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점의 그 아이 - 제88회 올요미모노 신인상 수상작
유즈키 아사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그렇게 흔들리고, 흔들리며 여자아이는 커간다.


아카리와 기요코는 다른 인간이다.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을리가 없다. 아카리 뿐만 아니라 교코도, 모리짱도, 야스다도, 아키도, 반 아이들 모두. 같은 것을 봤다고 느낌마저 똑같을 수는 없다.  - p.83


 <서점의 다이아나> (2015,한스미디어)를 통해 처음 만났던 유즈키 아사코의 처녀작 '포겟 미, 낫 블루' 포함해 총 4편의 단편이 연작처럼 담겨져 있는 책이다. '포겟 미, 낫 블루>를 통해 88회 올요미모노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처럼 이전에 읽었던 <서점의 다이아나> 보다 훨씬 더 깊고 다양한 사춘기 여고생들의 심리를 담고 있다. '포겟 미, 낫블루'에서부터 '여름귤' '둘이 있는데, 말없이 독서', '오이스터 베이비'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단편 하나하나가 알찼다.유명한 사진작가 아버지를 둔 아카리를 매개로 기요코, 모리 나쓰고, 야스다 사치코, 교코의 이야기가 각 단편의 주인공으로 나와 그녀들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즘은 '중2병'이라고 칭할 정도로 사춘기가 중2때 찾아왔지만 우리 때는 고등학생 때부터 사춘기라 아이들의 마음이 바람부는 것처럼 자주 흔들렸다. 돌맹이 하나만 봐도 호호하하 웃는 것처럼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칠세라 서로의 마음을 질투하고 자신을 오롯하게 봐달라는 애정이 가득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사소하게 삐지기도 하고,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리기 위해 화장실을 비롯해 어디서든 함께 모여 영화관에서 놀기도 하고, 노래방에 가서 함께 노래를 부르며 또래문화를 즐겼던 것 같다.


<종점의 그 아이>에 소개된 여고생 아이들은 더욱이 미션계 사립 여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기에 집이 부유한 것은 물론 이질적으로 튀는 아카리를 동경하기도 하고 시기도 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순간 그들이 느끼는 감정으로 친해졌다, 안친해졌다를 반복하며 아카리와 절친 놀이를 했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 보다는 여고생이 느끼는 불안감과 섬세한 감정으로 '악의'가 느껴지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절 그 순간은 자신에게 오롯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한 애정의 한 몸짓이라고 받아들였지만 내가 느꼈던 감정보다 더 세밀하고 견고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기요코의 행동은 이지매라고 느꼈을 정도로 아카리를 비난하는 강도가 세어졌고, 반 아이들 보다 더 특별하다고 느꼈던 아카리의 행동이 다소 무례하게 느껴졌다. 반 아이들의 나쁜 점과 훗날 어떻게 성장하게 되리라는 무시무시한 추측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노트에 거리낌없이 뱉어놓은 글이었다. 그 노트를 발견하고 아카리를 더 증오하게 된 기요코의 행동도 삐뚤어진 행동이었고, 그 것을 거침없이 쓴 아카리의 성정 역시 삐뚤어진 애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 아이들이 느꼈던 애정전선은 차츰 아이와 어른의 중간단계 즉, 얼치기로서의 행동으로 자신은 다른 아이들과 달리 더 어른이다라는 생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남자 아이들과 교제를 하는 등 다른 아이들과의 차별점을 두려고 애를 쓰며 그 시기를 보내는 것 같다. 어른이 아니기에 더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변하려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보여 여고생 때 내 모습이 생각나 기요코, 모리 나쓰코, 야스다 사치코, 교코, 아카리를 통해 여고생의 복잡다단한 모습을 깊이 느낄 수 있어서 좋았던 책이었다. 아이들이 서로 다른 매력으로 자신의 삶을 쟁취해 나가듯 여고생이 가지고 있는 다중적인 얼굴을 미묘하게 그려놓은 것은 물론 다층적으로 그려놓아 여자들의 심리에는 이런 마음도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다.


