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옮김 / 삼천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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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게 삶으로 023 살리는 바탕

​


《흙-문명을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옮김

삼천리

2010.11.26.



밭에 지렁이가 살면 흙이 보드랍다. 지렁이가 땅속으로 다니면 흙이 부슬부슬 일어나 숨을 쉬고, 지렁이똥으로 흙이 기름지다. 흙에는 작은 숨결이 살면서 흙을 붙잡는다. 흙이 날아가지 않는다. 흙은 지렁이에 숱한 숨결을 동무로 삼고, 마른 가랑잎을 덮고, 풀과 꽃과 나무를 이웃으로 삼아서 땅을 지킨다.


살아숨쉬는 흙은 모두 씨앗을 키운다. 풀이 뿌리를 내리는 켜는 내 살갗보다 겉흙이 더 얇다고 한다. 이 얇은 흙이 우리를 먹여살리고, 더 깊은 흙에서는 작은 벌레가 먹고살고, 더욱 깊은 흙에서는 더 작은 숨결이 보금자리로 삼아서 어우러진단다. 흙이 늘 새롭게 숨을 쉬도록 이바지하는 모든 숨결이라고 느낀다.


우리가 화학비료나 농약을 치면 풀도 죽고 풀벌레도 죽고 지렁이도 죽는다. 이때에 우리 사람은 안 죽을 수 있을까? 우리도 똑같이 죽는 셈 아닐까? 흙에 깃들던 작은 숨결이 다 죽는데 사람만 안 죽을 수 있을까? 서로 얽히니, 흙에서 먹고 흙으로 돌아가면서 흙이 살아난다. 흙이 풀꽃나무가 될 씨앗을 키우지 못하면, 흙은 자꾸 벗겨지고 시들어가리라. 흙이 살고 벌레랑 지렁이랑 온갖 작은 숨결이 함께 어울려야, 흙도 사람도 모두 즐겁게 살아가리라.


《흙-문명을 앗아간 지구의 살갗》은 2010년에 나온 책이다. 글쓴이는 이 푸른별을 덮은 흙이라는 곳(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짚어 보려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다고 한다.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은 으레 흙이 죽었고, 사람이 살아갈 만한 곳은 언제나 흙이 싱그럽다고 한다.


2021년 어느 여름날, 지렁이떼를 보았다. 불볕인 한낮 비렁길에 이리저리 뒤엉킨 채 말라죽은 지렁이가 떼로 있었다. 날씨가 뒤틀려서 괴로운 나머지 죽었는지, 땅속에서 살 수 없어서 죽었는지, 어디로 옮겨가다가 죽었는지 모른다만, 이렇게 지렁이가 떼로 죽는다면, 우리 삶도 멀쩡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가랑잎을 갉고 돌을 잘게 부수어 흙으로 바꾸는 지렁이인걸. 지렁이는 사람들처럼 자동차를 몰지도 않고, 아파트를 세우지도 않고, 역사를 가르치지도 않고, 학교를 다니지도 않지만, 오래오래 이 별을 가꾸어 왔는걸.


곰곰이 보면, 언제나 작은 것(숨결·생명)이 큰일을 하더라. 흙을 찾기 어려운 도시이고, 도시에서는 흙이 곁에 없어도 걱정(불편)이 없는 듯싶지만, 우리가 도시 아파트에서 살더라도 흙이 없으면 논도 밭도 없는 셈 아닌가. 논밭이 없으면 밥이 없고, 논밭이 없으면 푸른바람도 없을 텐데.


자동차로 아스팔트를 달리면 빠르다. 바쁘니까 자동차로 빨리 달린다. 우리는 흙을 보거나 만지거나 디딜 일이 없다시피 하다. 나무는 겨우 흙에 뿌리를 뻗지만, 아주 조그마한 구멍에 고개를 빼꼼 내미는 꼴이다. 지렁이뿐 아니라 나무도 숨을 쉬기 어렵다. 답답하겠지.


