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클하면 안 되나요?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순간순간 느껴지는 울컥한 감정들.


 ​예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어렸을 때는 내 나이의 또래들이나 사람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건축물에 시선이 갔다면 시간이 갈수록 화려한 모습 보다는 수수함이 느껴지는 자연적인 모습에 시선이 간다. 들판에 핀 꽃이나 계절에 맞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보며 마음이 몽글거린다. 마스다 미리의 <뭉킁하면 안 되나요?>를 읽으면서 뭉클이라는 단어 속에 수 많은 단어와 의미가 내재된 언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느낀 뭉클이라는 감정 속에서는 감동적인 뭉클도 있지만 이성간의 끌림을 엿볼 수 있는 매력도 스며들어 있다. 다양한 뭉클이 마스다 미리의 에세이 속에 숨어져 있고 우리는 그것을 '뭉클'이라고 한다면 하루에도 몇 번씩 뭉클거리는 감정의 높낮이 속에 살고 있다.


늙어서도 자신의 연구를 계속하는 깊이 있는 옆얼굴. 이런 사람에게 사랑의 말을 들은 과거를 가진 여자는, 학교에서 인기 있는 남자에게 고백받은 여자보다 우월감을 맛보지 않았을까? 지금 만약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아마 농구부 주장에게 사랑 따위 느끼지 않을 거다. 교실을 찬찬히 둘러보고, 수수한 가운데에서도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가진 남자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남자가 주뼛거리며 하는 "좋아해"라는 말을 들어보고 싶다. - p.52


마스다 미리가 느낀 뭉클거리는 감정 속에 나 또한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어 책을 읽었을 때 무척이나 공감되었던 이야기였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꽤 오랫동안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자주는 아니지만 일주일 혹은 한 달에 몇 번 씩 도서관을 찾아 책도 빌리시고 책도 읽으시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나이가 많으셔서 걸음걸이도 불편하고 기운도 없으셔서 한 두 권의 책만 빌리셨지만 오실 때마다 봉지에 사탕 몇 개를 사오셔서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할아버지가 읽으시는 책들이 대부분 우리들이 읽을 수 없는 어려운 책을 읽고 계셨던 것이 기억이 난다. 눈이 안 좋으셔도 돋보기를 끼고 책을 읽으시던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외할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그 때마다 가슴이 뭉클 했던 기억이 난다. 더불어 나이가 많이 들어도 늘, 책을 읽고 배우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던 것도.


어쨋든 그 남자아이, 어른이 되면 여자들이 그냥 두지 않을 듯. 지금은 딱히 눈에 띄지 않는 외모였지만, 어른이 되면 결국 착한 인성이 인기를 얻는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멋있는 건 믿을 게 못 된다. 좋겠네, 앞으로 그 남자아이를 만나는 여자아이들. 어떤 사랑을 할까? 그를 생각하며 괴로워서 우는 밤이 있다니 부럽다. 그런 그들의 미래 전부를 뭉클한다. 내게는 분명 이제 그런 신선한 사랑은 찾아오지 않겠지. 문을 잡아준 것뿐인 일로, 나는 왠지 센티해진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 p.67


나이가 들수록 사람에게 보는 매력 포인트가 달라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교복을 입고 상의 와이셔츠를 걷어 열심히 운동하는 남자 아이에게 시선이 갔다면 요즘에는 날렵한 몸매에 걸맞게 자기만의 색을 뚜렷하게 드러낸 옷맵시를 가진 남자에게 시선이 간다. 남자 뿐만 아니라 여자에게도. 더불어 요즘에는 책이나 마트에서 산 물건을 배달해주시는 기사님 때문에 뭉쿨해지기도 한다. 오토바이나 차를 타고 와서 무거운 짐을 한아름 안고 와서 물건을 건네주실 때마다 밥벌이의 무게감이 절로 느껴진다. 어느 때는 비가 오는 저녁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에 무거운 짐을 나르고 내려와 숨을 헐떡거리는 기사님을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이렇듯 마스다 미리의 <뭉클하면 안 되나요?>는 내가 느꼈던 감정의 뭉클거림이나 평소 느끼지 못했던 순간순간에 느껴지는 울컥한 감정들이 모두 스며져 있다. 섬세하고 예리한 글들이 눈길을 사로 잡을 뿐 아니라 사소하게 화가 치밀어 오는 경우도 있지만 이렇듯 가슴이 몽글거리는 감정들이 진하게 베어져 올 때도 많다는 것을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느낄 수 있다. 감정의 변화가 종이 한 장 차이 만큼이나 섬세하고 미묘하듯 느껴지는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