시간이 지나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진학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과 출산까지의 일을 그려놓아 마치 여자의 일생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일련의 시간이 지나 진짜 여자 사람으로 성장하듯 흔들리고 흔들리면서 비로소 나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추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여자 아이들의 심리가 너무도 미묘하고 섬세해 남자 아이들처럼 몸으로 부딪히고 싸워가면서 그 정을 느끼는 편이 더 정신 건강에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지금도 여자의 마음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남자들을 브라운관을 통해 종종 보곤 하는데 그때마다 그 미묘하고 섬세한 가락을 그들이 어떻게 다 알리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자의 마음을 복잡 미묘하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종점의 그 아이>를 살짝 권해 주고 싶을 정도로 소녀들의 시선과 애정, 애정의 척도를 눈에 그려질 듯 잘 그려내고 있다. 미묘한 심리와 아슬아슬하면서도 선의와 악의적인 내면을 갖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 동질감이 느껴졌다. 아마도 이 소녀들과 같이 그 시절을 보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깊이 공감 할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아카리 역시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고 여러 상황을 마주하면서 느꼈던 상실감과 오만함을 많은 경험을 통해 벗어버리는 결말이 지독히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마도 아카리는 더 이상 자신을 특별하게 느끼지 않고 오롯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고 하기 보다는 스스로 빛이 나는 여자 사라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 믿는다. 어른의 길목으로 들어가기 위해 성장하는 그 시간이 아련하게 느껴졌지만 그 시기를 겪음으로서 그들이 한층 더 성장하는 유예기간이 아닌가 싶다. 무엇을 해도 바로 잡을 수 있는 그 시간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이라는 안정제
김동영.김병수 지음 / 달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음의 병 그리고 당신이라는 안정제.


  책을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브라운관을 통해 연예인들이 토크쇼에 나와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고백을 들을 때에도 그렇게 마음이 쓰이지 않았는데 글을 통해 그의 고통과 마주하다 보니 '공황장애'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마음의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담담한 고백이 아니 사실은 그가 쏟아내는 글들이 어마어마한 화염 속으로 빠져 들어가 자신을 구해달라는 외침 같이 들려 책을 읽는 내내 그의 혼돈과 고통 속에 빠져 들었다. 그럼에도 그를 향해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동정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면 그것 또한 이 글을 쓴 작가를 기만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치부를 다 보여주고, 불안과 고통을 느끼면서도 다시 자신의 삶을 놓치지 않는 그의 노력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를 그의 글을 통해 바라보지만 그가 느끼는 고통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어설프게 그가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어설픈 위로 조차 할 수 없었다.


그의 글 속에는 고통으로 가득했던 시간들과 사적인 인들, 처방받은 약을 통해 느껴지는 부작용들, 그리고 이 병을 끌어안고 가면서도 다시 날아오르고 싶은 삶의 진한 욕구들이 담겨져 있다. 한 달에 한 두번 꼬박 칠년을 만난 그의 주치의인 김병수 의사의 글은 김동영 작가가 써 놓은 글에 답장을 하며 쓰여진 글이기도 하고 때론 그가 정신과 전문의로서 느낀 일상의 글이 담겨져 있다. 아무리 책을 깊이 읽는다 해도 그가 느낀 깊은 수면의 깊이를 나는 느끼지 못한다. 그럼에도 <당신이라는 안정제>를 통해 내가 느꼈던 불안의 근원과 이유없이 느꼈던 우울함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무엇에 쫓기듯 불안하고, 그냥 넘어갈 일에 대해 예민해 있는 나를 보면서 '아무 것도 아닌 일에 힘을 싣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자꾸만 나를 질책하게 된다. 희미한 불안과 남과 나를 비교하게 될 때마다 자괴감이 느껴져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 나의 마음을, 내가 지금 느끼는 많은 생각들을 누군가에게 이야기 하기 보다는 마음 깊이 묻어 두는 편인데 어쩌면 나는 나에 대해 그 무엇도 누군가에게 보여줄 용기가 없는 것 같다. 그처럼 민낯 그대로 보여줄 용기가 없고, 아파도 아프다는 것을 나타내지 않는 소심함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그가 느끼는 고통의 뿌리를 아픔은 어설프게 위로 하는 것 보다는 그가 살아가고 있는 삶을 묵묵하게 지켜보는 것이 그를 더 이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매년마다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책을 자주 접하지 않았던 때에는 나의 감정이 다소 무감했다. 희노애락이라는 말 그대로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즐거운 말 그대로 단조로는 감정으로 삶을 살았다면 소설을 자주 접하고 접하면서 희노애락이라는 감정들이 자잘하게 쪼개져 많은 감정을 배우게 되고, 감정의 깊이가 끝없이 이어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칼날이 잘 드는 날처럼 예민해졌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좋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런 예민함이 피곤할 때가 있다. 아직도 그 깊은 감정을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 계속해서 문학 작품을 읽어 나가고 있다.


