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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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55 겉모습이 아닌



《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이용숙 옮김

워즈덤하우스

2001.10.20.



《책상은 책상이다》를 다섯 해 만에 다시 읽는다. 이 책은 동화라고도 하는데, 동화가 맞나 갸우뚱해 본다. 그러나 1969년에 처음 나온 글이니, 그무렵에는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동화로 읽힐 수 있었는지 모르지.


얼핏 점잖은 체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얼핏 다 알거나 잘난 척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아무것도 없는데 마치 있는 듯 꾸미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가만히 보면, 《책상은 책상이다》에 나오는 사람들 이야기는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이다. ‘안다’고 여기는 길이 참말로 ‘안다’고 할 수 있는지 모두 허물고서 처음부터 다시 돌아보는 줄거리 같다.


우리 가게는 아침 일곱 시 반에 열고 밤 열한 시 반에 닫는다. 한 해 내내 쉬지 않고 연다. 늦게 연다고 뭐라는 사람이 없을 테지만, 가게를 닫는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겠지만, 손님과 말없이 맺은 다짐인 셈이다. 아프거나 집안일이 있거나 어디 바람을 쐬고 싶어도 가게를 닫지 못 한다.


‘책상은 책상이다’ 꼭지를 돌아본다. 말놀이에 글놀이 같고, 말장난 같기도 하다. 이미 있는 말을 함부로 바꾸면 뒤죽박죽이 된다. 멋대로 이름을 바꾸면 다른 사람들뿐 아니라 나부터 헷갈리겠지. 


곰곰이 보면, 다르게 읽을 수도 있다. 다들 ‘이렇게 하자(사회적 약속)’고 하더라도 꼳 ‘그렇게 해야’ 할까? 우리 가게는 왜 하루조차 안 쉬어야 하는가? 하루를 쉰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더 늦게 열거나 더 일찍 열 적에는 무엇이 어떻게 바뀔까? 말도 말이고 이름도 이름이지만, 먼저 ‘나’를 어디에 놓을는지 생각할 노릇이라고 본다.


어느 모로 다시 보면, 《책상은 책상이다》는 시쓰기에 이바지할 만할 수 있다. 무엇이든 ‘보이는 그대로’ 느껴서 보기보다는 ‘내 나름대로’ 다르게 느껴서 보는 눈길을 엿볼 수 있다. ‘말꼬리’를 이렇게 이어갈 수도 있다고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말꼬리’는 자칫 말장난에 바보스런 짓으로 치달을 수 있다.


어쩌면 이 책은 ‘알맹이 없이 겉으로만 요모조모 바꾸거나 꾸미거나 내세우는 현대사회’를 살짝 우습게 비틀어 보여주는 셈일는지 모른다. 이런 뜻에서 ‘동화’라고, ‘어린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했는지 모른다. 겉모습에 얽매이기에 겉치레에 거짓이 된다면, 누가 붙여 주는 이름에 매이지 말고, 속마음을 바라보는 ‘나다움’을 찾아야 하겠지.


들꽃을 알려면 들꽃한테 다가가서 들꽃하고 놀며 수다를 떨어야 한다. 책상맡에 앉아서 식물도감을 찾아본들 들꽃을 알 수 없다. 마음을 보자. 스스로 곱게 여미는 마음에서 스스로 곱게 살아가는 말이 나온다.


2023.11.04.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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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보는 길 - 개정판 정채봉 전집 3
정채봉 지음 / 샘터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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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54 아프던 어제



《눈을 감고 보는 길》

정채봉

샘터

2006.1.9.



《눈을 감고 보는 길》을 읽었다. 글쓴이가 죽음을 앞두고 쓴 글을 모은 책이다. 곧 몸을 내려놓아야 할 날을 알아채고서 병원에서 쓴 글이다. 머잖아 더는 글을 쓸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는 몸인데, 마지막으로 남기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문득 생각해 본다. 나는 여태 병원에 어떤 일로 얼마나 드나들었을까. 아이를 셋 낳는다면서 병원에 가서 배를 갈랐다. 곪은 멍을 뽑아내야 한대서 갔다. 건강검진을 해야 해서 드나들기도 한다.


