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들어오려는 너

[푸른 하루5] 푸른개구리



  나는 푸른개구리하고 잡니다. 벌하고도 잡니다. 물꼭지를 틀려고 보니 손잡이에 푸른개구리가 앉았습니다. “응, 거기에 있어도 돼.” 혼잣말을 하지만 혼자말이 아닙니다. 푸른개구리는 이 말을 알아듣고는 눈을 껌뻑입니다.


  푸른개구리가 앉은 코앞을 지나면서 팔을 뻗쳐도 가만히 있습니다. 빗자루를 들고 나와도 가만히 있습니다. 벌써 폴짝 뛰어서 다른 곳으로 갔을까 싶지만, 아직 여기에 가만히 있습니다. 딸기나무 잎에 사는 푸른개구리는 어디 숨어서 나를 보나 봅니다. 어디 가나 목소리를 듣나 봅니다. 


  풀밭에는 얼룩개구리가 얼굴을 숨깁니다. 나뭇잎에는 푸른개구리가 이파리에 풀빛 몸을 숨겨요. 숨어도 가끔 얼굴이 드러납니다. 잿빛몸을 입은 푸른개구리도 나옵니다. 등푸른 푸른개구리도 나옵니다. 어두워서 살짝 불을 켤 때라든지, 삐리릭 소리를 내며 방문을 열 때에도 이 여러 개구리는 어디서 나를 지켜볼는지 모릅니다. 푸른개구리가 우리 집에 들어오고 싶은가 봅니다. 내가 며칠 집을 비우면 몰래 들어올는지 모릅니다. 


  이따금 집안에서 마주치는 푸른개구리를 밖으로 내보냅니다. 어디로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한 마리를 내보내면 또 한 마리가 어느새 들어와요. 자다가 얼굴이 축축할 때가 있어요. 푸른개구리는 벽을 척척 타고서 내려오다가 내 얼굴에 떨어졌나 봅니다. “넌 여기서 살 수 없어.” 하고 속삭이면서 문밖에 내다놓습니다. 여름 볕에 달아오른 집이기에, 사람처럼 옷을 입지 않은 촉촉한 푸른개구리 같은 몸은 바싹 마르기 쉽습니다.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 하면, 푸른개구리는 우리 집안 한구석에서 숨이 막혀 다리를 펴지도 뛰지도 못한 채 바싹 말라버립니다.


  하루는 집안에서 자꾸만 흙 내려오는 소리가 났습니다. 벼랑에서 흙이 떨어지는 소리인 줄 여겼습니다. 그런데 푸른개구리가 바깥벽으로 폴짝 뛰어서 붙을 적에 나는 소리였습니다. 착 달라붙는 발이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꽉 잡으며 긁는 소리예요. 이제 이런 소리가 나도 문을 열지 않습니다. 거꾸로 세워둔 빗자루에 저녁이면 푸른개구리가 앉아요. 집을 갖고 싶은가 봐요.


  종이로 환풍기를 덮습니다. 이 틈으로 자그마한 푸른개구리 한 마리가 들어온 적이 있어요. 참으로 작은 푸른개구리였습니다. 푸른개구리는 울 적에 오리를 닮은 소리를 냅니다. 꽥꽥 울어요. 작은 몸에서 어떻게 큰소리가 나올까요. 큰소리는 작은 몸이라서 내고, 나중에 몸이 크면 거꾸로 작게 소리로 낼까요.


  풀밭에 있어야 할 푸른개구리한테 얘기해요. “사람 사는 집으로 들어오면 너희 몸이 말라버려. 너희는 숲에 있어야 몸이 촉촉하지. 너희 숲으로 돌아가.”


  이제 밤이면 확 춥습니다. 밤바람도 찹니다. 불을 때지 않고서 밤을 보내면 선뜻 놀라서 깹니다. 한밤에 깨서 두리번거리는데 어느새 들어와서 벽에 붙은 푸른개구리를 또 봅니다.


  비가 오려고 하면 산에서 푸른개구리가 웁니다. 한낮에 집안에 앉아도 어느 틈으로 들어오는지 창가에 있더니 이젠 새끼 귀뚜라미까지 들어옵니다. 푸른개구리는 높은 곳을 좋아합니다. 물가를 찾을 줄 알고요. 나뭇잎에 살면서 이슬을 받아먹고 살아요. 나무를 타고 잎에 몸을 숨겨요. 포도나무 꼭대기에 살다가 단풍나무로 옮겨살다가, 얼룩개구리처럼 폴짝폴짝 모습을 드러내기도 해요. 작은이웃을 바라보며 다시 속삭입니다. “집안까지는 들어오지 마. 어서 가. 너는 풀밭에서 푸르게 살아.” 