야구를 보다보면 타자에게 던지는 투수들이 얼마나 멘탈이 강한지, 약한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처럼 삶을 살아갈 때 느끼는 감정 하나하나가 나를 옭맬 수도 있고, 때로는 누구나 다 지나가는 벽에 부딪혀 그 벽을 넘어가지 못할 때도 있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아파하고 주저 하기 보다는 용기있게 나아가고 싶어도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될까? 라는 물음이 생겨낼 때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생각지 못한 생각들과 움직임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마음이 다쳤을 때 몸에 보이는 상처가 더 낳겠다 싶을 때도 있지만 결국 내 마음은 내가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작품을 더 깊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차곡차곡 내공을 쌓아가듯 마음 또한 자꾸 내 마음 속에 방을 넓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른바 사람이 '득도'하기 까지는 수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듯 자꾸만 나를 다그치기 보다는 나쁜 것은 잊어 버리고, 좋은 것은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가끔 너무 화가 나거나 마음이 아플 때면 옆에서 엄마가 어루만지듯 해주는 말씀이 머릿속에 다 받아들이지 못한 날도 많지만 그때마다 나쁜 건 잊어버리고, 네가 마음이 아프지 않게 빨리 훌훌 털어버리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그것이 아직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지만 지금은 마음이 아프지 않기 위해 내가 쓰는 비법이 하나 둘씩 늘어갈 때마다 어쩌면 이것 또한 삶을 배우는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김동영 작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듣고 그의 삶에 대해 그의 병에 생각하다가 김병수 의사의 글을 통해 그 뿐만 아니라 나 또한 내가 가지고 있던 마음을 돌아보게 만든다. 때론 강박관념이나 불안감이 느껴져 기분이 답답할 때 그의 글과 함께 김병수 주치의 글을 안정제를 복용하는 것처럼 읽어보기를. 희미한 불안과 우울증은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뗄 수 없는 지병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그 병을 앓는 모든 이들이 이 책을 한 번쯤 읽어봤으면 좋겠다.



---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변화시키려는 것은 지구를 천천히 혹은 더 빨리 돌게 하려 애쓰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행성은 다른 혜성과 만나 충돌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절대로 자기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사랑처럼 불똥이 쏟아지는 충돌 없이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 p.46


이기적으로 살기 혹은 결혼하기도 마찬가지 일 거예요. 이기적으로 살면 좋은 점도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결혼하면 좋기도 하겠지만 성가신일도 많을 거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을 테니,계속해서 주저하며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가겠죠. 모든 결심과 실천에 이유와 이성적 판단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유와 생각, 논리와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이건 전적으로 "그래 지금 생각하자" 고 결심하고 행동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 p.48


때로는 싫은 것과 불안한 것이라 믿고 회피해버리기도 하죠. 싫은 것과 불안한 것은 엄연히 다른데도 말이지요. 불안은 실존의 문제이고, 싫은 것은 취향의 문제이니, 반드시 구분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불안은 실존의 한 부분이니 벗어날 수 없지만, 취향의 문제는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데도 싫은 것을 불안하다 해버리면 벗어나기 힘들어집니다. - p.70


세상을 향한 레이더의 민감도는 약간 떨어지는 것일수록 더 좋습니다. 레이더의 게인gain을 조금 낮춰둘 필요가 있어요. 비행 레이더는 무조건 감도가 좋아야 합니다. 하지만 감도가 좋으면 좋을수록 아주 작은 물체조차 그 실체가 무엇인지 날을 세우고 봐야 하니, 한시도 편하게 마음 놓고 있지는 못할 겁니다. 우리 몸도 레이더와 다르지 않습니다. 안테나를 크고 높게 세우면 세상의 모든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가려낼 수 있겠지만, 그래서 뭐가 달라질까요?


