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에서 나눈 대화 - 귄터 그라스, 파트릭 모디아노, 임레 케르테스… 인생에 대한 거장들의 대답
이리스 라디쉬 지음, 염정용 옮김 / 에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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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낯설면서도 익숙한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가즈오 이시구로였다. 그가 수상을 하기 이전에 그의 많은 작품들이 번역이 되었고, 많은 작품 중 <남아 있는 나날>(2010,민음사)을 접하게 되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한 노신사였다. 영국인 집사로서 충직하며, 자신의 일에 소임을 다하는 그의 이야기는 지난날 자신의 생을 돌아보는 것이었고, 그가 서부 지방으로 첫 여행을 떠나면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이야기였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대표작 중 하나였으면 아쉽게도 처음으로 마주했던 그 작품이 늘어진 테이프처럼 페이지가 더디게 넘어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스티븐슨의 이야기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황혼기에 접어든 한 남자의 회고록이 하나도 가슴에 닿지 않았고, 훗날 다시 읽어보기로 기약하며 책을 덮었던 소설 중 하나였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간 너머, 혹은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한 노인의 모습은 시간차가 맞지 않았다. 비로소 내가 노년의 삶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구나, 라는 자각이 들었던 작품이다. 그 후 다른 나라의 작가를 통해 많은 작품들이 노년의 삶을 그렸고, 이제는 더이상 나의 시간과는 다른 세계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길을 가다가, 버스를 타다가, 티비를 보다보면 많은 이들의 삶들이 이제는 젊지 않고, 늙어버렸다. 고연령층이 많아질 것 이라는 예상을 이미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이토록 우리의 삶의 일부분이 그렇게 빨리 전해질지 몰랐다.


이리스 라디쉬의 <삶의 끝에서 나눈 대화>는 많은 작가들이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며 인터뷰를 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유럽의 많은 작가들이 참여했는데 낯설면서도 익숙한 작가들이 눈에 많이 띈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알만한 작가는 쥘리앵 그린, 권터그라스, 안토니오 타부키, 파트릭 모디아노, 아모스 오즈의 이름이 가장 눈에 들어온다. 그 외의 작가들은 낯설지만 낯설어서 더 그들의 이야기가 호기심어린 목소리로 들린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그들의 삶, 과거와 현재를 넘어 그들이 늘 쥐고 있는 문학의 이야기를 심도있게 들려준다.


한동안 의식적으로 나는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해 피해왔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 단어를 떠올려도 기분이 좋지 않았고, 그와 관련된 책은 될 수 있으면 피해왔다. 예전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삶이 있으면 죽음 또한 당연히 따라 오는 것임을 알고있음에도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주는 무게감이 어마어마한 무게로 느껴졌던 것 같다. 이전과 비교한다면 요즘은 그런 경계에서 조금씩 벗어나려고 노력 중이다. 예전이라면 읽지 않았을 이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만으로 조금씩 마음의 변화가 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노년의 삶은 끝을 바라보게 만든다. 언젠가 누군가는 죽는다는 것을 염두해 두고 있는 것 같고, 자꾸만 몸도 마음도 약해지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무엇보다 '젊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자꾸만 눈에 새겨두며, 그것을 마주 할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주어진 순간들의 시계가 조금씩 남아있는 자각을, 그래서 더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을 남김없이 쓰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 책을 통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동안 마주했던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것들이 책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재와 과거의 시간 속에서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들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이야기가 다양한 채도 속에서 잔잔하게 들려오기도 한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살아갈 내일과 그 후의 일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인터뷰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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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삶의 철학
엠리스 웨스타콧 지음, 노윤기 옮김 / 책세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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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단순한 삶의 의미와 고찰.