2026.9.11. 숲하루


벼 잎 잡고 구애의 울음 ‘수원청개구리’…논 줄어 멸종 위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252299.html


페인트만 바꿔도 도시가 식는다

https://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1799


제주 생태계 보전, 산림에서 연안까지 넓힌다

https://www.hkb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33168


네팔 외교장관 "히말라야 쓰나미...탄소 다배출국이 책임져야"

https://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2113


광주에선 사라지고 무주에선 살아난다...엇갈린 반딧불 운명

https://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2175


버려지는 포장재 비용, 시민 대신 기업...네덜란드의 역발상

https://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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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감자 밭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91
애니타 로벨 글.그림,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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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사람은 밭을 일구지 않는다

[읽는하루 4] 자주꽃도 흰꽃도 감자로


《어머니의 감자 밭》

 아니타 로벨

 장은수 옮김

 비룡소

 2003.2.17.



  자주감자를 심는다. 우리 시골에서는 빨간감자라고도 한다. 가을에 캐고, 봄에 씨감자로 심는다. 감자를 자르면, 보조개처럼 들어간 자리에서 싹이 튼다. 새해 새봄에 심어서 그해 유월에 캔 감자를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 


  감자 하나를 잘라 둘을 심으면 두 포기를 이룬다. 땅밑에서 주렁주렁 달리는 감자는 배고프던 날에 고마운 밥이다. 노란감자는 볶음으로 누리고, 빨간감자는 찌개로 삶는다. 어린날에는 쌀이 없어서 보리와 좁쌀을 섞어서 먹었는데, 언제나 감자가 우리 배를 채웠다.


  노란감자는 하얀꽃이 핀다. 빨간감자는 보라꽃을 피운다. 바람에 살랑이는 꽃을 보면, 이 골짜기가 싱그럽게 살아숨쉰다고 느낀다. 그런데 어린날에는 감자를 늘 먹었으면서도 감자꽃을 보지 못 했다. 아니, 감자꽃이 필 무렵에 감자밭을 안 가 보았겠지. 그때는 감자밭이 집에서 꽤 떨어진 비탈진 산에 있었다.


  그림책 《어머니의 감자 밭》을 본다.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밭을 담으로 둘러싼다. 밭 옆으로 숱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 어머니는 두 아들이 섣불리 바깥을 넘보지 않기를 빈다. 그렇지만 마침내 두 아들은 서로 다른 군대를 멋지다고 쳐다보았고, 두 아들은 저마다 담을 넘어서, 한 아들은 빨간 군대에 가고, 다른 아들은 파란 군대에 간다.


  엄마는 혼자서 바깥에 눈을 돌리지 않고 밭을 일군다. 서로 다른 군대는 끝없이 싸운다. 서로 다른 두 군대는 싸우다가 배고프고 지친 나머지 ‘어머니 감자밭’까지 쳐들어온다. 담을 허물고 집을 부수고 감자밭을 짓밟는다. 이러다가 두 아들은 무너진 집에 드러누운 엄마를 알아본다. 두 아들은 뒤늦게 빌면서 운다.


  어머니는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그동안 건사한 감자를 나누어 주면서 집도 밭도 고친다. 이제 군인들을 모두 ‘저희 집’으로 가라면서 돌려보낸다. 두 아들은 칼과 훈장을 땅에 묻는다.


  그림책을 덮고서 생각한다. 우리는 싸우려고 담을 세우고 더 먹으려고 이웃집까지 쳐들어가서 부순다. 더 얻어야 한다고 여긴다. 남한테 있으면 빼앗으려고 한다. 이러면서 미끼에 휘둘린다. 함께 나누던 감자 한 알을 쉽게 잊는다. 감자 한 알을 함께 먹으면서 마음이 쌓은 이야기를 스스로 무너뜨린다.


  이 감자이든 저 감자이든 모두 감자이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한 나라이다. 서로 다투거나 밟거나 빼앗을 일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밭을 스스로 일구면서 나눌 일이라고 본다.