당신이 찾아낸 것들은 정말 당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맞을까요? 혹시, 조그만 구름을 적의 비행기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요? 작은 새를 날아오는 포탄으로 오인한 것은 아닐까요? - p.73


인정 욕구의 총량은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듯합니다. 하지만 내 마음에 끌리는 사람들을 향한 인정 욕구만큼은 줄어들지 않고 점점 커졌습니다. 나와 함께 아파해줄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심,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싶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심, 해 질 무렵 맥주 한잔에 고달픈 이야기를 털어놓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심, 내 거친 마음을 열어보여도 부끄럽지 않을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심은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죽으며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이만 하면, 나 잘살았지?" 하며 그들에게 확인받고 싶어할 것 같습니다. - p.204~2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녀의 생활을 통해 바라본 작가 이야기.


 마스다 미리의 책을 읽다 보면 그녀의 책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심심하다'와 '삼삼하다'로 나뉘어지는 것 같다. 전자의 느낌이 들었을 때는 아쉬움이 많이 느껴졌을 때고, 후자의 감정이 오롯하게 올라올 때는 '삼삼하다'의 뜻처럼 싱겁지만 맛있게 느껴진다. 글이나 내용이 빼곡하지 않아도 여백에서 보여지는 잔잔한 재미와 누구도 알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의 알갱이를 표현하고 있어 나 자신도 그냥 스치고 지나갔던 감정들을 표현해 주고 있어 심심하면서도 삼삼한 그녀의 글들을 자꾸만 읽게 되는 것 같다.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은 마스다 미리의 첫 자전적인 만화로 그녀의 작업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와 작업을 하면서 만났던 많은 편집자들의 이야기를 같은 듯 하면서도 다른 상황을 통해 편집자의 성향을 저자의 시선으로 섬세하게 보여준다. 작가가 아니라면 느낄 수 없는 세심함과 편집자들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엿볼수 있는 장면들이 많아 나도 모르게 그녀의 순수함에 웃었다. 일의 성향에 따라 같은 듯 하면서도 성향이 다른 편집자들의 행동과 말투를 직접적으로 짝막하게 만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기에 편집자를 하지 않는 이에게도 상대방에게 어떻게 해야 호감을 갖고 자신과 일하고 싶은지를 마스다 미리를 통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녀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호불호의 성향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자신이 못하는 것을 인정하고

남이 잘하는 것을 존경하는 마음.

그런 단숨함이

실은

같이 일을 하면서

중요한 게 아닐까 - p.120


가장 재밌게 본 에피소드는 어떤 편집자를 만날 때 보통 벽쪽 상석을 비워놓고 앉는 편집자가 대부분이라면 그 편집자는 벽쪽에 먼저 자리를 잡고 있어서 마스다 미리가 그와 만날 때 그 편집자보다 먼저 가서 앉기 위해 30분을, 1시간을 먼저 갔으나 매번 그를 이기지 못하고 의자에 앉는 장면이었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어떤 자리가 상석이라는 자리를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자리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보이지 않는 우위를 느낄 수 있었고 그녀가 어떻게 작가의 자리까지 갈 수 있었는지를 차곡차곡 꺼내보는 기분이 들었던 책이었다.


작업을 하면서 걸러낼 것을 걷어내고 중요한 것들을 만화를 통해 그려졌지만 처음 그녀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버리고 도쿄로 가면서 느꼈던 아득함과 작가로 성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생활들이 동시에 느껴져 평범하고 느긋한 작가생활이라는 제목 이면에는 그녀가 노력했던 흔적들을 더 깊이 바라볼 수 있는 작품집을 썼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마스다 미리를 정말 좋아하는 팬이라면 꼭 접해봐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유가 있어 겨울에 나온다
니타도리 게이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학원 미스터리의 소소한 재미.


니타도리 게이의 <이유가 있어 겨울에 나온다>를 보자마자 한 눈에 들어오는 제목이기도 하고, 반존대의 말투 같아 눈으로 책을 훑어 보다가 소리를 내서 한 번 제목을 읽을 후 부터는 찹살떡을 먹는 것 마냥 제목이 입에 붙어 버렸다. 초창기 책을 읽을 때는 책장에 꽂혀진 책 제목만 보아도 책 제목은 물론 저자,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름을 바로 떠올릴만큼 기억력이 좋았는데 점점 기억력이 떨어지는지 어제 읽은 책도 누군가에게 설명을 할 때 책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이 책의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과 함께 책 표지에 그려진 일러스트나 책의 장정이 마음에 들었다.