 작년 말부터 한창 리포터이자 개그맨인 김생민씨가 인기다. 그의 존재는 현재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김생민의 영수증'이라는 프로그램이 뜨면서 존재가 확실히 부각되었다. '돈은 쓰지 않는 것이다'라는 어록과 함께 잘하면 '그뤠잇~' 지출을 잘 못하는 것에 있어서는 '스튜핏~'하며 외치는 그의 외침이 광고는 물론이고, 이것저것 안 들어가는 문구가 없을 정도로 유행어가 되었다. 일찍이 그는 '연예가중계' 리포터를 오랜시간 하면서 종종 나오는 프로그램을 통해 절약하는 행동에 대해 이야기되었으나 몇 년전부터 '미니멀리즘'이라는 유행이 도래하면서 이제는 쓰는 시대가 아닌 도리어 돈을 쓰지 않는 절약하는 이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은행에 가면 늘 체크카드가 아닌 신용카드를 만들라는 유혹의 손길이 오간다. 돈을 쓰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은행에서는 오히려 쓰라고 부추기고,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들 역시 소비를 하라는 문구들이 마구마구 펼쳐져있다. 수준에 돈이 없다면 빌려서라도 쓰라는 대출광고들이 브라운관 가득 메워져 있다보니 필요한 소비가 아니가 '소비'에 의한 '소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저축이나 절약이라는 말이 사르르 사라져 버린 시대였으나, 갈수록 경제의 침체기가 늘고 실업률이 늘면서 겉면만 반짝이는 시스템 속에서 녹아나서 그런지, 이제는 복잡하거나 화려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엠리스 웨스타콧의 <단순한 삶의 철학>은 이전부터 느꼈던 이질적인 부분을 마치 옆에서 봤던 것처럼 캐치하여 단순한 삶의 삶의 의미와 경제가 성장하면서 느끼는 사회의 변화들을 철학, 경제, 심리학등 다양한 방면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한 번쯤 누군가 왜 사회는 자꾸만 나에게 돈을 쓰라고 강요하는 걸까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그 문제를 저자인 엠리스 웨스타콧은 다양한 원리와 근거를 통해 다층적으로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금도 은행에서는 쓰지 않는 고객보다는 카드 사용이 많은 고객을 더 좋아하고, 그렇게 쓰도록 유치하고 있다. 소비의 씀씀이가 크도록 자꾸만 유도하는 것, 정신적인 건강보다는 물질적인 것들을 현혹함으로서 우리는 돈만 가지고 가면 어디에서 무엇을 먹든 다양하게,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 먹을 수 있지만 살이찌고, 스스로 몸을 조절하는 것. 누군가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조절이 필요한 순간 조차도 사회에서는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분면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점점 더 빈곤해진다. 할머니 때 보다 더 많은 부와 물질적인 것들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아졌지만 주변의 환경은 갈수록 우리의 목을 죄어간다. 공기는 점점 나빠지고, 물은 사먹어야 하고, 내가 갖고 있는 물건은 점점 사용 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진다. 미니멀리즘을 표방한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그에 맞서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점점 더 고도화되고 발전되는 사회속에서 개인이 갖는 삶의 의미와 선택에 대해 고민하다보면 그것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연관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단순한 삶의 철학>은 단순함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미에서부터 단순한 삶이 어떻게 우리를 지탱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과 동시에 행복을 느끼지만 오늘날 어려움을 느끼는지 말하고 있다. 그와 대비하여 소박함이 미덕이 될 수 없는 이유와 현대 경제에서 소박함은 어떤 위치를 갖는지, 환경의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 장점인 책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평소 궁금했던 문제들을 옆에서 보아온 것처럼 다양한 사례와 분야의 예시를 들어줌으로서 설명하는 부분이 좋았던 책이다. 단순한 삶을 살든 물질적인 것을 취하며 살든 자신의 선택에 따른 삶의 의미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사회가 추구하는 소비의 형태에 대해서 생각도 없이 사는 것 보다는 삶의 의미를 주체적으로 생각함으로서 내가 살고픈 삶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고 삶의 철학을 주관적으로 갖고 살아간다면 더없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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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나라 - 성폭력 생존자와 가해자가 함께 써내려간 기적의 대화
토르디스 엘바.톰 스트레인저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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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와 가해자와 함께 써내려간 치유의 기록들.