  글쓰는 사람들을 보면, 나라일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여기는데, 다들 이쪽이나 저쪽 한 가지 목소리만 내려고 한다. 《어머니의 감자 밭》에 나오는 어머니처럼 ‘밭일’을 하기보다는 두 아들처럼 이쪽 군대나 저쪽 군대에 들어가서 훈장을 차고 칼을 휘두르려고 한다. 이제 글쓰는 사람들도 밭을 일구어야 하지 않을까? 감자는 어느 곳에서나 감자이다. 함께 나눌 감자를 손수 심고서, 감자노래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 



2026.9.9.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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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나무를 심는 손님

[푸른하루 4] 담비



  아침에 일어나니 강아지 한 마리가 안 보입니다. 측백나무 옆으로 난 비탈에서 내려오지 못하며 다리를 떱니다. 굵은 나무를 놓아 줍니다. 이 나무를 밟으며 내려오라고 하는데 아직 발을 다리를 떱니다. 다른 강아지가 나무다리를 오르내리고 나서야 비로소 이 강아지가 뒤따릅니다.


  우리 집에서 담비를 자주 봅니다. 가만히 살피면, 측백나무 오솔길을 건너고 고구마밭을 지나서 호두나무를 타더군요. 오가다가 문득 멈칫하더니 어느새 재빨리 숲으로 사라집니다.


  담비는 호두알도 따먹는 듯합니다. 가까이 사는 밭임자는 열 해 넘도록 후두알을 건사하지 못 했다고 합니다. 우리 집에 강아지를 둘 들인 뒤로는 담비가 좀처럼 호두나무 쪽으로 다가오지 못 한다고 느낍니다.


  담비는 아침 일찍 다닙니다. 담비를 본 강아지 한 마리는 짖고, 다른 강아지는 고구마싹을 풀쩍풀쩍 뛰어넘어서 호두나무 코밑으로 갑니다. 담비는 꼼짝을 않는 듯하다가 강아지가 얼핏 등을 돌린 사이에 길을 건너서 산으로 들어갑니다. 강아지는 사라진 담비 쪽을 보며 내내 짖어댑니다. 살짝 나타난 담비는 참나무를 타고 올라서 소나무로 건너더니 휙 사라집니다.


  담비는 벼랑을 잘 탑니다. 집에 있다가 부스럭하는 가랑잎 밟는 소리가 나면 ‘아, 왔나?’ 싶어서 창문 옆에 숨어서 지켜봅니다. 담비는 벼랑을 오가며 나무를 탑니다. 이러다가 벼랑 가운데짬에서 강아지 눈에 띄고 맙니다. 강아지는 그길로 벼랑을 뛰어오릅니다. 가랑잎에 미끄러지고 더는 못 올라갈 무렵, 담비는 이미 벼랑에 걸친 나무 둔치에 앉아서 강아지를 내러다봅니다. 강아지는 올라오지 못하는 줄 아는 듯합니다. 


  강아지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면 담비를 쫓겠다며 덤빕니다. 아마 강아지는 짖어댈 수는 있어도 잡지는 못 할 텐데, 담비는 눈에 잘 띄는 검은털로 날렵하게 숲을 날듯 달리며 살아갑니다.


  담비가 따먹어서 호두알을 못 누린다고 하지만, 호두를 따먹는 담비이기에 이 멧숲에 호두나무를 심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토리를 따먹으면 참나무를 심을 테지요. 나무열매를 따먹는 멧짐승은 멧숲 곳곳에 열매나무를 한 그루씩 심으면서 살아갑니다.


  어느 날은 뒤에서 누가 보는구나 싶어서 돌아보니, 담비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서 나를 빤히 내려다보더군요. 담비한테는 강아지까지 두 마리를 집에 둔 사람이 못마땅할 수 있습니다. 조용히 나무열매를 누리던 삶을 흔드는 사람들일 테니까요. 담비는 사람처럼 아파트를 올리지 않고 자동차를 달리지 않아요. 그저 조용히 열매를 누리고 나무를 심어요.


  다음에도 담비랑 눈을 마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 마주보면서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기를 빕니다. 말을 걸고 싶어요. 숲에서 무얼 하고 지내는지 묻고 싶고, 담비는 새끼를 어떻게 낳아서 돌보는지 듣고 싶어요. 이 숲에서 사람을 지켜보면서 무엇을 느끼는지 알고 싶어요. 





2026. 9. 5. 숲하루




히말라야 수력 1100곳 밀집 개발…6년 전 ‘누적 영향’ 경고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275984.html


주택 공급 대신 ‘용산공원’…녹색 복지일까, 녹색 불평등일까?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276044.html


9월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서울개발나물 선정

https://www.eenews.kr/6054


"1.8도 넘으면 못 돌아와"…유엔, 기후 마지노선 못 박았다

https://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2142


지구가열화가 바꾼 동물 색깔, 목숨까지 위협

https://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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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은 없었다 - 프랑스 최고의 유전학 박사가 밝힌 mRNA 코로나 백신의 모든 것
알렉상드라 알리옹 코드 지음, 목수정 옮김 / 에디터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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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가 늙어가는가

[읽는하루 3] 병원에만 나를 맡기느라


《마법은 없었다》

 알렉상드라 앙리옹 코드

 목수정 옮김

 에디터

 2023.10.10.