무릎이 삐걱거리면서 뒤틀리듯 아파서 병원에 들어간 때도 있다. 이때에는 다리에 무거운 쇠를 박았고, 한 달 동안 병원에 몸져누우면서 잠을 거의 못 잤다. 진통제를 먹고서야 가까스로 눈을 붙였다. 다리를 째고 쇠를 박고 아물어야 했으니 얼마나 아팠던가. 오금이 저리고 저절로 아야 소리가 터져나왔다. 한 달이 지나고서는 바퀴걸상을 석 달 탔다. 겨우 나무발을 짚고 일어서며 다시 걷는 훈련을 했는데, 이 여러 달에 걸쳐 일기는 엄두도 안 났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일기는 꼬박꼬박 썼는데, 이때에는 아무 생각도 못 하며 아픈 다리를 버티기만 했다.


둘째를 낳던 때를 떠올린다. 둘째도 딸이었는데, 두 집안 어른은 아들을 바랐다. 아들 아닌 딸이 나온다는 말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인데, 아기가 태어나는 즈음을 앞두고 다들 집으로 돌아가더라. 혼자 남아서 몹시 서러웠다. 아무튼 나는 배를 갈랐고, 아기는 나왔는데 나는 넋을 잃고 안 깨어났단다. 이때에 네 살이던 큰딸이  “엄마, 일어나!” 하고 외쳐서 깨우더란다. 둘레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깨우려고 그렇게 애써도 꼼짝을 안 했다는데, 네 살 큰딸이 흔들며 깨울 적에 비로소 알아차렸다고 하더라.


둘째를 딸로 낳은 뒤 배가 무척 고팠다. 어쩌면 죽다가 살아난 셈인데, 딸을 낳았다면서 아기 엄마인 나를 쳐다보는 집안어른이 없었다. 그 흔한 귤 하나도 사주지 않더라. 아무도 내가 배가 고픈 줄 몰랐고, 뭐라도 먹을거리를 사주지 않더라. 어쩜 그럴 수 있을까. 이때 일은 몹시 섭섭해서 오래도록 사무쳤다.


《눈을 감고 보는 길》을 돌아본다. 아픈 몸으로 쓰는 글에는 어떤 마음이 담기는가. 이제 마지막인 줄 알 적에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이제 나는 멀쩡히 걷는다. 잘 달리지는 않지만, 멧길도 이따금 오르내리고, 자동차를 몰기도 한다. 가게 일도 이럭저럭 한다. 바다를 보면 바다에 뛰어들고 싶다. 숲에 가면 벼랑에서 껑충 뛰어내려 보고 싶기도 하다. 이 다리로 어디를 더 다닐 수 있을까. 앞으로 살아갈 날에는 어떤 하루를 걸어가면서 내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을까.


하나하나 돌이키면, 언제나 아이처럼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마음일 수밖에 없다. 책을 읽어도, 일을 해도, 집에서 잠들어도, 바람을 쐬려고 멧골을 찾아가도, 늘 다시 배우는 하루이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다가 눈을 다시 뜨면 꼭 다시 태어나서 살아가는 하루 같다. 이 책도 나한테는 스승이고, 이 책을 읽고서 남겨 보는 이 글도 배우는 일이다.


마음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어 본다. 그동안 닫아걸며 안 들으려고 했던 속마음을 천천히 들어 본다. 마음에 든 멍도, 몸에 새긴 멍울도, 차근차근 씻고 털어내면서 마음소리를 들어 본다.



2023.11.05.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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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서의 하룻밤
패티 스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마음산책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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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53 이름값



《달에서의 하룻밤》

패티 스미스

김선형 옮김

마음산책

2021.2.15.



《달에서의 하룻밤》은 막 나와서 책집에 깔리던 2021년에 처음 사서 읽었다. 그때에는 좋았다고 느꼈는데, 요 며칠 사이에 다시 읽으니 아니더라.


소설이라기에는 심심하고 여행일지라기에는 더 심심하다. 자서전도 아니고 회고록도 아니다. 어느 한 대목도 내 마음을 찡하게 울리지 못 한다. 그런데 이태 앞서 읽을 적에는 왜 좋았다고 느꼈을까. 


예전에는 못 보고 오늘은 보이는 이 틈새는 뭘까? 곰곰이 짚어 본다. 《달에서의 하룻밤》은 방바닥에 이것저것 늘어놓은 듯이 시시콜콜 되는 대로 적은 글 같다. 뭔가 잔뜩 펼치려고 하지만 막상 하나도 잇닿지 않고 어지럽달까. 술집 이야기를 하다가 대뜸 책 이야기를 하다가, 어디에서 글을 써 달라는, 이른바 청탁으로 글을 쓰는 이야기가 나오더니, 갑자기 모든 글은 가슴(심장)에서 나온다고 맺는데, 어쩐지 겉멋만 부리는 글잔치 같다.