​ 성폭력이든, 폭력이든 모든 사건에는 피해자과 가해자가 존재한다. 매일 아침마자 마주 하는 뉴스를 보면 사건, 사고는 늘 생겨나고 아무런 이유없이 일이 벌어지곤 한다.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아주 큰 이유가 있을 거라고 추정하지만 의외로 사건의 실마리는 소소하다고 생각되는 작은 행동들이 '도화선'이 된다.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해를 끼치는 것 보다는 나를 아는 사람이 더 나를 해치려는 경우가 많다.예전에는 대두되지 않았지만 최근에 이슈화되는 것이 연인간의 '성폭력'이다. 많은 사건들이 예시가 될 정도로 연인간의 폭력이 무자비하게 이루어졌고, 날이 갈수록 그 강도가 심해져 간다.

<용서의 나라>의 토르디스 엘바와 톰 스트레인저는 십대 때 연인이 된 사이였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토르디스에게는 첫사랑이 될 사이였으나 파티가 벌어졌고, 토르디스가 술이 만취된 상태에서 연인인 톰이 토르디스의 몸을 마구 휘저으면서 그녀의 몸과 마음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린다. 1996년 겨울이었던 열 여섯 녀와 열 여덟 소년에게 일어난 일이었고, 소녀는 소년에게 버림을 받은 후 9년 만에 벼랑 끝에 섰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 소년 아니 그 남자와의 기록은 놀랍게도 먹는 것에 장애를 일으키고, 알콜 중독과 자해를 벌이며 수 많은 시간을 어둠 속에서 빠져있었던 토르디스가 먼저 톰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미 그녀에게는 자신을 사랑하는 남편도 있었고, 아이도 있었지만 마음 속에서 항상 피가 흐르던 시간을 떨쳐내고자 한 그녀는 용기를 내 톰에게 연락을 하고, 톰은 다행스럽게도 그녀에게 자신의 잘못에 대한 기록을 써 보냈다. 그렇게 시작된 서신이 8년간 300통이 넘을 정도로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사건은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났다고 해도 사건이 일어난 이후 부터는 그들에게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되어 시간이 흘러간다.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피해자보다는 더 편안하게, 돈을 통한 보상으로 자신이 벌인 죗값을 합리화 시키려하는 경향이 많고, 늘 사건의 트라우마를 한평생 짊어지고 사는 것이 피해자였다. 한 번이라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진정어린 용서를 구하는 일을 마주 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를 떠올리면 단번에 떠오르지 않는다.
열여덟 살 생일날 아침에 쓴 시였다. 막 잠에서 깨어난 뒤인데도 늙고 지친 느낌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랑의 나라로 처음 뛰어내렸는데 내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았다는 걸. 피처럼 붉은 대문자들이 나의 추락을 그림처럼 선명하게 묘사해놓았다. 내 침대라는 아스팔트에 톰이 나를 찍어 누르는 모습을, 시 속에 가득한 생생한 증오심 때문에 숨이 가빠졌다. 눈물이 내 뺨을 거쳐 무릎 위로 떨어졌다. ' 맙소사, 여전히 너무 아파.' 잠시 후 지쳐빠진 여자가 침대에 쪼그려 누웠다.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상처투성이 감정을 흩어버리고 그려를 꿈도 없는 깊은 잠 속으로 보내주었다. - p.146

 