사람도 살갗에 햇볕을 넉넉히 쬐어 주어야 튼튼할 수 있다지만, 햇볕을 느긋이 쬐려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든다. 햇볕을 안 쬐더라도 자라는 토마토에 딸기에 수박에 참외가 쏟아진다. 머잖아 햇볕을 안 쬐고 자라는 나락이 나올는지 모른다.


한 줌 흙덩이를 알 수 있다면, 흙으로 빚은 모두를 알 수 있겠지. 흙에서 자란 밥을 먹으니, 흙을 알려고 할 적에는 우리가 먹는 밥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지. 우리가 먹는 밥이 흙에서 온 줄 안다면, 우리 몸도 흙에서 돌고도는 줄 알 수 있겠지. 우리 몸이 흙에서 오는 줄 안다면, 마을도 나라도 흙이 고르게 덮고 풀꽃나무가 우거진 터전으로 바꾸려는 마음을 푸르게 펼 수 있겠지. 누구나 스스로 살리는 바탕인 흙을 다시 바라본다.  




2023.08.31.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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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 논술열기세계명작
생떽쥐베리 / 삼성당아이(여명미디어)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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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게 삶으로 022 길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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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이원두 옮김

생각이큰나무

1999.11.1

(같은 책이 없어서 다른책을 올립니다.)


큰딸이 어릴 적에 읽던 《어린 왕자》는 큰딸도 작은딸도 막내아들도 다 크고 나서 안 버렸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아이들만 보았고, 나도 나중에 언젠가 보리라 마음먹으면서 그대로 두었다. 이제 스물다섯 해 만에 펴 본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아이는, 뭐든 한 가지를 물으면 끝없이 다른 여러 가지를 묻고 또 묻는다. 곰곰이 생각하면, 우리 아이들도 늘 묻고 또 물으며 끝없이 물었다. 아마 온누리 아이들은 무엇이든 자꾸자꾸 물어보고 또 물어보다가 스스로 생각하는 틈을 누리지 않을까?


다 큰 막내아들이지만, 아직 어리던 무렵, 초등학교를 마치면 꼭 집에 전화를 했다. 어느 날은 느닷없이 “집에 내 장난감 언제 와? 빨리 보내 줘!” 하며 징징댔다. 그때에는 아이가 하는 말도 징징대는 마음도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바빠서 “학원 선생님 전화 왔어! 얼른 끊어.” 했다. 그날 아이는 씩씩거렸고, 실을 끊는 작은 가위를 손에 쥐더니, 내 노트북 이음줄을 가위로 끊는 흉내를 냈다.


작은 가위를 손에 쥐고서 씩씩거리는 아이를 살살 달래면서 숙제를 거들었다. “답이 뭐야?” “엄마가 생각하는 것이 답이야. 답지랑 똑같아.” “답지에 답이 뭔데?” “답지에 답이 엄마가 생각한 그대로야.” 말을 하기도 싫고 대꾸를 하기도 싫은 티가 물씬 나지만, 그래도 아이는 이렇게 대꾸를 해주었다. 얼핏 엉뚱했지만, 가만 보면 옳으면서 재미있는 말이기도 했다.


《어린 왕자》를 보면, 어른인 비행사는 사막에 갑자기 내려야 했다. 모래벌판에서 자다가 불쑥 아이를 만난다. 이 아이가 ‘어린 왕자’였고, 아이는 어른인 비행사한테 뜬금없이 “양 하나 그려 줘요.” 하고 말한다. 어른인 비행사는 슥슥 그림을 하나 그려 준다. 그랬더니 아이(어린 왕자)는 “보아구렁이에 있는 코끼리가 싫어. 양 그려 줘.” 하고 얘기한다. 양을 그리고 그려도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한테 드디어 상자를 그려 주면서 “네가 바라는 양은 여기 있다.”고 말하니 마음에 들어했다.