책을 덮고서 한숨을 쉰다. 그래, 지난 2021년에 나는 아직 이름값(프로필)에 휘둘려서 책을 샀고 읽었다. 이름값이 높다는 사람들이 쓴 책을 읽어야, 나도 글쓰기를 잘 할 수 있는 재주를 배울 만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요새는 이름값은 허울이라고 느낀다. 사람들이 다들 알 만한 출판사에서 책을 내야 훌륭한 책일까? 사람들이 널리 알 만한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실어야 멋진 글일까?


사람들이 거의 모르는 작은 출판사에서 책을 내면 초라하거나 후줄근할까? 신문에도 잡지에도 글을 못 싣는다면, 읽을 값어치가 없는 글일까?


지난 2022년 12월에 내 이름을 단 책을 낸 적 있다. 경북 의성 멧골자락에서 자라면서 겪고 보고 들은 이야기를 ‘풀꽃나무’를 떠올리면서 차곡차곡 써서 내놓았다. 그런데 나는 내가 쓴 이 책을 어린 날 함께한 벗들이 안 보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소꿉친구들은 내가 쓴 책을 읽고 싶다고 하더라.  나더라 ‘작가’가 되었으니, 내가 쓴 책에 내 이름을 적어서 주기를 바라더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가장 가까이서 함께 자랐던 벗한테 내가 쓴 책을 건네주었다. 이러고서 며칠이 지나고서 뜻밖인 일이 벌어졌다. 어떤 친구는 볼펜을 쥐고서 내 책을 읽었다고 알려 왔다. 어떤 친구는 일터에서 내 글을 두 꼭지를 읽고 컴퓨터를 켰다고 알린다. 친구가 일하는 책상맡에 내 책을 둔 사진도 보내주었다. 어쩌면 나는 가장 가까울 독자를 지레 두려워한 셈이다.


그나저나 나는 앞으로 글쓴이 이름값(프로필)에 낚이지 않으면서 책을 고를 수 있을까? 글쓴이 이름값에 주눅들지 않을 수 있을까? 글을 오직 글로만 바라보는 눈썰미를 키울 수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달빛은 없는 빛이다. 햇빛을 튕길 뿐인 달빛이다. 있는 빛이라면 별빛이다. 빛이 없고 볕도 없는 달일 텐데, 달에서 어떻게 하룻밤을 보내겠는가. 달하고 해하고 별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니 ‘달에서의 하룻밤’이라면서, 책이름도 멋을 부렸으리라.


나는 ‘별에서 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오늘 이곳도 별(지구)이다. 스스로 빛나는 별에서 하루를 짓고 싶다. 스스로 별이 되어 글 한 자락을 쓰고 싶다. 오늘 하루를 살아온 나를 돌아보면서, 내 삶과 우리 짝꿍 삶과 우리 아이들 삶을 글로 여미고 싶다.




2023.12.01.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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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생활 2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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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52 내가 쓰고 싶은 글



《천재 유교수의 생활 2》

야마시타 카즈미

소년 매거진 찬스

학산문화사

1996.12.25.



어제 글잔치(백일장)에서 심사를 처음 맡아 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여러 가지를 하는 동안, 나는 심사위원으로서 글을 읽고 뽑는다. 어르신들이 쓴 글은 짧고 투박했다. 거의 모든 분들이 “선생님 고맙습니다” 같은 글만 적으셨다. 어르신들 마음을 담아내지 못 했다. 글을 이제 처음으로 배운 어르신들은 하고픈 말이 많을 텐데, 하나같이 “글을 배워서 좋다”는 말뿐이더라.


심사를 마치고 밥자리로 옮겼다. 함께 심사를 맡은 어떤 분이 ‘이름난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술을 곤드레만드레 마신 일을 늘어놓는다. 그렇게 ‘이름난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술도 잔뜩 마셔야 좋은 글이 나온다면서, 바르게 살아서는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고 못을 박는다.


이분 말씀을 한참 듣다가 “그렇게 집밖으로 돌지 않고도 반듯하게 마음을 다스리며 글을 쓸 수 있다”고 대꾸했다. 그분 말마따나 글 좀 써 보겠다면서 흥청망청 마시며 어울리면 무엇을 배울까? 그렇게 배워서 쓰는 글이라면 집안은 뒷전이다. 내 대꾸에 그분은 그동안 집안에 마음을 못 썼다면서 끝말을 흐리더라. 그분이 어울렸다는 이름난 어떤 분 아이들은 ‘우리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덧붙인다.


