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 논술열기세계명작
생떽쥐베리 / 삼성당아이(여명미디어) / 1999년 12월
평점 :
품절


작게 삶으로 022 길들인다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이원두 옮김

생각이큰나무

1999.11.1

(같은 책이 없어서 다른책을 올립니다.)


큰딸이 어릴 적에 읽던 《어린 왕자》는 큰딸도 작은딸도 막내아들도 다 크고 나서 안 버렸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아이들만 보았고, 나도 나중에 언젠가 보리라 마음먹으면서 그대로 두었다. 이제 스물다섯 해 만에 펴 본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아이는, 뭐든 한 가지를 물으면 끝없이 다른 여러 가지를 묻고 또 묻는다. 곰곰이 생각하면, 우리 아이들도 늘 묻고 또 물으며 끝없이 물었다. 아마 온누리 아이들은 무엇이든 자꾸자꾸 물어보고 또 물어보다가 스스로 생각하는 틈을 누리지 않을까?


다 큰 막내아들이지만, 아직 어리던 무렵, 초등학교를 마치면 꼭 집에 전화를 했다. 어느 날은 느닷없이 “집에 내 장난감 언제 와? 빨리 보내 줘!” 하며 징징댔다. 그때에는 아이가 하는 말도 징징대는 마음도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바빠서 “학원 선생님 전화 왔어! 얼른 끊어.” 했다. 그날 아이는 씩씩거렸고, 실을 끊는 작은 가위를 손에 쥐더니, 내 노트북 이음줄을 가위로 끊는 흉내를 냈다.


작은 가위를 손에 쥐고서 씩씩거리는 아이를 살살 달래면서 숙제를 거들었다. “답이 뭐야?” “엄마가 생각하는 것이 답이야. 답지랑 똑같아.” “답지에 답이 뭔데?” “답지에 답이 엄마가 생각한 그대로야.” 말을 하기도 싫고 대꾸를 하기도 싫은 티가 물씬 나지만, 그래도 아이는 이렇게 대꾸를 해주었다. 얼핏 엉뚱했지만, 가만 보면 옳으면서 재미있는 말이기도 했다.


《어린 왕자》를 보면, 어른인 비행사는 사막에 갑자기 내려야 했다. 모래벌판에서 자다가 불쑥 아이를 만난다. 이 아이가 ‘어린 왕자’였고, 아이는 어른인 비행사한테 뜬금없이 “양 하나 그려 줘요.” 하고 말한다. 어른인 비행사는 슥슥 그림을 하나 그려 준다. 그랬더니 아이(어린 왕자)는 “보아구렁이에 있는 코끼리가 싫어. 양 그려 줘.” 하고 얘기한다. 양을 그리고 그려도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한테 드디어 상자를 그려 주면서 “네가 바라는 양은 여기 있다.”고 말하니 마음에 들어했다.


아이(어린 왕자)는 양이 안 보이는 곳에 있기를 바랐구나. 아이는 양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양도 꽃도 같이 있기를 바라는구나. 해가 뜨고 지는 하늘을 보고, 별을 바라보고, 우물을 긷고, 어느 날 불쑥 일어난 마음에 따라 머나먼 길을 나서고.


길들이는 삶과 길들어 가는 모습을 그렸다고 여길 수 있는 《어린 왕자》일 텐데, 다르게 보면 우리가 서로 만나고 헤어지는 삶이나 하루를 그렸다고 여길 수 있다. 틀에 박힌 말을 들려주고 가르치는 어른과 아이 사이가 아닌, 마음을 여는 말로 생각을 빛내는 사이로 만나는 둘이 짓는 삶을 들려주는 책일는지 모른다.


세 아이를 낳아 돌본 나는 세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었을까. 세 아이가 내(어른) 마음에 들도록 길들이거나 다그치거나 나무라려 하지 않았을까? 엄마 말에 고분고분해야 하고, 학교 공부를 잘 해야 하고, 숙제도 잘 해야 하고, 컴퓨터 오락은 되도록 덜 해야 한다는 말을 그저 따라야 한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아이들 마음을 읽기보다는, 아이들 말을 듣기보다는, 사회에서 시키는 틀을 아이들한테 고스란히 씌우지 않았을까? 그래서 아이들 마음뿐 아니라 내 마음도 스스로 못 읽는 하루를 살지 않았을까?


세 아이가 저마다 살림을 나서 따로 살아간다. 이제 다들 컸고, 어른이다. 나는 짝꿍이랑 가게일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쓴다. 스스로 삶을 글로 쓰면서 어제를 돌아본다. 어른스럽지 않던 나를 되새기고, 어른스러울 나를 생각하려고 글을 쓴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살던 어제를 글로 뉘우치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가려는 오늘을 글로 적어 본다. ‘어린 왕자’도 ‘어린 공주’도 아닌 ‘나’를 바라본다.



2023.08.25.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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