아이(어린 왕자)는 양이 안 보이는 곳에 있기를 바랐구나. 아이는 양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양도 꽃도 같이 있기를 바라는구나. 해가 뜨고 지는 하늘을 보고, 별을 바라보고, 우물을 긷고, 어느 날 불쑥 일어난 마음에 따라 머나먼 길을 나서고.


길들이는 삶과 길들어 가는 모습을 그렸다고 여길 수 있는 《어린 왕자》일 텐데, 다르게 보면 우리가 서로 만나고 헤어지는 삶이나 하루를 그렸다고 여길 수 있다. 틀에 박힌 말을 들려주고 가르치는 어른과 아이 사이가 아닌, 마음을 여는 말로 생각을 빛내는 사이로 만나는 둘이 짓는 삶을 들려주는 책일는지 모른다.


세 아이를 낳아 돌본 나는 세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었을까. 세 아이가 내(어른) 마음에 들도록 길들이거나 다그치거나 나무라려 하지 않았을까? 엄마 말에 고분고분해야 하고, 학교 공부를 잘 해야 하고, 숙제도 잘 해야 하고, 컴퓨터 오락은 되도록 덜 해야 한다는 말을 그저 따라야 한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아이들 마음을 읽기보다는, 아이들 말을 듣기보다는, 사회에서 시키는 틀을 아이들한테 고스란히 씌우지 않았을까? 그래서 아이들 마음뿐 아니라 내 마음도 스스로 못 읽는 하루를 살지 않았을까?


세 아이가 저마다 살림을 나서 따로 살아간다. 이제 다들 컸고, 어른이다. 나는 짝꿍이랑 가게일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쓴다. 스스로 삶을 글로 쓰면서 어제를 돌아본다. 어른스럽지 않던 나를 되새기고, 어른스러울 나를 생각하려고 글을 쓴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살던 어제를 글로 뉘우치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가려는 오늘을 글로 적어 본다. ‘어린 왕자’도 ‘어린 공주’도 아닌 ‘나’를 바라본다.



2023.08.25.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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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책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수리남 곤충의 변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지음, 윤효진 옮김 / 양문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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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게 삶으로 021 애벌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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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책》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윤효진 옮김

양문

2004.10.15.



오늘 숲에서 애벌레를 만났다. 길 가운데를 기어가더라. 밟히지 말라고 가랑잎이 쌓인 쪽으로 옮겨 주었다. “나비로 곧 태어나렴.” 하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크고 작은 나비가 팔랑이는 모습을 새삼스레 바라본다.


《곤충·책》을 두 해 만에 다시 읽는다. 처음 읽을 적에는 뭐가 좋은지 몰랐다. 벌레를 다룬 책이잖은가. 우리 아들은 개미만 보아도 무서워하는데, 나는 바퀴벌레를 보기만 해도 무섭다.


처음 본 바퀴벌레는 손가락 두 마디 크기였다. 도시로 나와서 살던 3층 집이었는데, 밖에서 가스줄이나 전깃줄을 타고서 들어오는 듯했다. 12층 집으로 옮기고 나서는 더 안 보는가 싶더니, 몇 달 지나지 않아 바퀴벌레가 또 나왔다. 개수대에도 옷칸에도 나왔다. 어디로 들어왔을까? 왜 들어올까?


《곤충·책》을 읽으면, 파인애플잎에 알을 낳아 태어나는 바퀴벌레 이야기가 있다. 바퀴벌레가 파인애플을 먹으면서 산다고? 우리나라 바퀴벌레는 무엇을 먹으면서 살까? 시골에서는 바퀴벌레를 볼 일이 없다시피 하지만, 도시에서는 바퀴벌레가 아주 흔하다.