 

모 시립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예술동에서 많은 아이들이 연습에 매진하고 있지만 취주악부에서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식을 듣고 부원들이 연습에 불참하자 미술부인 하야마가 다카시마 선배와 함께 유령이 나타난 진원지를 찾아 유령의 실체를 알아가는 내용이다. 하야마를 주축으로 동급생과 선배들이 힘을 모아 유령이 나타난 곳을 찬찬히 살펴보며 유령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헤친다. 유령을 찾아다니는 시간이 어두운 밤이고, 아무도 없는 부실을 따라 찾아 헤메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하야마가 느끼는 고요한 느낌이나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유령의 실체에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 책을 집중해서 읽는 시간이 낮 보다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누워서 읽는 그 순간을 가장 좋아한다. 늦은밤 가장 고요한 시간이기도 하고 이불과 한 몸이 되어 따스한 온기가 바닥에서 따듯하게 올라오다 보니 몰입도가 좋아서 그런지 하야마가 느꼈던 순간순간의 섬뜩함과 무서움이 배가 되어 느껴진다.

 

"······게슈탈트 심리학이라는 게 있어. 거기서 인간은 늘 하나하나 별개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꼭 뭉뚱그려서 의미를 발견하려고 한대. 예컨대 지금 너처럼 자세히 보면 별것 아닌 벽의 얼룩이 삼각형 모양으로 묻어 있으면 거기에 '양 눈과 입'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거지. 사람의 얼굴이라는 건 갓난아기 때부터 인간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극 중 하나거든. 네가 삼각형 모양으로 묻은 얼룩에서 사람 얼굴이 보인 것처럼 느낀 건 인간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야." - p.126~127


무서운 영화를 보더라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상 무서운 영화를 낮에 보느냐, 밤에 보느냐에 따라 그 분위기가 틀려지는 것 같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예전에 종종 호러물을 조조로 친구와 함께 영화관에서 보니 그야말로 무서운 영화도 시시하게 느껴지곤 했는데 밤에 무서운 영화를 보니 그 무서움이 배가 되어 어두운 골목길에만 가도 깜짝 놀랄만큼 무서웠다. 니타도리 게이가 쓴 <이유가 있어 겨울에 나온다> 역시 학원물,  본격 미스터리, 호러와 어우러진 이야기이기에 이야기를 좀 더 재밌게 읽으려면 독자 역시 낮보다는 밤에 읽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책 제목과 아울러 책을 처음 펼치자 마자 시작되는 이야기와 하마야가 등장하는 모 시립 고등학교의 이야기가 맞닿아 떨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잠시 고개를 갸웃 거렸지만 이야기의 프롤로그 부분이 왜 그런 이야기를 먼저 시작했는지 결말을 보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프롤로그의 시작점이 결말을 이어주기도 하지만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지 못한 반전의 재미를 알려준 작품이기도 하다. 각각의 인물을 통해서 유령의 실체를 알려주기도 하고 추리의 시작점을 골몰하게 만드는 트릭을 쓰기도 한다. 하야마를 비롯해 각 인물들을 통해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만들어가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처음에 던져 놓은 실타래가 끝에 가서 서서히 모두 풀려버리게 만들어 버린 니타도리 게이의 글 솜씨 발군이라 할 만큼 처음 데뷔작 치고는 깔끔하게 떨어졌다. 젊은 신예 작가로서 촉망받는 그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졌다. 첫 스타트가 너무나 깔끔하고 매끄럽게 떨어지기에 다음 작품은 첫 작품보다 더 깊이있는 시선과 이야기로 만났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유 -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운다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가는 여정.

몇 년전에 석영중 교수가 쓴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예담, 2009)를 읽고 나서 톨스토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안나 카레니나>를 보다 깊이 읽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소설을 좋아하다보니 나라의 경계를 가리지 않고 잘 보는 편이지만 유독 러시아 소설의 지명과 이름, 깊고도 깊은 무게감 때문인지 자주 손길이 가지 않는다. 톨스토이를 시작으로 막심고리키, 투르게네프, 체호프의 작품들을 한 두 작품씩 접했지만 유독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만은 아직 접하지 못했다.