서신을 주고 받은 후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중간인 케이프타운에서 16년만에 재회하게 된다. 서로의 얼굴은 알지만 낯설음으로 마주한 두 사람은 처음 초조하고, 떨리는 기운을 뒤로하고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는 진실의 문 가까이로 들어가 그날을 떠올리며 각자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이어나간다. 토르디스에게도 톰에게도 그날의 기억은 정말 들춰내고 싶지 않은 암울한 기억이지만 하나 둘 마음을 털어내면서 서로에게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어쩌면 자신들이 알고 있는 가족, 친구들에게 조차도 꺼내기 힘든 나날의 시간들을 꺼내놓고,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자신들이 있는 케이프타운이라는 곳이 얼마나 날 것이 공존한 도시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토르디스가 하는 행동이, 톰이 하는 행동들이 낯설게 느껴졌던 부분이 있었다. 토르디스의 경우는 조금만 눈을 돌리면 당장이라도 낯선 타인이 자신에게 해를 가할지도 모르는 날것의 도시임을 알고있음에도 그녀는 술에 취해 거리를 돌아다니는 부분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낯설면서도 불편하게 느껴져 그럴 때마다 책을 덮고, 그들의 마음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한참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피해자와 가해자의 행동모드에 편견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토르디스와 톰의 이야기는 각자 서신을 주고받으면서 다시금 정제되어 나온 책이기도 하다. 오랜시간 서로의 도움으로 서로의 트라우마가 치유되는 과정이 고스란히 그러난다. 용서의 시간 속에서는 많은 시간과 서로에 대한 이해와 오해, 자책의 시간들을 함께 공유하는데 있음을 그들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톰의 행동은 너무나 잘못된 행동이었고, 왜 자신이 그럴 수 밖에 없었음을 자신의 유년시절의 이야기와 사건이 일어난 이후 자신이 만난 여자들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을 수 없어 힘들었음을 고백한다. 이 책은 서로의 용기와 고백, 기적이 만들어낸 기록들이다. 많은 이들이 시원스레 용서를 할 수 있다면, 가해자들의 진심어린 사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길 역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기에 두 사람이 만들어낸 용서가 뜻깊고, 서로에게 치유가 되어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더 큰 자양분이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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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중서부의 부엌들
J. 라이언 스트라돌 지음, 이경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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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오감이 느껴지는 감동의 맛!


 사실, 요리를 하는 것 보다는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맛을 예민하게 느끼는 '미식가'도 아니고, 음식을 조금만 먹는 '소식가'는 더더욱 아니다. 매번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자제'와 '절제'의 미덕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악마의 유혹에 혹하곤 한다. 다이어트를 위해 될 수 있으면 저녁에는 밥을 먹지 않고, 간단하게 허기를 때우지만 브라운관 속에 나오는 맛있는 음식을 볼 때마다 매번 결심이 흔들리곤 한다. 요즘은 입맛이 너무 땡겨서 매번 티비 속에 음식이 나올 때마다 곤욕스럽다. 특히 나영석 PD가 연출하는 프로를 볼 때면 그 어느 유명한 쉐프가 나와 요리한 것 보다 더 음식이 땡긴다. 보지를 말았어야지 하는 순간, 이미 늦었음을. 저녁에는 먹지 못하다보니 잠들기 이전에는 내일 일어나면 꼭 먹겠다 결심하지만 아침이 되면 멍~때리기 일쑤이지만 그래도 각 부엌에서 만들어진 음식을 볼 때마다 각각의 재료가 어떻게 어우러져 신기한 맛이 나는지 늘, 새롭게 느껴진다.


비싼 재료에 좋은 쉐프들이 하는 음식을 못 먹어봤지만 집에서 신선한 재료로 정성을 다해 만드는 음식이 얼마나 맛깔스러운지는 안다. 어렸을 때는 늘 외식 보다는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먹다보니 '외식'하는게 더 좋아 보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밖에서 먹는 음식보다 집밥이 더 좋았다. 국수나 만두를 하나 하더라도 정성껏 밀대로 밀어 만두피를 만들었고, 국수도 넓게 밀어 놓았다가 잠시 말려놓고, 썰어 해먹다보니 이제는 그런 손맛에 길들여져 다른 곳에서 국수나 만두를 먹으면 대번 '조미료'가 들어갔는지 아니면 천연재료로만 쓰였는지 절로 알게 되었다.