  뼈나이를 알아보니 여든살로 나온다. 튼튼할 줄 알던 뼈인데, 여든 넘은 엄마뼈와 맞먹는다니 앞이 캄캄하다. 골다공증 주사를 맞는다. 한 팔은 피를 뽑고 한 팔은 주사를 맞는다. 어깨로 그림자가 밀려와 가슴을 지나 왼팔로 넘어오는 듯하다. 몸을 돌아눕기도 힘들고, 살갗인지 뼈마디인지 벅차게 아프다. 주사와 약이 몸을 돌았다. 쌍화탕을 마셨다.


  수면내시경에서 깨어나니 베개맡에 침이 흘렀다. 마취도 잠일까. 누울 때와 다른 자리에 있고 어떻게 보냈는지 개운하지 않다. 세 아이를 낳을 때 전신마취를 했고, 무릎 수술도 전신마취였다. 건강검진마다 수면내시경을 했다. 아프지 않으려고 나를 통째로 맡겼다.


  《마법은 없었다》를 읽었다. 여태 내가 몸을 맡겨온 약과 주사를 다시 바라본다. 유전학 박사인 글쓴이는 코로나19 백신을 둘려싼 이야기를 우리한테 먼저 물어보고서, 의학계 뒷모습을 파헤친다. 코로나19는 우리 삶도 바꾸었다. 모이지 못하게 막고, 집에서 일하라 했으며, 택배나 새벽배송이 늘었다. 이러는 사이 작은가게는 하나둘 문을 닫았다.


  나는 코로나19가 퍼졌을 때 백신을 맞았다. 덜 아프려고 주사를 맞고, 빨리 낫는다는 약을 먹었다. 그러나 약이 늘 몸을 지켜주지는 않는다. 한 번 먹은 약을 줄여가며 끊어야 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픈 일도 겪었다. 약을 끊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시골집 창가 벼랑에는 늦여름 금은화가 핀다. 어릴 때에는 꽃을 따서 꿀을 빨아먹었다. 나는 볕에 말려 자루에 담지만, 짝은 닭죽이나 감주에 넣지 말라고 한다. 《마법은 없었다》를 읽으니, 금은화가 바이러스를 막는다는 대목이 있다. 잡초라고 여기는 흔한 풀을 다시 바라본다. 농약을 맞고도 자라는 풀, 흔해서 뽑아버리는 풀, 우리가 미처 모르는 풀마다 우리를 살리는 힘이 있을지 모른다.


  짝이 세 달마다 타오는 약이 한 보따리이다. 나이가 들수록 약봉지가 늘어난다. 약이 몸을 길들이는데, 설마 병원이라는 곳이 사람들이 마지막 머무는 집이 되어가지는 않을까.


  아프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믿고 맡기던 주사와 약을 다시 돌아본다. 약이 나를 살린다고 하는 동안, 나는 거꾸로 죽어가고 늙어갔는지 모른다. 나는 내 몸을 하나도 모르는 채, 아니 나는 내 몸을 스스로 알아보려고 하지 않은 채 나이만 먹었다고 해야겠지. 




2026.9.2.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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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우는 소리

[푸른하루 3] 노루



  벼꽃이 피었습니다. 들판이 푸릅니다. 고구마가 밭을 덮고, 길가 풀은 허리춤까지 올라옵니다. 능금나무에 썩은 능금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이웃 아저씨는 이레마다 능금밭에 약을 칩니다. 병든 능금과 고추에 약을 치고 길에 핀 풀도 죽입니다. 고추는 반은 익고 반은 희나리가 되어 말라갑니다.  


  이른아침 길에서 고라니를 만났습니다. 나도 놀라고 고라니도 놀랐습니다. 한동안 머뭇거리던 고라니가 도랑을 풀쩍 뛰어 고추밭으로 들어가 산자락으로 달아났습니다.