제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때문인지 러시아 소설의 음습하고도 무거운 주제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멀고도 먼 소설가 중 한명이었다.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를 통해 톨스토이의 작품을 한층 더 깊이 느꼈던 만큼 석영중 교수의 도움으로 도스토예프스키가 천착하고 사유했던 주제에 대해 깊이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자유'에 대한 정의와 그가 살아왔던 삶에 대해 알아본 후에 그가 썼던 많은 작품들을 깊이 있게 바라보고 싶었다.

석영중 교수의 <자유>는 그가 젊은 시절 경험했던 옥살이를 바탕으로 지은 자전적 소설인 <죽음의 집의 기록>과 그의 대표작인 <죄와 벌>을 중심으로 '자유'에 대한 가치와 그에 반대되는 인간을 속박하는 요인과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는 책이다. 자유라는 개념은 얼핏 쉬워 보일 수 있으나 도스토예프스키가 느끼고 천착한 '자유'라는 개념을 더 깊이 바라볼 필요가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자유란 크게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본능으로서의 자유다. 그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다. 강아지도 줄에 묶어놓으면 낑낑거린다. 새도 새장에 가둬두면 날아가려고 퍼덕거린다. 자유는 모든 동물이 생존을 위해 가지고 태어나는 본능이다. 자유는 식욕이나 성욕처럼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존재하기 위해 충족시켜야 하는 가장 필수적인 조건, 생존의 조건이다. - p.15

도스토예프스키가 많은 작품을 통해 그가 '자유'라는 의미에 대해 천착했던 이유는 1849년 4월 23일 토요일 새벽에 체포되었던 일을 시작으로 그의 젊은 시절을 모두 암흑기로 보냈다. 그가 체포되었던 이유는 1847년 '페트라셰프스키 서클'로 불리는 서클에 등장해 금요일날 사회 개혁을 꿈꾸지만 차마 행동으로 내 보일 수 없었고 동지들과 함께 현대의 사건들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공간이었지만 1848년 2월 혁명으로 프랑스 왕 루이가 축출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러시아 황실이 위협을 느껴 모든 감시와 검열이 강화되었다. 그 무렵 그가 몸담아 있던 서클이 분할이 되고 강경파와 온건파로 두 그룹이 나뉘에 되었고, 도스토예프스키는 강경파의 인물로 비춰져 체포되었다. 그 이후 그는 수감되었고, 가짜 처형식이라는 황제의 이상한 생각으로 말미암아 생의 끝까지 갔으나 다시 살아서 돌아왔다.

황제에게는 정치적인 사형수들에게 무서운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다시 살려줌으로서 은혜를 깊이 알라는 뜻으로 생각했지만 그때 수감되어 사형장에 끌려간 이들은 정신 분열을 일으킬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런 충격을 넘어섰지만 그가 옴스크 감옥에 있으면서부터 그가 경험하고 체감했던 것을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느꼈던 충격을 그의 글을 통해 느낄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삼십 대를 체포, 수감, 유형으로 소진해버렸다. 그러나 이 십년의 세월이야말로 이후 그가 위대한 작가로 성장하는 데 가장 비옥한 토양이 되었다는 것에 거의 모든 평론가들이 동의한다. 팔 개월간의 독방 생활, 처형 직전에 사면, 시베리아 유형지에서의 징역살이-보통 사람이라면 상상하기도 싫은 인생의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그는 순수한 이상주의자에서 지옥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근대의 단테로 변신했다. - p.42

자유란 도대체 무엇인가? 자유다. 어떤 자유인가? 법률의 범위 내에서 누구나 동등하게 무엇이든 자기 좋은 짓을 할 수 있는 자유다. 그러면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기는 언제인가? 100만 프랑의 재산을 갖고 있을 때다. 그러나 자연 자유는 모든 사람에게 100만 프랑의 재산을 부여해주는가? 아니다. 100만 프랑이 없는 사람은 무엇인가? 100만 프랑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무엇이든 하고 싶은 짓을 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고, 그 돈을 가진 사람이 하고 싶은 일에 부림을 당하는 인간이다. - p.55​

도스토예프스키가 천작하는 자유에 대해서 깊이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자유라는 개념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감옥에서 절실히 느꼈던 자유, 인간이 가장 갈구하는 것이며 때로는 그 자유로움이 너무나 도취되어 무절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인간에게 가장 위대하고 가장 숭고한 가치를 도스토예프스키는 몸소 느낄 수 있었고, 그의 체감 덕분에 그가 쓴 작품 곳곳에 그의 처절한 속내를 자유의 본질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