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에서 나눈 대화 - 귄터 그라스, 파트릭 모디아노, 임레 케르테스… 인생에 대한 거장들의 대답
이리스 라디쉬 지음, 염정용 옮김 / 에스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낯설면서도 익숙한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가즈오 이시구로였다. 그가 수상을 하기 이전에 그의 많은 작품들이 번역이 되었고, 많은 작품 중 <남아 있는 나날>(2010,민음사)을 접하게 되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한 노신사였다. 영국인 집사로서 충직하며, 자신의 일에 소임을 다하는 그의 이야기는 지난날 자신의 생을 돌아보는 것이었고, 그가 서부 지방으로 첫 여행을 떠나면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이야기였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대표작 중 하나였으면 아쉽게도 처음으로 마주했던 그 작품이 늘어진 테이프처럼 페이지가 더디게 넘어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스티븐슨의 이야기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황혼기에 접어든 한 남자의 회고록이 하나도 가슴에 닿지 않았고, 훗날 다시 읽어보기로 기약하며 책을 덮었던 소설 중 하나였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간 너머, 혹은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한 노인의 모습은 시간차가 맞지 않았다. 비로소 내가 노년의 삶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구나, 라는 자각이 들었던 작품이다. 그 후 다른 나라의 작가를 통해 많은 작품들이 노년의 삶을 그렸고, 이제는 더이상 나의 시간과는 다른 세계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길을 가다가, 버스를 타다가, 티비를 보다보면 많은 이들의 삶들이 이제는 젊지 않고, 늙어버렸다. 고연령층이 많아질 것 이라는 예상을 이미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이토록 우리의 삶의 일부분이 그렇게 빨리 전해질지 몰랐다.


이리스 라디쉬의 <삶의 끝에서 나눈 대화>는 많은 작가들이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며 인터뷰를 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유럽의 많은 작가들이 참여했는데 낯설면서도 익숙한 작가들이 눈에 많이 띈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알만한 작가는 쥘리앵 그린, 권터그라스, 안토니오 타부키, 파트릭 모디아노, 아모스 오즈의 이름이 가장 눈에 들어온다. 그 외의 작가들은 낯설지만 낯설어서 더 그들의 이야기가 호기심어린 목소리로 들린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그들의 삶, 과거와 현재를 넘어 그들이 늘 쥐고 있는 문학의 이야기를 심도있게 들려준다.


한동안 의식적으로 나는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해 피해왔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 단어를 떠올려도 기분이 좋지 않았고, 그와 관련된 책은 될 수 있으면 피해왔다. 예전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삶이 있으면 죽음 또한 당연히 따라 오는 것임을 알고있음에도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주는 무게감이 어마어마한 무게로 느껴졌던 것 같다. 이전과 비교한다면 요즘은 그런 경계에서 조금씩 벗어나려고 노력 중이다. 예전이라면 읽지 않았을 이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만으로 조금씩 마음의 변화가 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노년의 삶은 끝을 바라보게 만든다. 언젠가 누군가는 죽는다는 것을 염두해 두고 있는 것 같고, 자꾸만 몸도 마음도 약해지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무엇보다 '젊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자꾸만 눈에 새겨두며, 그것을 마주 할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주어진 순간들의 시계가 조금씩 남아있는 자각을, 그래서 더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을 남김없이 쓰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 책을 통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동안 마주했던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것들이 책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재와 과거의 시간 속에서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들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이야기가 다양한 채도 속에서 잔잔하게 들려오기도 한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살아갈 내일과 그 후의 일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인터뷰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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