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나무를 심는 손님
[푸른하루 4] 담비
아침에 일어나니 강아지 한 마리가 안 보입니다. 측백나무 옆으로 난 비탈에서 내려오지 못하며 다리를 떱니다. 굵은 나무를 놓아 줍니다. 이 나무를 밟으며 내려오라고 하는데 아직 발을 다리를 떱니다. 다른 강아지가 나무다리를 오르내리고 나서야 비로소 이 강아지가 뒤따릅니다.
우리 집에서 담비를 자주 봅니다. 가만히 살피면, 측백나무 오솔길을 건너고 고구마밭을 지나서 호두나무를 타더군요. 오가다가 문득 멈칫하더니 어느새 재빨리 숲으로 사라집니다.
담비는 호두알도 따먹는 듯합니다. 가까이 사는 밭임자는 열 해 넘도록 후두알을 건사하지 못 했다고 합니다. 우리 집에 강아지를 둘 들인 뒤로는 담비가 좀처럼 호두나무 쪽으로 다가오지 못 한다고 느낍니다.
담비는 아침 일찍 다닙니다. 담비를 본 강아지 한 마리는 짖고, 다른 강아지는 고구마싹을 풀쩍풀쩍 뛰어넘어서 호두나무 코밑으로 갑니다. 담비는 꼼짝을 않는 듯하다가 강아지가 얼핏 등을 돌린 사이에 길을 건너서 산으로 들어갑니다. 강아지는 사라진 담비 쪽을 보며 내내 짖어댑니다. 살짝 나타난 담비는 참나무를 타고 올라서 소나무로 건너더니 휙 사라집니다.
담비는 벼랑을 잘 탑니다. 집에 있다가 부스럭하는 가랑잎 밟는 소리가 나면 ‘아, 왔나?’ 싶어서 창문 옆에 숨어서 지켜봅니다. 담비는 벼랑을 오가며 나무를 탑니다. 이러다가 벼랑 가운데짬에서 강아지 눈에 띄고 맙니다. 강아지는 그길로 벼랑을 뛰어오릅니다. 가랑잎에 미끄러지고 더는 못 올라갈 무렵, 담비는 이미 벼랑에 걸친 나무 둔치에 앉아서 강아지를 내러다봅니다. 강아지는 올라오지 못하는 줄 아는 듯합니다.
강아지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면 담비를 쫓겠다며 덤빕니다. 아마 강아지는 짖어댈 수는 있어도 잡지는 못 할 텐데, 담비는 눈에 잘 띄는 검은털로 날렵하게 숲을 날듯 달리며 살아갑니다.
담비가 따먹어서 호두알을 못 누린다고 하지만, 호두를 따먹는 담비이기에 이 멧숲에 호두나무를 심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토리를 따먹으면 참나무를 심을 테지요. 나무열매를 따먹는 멧짐승은 멧숲 곳곳에 열매나무를 한 그루씩 심으면서 살아갑니다.
어느 날은 뒤에서 누가 보는구나 싶어서 돌아보니, 담비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서 나를 빤히 내려다보더군요. 담비한테는 강아지까지 두 마리를 집에 둔 사람이 못마땅할 수 있습니다. 조용히 나무열매를 누리던 삶을 흔드는 사람들일 테니까요. 담비는 사람처럼 아파트를 올리지 않고 자동차를 달리지 않아요. 그저 조용히 열매를 누리고 나무를 심어요.
다음에도 담비랑 눈을 마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 마주보면서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기를 빕니다. 말을 걸고 싶어요. 숲에서 무얼 하고 지내는지 묻고 싶고, 담비는 새끼를 어떻게 낳아서 돌보는지 듣고 싶어요. 이 숲에서 사람을 지켜보면서 무엇을 느끼는지 알고 싶어요.
2026. 9. 5.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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