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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나라 - 성폭력 생존자와 가해자가 함께 써내려간 기적의 대화
토르디스 엘바.톰 스트레인저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피해자와 가해자와 함께 써내려간 치유의 기록들.
성폭력이든, 폭력이든 모든 사건에는 피해자과 가해자가 존재한다. 매일 아침마자 마주 하는 뉴스를 보면 사건, 사고는 늘 생겨나고 아무런 이유없이 일이 벌어지곤 한다.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아주 큰 이유가 있을 거라고 추정하지만 의외로 사건의 실마리는 소소하다고 생각되는 작은 행동들이 '도화선'이 된다.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해를 끼치는 것 보다는 나를 아는 사람이 더 나를 해치려는 경우가 많다.예전에는 대두되지 않았지만 최근에 이슈화되는 것이 연인간의 '성폭력'이다. 많은 사건들이 예시가 될 정도로 연인간의 폭력이 무자비하게 이루어졌고, 날이 갈수록 그 강도가 심해져 간다.
<용서의 나라>의 토르디스 엘바와 톰 스트레인저는 십대 때 연인이 된 사이였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토르디스에게는 첫사랑이 될 사이였으나 파티가 벌어졌고, 토르디스가 술이 만취된 상태에서 연인인 톰이 토르디스의 몸을 마구 휘저으면서 그녀의 몸과 마음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린다. 1996년 겨울이었던 열 여섯 녀와 열 여덟 소년에게 일어난 일이었고, 소녀는 소년에게 버림을 받은 후 9년 만에 벼랑 끝에 섰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 소년 아니 그 남자와의 기록은 놀랍게도 먹는 것에 장애를 일으키고, 알콜 중독과 자해를 벌이며 수 많은 시간을 어둠 속에서 빠져있었던 토르디스가 먼저 톰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미 그녀에게는 자신을 사랑하는 남편도 있었고, 아이도 있었지만 마음 속에서 항상 피가 흐르던 시간을 떨쳐내고자 한 그녀는 용기를 내 톰에게 연락을 하고, 톰은 다행스럽게도 그녀에게 자신의 잘못에 대한 기록을 써 보냈다. 그렇게 시작된 서신이 8년간 300통이 넘을 정도로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사건은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났다고 해도 사건이 일어난 이후 부터는 그들에게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되어 시간이 흘러간다.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피해자보다는 더 편안하게, 돈을 통한 보상으로 자신이 벌인 죗값을 합리화 시키려하는 경향이 많고, 늘 사건의 트라우마를 한평생 짊어지고 사는 것이 피해자였다. 한 번이라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진정어린 용서를 구하는 일을 마주 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를 떠올리면 단번에 떠오르지 않는다.
열여덟 살 생일날 아침에 쓴 시였다. 막 잠에서 깨어난 뒤인데도 늙고 지친 느낌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랑의 나라로 처음 뛰어내렸는데 내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았다는 걸. 피처럼 붉은 대문자들이 나의 추락을 그림처럼 선명하게 묘사해놓았다. 내 침대라는 아스팔트에 톰이 나를 찍어 누르는 모습을, 시 속에 가득한 생생한 증오심 때문에 숨이 가빠졌다. 눈물이 내 뺨을 거쳐 무릎 위로 떨어졌다. ' 맙소사, 여전히 너무 아파.' 잠시 후 지쳐빠진 여자가 침대에 쪼그려 누웠다.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상처투성이 감정을 흩어버리고 그려를 꿈도 없는 깊은 잠 속으로 보내주었다. - p.146
서신을 주고 받은 후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중간인 케이프타운에서 16년만에 재회하게 된다. 서로의 얼굴은 알지만 낯설음으로 마주한 두 사람은 처음 초조하고, 떨리는 기운을 뒤로하고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는 진실의 문 가까이로 들어가 그날을 떠올리며 각자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이어나간다. 토르디스에게도 톰에게도 그날의 기억은 정말 들춰내고 싶지 않은 암울한 기억이지만 하나 둘 마음을 털어내면서 서로에게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어쩌면 자신들이 알고 있는 가족, 친구들에게 조차도 꺼내기 힘든 나날의 시간들을 꺼내놓고,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자신들이 있는 케이프타운이라는 곳이 얼마나 날 것이 공존한 도시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토르디스가 하는 행동이, 톰이 하는 행동들이 낯설게 느껴졌던 부분이 있었다. 토르디스의 경우는 조금만 눈을 돌리면 당장이라도 낯선 타인이 자신에게 해를 가할지도 모르는 날것의 도시임을 알고있음에도 그녀는 술에 취해 거리를 돌아다니는 부분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낯설면서도 불편하게 느껴져 그럴 때마다 책을 덮고, 그들의 마음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한참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피해자와 가해자의 행동모드에 편견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토르디스와 톰의 이야기는 각자 서신을 주고받으면서 다시금 정제되어 나온 책이기도 하다. 오랜시간 서로의 도움으로 서로의 트라우마가 치유되는 과정이 고스란히 그러난다. 용서의 시간 속에서는 많은 시간과 서로에 대한 이해와 오해, 자책의 시간들을 함께 공유하는데 있음을 그들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톰의 행동은 너무나 잘못된 행동이었고, 왜 자신이 그럴 수 밖에 없었음을 자신의 유년시절의 이야기와 사건이 일어난 이후 자신이 만난 여자들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을 수 없어 힘들었음을 고백한다. 이 책은 서로의 용기와 고백, 기적이 만들어낸 기록들이다. 많은 이들이 시원스레 용서를 할 수 있다면, 가해자들의 진심어린 사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길 역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기에 두 사람이 만들어낸 용서가 뜻깊고, 서로에게 치유가 되어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더 큰 자양분이 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