기 중엽에 단양군수로 재직하고 있던 황준량의 상소문을 읽다보면 왜 그가 단양의 은인이자 가장 유명한 목민관으로 뽑힌지 알게 된다. 한 사람의 어질고도 본분을 다한 목민관은 많은 백성을 살리는 것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단단하게 뿌리를 박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 또한 그들의 일이라는 것을 황준량의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2009년, 영월군이 서면을 한반도면, 김삿갓 묘소가 있는 하동면을 김삿갓 면이라고 행정구역 명칭 자체를 개명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관광 홍보를 하고자 한 지역주민과 자치단체의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것을 별칭이 아니라 정식 행정구역 명칭으로 삼은 것은 용납 할 수 없는 일이다. - p.62
우리나라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걷다보면 눈살을 찌푸리는 일도 많이 있다. 예전에는 차를 타고 가면 곳곳마다 나무들이 빼곡하게 심어져 있었지만 요즘은 산을 깎아내고 그곳에 새로운 건물을 짓거나 길을 내는 것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편하고 빠른 길을 가는 것도 좋지만 어느 정도의 도로 시설이 기반이 되었다면 조금 돌아간다 할지라도 공사를 멈추고 예전에 우리가 살았던 모습을 다시 느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놓아뒀으면 좋겠다. 외국에 가면 100년이 넘는 집은 물론이고 몇 백년이 흐른 건축물이 그대로 살아숨쉬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어쩐 일인지 그 때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제는 더이상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새로운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것들을 아끼면서 소중히 여겨야 훗날 더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향할 것이다. 유홍준 교수 역시 곳곳에 묻어나는 손때의 정겨움을 느끼다가도 옛고을의 정겨운 이름을 뒤로 하고 위인이나 마을을 대표하는 관광지를 행정구역으로 명칭을 삼은 것에 대한 노여움이 묻어난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옛 것에 대한 정겨움과 아름다움을 느끼려고 발걸음을 향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리는 우리 것을 점점 잃어버리고 오는 느낌마저 든다.
그럴수록 더 우리의 것을 찾아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점점 잃어가는 풍광 속에서 발걸음을 향하는 것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세월의 변천이 그렇게 많은 것들을 바꾸고, 또 바꾸어가지만 그 시간 속에 살았던 인물들과 흔적들이 애달프다가도 정답게 느껴진다. 그 정겨움 역시 내가 만나봐야 할 아름다움인 것 같아 이 책을 계기로 올 가을에는 책의 부록으로 실려놓은 일정표 그대로 직접 답사해 봐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눈으로 보고 직접 나의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것 또한 내가 잊지 않고 해야 되는 일 중에 하나인 것 같아 포스트 잇을 붙이고 붙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