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달에서의 하룻밤
패티 스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마음산책 / 2021년 2월
평점 :
작게 삶으로 053 이름값
《달에서의 하룻밤》
패티 스미스
김선형 옮김
마음산책
2021.2.15.
《달에서의 하룻밤》은 막 나와서 책집에 깔리던 2021년에 처음 사서 읽었다. 그때에는 좋았다고 느꼈는데, 요 며칠 사이에 다시 읽으니 아니더라.
소설이라기에는 심심하고 여행일지라기에는 더 심심하다. 자서전도 아니고 회고록도 아니다. 어느 한 대목도 내 마음을 찡하게 울리지 못 한다. 그런데 이태 앞서 읽을 적에는 왜 좋았다고 느꼈을까.
예전에는 못 보고 오늘은 보이는 이 틈새는 뭘까? 곰곰이 짚어 본다. 《달에서의 하룻밤》은 방바닥에 이것저것 늘어놓은 듯이 시시콜콜 되는 대로 적은 글 같다. 뭔가 잔뜩 펼치려고 하지만 막상 하나도 잇닿지 않고 어지럽달까. 술집 이야기를 하다가 대뜸 책 이야기를 하다가, 어디에서 글을 써 달라는, 이른바 청탁으로 글을 쓰는 이야기가 나오더니, 갑자기 모든 글은 가슴(심장)에서 나온다고 맺는데, 어쩐지 겉멋만 부리는 글잔치 같다.
책을 덮고서 한숨을 쉰다. 그래, 지난 2021년에 나는 아직 이름값(프로필)에 휘둘려서 책을 샀고 읽었다. 이름값이 높다는 사람들이 쓴 책을 읽어야, 나도 글쓰기를 잘 할 수 있는 재주를 배울 만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요새는 이름값은 허울이라고 느낀다. 사람들이 다들 알 만한 출판사에서 책을 내야 훌륭한 책일까? 사람들이 널리 알 만한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실어야 멋진 글일까?
사람들이 거의 모르는 작은 출판사에서 책을 내면 초라하거나 후줄근할까? 신문에도 잡지에도 글을 못 싣는다면, 읽을 값어치가 없는 글일까?
지난 2022년 12월에 내 이름을 단 책을 낸 적 있다. 경북 의성 멧골자락에서 자라면서 겪고 보고 들은 이야기를 ‘풀꽃나무’를 떠올리면서 차곡차곡 써서 내놓았다. 그런데 나는 내가 쓴 이 책을 어린 날 함께한 벗들이 안 보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소꿉친구들은 내가 쓴 책을 읽고 싶다고 하더라. 나더라 ‘작가’가 되었으니, 내가 쓴 책에 내 이름을 적어서 주기를 바라더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가장 가까이서 함께 자랐던 벗한테 내가 쓴 책을 건네주었다. 이러고서 며칠이 지나고서 뜻밖인 일이 벌어졌다. 어떤 친구는 볼펜을 쥐고서 내 책을 읽었다고 알려 왔다. 어떤 친구는 일터에서 내 글을 두 꼭지를 읽고 컴퓨터를 켰다고 알린다. 친구가 일하는 책상맡에 내 책을 둔 사진도 보내주었다. 어쩌면 나는 가장 가까울 독자를 지레 두려워한 셈이다.
그나저나 나는 앞으로 글쓴이 이름값(프로필)에 낚이지 않으면서 책을 고를 수 있을까? 글쓴이 이름값에 주눅들지 않을 수 있을까? 글을 오직 글로만 바라보는 눈썰미를 키울 수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달빛은 없는 빛이다. 햇빛을 튕길 뿐인 달빛이다. 있는 빛이라면 별빛이다. 빛이 없고 볕도 없는 달일 텐데, 달에서 어떻게 하룻밤을 보내겠는가. 달하고 해하고 별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니 ‘달에서의 하룻밤’이라면서, 책이름도 멋을 부렸으리라.
나는 ‘별에서 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오늘 이곳도 별(지구)이다. 스스로 빛나는 별에서 하루를 짓고 싶다. 스스로 별이 되어 글 한 자락을 쓰고 싶다. 오늘 하루를 살아온 나를 돌아보면서, 내 삶과 우리 짝꿍 삶과 우리 아이들 삶을 글로 여미고 싶다.
2023.12.01.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