도시라는 곳은 풀벌레가 살아갈 수 없어서 모두 죽거나 사라지고, 바퀴벌레만 겨우 살아남는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사마귀나 여치가 도시에서 살 길이란 없겠지. 거미도 도시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겠지. 먹이를 덜 가리는 삶으로 거듭나는 바퀴벌레가 도시에 맞추어서 사람하고 함께 지내는지 모른다. 우리들 사람은 아무것이나 다 먹고, 아무렇게나 살기에, 바퀴벌레가 이런 사람 모습을 고스란히 따르면서 함께 있는지 모른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님은 1647년에 태어났다고 한다. 《곤충·책》은 남아메리카 수리남에서 만난 풀벌레와 애벌레와 나비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들려준다. 풀꽃나무마다 어떤 벌레가 깃드는가를 살핀다. 알에서 애벌레로 자라고, 이윽고 고치를 틀어서 나비나 나방으로 깨어나는 길을 그린다. 1600∼1700년대에는 벌레를 마치 ‘악마’처럼 갑자기 생겨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는데, 이분은 알과 애벌레와 고치를 거쳐서 나비와 나방이 깨어나는 길을 밝혔고, 풀벌레는 다 다른 풀꽃나무에 따라서 다 다르게 살아간다는 길을 그림으로 차근차근 처음으로 보여주었다고 한다.


벌레는 숲에서 어떤 구실을 할까? 시골에서 나고자란 나이지만, 어쩌면 나는 벌레가 어떤 노릇을 하는지 여태 생각조차 안 했지 싶다. 고치를 어떻게 트는지, 고치에서 숨은 어떻게 쉬는지, 어떻게 애벌레하고 다른 몸으로 깨어나는지, 하나도 안 쳐다보고 마음도 없었지 싶다.


애벌레는 무슨 꿈을 꾸면서 잎을 갉을까. 머잖아 나비로 깨어날 꿈이 있을까. 고치를 틀기 앞서 새한테 잡아먹힐까 두려울까. 글을 쓰고 싶어서 용을 쓰는 내 모습은 애벌레를 닮지 않았을까. 풀꽃나무 곁에서 푸르게 빛나는 풀벌레라면, 풀꽃나무가 깃든 숲과 멧골을 좋아하는 나는, 벌레를 제대로 마주하려 하지 않았기에 지레 무서워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벌레를 좋아할 수는 없을 텐데, 오늘부터 다시 마주해 보려고 한다.



2023.08.19.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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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 양장본
법정스님 지음 / 범우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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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게 삶으로 020 빈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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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법정 지음

범우사

1976.4.15.



예전에 나온 낡은 판으로 《무소유》를 장만하던 날은 뛸 듯이 기뻤다. 나는 절에 다니지 않지만, 교회에도 나가지 않지만, 법정 스님 글이 그냥 좋았다. 스님 글을 읽으면서 나는 너무 많이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짐이 늘어났다. 어쩌면 법정 스님은 아이를 안 낳고 안 돌보셨기 때문에 ‘빈손’이나 ‘빈몸’을 얘기했는지 모른다. 배냇저고리를 입히고 기저귀를 빨고 포대기에 이불도 빨래하는 살림에 ‘빈손’이나 ‘빈몸’이기는 어렵다. 아니, 말이 안 되겠지.


그러나 아기가 맨몸으로 풀밭에서 뒹굴며 자란다면 빈손이나 빈몸이어도 된다. 아기가 맨발에 맨손으로 풀꽃나무하고 동무하며 자란다면 얼마든지 빈손이나 빈몸일 만하리라.


예전에 어느 이웃은 큰집을 얻고서 비싼 접시에 오백만 원이 넘는 침대를 사더라. 집을 잘 꾸며야 한다고 하던데,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비싸면서 좋다는 것을 들여야 ‘살림’이지는 않으리라. 얼마 안 되더라도 길이나 멧골에서 꽃내음을 맡고, 이따금 꽃집에서 꽃 한 줌을 사서 집에 두면 넉넉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아이들하고 읽을 책에 돈을 아낌없이 썼고, 이제는 내가 읽을 책에도 돈을 즐겁게 쓴다.