J. 라이언 스트라돌의 장편소설 <위대한 중서부의 부엌들>은 모든 오감이 느껴지는 감동의 맛이 나는 소설이다. 주인공인 에바가 무척 사랑스럽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하며, 때로는 에바의 엄마인 신시아의 무책임한 행동에 아프기도 하다가 몸도 잘 못가누는 아이에게 사랑과 열정을 더하는 아이의 아빠 라르스의 애정이 뭉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아이의 부모는 태산처럼 높고, 아이에게 세상의 울타리가 되어 줬더라면 싶지만, 한 아이의 부모가 되었을지라도 마음까지 모두 성장한 진짜 어른은 아니었기에 신시아는 바람처럼 자취를 감춰버린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기에는 그녀가 너무 어렸고, 육아로 인해 자신의 커리어가 단절되었다는 생각에 답답했을지라도 자신의 짝인 라르스에게 전적으로 전가해서는 안되었지만 그녀는 달랑 편지 한장으로 그들과의 관계를 끝내버렸다.


태어났을 때부터 에바의 아빠인 라루스는 딸아이의 사랑이 대단했고, 자신이 사랑하는 요리를, 맛을 아이와 함께하기를 바랬다. 훗날 아빠와 딸로 행복하게 지냈더라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딸아이에 대한 사랑이 극진했으나 그는 갑작스러운 몸의 이상으로 사랑스러운 딸아이와 오랜시간을 함께 할 수 없었다. 그 후 에바는 아빠의 동생인 삼촌의 딸로서 성장하게 되고, 에바의 부모는 라루스와 신시아가 각각 쉐프와 소믈리에로서의 직업이 아닌 주방에서의 일과는 다른 삶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더욱더 주방에서 쓸 레시피 조차도 쓸 기회가 없었지만 에바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맛에 대한 감각을 익혀 나간다. 마치 에바의 아빠인 라르스를 깊이 각인하는 것처럼. 그러나 에바는 라르스에 대한 기억 조차 없고, 그저 유명한 쉐프 삼촌으로만 안다. 그 부분이 너무나 슬프고, 아련하게 느껴진다.


책은 에바를 주인공으로 하기 보다는 다른 인물을 통해 주인공인 에바의 이야기를 살짝 살짝 들려주는 편이다. 괴짜인 소녀가 천재 쉐프가 되는 이야기가 마치 자서전 처럼 쓰여지기 보다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달고, 짜고, 맵고, 신맛이 느겨진다. 더불어 책 속에 등장하는 많은 레시피들을 따라하고 싶을 정도로 다채로운 음식들이 나올 때마다 주방에 들어가 해보고 싶을 정도로 다채로운 음식들이 등장한다. 이야기의 맛과 음식의 맛이 어우러진 소설이다 보니 생각한 것 이상으로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각각의 인물들이 하나의 음식의 재료처럼 저마다의 색깔을 드러내고, 하나하나의 맛을 내는 것처럼 그들은 따로 떨어졌다 함께 어우러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에바의 성장소설이자 최고의 천재 쉐프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잘 살려낸 작품이었다. 무릇 음식의 맛 뿐만 아니라 에바가 살아온 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인생의 맛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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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 문학사를 보다 2 - 문학사를 바탕으로 교과서 속 문학 작품을 새롭게 읽다 한국 현대 문학사를 보다 2
채호석.안주영 지음 / 리베르스쿨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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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하고 실감나게 바라보는 한국 현대 문학사!


 작년 한 해의 책들을 되돌아 보니 한국 문학을 읽은 책의 권수가 손에 꼽을 만큼 작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아니라면 일부러 다른 작가의 책을 찾아서 읽어보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에서 출간된 번역본을 읽는 횟수가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세월을 거슬러가도 세계문학이라는 이름만으로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책들이다 보니 언제, 어디서도 만나볼 수 있다지만 어쩐 일인지 우리나라의 문학들은 시간이 지나 다시 들여다볼일이 좀처럼 없다. 시공간을 떠나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회자하며 읽었던 문학들을 우리는 왜 자주 접할 수 없을까, 싶기도 하고 종종 여행을 갈 때마다 보게되는 소설가들의 문학관을 보게 되지만 그들을 잘 알지 못해 그냥 지나치곤 했다.