  봄에는 집 뒤 참나무 밑에서도 고라니를 보았습니다. 내가 낸 오솔길에는 짐승 발자국이 늘 있습니다. 마당에서 훠이 소리를 지르면 고라니는 그다지 놀라지도 않고 뒷산을 휘돌아 무덤 너머로 올라갑니다. 가랑잎이 사락사락 흔들려 노루가 걸어가는 그림이 훤히 보입니다. 어미일까 아기일까 짝일까. 먹을것도 마땅찮은 숲으로 가랑잎에 몸을 누이고 햇볕을 쬐며 졸까요.


  해질 무렵이면 고라니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우하하하, 우웨액 꿰에액.


  싸우는 소리인지 사랑을 부르는 소리인지 새끼를 찾는 소리인지 알 수 없습니다. 마을사람한테 물으니 밖에 나간 새끼를 부르는 소리라고 합니다.


  “집이 여기야. 이리 와.”


  나는 밤마다 새된 소리를 들으며 고라니 보금자리를 들킬까 걱정스럽습니다. 한 번은 나도 노루처럼 크게 소리를 질러 봅니다. 내 목소리에 내가 놀라고 귀가 먹먹합니다. 한동안 조용하던 고라니가 다시 웁니다. 소리가 다르다는 듯합니다. 왕겨 창고 쪽으로 걸어가니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고라니가 보입니다. 사람 사는 곳을 내려다보며 낮잠을 잤는지 눈이 마주쳐도 달아나지 않습니다. 내가 어흥 하자 그제야 우리 집 골짜기를 떠나갑니다. 그 뒤로 아랫집 쪽에서 고라니 울음소리가 납니다. 마을사람들은 고라니를 쫓을 뿐, 잡지 않습니다. 잡으면 다른 고라니가 또 오니까요.


  어린 날에 노루를 본 적 있습니다. 송아지만 한 노루가 앞발 뒷발을 묶인 채 아궁이가 있는 나무에 거꾸로 매달렸습니다. 살아서 움직였습니다. 얼마나 떨었을까요. 노루를 잡으면 재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 뒤 아버지가 아팠고 오빠도 다쳤습니다. 숲 어디선가 어린 노루를 바라보았을 어미 노루 생각이 오래 남았습니다.


  박곡마을에서 매실을 따던 날에는 탈탈이 소리에 놀란 새끼 노루가 풀밭에서 튀어나오기도 했습니다. 울타리 밖 숲에는 어미 노루가 있었습니다. 어미는 컥컥 소리를 내며 새끼를 부르면서도 사람 때문에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새끼를 보고 다시 숲으로 돌아가는 어미를 보다가, 노루는 사람한테 들키면 그만 헤어지고 마는구나 싶었습니다.


  새벽마다 마당 언덕에 발자국이 있습니다. 벼락비가 내린 어느 새벽에 고라니 한마리가 도랑에서 뛰어올라 눈앞을 휙 지나 비닐집 사이로 다리를 휘청이며 달렸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내가 잠든 사이 고라니는 우리 집을 지나 이 산에서 저산으로 건너갔더군요. 우리 집은 울타리가 없으니, 고라니로서는 지나다니는 길목이었습니다.


  햇고구마 두 포기를 캤습니다. 보랏빛 껍질에 힘줄이 돋아났습니다. 내 손등에 올라온 힘줄처럼 말이죠. 가뭄에 풀이 죽은 줄기가 밤이면 다시 살아납니다. 숲 어디에서 고라니도 고구마잎을 바라보며 침을 삼킬는지 모릅니다. 두 강아지가 밭을 지키기에 가까이 오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선녀와 나무꾼이 있는 곳을 알려준 짐승이 노루예요. 아마 노루는 하늘을 잘 읽나 봅니다. 봄이면 참나무 가랑잎 사이로 노루귀 꽃대가 올라옵니다. 노루를 닮은 꽃입니다. 나는 요즘 노루잠을 잡니다. 자다가 자꾸 깹니다.


  숲은 노루며 고라니한테 큰집입니다. 숲은 곳간이고 숨이고 바다이고, 나무가 사는 집입니다, 숲은 밥이고 둑이고 병풍이고 무덤입니다. 그 사이에 노루가 살고 나도 살아갑니다.



20260828 숲하루




에너지의 날, 불을 끄고 별을 켜다

https://www.eenews.kr/6003


[히말라야의 경고] 지구가열화로 '재난 패턴'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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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난 곰, 뜨거워진 숲...지리산 반달가슴곰의 운명

https://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74


[히말라야의 경고] 탄소 배출 적은 네팔, 왜 기후재난 최전선?

https://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83



지구가열화가 바꾼 동물 색깔, 목숨까지 위협

https://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77


캐나다는 왜 불탄 숲 '원래대로' 복원하지 않나?

https://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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