《무소유》는, 무언가 가지려 하면 이 무엇에 얽매인다고 들려준다. 난을 키우다 보면 난에 얽매이고 마는구나 싶기에, 난꽃을 둘레에 선물했더니 홀가분해서, 이때부터 한 가지씩 버리기로 다짐했다고 들려준다. 붐비는 버스를 타면 ‘삶의 밀도’를 느낄 수 있어서 택시를 안 타고 버스만 탔다고 들려준다. 풋중이던 무렵 《주홍글씨》란 책을 읽다가 들켜서 태워야 했다는데, 책을 태우고 나니 번뇌도 함께 타버렸단다. 좋은 책은 거침없이 읽히는 책이지만, 더 좋은 책은 읽다가 자꾸 덮이는 책이어야 한다는데, 지식으로 쓴 글이 아니라 우주 입김을 받아서 적은 책을 읽을 때에는 오롯이 쉴 수 있다고 들려준다


법정 스님은 맑고 새파란 하늘인 날씨에 경전을 읽어도 어쩐지 가을하늘에 결례이지 않나 하고 생각했단다. 겨울이면 눈이 쌓여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러한 소리가 책하고 매한가지라고 느꼈단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하루도 책읽기일 테지. 새벽부터 밤까지 땀흘려 일한 하루도 책읽기일 테지. 숨을 돌리면서 쉬는 날, 모처럼 짬을 내어 가까운 멧자락을 오르내리며 숲바람을 쐬는 하루도 책읽기일 테지. 가만 보면, 책읽기도 멀리 있지 않다. 손에 쥐느냐 안 쥐느냐는 그리 대수롭지 않다. 빈손이기에 더 훌륭하다거나, 빈손이 아니라서 덜 훌륭하다고 여길 수 없다. 어느 손이건, 스스로 오늘 하루를 짓는 마음으로 삶을 읽고 이야기하기에 스스로 즐거울 만하지 싶다.


요사이는 먹고사는 일로 또다시 아등바등한다. 우리 가게살림이 쉽지 않기도 하고, 작은가게에 일꾼을 두자니 버거워, 짝하고 나하고 둘이서 가게를 지키자니 몸도 힘들고 하루도 빠듯하다. 이러한 가게살림도 짐일까? 벗거나 내려놓을 짐일까? 스님이 아닌 사람은 빈손이기가 참 어렵다고 느낀다. 그래도, 빈손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손에 오늘 하루를 즐겁게 짓는 마음을 얹고 싶다.



2023.08.25.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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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의 희망 - <월든>의 작가 소로우가 들려주는 숲의 언어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이한중 옮김 / 갈라파고스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작게 삶으로 019 꿈꾸는 씨앗



《씨앗의 희망》

헨리 데이빗 소로우

이한중 옮김

갈라파고스

2004.5.12.



이제 새책으로 안 파는 《씨앗의 희망》이다. 2020년에 헌책으로 만났는데, 책에 적힌 값보다 이천이백 원을 더 치렀다. 웃돈을 치르는 헌책이라면 틀림없이 사랑받는 책일 텐데 왜 새책으로는 더 안 팔릴까. 이 책을 찾는 사람들은 꽤 있지만 많지는 않아서 새로 찍기는 어렵다는 뜻일까. 우리는 값지거나 아름다운 책에 선뜻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는 뜻일까.


어느 날 갑자기 씨앗이 궁금했다. 숲에 갈 적마다 열매를 몇 알씩 줍는 버릇이 있는데, “그런데 이 씨앗이란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숲에서 갖고 온 열매는 박바가지에 차곡차곡 담았다. 솔방울·동백·꽈리·도토리·쥐똥나무·노박덩굴·가시 칠엽수·연꽃씨에 여러 나무씨이다.


씨앗은 크기도 빛깔도 다르다. 우람하게 자라는 나무여도 씨앗 한 톨은 매우 작기 일쑤이다. 솔방울은 종이보다 더 얇은 씨앗이 켜마다 티없이 붙었다. 하나를 떼어내려니 날개가 부서진다. 