《천재 유교수의 생활 2》을 읽었다. 유교수가 생일을 맞아 딸 넷이 아버지 옷을 사주기로 했단다. 아버지가 옷을 고르는 사이 딸들은 다른 곳에 눈길을 쏟는데, 아버지는 스스럼없이 옷 한 벌을 살피고, 조용히 옷값을 치른다. 네 딸은 저마다 돈을 모아서 아버지 옷을 사주려 했으나, 막상 네 딸마다 백화점에서 다른 것에 꽂히면서 ‘아버지한테 옷을 사주기로 한 돈’을 다 쓰고 말았다. 유교수는 딸들이 옷을 안 사주었어도 서운하거나 섭섭한 마음이 없다. 오히려 네 딸을 보면서 너희가 사고픈 것을 알아서 샀다면 잘 한 일이라고 얘기한다.


네 딸은 문득 ‘아빠는 우리랑 안 놀아 줘’ 하고 입술이 삐죽 나오던 어린 날을 떠올린다. 다 큰 딸들은 ‘우린 아무 곳도 가 본 적 없어. 우리 집안끼리 나들이를 한 적도 없고’ 같은 말을 했다. 유교수 짝꿍도 마음이 거북하다. 유교수가 책값에 쓴다고 하는 바람에 영화도 못 보고 살림돈도 모자라서 가난에 찌든 나날을 보냈다고 떠올린다.


유교수는 책벌레로 살았다. 아이들과 짝꿍이랑 함께할 나날을 놓쳤다. 그래도 네 딸이며 짝꿍은 비록 유교수가 책벌레였고 집일에 마음을 덜 썼다고 여겼어도, 반듯하게 살아가는 매무새에 걱정없이 살아오며 저마다 스스로 꿈꾸는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유교수는 책벌레였되, 밖에서 술을 마시는 일도 없고, 노닥거리는(도박) 짓도 안 했다. 네 딸이 품은 꿈을 가로막은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북돋았고, ‘여자라서 안 된다’는 말을 한 적조차 없다. 겉모습을 따진 적이 없고, 언제나 ‘마음’만 살폈다.


유교수는 네 딸하고 짝꿍한테 살가이 굴지는 않았으나 누구한테나 고르게 마주했고,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갈 길을 어질게 짚어 주며 함께 지냈다. 이런 아버지인 유교수를 느꼈기에 딸들도 손자도 유교수를 기둥으로 든든하게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아하지 않는 다른 일에는 마음을 덜 쓴다. 이런저런 일을 집 바깥에서 겪으면 글이 기름질 수 있다고도 할 테지만, 내가 보금자리에서 등을 돌리면 한집안하고는 돌이킬 수 없이 멀고 만다.


나는 빨리 나아가지 않더라도, 느리게 가더라도, 글을 놓지 않고 싶다. 유교수처럼 책벌레일 수는 없지만, 책을 꾸준히 사랑하면서, 우리 보금자리도 알뜰살뜰 사랑하는 마음을 잇고 싶다. 이러면서 이 삶을 글로 쓰고 싶다.


나는 감투나 이름을 얻는 글을 쓰고 싶지 않다. 이 하루를 사랑하고, 우리 세 아이하고 짝꿍하고 어울리는 보금자리를 사랑하는 마음을 글로 담고 싶다. 내가 쓰는 글은 우리 아이요, 우리 짝꿍이며, 내 얼굴이다.


그런데 내가 쓰고 싶은 이런 글을 요새 누가 읽느냐는 핀잔을 듣는다. 그렇다. 요새는 다들 바쁘지 않은가. 작고 수수한 삶을 찾아볼 사람은 적을 듯하다.


곰곰이 생각한다. 어르신들이 쓴 글을 살피고 온 뒤로 더욱 내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나는 글을 쓰면서 짝한테서, 우리 아이들한테서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가게에 들렀다. 오늘 하루도 땀흘려 일한 짝이 나를 보더니 말없이 꼭 안아 주었다.



2023.11.19.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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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하루



우리 가게에 오는 

할머니 할아버지 손님은

늘 손을 꼭 잡고

언제나 둘이 붙어 다닌다.


셈을 마치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담고 싶다'고 혼잣말한다.


꽃을 보면

꼭 꽃을 닮고 싶고,

구름을 보면

꼭 구름에 닿고 싶고,

사랑을 보면

꼭 사랑을 담고 싶다.




#승강장 안전문 

#서울詩 지하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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