시간이 지나서 보니 모르더라도 그냥 한 번 가볼껄 싶기도 하고, 세대를 지나 그동안 우리가 걸어왔던 현대문학사들을 알고 싶어 이미지와 스토리텔링의 문학사 여행이라는 부제가 마음에 들어 <한국 현대 문학사를 보다 > 2권을 읽게 되었다. 저번에는 리베르 스쿨에서 나온 '서양 철학사'를 재밌게 읽었던 것처럼 이 시리즈의 장점은 우선 많은 그림과 사진이다. 시대적으로 <한국 현대 문학사를 보다> 2권은 1946년~ 1950년대의 한국 문학을 시작으로 1960년대~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이후까지 담아냈다.


1945년 일본이 연합군에 의해 '항복'을 외치면서 우리는 광복을 맞이 했고, 혼란 가득한 세상에서 만들어낸 소설들이 채만식, 김동리, 손창섭, 오상원, 황순원 작가의 소설들이다. 예전에 교과서를 통해 소설가들과 시인들의 이름을 접해서 그런지 낯설지 않았지만 오상원의 작품 '유예'와 신성정의 시 '꽃덤불'은 생경하게 느껴졌다. 소나기로 유명한 작가 황순원의 작품인 '너와 나만의 시간'은 소나기처럼 서정적인 작품이 아닌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고 하니 그의 작품을 찾아 읽어보고 싶었다.


1960년대에서 70년대의 소설의 화두는 '민주화'였고 그것에 대한 열망은 최인훈, 김승옥, 박경리, 윤흥길, 황석영, 조세희 작가의 작품으로 잘 드러난다. 소설과 시 뿐만 아니라 수필과 희곡에서도 잘 나타나 있지만 1945년에서 부터 시작된 많은 수필과 희곡에서는 반절은 알고, 반절은 생소한 것처럼 이 시대의 작품 역시 친근하면서도 생소한 작품들이 들어있다. 시는 김수영, 신동엽, 김춘수, 신경림, 정희성 시인의 시들이 소개되었다.


1980년의 소설의 주제는 '민중'이고 시는 '억압의 표출'이다. 임철우, 박완서, 이문열, 양귀자 소설가가 많은 활동을 했으며 김지하, 황지우, 장정일, 기형도 시인이 있다. 수필과 희곡에서는 유안진, 이윤택의 글이 소개 되어 있는데 이전과 달리 많은 작품이 소개되어 있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의 문학은 소설, 수필과 희곡 할 것 없이 다양성이다. 이문구, 박민규, 김려령 작가가 소개되어 있고, 문정희, 정현종, 문태준 시인을 소개하고 있으며 운오영, 장영희, 이강백, 장진의 '웰컴 투 동막골'의 이야기까지 소개되어 있다. 다른 시대의 작품은 깊이 알 수 없지만 최근 한국문학을 소개하는 페이지는 다소 빈약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현재진행형이라서 그런지 짧은 단편이라고 할 만큼 현재 소개되어 있는 작가들의 이름이 많이 소개되어 있지 않아 아쉽다. 전체적으로 시대를 지나 오랜세월 흐름이 지난 책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한국문학의 흐름을 바라보기에 좋은 것 같다. 예전 문학을 배울 때는 딱딱한 교과서를 통해 문학사를 배웠는데 요즘은 더 다채롭고,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아 읽는 내내 흥미롭게 책을 읽었다.


매번 외국소설만 들여다보지 말고 천천히 우리나라의 문학사에 기틀을 세웠던 작품들을 하나씩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으로 의의가 짙었던 작품들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나 의식적인 흐름을 반추해 보기도 하는데 유독 우리나라 문학에 대해서는 등한시 한 것 같아 개인적으로 많은 반성을 했다. 친근하면서 시대적으로 많은 시대의 흐름을 타고 만들어진 한국 현대 문학의 발자취를 조금이나마 훑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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