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책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수리남 곤충의 변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지음, 윤효진 옮김 / 양문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작게 삶으로 021 애벌레처럼


《곤충·책》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윤효진 옮김

양문

2004.10.15.



오늘 숲에서 애벌레를 만났다. 길 가운데를 기어가더라. 밟히지 말라고 가랑잎이 쌓인 쪽으로 옮겨 주었다. “나비로 곧 태어나렴.” 하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크고 작은 나비가 팔랑이는 모습을 새삼스레 바라본다.


《곤충·책》을 두 해 만에 다시 읽는다. 처음 읽을 적에는 뭐가 좋은지 몰랐다. 벌레를 다룬 책이잖은가. 우리 아들은 개미만 보아도 무서워하는데, 나는 바퀴벌레를 보기만 해도 무섭다.


처음 본 바퀴벌레는 손가락 두 마디 크기였다. 도시로 나와서 살던 3층 집이었는데, 밖에서 가스줄이나 전깃줄을 타고서 들어오는 듯했다. 12층 집으로 옮기고 나서는 더 안 보는가 싶더니, 몇 달 지나지 않아 바퀴벌레가 또 나왔다. 개수대에도 옷칸에도 나왔다. 어디로 들어왔을까? 왜 들어올까?


《곤충·책》을 읽으면, 파인애플잎에 알을 낳아 태어나는 바퀴벌레 이야기가 있다. 바퀴벌레가 파인애플을 먹으면서 산다고? 우리나라 바퀴벌레는 무엇을 먹으면서 살까? 시골에서는 바퀴벌레를 볼 일이 없다시피 하지만, 도시에서는 바퀴벌레가 아주 흔하다.


도시라는 곳은 풀벌레가 살아갈 수 없어서 모두 죽거나 사라지고, 바퀴벌레만 겨우 살아남는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사마귀나 여치가 도시에서 살 길이란 없겠지. 거미도 도시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겠지. 먹이를 덜 가리는 삶으로 거듭나는 바퀴벌레가 도시에 맞추어서 사람하고 함께 지내는지 모른다. 우리들 사람은 아무것이나 다 먹고, 아무렇게나 살기에, 바퀴벌레가 이런 사람 모습을 고스란히 따르면서 함께 있는지 모른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님은 1647년에 태어났다고 한다. 《곤충·책》은 남아메리카 수리남에서 만난 풀벌레와 애벌레와 나비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들려준다. 풀꽃나무마다 어떤 벌레가 깃드는가를 살핀다. 알에서 애벌레로 자라고, 이윽고 고치를 틀어서 나비나 나방으로 깨어나는 길을 그린다. 1600∼1700년대에는 벌레를 마치 ‘악마’처럼 갑자기 생겨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는데, 이분은 알과 애벌레와 고치를 거쳐서 나비와 나방이 깨어나는 길을 밝혔고, 풀벌레는 다 다른 풀꽃나무에 따라서 다 다르게 살아간다는 길을 그림으로 차근차근 처음으로 보여주었다고 한다.


벌레는 숲에서 어떤 구실을 할까? 시골에서 나고자란 나이지만, 어쩌면 나는 벌레가 어떤 노릇을 하는지 여태 생각조차 안 했지 싶다. 고치를 어떻게 트는지, 고치에서 숨은 어떻게 쉬는지, 어떻게 애벌레하고 다른 몸으로 깨어나는지, 하나도 안 쳐다보고 마음도 없었지 싶다.


애벌레는 무슨 꿈을 꾸면서 잎을 갉을까. 머잖아 나비로 깨어날 꿈이 있을까. 고치를 틀기 앞서 새한테 잡아먹힐까 두려울까. 글을 쓰고 싶어서 용을 쓰는 내 모습은 애벌레를 닮지 않았을까. 풀꽃나무 곁에서 푸르게 빛나는 풀벌레라면, 풀꽃나무가 깃든 숲과 멧골을 좋아하는 나는, 벌레를 제대로 마주하려 하지 않았기에 지레 무서워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벌레를 좋아할 수는 없을 텐데, 오늘부터 다시 마주해 보려고 한다.



2023.08.19.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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