씨앗은 언젠가 흙에 닿으면 눈을 뜰 때를 기다렸다가 깨어날 테지. 뒷산에 열매가 익어간다. 어미 나무가 하나같이 아기를 밴 듯하다. 이 씨앗이 곧 깨어나 새 나무뿐 아니라 풀도 되고 숲을 이루겠지. 


2023년 유월에 대마도에 다녀올 일이 있었는대, 그때 대마도 꽃씨를 몇 자루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배를 타고 오가는 길에 살피니 ‘씨앗은 들여오면 안 된다’고 하더라. 몰랐다. 바깥씨(외래종)가 함부로 들어오면 우리 풀꽃이나 나무가 사라질는지 모른다. 거꾸로 대마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씨앗의 희망》을 읽다가, 내가 어린 날 누리던 놀이를 만났다. 어릴 적에 민들레 하얀 공씨를 입김을 불어서 멀리 날리기를 했다. 도깨비바늘 풀씨는 옷에 잘 달라붙어서 떼는 일이 귀찮았다. 박주가리는 씨앗이 뽀드득거릴 적에 먹고 마른 씨앗은 바람에 날려 보냈다.


몇 달 앞서 골짜기에 갔다. 너럭바위에 앉아 물을 구경하는데 바람이 불었다. 숲에서 노란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비스듬하게 무리를 이루어 날려갔다.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꽃가루가 이렇게 크게 덩이를 이루어 날아가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내가 입김을 불어서 작은 풀씨를 날리듯이, 바람은 꽃가루랑 씨앗무리를 날리는구나. 옷에 달라붙는 풀씨는 짐승 털에도 달라붙어 멀리까지 가는데, 어미 나무나 어미 풀이 넌지시 바람에 띄우는지도 모른다. 작은 씨앗과 꽃가루가 스스로 바람을 타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저 바람이 알아서 데리고 가는지 모른다.


작은 씨앗도 스스로 생각을 하리라고 여긴다. 《씨앗의 희망》은 작고 날개 달린 씨앗은 바람을 기다리고 멀리 갈 꿈을 꾼다고 속삭인다. 날개 없는 풀씨는 사람이나 짐승 옷을 붙잡고 멀리 가는 꿈을 꾼다고 들려준다. 나무 열매는 하늘에 사는 새랑 땅에 사는 다람쥐한테 씨앗과 열매를 먹이로 내주면서 멀리 나아가는 꿈을 꾼다고 얘기한다. 새는 훨훨 날아가서 똥으로 나무를 심고 다람쥐는 먹으려고 땅속에 헛간처럼 모으고 씨앗이 자라기 알맞게 땅을 파서 심기도 한다지.


씨앗 하나를 날려 보내는 일에 하늘과 땅과 바다가 제 식구를 보내 사랑을 받고 태어나는 듯하다. 씨앗 하나도 사랑을 알고 받고 태어나 자리를 잡고 어미그루가 되기까지 해·바람·비·흙과 밤에는 달과 별이 맡아 이야기를 들려주니까, 어느새 꿈씨로 품고 나오지 싶다.


바람을 타고 물고기처럼 헤엄쳐 가는 작디작은 씨앗은 보드라운 껍질을 달고서 티끌처럼 작은 알갱이로 숲을 이루어간다. 놀랍다. 내가 먹는 쌀보다 더 작은 씨앗은 모두 이웃숨결이 도우면서 제 모습을 드러낸 뒤 빠르고 멀리 날아야 할 때를 알고, 서두르지 않고 오래도록 참으며 기다리는 마음을 안다. 새나 짐승이 좋아하는 씨앗과 열매가 있기에 씨앗을 퍼트릴 테지. 바위틈을 비집고 나올 만큼 힘센 숨결이 천천히 씨앗을 꿈꾼다. 우리 집 바가지에서 잠자는 씨앗도 흙을 만나면 살아날까. 풀꽃나무는 하늘에 뜬 해와 별을 닮은 듯하다.



2023.08.24.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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